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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심(宇宙一心)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白道 박만주 2016. 5. 4. 09:21

 

 

 

 

 

 


   우주일심(宇宙一心)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일심(一心)이 곧 관세음보살이며, 관세음보살이 곧 일심이다. 일심(一心)이 곧 도(道)요, 도(道)가 곧 일심이다. 일심(一心)밖에 도(道)도 있지 아니하고, 일심(一心)밖에 부처도 보살도 있지 아니하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광명이 곧 일심의 광명이니, 관세음보살을 찾고 부르는 거기에 일심의 광명이 일어나 일체의 모든 법에 응하나니, 곧 관세음보살의 자비화신인 것이다.

 

일심은 분별이 없는 마음이요, 분별이 없는 마음은 집착함이 없는 연고다. 그러므로 일심은 생. 멸이 없다. 생. 멸이 없는 연고로 영원한 것이요, 그러기에 일체가 다 갖추어졌다. 일체가 이미 다 갖추어졌기에 일체에 응하나니, 법신(法身) 그대로의 화신(化身)이다. 관세음 보살은 이 일심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응하여 나타난 자비의 화신이니,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찾는 그것이 곧 우주일심이라, 스스로 부르고 찾을 때 일심광명(一心光明)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일어난다.

 

부르고 찾되, 부르고 찾는 마음과 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니어야 한다. 둘이 아니니 일심이라, 관세음보살이 곧 일심이요 일심이 곧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법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고 여기를 쫓아서 들어가니, 이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 근본에 맡겨 의지하면 옳고, 그렇지 아니하면 그르다. 그러므로 알라, 중생의 모든 구하고 찾는 것이 여기에서 이루어짐이니, 이 우주일심(宇宙一心)에 놓고 맡겨서 찾을 것이요 구할 것이며, 일심으로 부르고 찾는 관세음보살에 오로지 맡기고 놓아서 해결할 것이다.



① 어떻게 놓고 어떻게 맡길 것인가?

 

놓는다 함이란, 분별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맡긴다 함이란,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은 비록 다른 듯하나 뜻은 다르지 않다. 집착하지 않으면 분별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분별하지 아니하면 집착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말해서 분별은 이것저것으로 따져서 가리는 것이요, 집착은 마음은 따져서 가린 것에 치우쳐 고착된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따지고 가리는 마음을 놓아서 치우쳐 고착된 마음을 우주일심(宇宙一心)의 관세음보살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우주일심(宇宙一心)에는 자타(自他)가 없으니, 다 놓고 맡겨도 내 것 아님이 없고, 내 것 아님이 없으니 관세음보살의 자비광명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광명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으니 모두가 보살의 권화(權化)라, 일심의 조화(造化)요 우주의 평화질서이다.



② 일체를 놓아 맡겨서 물 흐르듯이

 

물은 만물의 생명이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생명이 없다. 그래서 곧 잘 물은 진리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물은 분별하거나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다 스스로 받아들여 흘러가면서 정화를 한다. 그 흘러가는 곳엔 걸림이 없다. 나무, 바위, 철에도 물은 흐른다. 막으면 쉬어가고 돌아가기도 한다. 어쨌거나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마음 공부도 물과 같이 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받아 들여 분별없이 놓아버리니 흘러가면서 일체에 이롭다. 마음 공부도 물이 흘러가듯이 해야한다. 모든 경계를 받아들이되 즉시에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받아들여도 받아들인 거이 없고 놓아도 놓은 것이 없으니 여여(如如)할 뿐인 것이다.

 

여여(如如)란 ‘한결같다’ 는 말이다.

이것은 잡념이 없는 마음이다. 오직 일심(一心)! 그것이다. 관세음보살을 찾고 부를 때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면 곧 일심이 관세음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 곧 일심이다. 그래서 찾고 부르는 마음과 부르고 찾는 것(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닌 이것이 삼매(三昧)의 마음이니, 우주일심(宇宙一心)이라 일체가 한결같이 갖추어져 여여(如如)하다.

 

한결같이 갖추어져 여여하니 자비의 대광명이요, 가피며, 성취이니, 관세음보살의 대원(大願)이라, 모든 불. 보살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일심관세음보살(一心觀世音菩薩)에 다 놓아서 맡기라,’ 고 하는 것이다.



