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 성철(性徹)스님

白道 박만주 2016. 12. 19. 08:43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 성철(性徹)스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진여眞如본성인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어서,

   불佛이나 법法이나 승僧이나 평등하여 추호도 증감차별이 없느니라.


       一切衆生이 悉有佛性하야 佛法僧에 無有差別이니라.

       일체중생    실유불성        불법승   실유차별                  『大涅槃經』



일체중생이 구유具有한 진여본성은 제불의 과덕果德을 원만구비圓滿具備하였으므로, 이를 불성佛性 법성法性 또는 불심佛心 불지佛智 등으로 부른다. 이 불성은 절대로 평등하여 무상극과無上極果를 성취하여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덕知德을 완구完具한 제불여래나 극악중죄인 5역逆 10惡악 내지 일천제一闡提의 중생까지도 원만구유하므로 여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선근이 절멸絶滅한 일천제一闡提도 불성佛性만 정견正見하면 전부 성불하나니,

이것이 불교佛敎의 생명이며 모든 종교가 추수追隨할 수 없는 가장 탁출卓出한 특색이다.  


♤.일천제[一闡提]: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아 성불할 인연이 없는 중생


<강설>

 “자성自性을 바로 보면 곧바로 성불成佛한다” 하였는데 자성自性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보기만하면 부처가 된다 하는가? 자성이란 모든 중생이 지니고 있는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으로서 불성, 법성, 법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중생이란 사람만이 아니라 육도중생을 다 포함해 일컫는 말이다.


이 불성佛性이란 것은 성불한 부처님이나 미혹한 중생이나 돈 많은 부자나 빈곤한 거지나 출가한 스님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속인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갖추고 있는 것이다. 성불한다고 늘어나고 미혹하다고 줄어드는 법도 없다. 극악한 중생과 원만한 부처가 그 불성佛性에 있어선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선善한 기미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극악한 단선근중생斷善根衆生도 깨치면 곧 부처이다. 무엇을 깨친다는 말인가? 본래 구비具備하고 있던 진여자성, 즉 불성佛性을 깨치는 것이다. 개개인 속에 다 하나님이 있어 하나님 아닌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불교의 주장이다. 이는 다른 종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불교의 우수성이다.


◇. 일체중생이 그 누구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불성佛性을 구유具有하고 있건마는,

    항상 한량이 없는 번뇌망상이 개복蓋覆한 고로 능히 그 불성을 볼 수 없느니라.


    一切衆生이 悉有佛性이언마는 常爲無量煩惱所覆故로 不能得見이니라.

    일체중생    실유불성       상위무량번뇌소복고     불능득견         『대열반경』



 중생이 번뇌망상에 장폐障蔽되어 자기본유의 불성을 보지 못하나 불성佛性은 항상 무한한 대광명을 발하여 시방법계十方法界를 비추고 있으니, 이는 태양이 중천中天에 높이 떠서 우주를 비추고 있지마는 흑운黑雲이 엄폐掩蔽하면 중인衆人이 보지 못함과 같다.


<강설>

 지고지순한 가치의 하나님과 불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면 혹자는 “그럼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것은 번뇌망상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늘 빛나고 있는 태양을 볼 수 없고 밝은 거울에 먼지가 앉으면 거울의 밝은 빛이 드러나지 않듯, 번뇌망상에 가려 있으면 우리 안에 늘 자리하고 있는 부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먼지를 깨끗이 닦아낸 밝은 거울이건 때가 꼬질꼬질 낀 거울이건 그 바탕에 있어선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먼지가 앉았다고 구름이 끼었다고 거울의 성품과 태양의 빛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 사무애지四無碍智가 곧 불성이니 불성은 곧 여래니라.


       四無碍智가 卽時佛性이니 佛性者는 卽時如來니라.

       사무애지   즉시불성        불성자    즉시여래              『大涅槃經』


      제불諸佛의 과지果智인 사무애지가 불성이니 불성이 즉 여래이다.



