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7. 1. 4. 09:15

 

 

 

 

 

                                                   

               

 

        

  三昧의 뜻

元曉 저/李箕永 역/韓國佛敎硏究院/자료입력:정혜안

 


 A, 해석(釋)

다음은 둘째번으로 삼매(三昧)라는 이름을 해석한 것인데, 이 가운데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첫째는 해석이요, 둘째는 간별이다.


옛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인도에서 삼매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정사(正思)라는 뜻인데 지금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 문의(文義)에 합당한 까닭이다. 이를테면 定에 들었을 때에, 관계되는 경계(所緣境)를 깊이 살피고 바르게 생각하는 까닭에 정사라고 이름한다. 유가(瑜伽)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삼마지(三摩地)라는 것은 관련되는 것(所緣)에 대해여 자세히 그리고 바르게 관찰하여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집중된 성품이라고 한 때문이다.

問 : 정(定)이란 마땅히 고요함(靜)이어야 하고, 고요하다 함은 하나의 경계(一境)에 머무름을 뜻하는 것이어늘 어떻게 다시 자세히 바르게 생각하고 관찰한다(審正思察)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하고 살피려면 마땅히 찾아 헤매어야(尋伺) 할터인데 어떻게 선정(禪定)을 설(說)하면서 생각하고 살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答 : 만약 하나의 경계를 지키는 것을 곧 정(定)이라고 한다면, 혼침(??)한 채로 경계에 머무르는 것도 마땅히 정(定)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을 가지고 심사(尋伺) 즉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邪)가 되고 거짓된 생각(邪慧)으로 사물을 추구(推求)하는 것은 마땅히 심사(尋伺) 즉,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사찰(思察) 즉 생각하고 통찰(洞察)한다는 말속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거짓되고 바른 것을 모두 통틀어 말과 뜻을 분별하는 것을 사찰(思察)이라고 이름한다면, 이것은 곧 심사(尋伺)이므로 곧 분별(分別)이다. 그러나 만약 자세히 올바르게 그리고 명료(明了)하게 대상을 깨닫는 것을 바른 생각이며 통찰(正思察)이라고 이름한다면 바로 이것이 정(定)의 용(用)이 되는 것이라, 이 경우에는 찾아 헤맨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선정(禪定)은 분별과 무분별에 두루 통하기 때문에 바르게 살핌으로써 심사(尋伺)를 가려낸 것이다. 또 하나의 경계에 머무른다(住一境)고 하는 것도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만약 하나의 경계에 머물기는 하지만 마음이 혼미(?迷)하고 어두워서 자세히 살필 수 없으면, 이는 곧 혼침(??)이다. 반대로 하나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이 침울하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은 채로 바르고 자세히 생각한다면, 이는 곧 바른 정(定)이라 이름할 수 있다.


때문에 바르게 생각해서 통찰하는 것과 혼침(??)과는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은, 마음이 머물러 있거나 또는 옮기어 가거나 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이 정(定)에 들었다, 들지 못했다고 차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속하게 달리는 변론은 비록 속하게 바뀌어 가지만, 그 가운데 정이 있기 때문이요, 느린 생각은 비록 오랫동안 경계에 머물러 있지만 사실은 산만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금강 삼매를 바른 생각과 통찰이라고 하는 것은, 바르다든가 바르지 못하다든가 하는 상대적 관념이 없는 것이고 생각이나 생각이 아닌 것도 넘어선 것이지만 다만 그릇된 분별 및 邪된 생각과 구별하기 위하여, 또 허공이 아무 생각도 없는 것과 같지 않음을 밝히기 위해서 부득이 정사(正思)라고 불렀을 따름인 것이다.



  B, 간별(簡別)

삼매(三昧)라는 이름을 간략히 해석한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다음 삼매의 의미 내용을 간추려서 구별해 보면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여러 가지 이름의 뜻을 하나씩 구별해 보고, 다음에 여러 가지 이름의 공통된 의미를 간추려 본다.


정(定)이라는 이름에는 여덟 가지 다른 이름들이 있다.
1)은 삼마혜다(5)인데 이것은 등인(等引)이라고도 불리어 지는 것으로써, 멀리 혼침(??)과 도거(掉擧)(6)의 치우친 생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등(等)이라 하고 신통(神通) 등의 여러 가지 공덕을 인발(引發)시키기 때문에 인(引)이라 한다. 또한 이 등인(等引)은 후회(後悔)없는 환희나 안락(安樂)을 끌어내는 바이기 때문에 등인(等引)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욕망의 세계, 욕계(欲界)에 있어서의 정(定)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2)는 삼마지(三摩地)(7)이니, 이것은 등지(等持)라 불리어 지는데, 등(等)의 뜻은 앞서 말한 바와 같고, 능히 마음을 제어하여 잘 호지(護持)함으로써 밖으로 치달리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 이름한다. 또한 선정(禪定)과 지혜(智慧)가 평등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 하는 것이니, 예전에는 삼마제(三摩提)라고 했는데, 이것 또한 등지를 뜻하는 말이다.


