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하 제8장 선종사상 2. 견성의 본질 - 견성성불 결국 자성을 깨친다고 하는 근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제8아뢰야 무기무념도 아닌 진여무념을 깨친 것이 견성이고 성불입니다. 진여무념을 깨치기 전에는 견성이라 할 수 없고 성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생멸심.기멸심,망상이 그대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견성,성불했다고 한다면 되겠습니까. 불법에서 공인된 견성과 성불은 제8아뢰야 무기무념까지도 뽑아버린 .근본 미세념까지도 뽑아버린 무념이라야 견성이고 성불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혜능스님이 말끝에 일체만법이 자성을 떠나지아니함을 크게 깨치고 5조 흥인대사에게 아뢰었다.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한 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이 없는 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한 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는 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일체만법을 능히 내는 줄 알겠습니까." 홍인대사는 혜능스님이 본성을 깨친 것을 아시고 혜능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본 마음을 알지 못하면 도를 배워도 이익이 없으며 본 마음을 알고 자기의 본성을 보면 이를 조어장부, 천인사, 부처라 한다, 삼경에 법을 받으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다. 惠能이 言下에 大悟一切萬法에 不離自性하고 逐啓祖言호대 何期自性이 本自淸淨이며 何期自性이 本不生滅이며 何期自性이 本無動搖며 何期自性이 能生萬法이리요 祖知悟本性하고 謂惠能曰不識本心2하면 學道無益이요 若識本心見自本性하면 卽名丈夫天人師佛이라하고 三更에 受法하니 人盡不知니라 [육조단경] 육조스님이 흥인대사의 말끝에 일체만법이 자성 속에서 건립되어 있어 일체 만법 이대로가 자성이고 자성 이대로가 일체만법임을 확철히 깨치고 감탄하였던 것입니다. 자성을 깨치기 전에는 자성이 본래 청정한 것을 몰랐는데 자성을 깨치고 나니 자성이 청정하더라는 놀라움과 감탄을 표현한 것입니다. 청정이라고 하는 것은 "허공도 삼십방을 맞아야 하는 청정"이라는 것입니다. 허공이란 본래 깨끗해서 무슨 때가 있을 까마는 이 깨끗한 허공도 삼십방을 맞아야 한다든 것은 청정한 허공이라고 할지라도 청정이라는 상이 붙어 있을 것 같으면 진정한 청정이 아니므로 허공도 삼십방을 맞는 구경 청정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를 자성이라 하는 것이며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견성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객진번뇌 번뇌망상이 왔다갔다 하는 이런 경지를 어떻게 자성청정이니 견성이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체 망념이 다 떨어지면 자성청정이 안될 수 없으며 자성청정은 곧 무념인 것입니다,청정한 자성을 깨치고 보면 자성이 본래 생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멸이 없다고 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텅빈 것인가 하겠지만 텅 빈 것이 아니라 일체 만법이 원만,구족해 있다는 것입니다, 자성이 청정하고 생멸이 없다고 하니까 공한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자성이 청정하고 생멸이 없다고 하니까 공한 것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공한 가운데 무진묘용,항사묘용이 원만히 구족했다는 것입니다. 중생의 업견으로 볼때는 일체만법이 동요을 하고 있으나 자성을 깨친 정견으로 보면 진여대용이어서 일체만법이 구족해 있지만 추호의 동요도 없습니다. 참으로 자성이란 청정하고 생멸이 없고 일체가 구족하고 본래 동요가 없으며 일체만법이 건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아는 것이 진여자성을 바로 깨친 것이지 조금이라도 치우치게 되면 자성을 깨치지 못한 동시에 변견에 떨어진 외도입니다. 자성을 깨치면 이 사람이 곧 조어장부이며 천인사이며 부처이며 세존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견성이란 성불, 즉 구경각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지 십지,등각, 삼현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종문하(祖宗門下)에서난 교가에서나 어느 대법사,대논사들도 구경각의성취를 견성이라고 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구경각 아닌 것을 견성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외도입니다.
왜 내가 이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느냐 하면 선종에 있어서든지 교가에 있어서든지 불교의 근본목표는 성불에 있는데 그 성불은 어디에 성립하느냐하면 견성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대개 견성이라는 내용을 잘 모르고 공부하다가 이 생각 저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으면 견성했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지금 이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견성의 내용과 성불의 내용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기는 폐단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을 하든지 교학을 연구하든지 견성의 내용과 성불의 내용을 분명히 알고 정진해야 한다는 뜻에서 되풀이 하여강조한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