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물질 보다 훨씬 더 큰 보시다

白道 박만주 2017. 7. 2. 10:02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물질 보다 훨씬 더 큰 보시다 

 

阿難言,  “於彼人所受持是經,  供養是人,  得幾所福?   佛言,  ”若復有人,  持以滿城金銀,  而以布施,  不如於是人所受持是經一四句偈,  供養是人.“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저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 한 공양은  얼마나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어떤 사람이 저 성에 가득 찬 금은을 가지고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 가운데 한 게송을 받아 지니고서 이 사람이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물질 보다 훨씬 더 큰 보시다

 

물질의 보시 보다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더 무한한 복을 지을 수 있다. 물질은 제한된 것이고 소모되는 것이어서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논밭을 물려주는 것보다 지식을 전해주는 것이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논밭을 팔아서 자식을 교육시키는 부모들이 많았다.

 

   此是第二,  明持經者能生多福.   以滿城金銀,  施不持經者,  所得之福,  不如一餐一衣,  供養持此

   一四句偈之所得福故.

 

이는 두 번째로 이 경전을 지니는 자는 능히 많은 복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성에 가득 찬 금은을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경전을 받아서 지닌 사람이 얻은 복만 못한 것이다. 한 끼의 식사와 한 벌의 옷(一餐一衣)을 공양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사구게를 지니고 있는 자에게 공양하여 얻은 복만 같지 못한 것이다.

 

“善男子,  令諸衆生持是經者,  心常在定,  不失本心.   若失本心,  卽當懺悔,  懺悔之法,  是爲淸凉.”

 

선남자야, 모든 중생들이 이 경전을 지니게 된다면 그 마음은 항상 선정에 들게 되어, 본심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본심을 잃는다면 곧 참회를 하게 될 것이니 참회의 법은  삿된 생각이 없이 맑은 마음(淸凉)이 되는 것을 말한다.

 

   此下第五懺悔流通.   於中有二,  先讚懺悔功德,  二者往復重顯.   初中言‘淸凉’者,  滅不善因沈濁

   故‘淸’,  離生死 果熱惱故‘凉’.

 

이 아래는 다섯 번째로 참회하는 진리를 유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참회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고, 둘째는 되풀이해서 거듭 나타낸 것이다. 처음 가운데서 청량(淸凉)이라고 한 것은 불선의 업인인 마음의 침체와 혼탁함을 없애는 것을 청(淸)이라고 하고, 생사의 과보인 들끓는 번뇌(熱惱)를 없애는 것을 량(凉)이라고 한다.

  

阿難言,  “懺悔先罪,  不入於過去也.”   佛言,  “如是.   猶如暗室,  若遇明燈,  暗卽滅矣.  善男子,  無說悔先所有諸罪,  而以爲說入於過去.”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앞에서 지은 죄를 참회한다는 것은 과거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만일 밝은 등을 켜면 어둠이 즉시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남자야, 과거에 있는 모든 죄를 참회한다고 말할지라도 과거에 들어간 것은 아닌 것이다.


▶ 참회를 통해서 과거에 지은 죄를 소멸함

 

여기서 과거에 지은 죄는 어두움에 비유되고, 참회는 밝은 등불에 비유되고 있다. 마치 암실에서 밝은 등불을 켜면 어둠이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참회를 하면 과거에 지은 죄까지도 즉시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此下第二往復重顯.   於中卽有二番問答,  初番顯其懺悔道理,  後番顯其懺悔行法.   此中問竟言

   ‘懺悔先罪,  名懺悔者,  先罪不入於過去耶?   若先非今故,  入過去者,  云何於無罪而有懺悔?’ 

   答中言‘知是’者,  如是先罪,  不入過去故,  不於無而有懺悔.   所以然者,  先所作罪,  熏於本識種

   子,  恒流在於現在,  由是道理,  未入過去.   且今懺悔,  能治生時,   令彼罪種,  不流現在,  如燈

   生時,  室暗方滅,  罪種不至於今現故.   是時方說令入過去.    而無說悔先所有罪者,  先所有者, 

   非悔所及,  不能令彼非先有故.   但其先有,  令不至現,   不至現者,  由悔所爲.   此與斷結之義異

   者,  彼約生滅道故,  令未生者,  不至現在,  此就     相續道故,  令先有者,  不至現在.   又斷結

   者,  永斷種子,  悔先罪者,  損伏種子增强之用,   不至現在,  故約此義,  說入過去也.