3)은 삼마발제(三摩鉢提)(8)인데, 이는 등지(等至)라 불리어 진다. 등지 가운데서 능히 수승(殊勝)한 지위에 이르게 되는 까닭에 등지라 이름한다.


4)는 타연나(馱演那)(9)니 이것은 정려(靜慮)라 불리어진다. 고요하게 깊이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한 능히 흐트러진 생각을 진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나(禪那)라고 했는데, 이는 속어(俗語)의 차이일 뿐 모두 정려(靜慮)를 말하는 것이다.


5)는 사마타(奢摩他)(10)니 이것을 번역해서 지(止)라고 말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경계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하므로 지(止)라고 이름한다.


6)은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니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의 본성에, 전일(專一)하도록 하기 때문에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이름한다. 예전에는 일심(一心)이라 말했는데 이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간략히 한 것이다.


7)은 정(定)이니, 정을 찾을 때 마땅히 갖추어야 할 조건을 뜻하므로 정이라 이름한다.


8)은 정사(正思)니 그 뜻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삼매(三昧)라는 이름과 삼마제(三摩提)라는 이름은 단지 등지(等持)를 뜻하는 것이라, 다른 이름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금고경(金鼓經)]에서 열 가지 정을 설명하는 가운데, 앞의 삼지(三地. 보살의 닦아 나가는 열 가지 경지 가운데 초보적인 세 가지 경지)에서는 삼마제(三摩提)라 이름하고, 뒤의 칠지(七地)에서는 삼매라 이름하였으니, 이러한 두 가지 이름이 만약 같은 등지(等持)의 뜻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름을 고쳐서 앞과 뒤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겠는가?


또한 이 두 가지 이름이 어째서 같지 않는가를 고려해 볼 때 만약 속어나 방언의 차이 때문에 같지 않다고 하면, 마땅히 한 곳에서 두 가지 이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고, 만약 경전을 전해 온 시대의 전후 때문에 다르다고 하면 마땅히 하나의 원본에는 두 가지 이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 삼마제(三摩提)와 삼마지(三摩地)라는 말은 경전을 전한 시대의 전후 때문에 다른 것이요, 실은 같은 말이라는 것은 확실히 옳다고 하겠지만, 삼매라는 이름과 삼마제(三摩提)라는 이름은 같은 대본(臺本) 속에 있으니,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앞에서와 말한 바와 같이 나누어 설한 것이다.


둘째로 삼매의 넓은 의미와 제한된 의미를 밝힌다고 하는 것은, 간략히 네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1. 정(定)과 등지(等持)의 두 가지 이름이 가장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 유루(有漏. 남김없는 해탈에 이르지 못하고 아직 번뇌의 여지가 있는 상태)와 무루(無漏. 남김없는 해탈을 성취한 상태)에 두루 통하며, 또한 삼계(三界)에 통하며 더 나아가 욕계(欲界)의 산란한 마음에도 통한다. 그 가운데 육위(六位)의 심소(心所. 마음의 대상)가 있는데 그 다섯 가지 경계 중에도 삼마지(三摩地)가 있으며, 이를 또한 정(定)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2. 심일경성(心一境性)과 삼매(三昧)라는 이름이니, 이 둘은 다음으로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록 욕계(欲界)에는 통하지만 한결같이 산란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주삼매(般舟三昧)(11)와 욕계에 결박된 아홉 가지 마음가짐(住心)의 심일경성(心一境性)도 역시 욕계의 방편심(方便心)에만 통하기 때문이다.


3. 삼마혜다와 정려(靜慮)라는 이름이니, 이 둘은 좁은 의미가 있으니, 전혀 욕계의 마음에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며, 오직 가볍고 편안한 마음이 포함한 경지만을 취해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4. 삼마발제(三摩跋提)와 사마타(奢摩他)라는 이름이니, 이 둘은 가장 협소한 의미가 있다. 즉 정(定)의 경지 안에도 자세한 구별이 있기 때문인데, 사마타는 네 가지 혜행(慧行)가운데 심일경성(心一境性)에 통하지 않고 삼마발제는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의 세 가지 삼마지(三摩地)에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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