◇. 불성은 불가사의한 것이니 이는 제불의 경계니라.


      佛性者는 不可思議니 乃是諸佛境界니라.

      불성자    불가사의     내시제불경계                         『대열반경』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중묘衆妙를 구비한 불가사의한 이 불성佛性은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성취한 제불여래의 심심현현深深玄玄한 경계이다. 이 불가사의한 신묘영성神妙靈性이 번뇌망상에 엄폐掩蔽되어 중생이 보지 못함은 실로 개탄할 일이다.


<강설>

 먼지만 걷어내면 거울의 밝은 바탕이 드러나듯 번뇌망상을 제거하면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환히 드러나는데 그걸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자리에도 불성의 거울, 하나님의 거울을 가지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열심히 화두話頭를 들어 확연히 깨치면 빛이 샐 틈조차 없어 보이던 그 두꺼운 번뇌 망상의 구름장도 단번에 확 걷힌다. 그러면 자성自性을 분명히 보아 한가로운 도인으로서 자유자재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모두들 어렵다고 여기지만,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 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 십이인연을 요견了見한 자는 즉시 만법을 정견正見한 자요 만법萬法을 정견한 자는 즉시 불타를 철견徹見한 것이라, 불타佛陀라는 것은 즉시 불성佛性이니 무슨 연고인고 하면 일체제불이 이것으로써 자성自性을 삼기 때문이니라.


見十二因緣者는 卽是見法이요 見法者는 卽是見佛이라 佛者는 卽是佛性이니 何以故오

견십이인연자    즉시견법        견법자    즉시견불        불자    즉시불성       하이고

 一切諸佛이 以此爲性이니라.

 일체제불   이차위성                                   『대열반경』


 견법見法이 즉 견불見佛이며 불佛은 즉 불성이니 법성과 불성은 동체이명同體異名이어서

 이를 진여眞如 여래장如來藏 법계法界 정변지正遍知 심지心地 등의 천명만호千名萬號로

 부른다.



◇. 불성은 제불의 극과極果인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대비大悲와

     사념처 四念處니라.


           佛性者는 十力 四念所畏 大悲 四念處니라.

           불성자   십력  사념소외 대비 사념처                      『대열반경』

          

◇. 중도中道를 불성이라 부르나니 그러므로 불성은 상주항일常主恒一하여

     변동과 천역遷易이 없느니라.


     中道者名爲佛性이니 以是義故로 佛性은 常恒하야 無有變易 이니라.

     중도자명위불성       이시의고     불성    상항       무유변역        『대열반경』


 석존釋尊이 보리수아래서 무상정각을 성취한 후에 녹야원으로 5비구를 심방尋訪하여 개구제일성開口第一聲으로 “아我는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였다”고 선설宣說하였다. 이것이 석존의 대각大覺 내용을 개진開陣한 중도대선언이어서, 중도中道는 불성이므로 중도를 정각하였다함은 불성의 정견 즉 견성見性하였다 함이다.



<강설>

 견성하면 성불이라고 앞서 주장했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말씀하신 대각선언大覺宣言을 살펴보면 중도中道를 깨달았다고 했지 불성을 깨달았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혹자는 ‘견성하면 성불한다는 주장은 부처님의 근본 말씀과 어긋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반경』을 근거로 살펴보면 중도中道가 곧 불성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이 중도中道를 깨달았다는 말씀은 자성自性을 바로 보았다는 말씀과 한 치도 다를 것이 없다. 표현만 다를 뿐이다.



◇. 중도의 대법大法을 불성이라 호칭하나니 그러므로 불성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니라.


    中道之法을 名爲佛性이니 是故로 佛性은 常樂我淨이니라.

    중도지법    명위불성       시고     불성    상락아정                    『대열반경』


 

   상락아정은 대열반의 사덕四德이니 불성은 즉 여래의 대열반경계를 말함이다.



◇. 불성은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 하여 제일의공은 지혜라 이름 하느니라.


