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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 성철 큰스님]-제7장 화엄종사상 - 1. 진공묘유

白道 박만주 2016. 7. 29. 09:11

 

 

 

 

 

 

 

 

 

 

     

 

   
  [백일법문 / 성철 큰스님]-제7장 화엄종사상 - 1. 진공묘유       
             

 백 일 법 문 / 성철 큰스님 


제7장 화엄종사상 - 1. 진공묘유 


여기에 인용하는 것은 현수스님이 찬술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에서 공(空)과 유(有)를 설명한 부분입니다. 

 
그 내용은 공과 유를 각각 네 가지로 설명하여 그 원융함을 밝힌 것인데 공과 유를 개별적으로 논의하지만, 사실은 공의 해설 중에 유가 포함되고, 유의 설명 중에 공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공묘유(眞空妙有)를 공과 유의 면으로 구분하여 고찰한 것입니다. 이 진공묘유의 내용을 분명히 이해해야 앞으로 설명하는 사사무애(事事無碍)를 비롯한 많은 화엄종의 교리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1) 진공사의 

진공에 전체적으로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자기를 버리고 남을 이룬다는 뜻이다. 

공(空)이 곧 색(色)이기 때문에 곧 색은 드러나고 공은 숨어 버리는 것이다. 


眞空에 通有四義하니 一은 廢己成他義라 

以空卽是色故로 卽色現顯空隱也요. 

[心經略疏;大正藏 33, p. 553中] 


‘자기는 버리고 남을 이룬다는 뜻’은 공을 내버리고 색을 쫓아간다는 뜻으로 공이 즉 색이기 때문에 공을 버리고 색이 되는 것입니다. 즉 진공(眞空)의 첫째 조건은 색이 드러나고 공이 숨어 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공 이대로가 전체적으로 색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는 남을 숨기고 자기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색이 공이기 때문에 곧 색이 다하면 공이 드러나는 것이다. 


二는 泯他顯己義라. 以色是空故로 卽色盡空顯也요. 


‘남을 숨기고 자기를 드러낸다는 뜻’은 색을 버리고 공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색 이대로가 공이기 때문에 색이 다하면 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공의 둘째 조건으로 그 이유는 색 이대로가 전체적으로 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숨음과 드러남이 둘 아닌 것이 진공이기 때문에 색이 공과 다르지 않음을 환색(幻色)이라 하니 색이 존재하는 것이요, 공이 색과 다르지 않음을 진공(眞空)이라 하니 공이 드러난다. 

서로 장애하지 않으므로 둘이 다 존재하는 것이다. 


三은 自他俱存義라 以隱顯無二가 是眞空故로 謂色不異空을 爲幻色이러니 色存也요 空不異色을 名眞空이러니 空顯也라 以互不相碍하여 二俱存也라.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한다는 뜻은 색과 공을 쌍조한 데서 하는 말입니다. 쌍조면에서 보면 공과 색은 서로 막히지 아니하고 통해 있으므로 공과 색이 둘이 다 존재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기와 남이 같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체(體)를 들어 서로 즉하여 전체를 빼앗아 둘이 없어져 두 변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四는 自他俱泯義라 以擧體相卽하여 全奪兩亡하여 絶二邊故라. 


‘자기와 남이 같이 사라진다는 뜻 '은 색과 공을 쌍차한 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 까닭은 색이 즉 공이므로 색이라 할 수 없고 공이 즉 색이므로 공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색과 공이 사라진 면에서 쌍민(雙泯)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공에 대한 네 가지 설명을 통하여 볼 때, 진공의 근본 뜻은 어느 곳에 있느냐 하면 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으로 서로 상즉하기 때문에 쌍조(雙照)하여 함께 있으면서[俱存] 쌍차(雙遮)하여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雙泯]. 

 

그러므로 진공의 내용은 함께 있으면서 함께 사라지고 또 쌍차쌍조하는 것이니 그 내용만 같으면 이름은 진공이라 해도 괜찮고 묘유라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한쪽으로 공을 강조할 때에 진공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색이 공을 바라보는 것에도 또한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남을 드러내고 자기는 없어지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는 드러나고 남을 숨기는 것이요, 

셋째는 같이 존재하는 것이요, 

넷째는 같이 사라지는 것이니 앞에 준거하여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곧 환색(幻色)이 있고 없는 것이 거리낌이 없고 진공이 숨고 드러남이 자재하여, 합하여 한 맛이 되어 원융하게 통하여 의지함이 없으니 이것이 그 법이다. 


色望於空에 而有四義하니 一은 顯他自盡이요 二는 自顯隱他요 

三은 俱存이요 四는 俱泯이니 並準前思之니라. 

是卽幻色이 存亡無閡하고 眞空이 隱顯自在하여 

合爲一味하여 圓通無寄하니 是其法也라. 


첫째의 현타자진(顯他自盡)은 색즉시공으로 공이 드러나고 색은 없어지는 것이요, 

둘째의 자현은타(自顯隱他)는 공즉시색으로 색이 드러나고 공은 없어지는 것이며, 

셋째의 구존(俱存)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색과 공이 분명하기 때문이요, 

넷째의 구민(俱泯)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색이라 해도 안 되고 공이라 해도 안 됩니다. 


앞에서 해설한 진공의 네 가지 뜻에 준거하여 생각해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있고 없는 것이 거리낌이 없다’에서 있음[存]은 유(有)이고 없음[亡]은 무(無)로서 유, 무가 거리낌이 없으므로 진공이 은현자재하고 합하여 한 맛이 되면서 

원융하게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진공묘유의 참 묘법인 것입니다. 


