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님은 어떤분이신가요? 대조사님의 속성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이고 본명은 준동(準東)이며 법휘(法諱)는 상월(上月), 의호(懿號)는 원각(圓覺)이다. 신해년(1911) 음 11월 28일에 강원도 삼척에서 2대독자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두뇌가 총명하고 자질이 뛰어나서 15세전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하셨다.
15세 때에 불문(佛門)에 득도하여 경ㆍ율ㆍ논 삼장(三藏)을 참구하신지 수년에 대조사님께서 불법의 근본 가르침이 경문을 알고 이해하는데 있지않고 자성(自性)을 밝히는데 있음을 깨닫고 명산과 승지(勝地)를 찾아가 폐침망식(廢寢忘食)하면서 지관(止觀)을 닦아 오셨다. 그리고 견문을 넓히고자 운수납자(雲水衲者)로 중국에 들어가 천태산국청사(天台山國淸寺)와 오대산문수도량(五臺山文殊道場)과 보타낙가산(普陀洛伽山) 관음영장(觀音靈場)등을 순례하고 서장(西藏)까지 편력하며 만행(萬行)을 닦으시었다.
대조사님께서 8ㆍ15광복을 전후하여 깊이 뜻하신 바가 있어 국내 여러 명산승지를 두루 답사하시다가 소백산 구봉팔문 하의 연화지(蓮華地)에 이르러 초암(草庵)을 얽고 불석신명(不惜身命)으로 각고정진을 하여 오셨다. 동족상잔의 6ㆍ25동란 중에는 대조사님께서 주로 마곡사(痲谷寺)와 공주지방에서 난민(難民)들과 더불어 지내오시면서, 전진(戰塵)중에도 무외(無畏), 무애(無碍)의 법력과 자비행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셨다.
공산군이 격퇴된 후 대조사님께서 전화(戰禍)로 소실된 초암을 다시 얽고 천태지관법(天台止觀法)을 수증하면서 만경구적(萬境俱寂)의 공삼매(空三昧)를 체인(體印)하고 임인년(1962) 음 12월 28일 활연대오하여 삼관묘제(三觀妙諦)의 무상대도를 성취하셨다.
그리하여 산색고금외(山色古今外) 수성유무중(水聲有無中) 일견파만겁(一見破萬劫) 성공시불모(性空是佛母) 라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었다.
상월대조사님께서 소백산에 입산하시어 새도량을 개설하시고 각고정진하실때에 몇가지의 큰 서원이 있었다. 그 서원이란 「기필코 큰 법을 성취하고 이곳에서 새 불교운동과 큰 불사를 일으키겠다. 기필코 반야지혜와 무애해탈을 증득하지 않고서는 사회와 대중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기필코 스스로 성취한 공덕은 만중생에게 회향하여 다함께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대조사님의 불퇴전의 구도정신과 새 불교, 새 신앙운동의 염원과 광도중생의 대원을 알수 있는 것이다. 대조사님께서는 근세이래 국민정신의 바탕이 무너진 사상계의 혼미와 정법의 퇴상을 개탄하시고, 특히 이기적 편집(偏執)과 대립, 갈등, 분열을 일삼아 오는 불교계 상황에 큰 회의(懷疑)를 품어 오셨다. 이에 묘법의 위신력과 불교의 참면목(眞面目)을 세우고자 염원을 굳게하셨다.
소백산 유곡에서 대도성취를 위한 수도에만 전념해 오신 대조사님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1963년경부터 였다. 대조사님의 법력과 자비구제력의 향기가 사방에 퍼지자 전국각지에서 그 문하에 귀의하는 제자와 신자가 날로 격증하였다. 그 도풍덕화(道風德化)와 자재(自在)한 구제력은 참으로 부사의(不思議)하였다.
중생의 고뇌는 가지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중생들을 응병여약(應炳與藥)격으로 제도함으로써 삶의 의욕을 잃고 있던 사람들의 가슴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절망과 어둠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광명을 주었던 것이다.그래서 「부처님의 법만은 우리를 지키고 선도하며 구제한다. 불법은 누구이든차별하지 않으며 바로 믿으면 삶의 기쁨을 얻는다.」라는 확신을 누구나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인연으로 구인사를 다녀간 이는 청정한 신심을 일으키었고, 공경하는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불법과 대조사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되었으며, 지난날의 잘못되었던 생활을 참회하며 지극지성으로 기도생활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구인사는 일체중생이 자비로 구제되는 영험의 도량이 되고, 인간개조, 진리의 감로도량으로 승화되어 왔으며, 대조사님의 자재한 법력과 자비 구제력에 누구나 감모열복(感慕悅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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