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6. 10. 15. 11:00
반야(般若)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즈냐(prajna)’,팔리어의 ‘판냐(panna)’를 음역(音譯)한 것으로파야(波若), 발야(鉢若), 반라야(般羅若)로 쓰기도 한다. 의역으로는 지혜(智慧) 혹은 명(明)이라고 번역한다. 또, 청정(淸淨), 원리(遠離;멀리 벗어남)로 번역하기도 한다.
요컨대 '반야'는 '부처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이 반야는 마음의 작용으로 번뇌망상을 제거하는 신령스런 지혜이다. 모든 부처의 스승이자 모태(佛母)로서 찬양되고 있으며 불과(佛果)를 얻기 위한 중요한 계기(근본 요인)로 삼고 있다.
반야라는 말이 쓰인 경우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경전으로 <반야심경>이 있다. 이것은 반야의 지혜로써 우주만물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일체는 실체가 없는 '공(空)'임을 깨달아, 그 깨달음(菩提)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길을 설한 것이다.
'피안(저 언덕)'은 깨달음의 세계로 미혹의 세계인 '차안(此岸)'과 상대되는 말이다. 모든 속박에서 풀려난 해탈의 오계(悟界)에 도달하는 것을 '도피안(到彼岸;저 언덕에 이르다)'이라 한다.
'반야회'는 ‘대반야회’라고도 한다. 주로 집안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법회로서 <대반야경>을 전독 (轉讀)한다.
'반야삼매(般若三昧)'는 반야의 올바른 지혜에 머무르는 것으로 일체의 집착을 벗어나 올바르게 사물을 관찰하는 경지이다. '삼매'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통일하는 것이다.
'반야선(般若船)'은 반야의 지혜를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 깨달음의 피안에 이르는 배에 비유한 것이다.
'반야행인(般若行人)'은 참된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반야'는 '부처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이다. 흔히 말하는 상식적 지혜가 아니라 상대적, 차별적인 것을 몽땅 비워버린 신령스런 지혜이다. 이 지혜는 논리의 세계를 초월한, 사량분별이 미치지 못하는 순수한 지혜이자 절대의 지혜이다. 때문에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벽암록> 제 6칙의 평창(評唱)에서는 반야를 "말한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는 이것이 참된 반야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야는 언어를 단절한 신령스런 지혜이기 때문에 입으로 말할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신령스런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차고 뜨거운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하듯이 자기 실천으로 스스로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전제 조건으로 '함부로 망상을 부리지 말 것이며(莫妄想)', '일체를 놓아 버려야 할(一切放下)' 것이다.
<般若心經> |
|
|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