③ 마음을 허공과 같이

 

불견일법(不見一法)이 명위 관자재보살(名爲觀自在菩薩)이라, 참으로 ‘한 법도 보지 않음이 이름이 관세음보살’ 이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일심인 관세음보살에 모든 것을 다 놓아 맡기라’고 한다 해서 관세음보살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일심이라 해서 일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없는 마음이 바로 일심이듯이, 관세음보살 또한 단지 그 이름이 관세음보살일 뿐 다른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찾되 부르고 찾는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여야 하니, 곧 보살의 자비가 무량한 까닭이다. 보살의자비가 무량한 까닭에 그 방편이 무궁하며, 그 방편이 무궁한 연고로 그 행해(行解)가 무애(無碍)한 것이다.

무량(無量)하고, 무궁(無窮)하고, 무애(無碍)한 연고로 일심(一心)이 우주(宇宙)와 다르지 않고, 일심이 우주와 다르지 않은 연고로 이름이 관자재(觀自在)이며, 관세음(觀世音)이다.

 

보살(菩薩)은 인격화(人格化)한 말이니, 바로 부르고 찾는 스스로를 가리킨 말이다. 그러므로 알라,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찾되, 생각하고, 부르고 찾는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면, 보살의 자비가 무량할 것이요, 보살의 방편이 무궁할 것이며, 그 행해가 무애할 것이라, 일체의 법이 일심을 벗어나지 않음이, 마치 허공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법이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④ 우주일심(宇宙一心)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우주(宇宙)는 곧 전체(全體)요, 전체(全體)가 곧 우주(宇宙)라, 일심(一心)도 전체(全體)요, 전체(全體)가 일심(一心)이니, 둘 아니 것이 우주요, 둘 아닌 것이 일심이라, 우주(宇宙)가 일심(一心)이요, 일심(一心)이 곧 우주(宇宙)이니, 우주일심(宇宙一心)이라 하는바, 우주일심은 나와 너, 너와 나, 모든 존재의 뿌리요, 일체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처도 보살도 여기에 이르러 둘이 아니니, 둘이 아닌 자리에 모든 가피와 영험이 구족한 것이라, 관세음보살을 내세워 그기에 일체를 다 놓으라고 한 것이며, 일체를 다 맡기라고 한 것이다. 관세음의 관(觀)은 ‘본다.’는 뜻이고, 세음(世音)은 ‘세상의 소리’ 즉, ‘존재의 울림’이라는 말이다. 존재의 진동파장이 곧 소리(音)라는 말이며, 모든 존재는 이 진동파장이 있다는 말이다. 즉 ‘존재의 진동파장을 보는 것,’ 이것이 곧 ‘관세음’ 인 것이다.

 

‘보살’은 그 ‘행위자’라는 의미이니, ‘관세음보살’이란, 곧 ‘존재의 진동파장을 보고 관찰하는 이!’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저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찾는 이 마음이 곧 ‘관세음보살’이라, 부르고 찾는 여기에서 ‘관세음보살’의 권능(權能)이 일어나는 것이요, 관세음보살의 권능이란, 곧 보살의 자비(慈悲)를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보살의 자비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심(一心)에 본래로 갖추어져 있던 것으로, 이것은 안이거나 밖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므로 우주일심(宇宙一心)이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존재의 수많은 울림!, 즉, ‘소리(音=존재)의 관찰자(관세음보살)인 마음’ 또한 이름뿐 이라, 이름 세울 곳이 없으므로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의 자비가 무한(無限)한 것이며, 중생의 분별 망상과 집착으로서의 찾고 구하는 모든 마음을 여기에 다 놓아서 맡기라 하는 것이다.

 

깨닫고 깨닫지 못함에 관계없이

일체를 다 놓아 맡기면,

허허 탕탕(虛虛蕩蕩)하여

일체에 걸림 없고,

일체에 걸림 없으므로

일체의 성취인 것이요,

크게 자유로운 사람이다.

 

자유(自由)란,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말미암으니,

보살의 자비가 무한하고,

보살의 자비가 무한하니,

버리고 구하는 것도 여기에 있음이요,

있고 없음도 여기에 있음이라,

 

구구는 팔십일 이요,

꽃은 붉고 나뭇잎은 푸르다.


 

2002년 3월 20일, 관음원(觀音院) 중홍.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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