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육식,그리고, 말나식. 아뢰야식. 암마라식.. ]

白道 박만주 2016. 8. 20. 09:06

 

 

 [육식,그리고, 말나식. 아뢰야식. 암마라식.. ]


종교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사고할 때 식(識) 이라 쓰고 이것을 열 가지 차원으로 구분합니다.


맨 처음 안식(眼識)이라. 시각 눈으로 보아서 알음알이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식(耳識)이라, 청각 귀로 들어서 알음알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비식(鼻識)이라, 후각 냄새로 알음알이하는 것이고, 다음은 설식(舌識)이라, 미각 맛으로 알음알이하는 것이고, 다음이 신식(身識)이라, 촉각 몸으로 알음알이하는 것이며, 다음은 의식(意識)이라, 생각으로 알음알이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이 육식(六識)만 갖고 씁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또 몸으로 느끼고, 뜻을 헤아립니다. 우리 범부중생은 상식으로 이 육식(六識) 차원만을 갖고 씁니다.


그런데 개나 소나 돼지는 여섯 번째 식 없이 앞의 오식과 오감만 씁니다. 개나 소나 돼지 등 동물은 여섯 번째 식이 완전히 잠재해 버려서 식이 안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모두가 다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의 꽃이나 나무나 흙이나 별이나 모두가 다 본래 불성이어서 식이 다 갖춰져 있단 말입니다.


다만 발로가 안 되어 있을 뿐이지 그런 것들이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즉 동물들은 오감, 오식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좀 더 진화가 되어서 육식(六識)을 쓰는 것인데, 육식(六識)의 뿌리는 무엇인가?  제칠 말나식(末那識)이라, 이것이 육식(六識)의 뿌리입니다.


말나식은 모든 망령된 미망과 무명의 근본이 되는 식입니다.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결국은 원죄라는 죄의 씨앗을 말합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만심도 있고 욕심도 있는 근본 원죄,불교말로 하면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는 말입니다. 무명이라는 말은 없을 무(無)자 밝을 명(明)자, 밝지 못하니 결국은 무지란 말입니다. 무지나 무명이나 같은 뜻입니다.


근본 무명, 이것이 제칠식입니다. 근본 무명 때문에 의식으로 활동할 때에도 한없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남한테 베풀 때도 '내가 저 사람한테 베풀면 저 사람이 좋아하겠구나, 언제 나를 도와주겠구나' 이와 같이 항시 계산이 들어있단 말입니다.


일반 범부 중생은 순수하게 뭘 잘 못합니다. 그러니까 중생이라는 것은 항시 위선이 들어 있습니다.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위선을 떠납니다. 성자는 천연적으로 행동해도 위선이 없지만 우리 중생들은 상당히 마음을 먹고 해야 조금씩 나아지는 것입니다.


말나식이라는 것은 모든 어리석고 미망된 마음의 근본인데, 우리 마음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순자의 성악설처럼 인간성을 본래 나쁜 것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지금 학자들을 보면 인간성은 본래 나쁜 것이기 때문에 교육을 해서 도야를 시켜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나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말나식의 뿌리는 제팔 아뢰야식(阿賴耶識) 입니다.

아뢰야식은 선악을 떠나서 모든 종자가 다 들어 있습니다.

나쁜 종자, 좋은 종자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져 버려도 그 종자가 여기 다 남아있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종자가 들어있다가 사랑하는 마음이 자꾸 깊어지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 미워지는 것이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죽이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우리가 생각을 내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아뢰야식에 항시 저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자식이라, 선악의 종자가 여기에 들어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연이 닿으면 종자가 다시 싹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이것이 마음의 근원인가? 이것도 근원이 아니라, 다행히도 보다 더 큰 근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암마라식(菴摩羅識) 이라, 청정식(淸淨識)이라고도 합니다.


저 근본에서 볼 때는 좋은 것이나 궂은 것이나 모두가 다 청정하단 말입니다.


여기에 바닷물이 있다고 할 때, 바닷물 표면에 비가 와서 흙탕물이 들어가면 표면은 오염이 되겠지요. 그러나 몇십 미터 수면 밑은 오염이 안 됩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 마음이란 것은 아뢰야식이 근본 바탕이 아닙니다.


보다 더 깊은 바탕이 암마라식인데, 이곳은 나쁜 종자가 들어오든 좋은 종자가 들어오든 상관없이 항시 청정하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정식(白淨識)이라, 그야말로 순결하고 청정하단 말입니다.


암마라식은 백정식으로 풀이가 됩니다. '암마라'라는 말은 인도말로 불식(佛識)이라는 뜻인데 부처님, 진여불성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못난 우리 마음도 근본은 부처라는 것을 짐작하시겠지요?

우리가 좋다 궂다 하는 것은 말나식 차원이지,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면 내내야 다 부처가 나옵니다. 개의 마음이나 소의 마음이나 끄트머리에 가서는 다 부처의 마음인 것입니다.


불경을 보십시오. 전생의 자기 아버지가 지금 자기가 키우는 개로 환생한 사연도 많습니다.

분명히 자기가 지은 바에 따라서 윤회합니다. 뱅뱅 돕니다. 죽어서 개도 되고, 소도 되는 것입니다.


시기심을 많이 내고 질투를 많이 한 사람들은 대체로 죽으면 구렁이나 뱀이 됩니다.

지금은 사람의 허울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기 번뇌, 자기 업에 걸맞는 허울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에 올라가면 천상 허울을 쓰고 그러다가 부처가 되면 그때는 완전한 생명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본래 고향이 부처인데 이 자리가 바로 적멸(寂滅)이라,

번뇌가 다 없어져 버려서 청정하고, 번뇌의 동요가 조금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 다음이 불성이라, 나쁜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처가 되면 어디 윤회를 하겠습니까?


예수나 석가나 공자 같은 분들은 다 번뇌에 묶여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높은 극락이나 천상에 계시다가 우리 중생이 불쌍하니까

자비로, 사랑으로, 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짐짓 몸받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분들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본래는 우리 모두가 다 부처님 아들이요 하느님 아들인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러분도 그냥 업 따라 나오신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높은 데 계시다가 금생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나오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가 부처인데 이것이 본 마음입니다.

따라서 남을 해코지하는 마음은 본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악마와 천사가 같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악마와 천사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악마와 하느님이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악마와 하느님, 악마와 부처님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님이고 하느님인데 우리가 잘못 살아서 나쁜 버릇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쁜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를 하고 진심으로 타이르면 그 순간,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래가 부처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해야 합니다.    


  

방장 2007.08.29 23:10 http://blog.daum.net/chl0108/488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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