     佛性者는 名爲第一義空이요 第一義空은 名爲智慧니라

     불성자    명위제일의공        제일의공    명위지혜        『대열반경』


     불성佛性은 제일의공, 즉 여래의 무상정변지無上正遍知이다.



◇. 12인연十二因緣을 불성佛性이라 부르나니 불성은 즉시 제일의공이요

     제일의공은 중도中道라 하며 중도는 불타니 불타佛陀는 열반이라 하느니라.


    十二因緣은 名爲佛性이니 佛性者는 卽第一義空이요 第一義空은 名爲中道며


    십이인연    명위불성       불성자     즉제일의공       제일의공     명위중도

    

    中道者는 卽名爲佛이요 佛子는 名爲涅槃이니라.

    중도자    즉면위불       불자     명위열반                          『대열반경』

                                                                                 


   제일의공과 중도中道와 불타와 열반은 전부 불성을 말한이니, 그러므로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일체여래가 불성을 철견徹見하여 득도得道성불한 것이다.


<강설>

   불성佛性을 바로 보면 곧 성불임을 『열반경』에 근거해 설명하였다.

   다음은 『기신론』과 『육조단경』에 근거해 살펴보자.


◇. 자성自性이 무량무변한 일체의 공덕功德을 원만구비하였느니라.

 자성이 법法 보報 화化의 삼신三身을 구비하여서 발명發明하여 사지四智가 되나니,


 견문의 반연攀緣을 이거離去하지 않고 초연히 불지佛地에 등입登入 하느니라.

 自性이 滿足一切功德하느니라.


 자성    만족일체공덕

 自性이 具三身라야 發明成四智하나니 不離見聞綠하고 超然登佛地니라.


 자성    구삼신        발명성사지           불리견문연       초연등불지         『기신론』


자성[自性] 즉 불성이 불교의 극과極果인 삼신사지三身四智를 구비하여, 일체의 공행功行과 덕용德容을 원만구유하여 일호一毫의 부족도 없으니 참으로 부사의不思議 중 부사의不思議이다. 그러니 이 자성을 철견하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함은 당연 이상의 당연이다.


석존釋尊이 중생에게 기여한 최대공헌은 불성의 발견이다. 만약에 불성의 존재와 그 개발開發의 방법을 선시宣示하지 아니하였으면 중생은 영작중생永作衆生으로 고해苦海를 도탈度脫하는 해탈의 길은 영원히 폐색閉塞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유불성皆有佛性의 대원리에 의하여 노력수행하여 법해法海에 자재무애하는 대해탈도를 성취하여야 할 것이다.


<강설>

 자성[自性] 속에는 불교에서 목표로 삼고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인 3신身과 4지智가 빠짐없이 구비되어있다. 따라서 자성만 확실히 보면 곧 구경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자성은 어디에 있을까? 흔히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등의 일상적인 작용을 떠나 자성이 따로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것이 불성[佛性]이다.


이것이 자성[自性]이고 3신身과 4지智를 원만히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육조스님의 논지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 일상사에 3신과 4지의 모든 공덕이 다 구비되어 있으니 이런 작용들의 근본을 바로 알면 누구든지 성불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중생이 곧 부처임을 처음 밝힌 분이 누구인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시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이런 사실을 몰랐었다. 헌데 성불해서 살펴보니 당신과 전혀 차별이 없는 불성을 일체중생이 빠짐없이 갖추고 있더라는 것이다. 굳이 차이를 논하자면 중생衆生은 다만 번뇌 망상에 가려 스스로 보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에 보면 “신기하고도 신기하구나” 하고 부처님께서 탄복하신 구절이 나온다.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것을 바로 믿고 바로 보고 철저하게 깨달으면 그가 곧 부처님이다. 누구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결코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다. 바로 믿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



  ♧ 출처 :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禪門正路 [장경각 刊]


   http://blog.naver.com/mcrane/110040629470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