결국 진공에도 네 가지 뜻이 있고 묘유에도 네 가지 뜻이 있는데, 그 내용은 전체가 구존과 구민입니다. 존(存)은 조(照)이고 민(泯)은 차(遮)이므로 천태대사가 말하는 쌍차쌍조와 내용에서는 같습니다. 진공이라 해도 쌍차쌍조가 되고 묘유라 해도 쌍차쌍조가 되어,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이면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니 
여기에서 참으로 원융무애한 화엄의 근본 도리가 발현하는 것입니다. 



(2) 공유교철 

지금 해설하는 것은 현수스님의 저서인 화엄유심법계기(華嚴遊心法界記)에서 인용한 글로, 그 대체적인 의미는 앞에서 설명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요지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공유(空有)에 대해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어떤 방편으로서 그것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실증(實證)의 경계에 대해서 언급하는 점이 다릅니다. 즉 진실한 공유의 경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다고 역설하니, 교가(敎家)에서 자주 설하는 공유무애(空有無碍)는 결코 이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공(空)으로써 전체 유(有)를 빼앗으니 유가 공하면서 유가 없으므로 있다는 견해[有見]가 없어지고, 유로써 전체 공을 빼앗으니 공이 있으면서 공이 없으므로 공에 집착함이 모두 없어진다. 공과 유가 즉입(卽入)하여 전체가 서로 통하여 한 가지 모습으로 둘이 없으니 두 견해를 함께 떠남이요, 곧 서로 통하여 걸림이 없으면서 무너지지 않으니 두 상이 서로 존재하여 견해 아님[非見]이 모두 사라지느니라. 


以空으로 全奪有하니 有空而無有하여 有見이 蕩盡也요 

以有로 全奪空하니 空有而無空하여 空執이 都亡也라 

空有卽入하여 全体交徹하여 一相無二하니 雙見을 俱離요 

卽以交徹無碍而不壞하니 兩相이 雙存하여 非見이 咸泯也라. 

[華嚴遊心法界記;大正藏 45, p. 644下] 


마지막에 말하는 ‘견해 아님’이란 쌍차에 집착하는 견해를 말합니다. 공과 유가 상즉상입하여 전체가 통하여 한 가지 모습으로 둘이 없어 공과 유를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쌍차가 된다고 하니 중생들이 잘못 알고 쌍차에 집착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쌍차에 집착할 어떤 견해도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하여 곧바로 뒤에서 ‘두 상이 서로 존재하는’ 쌍조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 방편을 얻어 법에 들어가는 자는 곧 둥근 구슬을 손바닥에 놓고 보는 것 같아, 모든 견해에 구애받지 않고 자성 바다를 마음 끝에서 증득하여 사물 밖에 한가하며, 망정을 벗어나고 생각을 여의어 멀리 헤아림을 뛰어넘어 문득 백 가지 그른 것을 막아 버려 언어와 관념이 모두 끊어진다. 그러므로 이미 망령된 마음이 영원히 끊어지고 모든 견해의 구름이 걷혀 버려 오직 증득한 자만이 상응하는 것이니 어찌 말과 이론에 관계하겠는가. 


得是方便而入法者는 是卽契圓珠於掌內하여 諸見不拘하고 

證性海於心端하여 逍然物外하며 

超情離念하여 迴越擬議하고 頓塞百非하여 語觀이 雙絶하니라. 

故로 旣妄心이 永滅하고 諸見雲披일새 唯證相應이라 豈關言論이리요. 


‘이 방편을 얻어 법에 들어간 자’, 곧 법을 바로 안 자는 둥근 구슬을 손바닥에 두고 보듯이 모든 차별된 견해와 치우친 편견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둥근 구슬이란 자성이나 법성을 뜻하는 중도를 비유한 것입니다. 


‘자성 바다를 마음 끝에서 증득하여 사물 밖에 한가하여’에서 자성 바다는 즉 중중(重重)의 무진법계를 말하는데, 이 자성 바다를 마음속에 증득하면 세상의 온갖 사물에 걸림이 없이 한가하여 참으로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알게 됩니다. 


내외(內外)가 상통하기 때문에 삼제(三諦)가 원융하고 십현(十玄)이 무애한 천태나 화엄종은 동(東)을 때리면 서(西)가 응하고 공(空)이라 하면 유(有)가 있고 유라 하면 으레 공이 있어 통했다 하면 막히고 막혔다 하면 통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관념이 모두 끊어진다’에서 언어[語]는 말과 글로 밖으로 표현한 것이고, 관(觀)이란 마음속에서 분별하는 관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이니 유니 쌍민이니 쌍존이니 하는 도리들은 언어문자와 관념으로 알기는 알아도 
실제로 쌍민쌍존하는 무애법계는 자성을 깨치기 전에는 그 참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무릇 불법의 근본은 진공묘유에 있으며 화엄법계연기도 그 근원을 역시 여기에 두고 있습니다. 진공묘유의 기본내용은 쌍차쌍조에 있는데, 진공도 쌍차쌍조이고 묘유도 쌍차쌍조입니다. 


따라서 진공과 묘유의 내용이 둘 다 중도를 중심으로 한 쌍차쌍조인데 진공과 묘유를 나누어 놓은 이유는 체(體)의 면으로 공(空)을 강조할 때 진공이라 표현하고, 용(用)의 면으로 색(色)을 강조할 때는 묘유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화엄교의 진공과 묘유의 네 가지 뜻을 잘 알아야만 진공묘유의 내용을 아는 동시에 화엄법계연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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