 

이 아래는 두 번째 되풀이해서 거듭 설명한 것이다. 그 가운데 곧 두 번의 문답이 있다. 첫 번째는 그 참회의 도리를 설명하는 것이고, 다음번에는 그 참회의 수행법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가운데 질문의 뜻은 앞에서 지은 죄를 참회한다는 말을 참회(懺悔)라고 이름 한다면 앞에서 지은 죄(先罪)는 과거에 들어가지 아니 하였는가.

 

만약 앞에서 지은 죄는 지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들어갔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해서 지금 여기에 없는 죄에 대해서 참회할 수 있겠는가. 대답 가운데 그렇다고 한 말은 이와 같이 앞에서 지은 죄는 과거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없는 것에 대해서 참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은 죄는 본식(아뢰야식)에 훈습되어서 종자가 항상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종자는 현재에 있는 것이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과거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또한 지금 참회를 해서 능히 번뇌의 발 萱다스릴 때에 그 죄업 종자로 하여금 현재에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등불을 켜질 때에 방안의 어둠이 곧 사라지는 것과 같이 죄업의 종자도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 바야흐로 과거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가지고 있던 죄를 참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가지고 있던 죄는 소급해서 참회되지 않는 것이며, 저것으로 하여금 앞에 있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앞에 있는 것을 현재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참회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결박의 번뇌를 단절한 뜻과는 다르다는 것은 저것은 생멸도(生滅道)에 의지하기 때문에 아직 발생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서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상속도(相續道)를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앞에 있는 것으로 하여금 현재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또 결박의 번뇌를 단절한다는 것은 종자를 영원히 단절한 것을 말한다. 앞에서 지은 죄를 참회한다는 것은 종자를 손상시키고 굴복시켜서 종자의 힘이 증강(增强)되는 작용을!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뜻을 요약해서 과거에 들어 간다고 말한 것이다.


▶ 전생이나 과거의 죄를 어떻게 참회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지은 죄는 현재에 없는데 현재 어떻게 참회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전생이나 과거에 지은 죄는 항상 현재의 아뢰야식에 있는 것이지 과거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과거에 들어가 있어서 현재에 있지 아니하다면 현재에 참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지은 죄는 본식에 훈습되어서 종자가 항상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현재에 있는 것이다.

 

이 때의 본식은 아뢰야식을 의미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도 아뢰야식이 중심이 되어서 태어났고, 현재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아뢰야식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아뢰야식이 체내에 있기 때문에 생이라고 하고, 아뢰야식이 떠나버리면 죽음이라고 한다. 생과 사는 아뢰야식을 중심으로 해서 하는 말이다. 유식학은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생사관을 말하는 것인데 본식의 종자는 항상 흘러서 그래서 현재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은 업력과 아뢰야식과 더불어 살아간 그래서 아뢰야식을 폭포수와 같다고 해서 폭유식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과 더불어 폭포수와 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아뢰야식의 도리로 말미암아 죄는 항상 현재의 아뢰야식에 있는 것이다. 불교는 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만약 죄를 지었다면 즉각 참회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우리가 죄업을 과거에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현재의 아뢰야식 내면에 있기 때문에 현재의 마음을 정화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의 힘으로 소멸시키게 되는 것이다. 현재 참회하면서 전생의 죄를 사한다는 것은 알맞은 말이 아니다. 아무리 전생에 지은 구생기 번뇌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아뢰야식 내에 있기 때문에 현재의 죄업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참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과거의 죄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있다면 어떻게 참회를 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들어간다고 한 말은 과거의 죄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도록 정지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업이 과거의 어느 지점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阿難言,  “云何名爲懺悔?”   佛言,  “依此經敎,  入眞實觀.   一入觀時,  諸罪悉滅,  離諸惡趣,  當生淨土,  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어떤 것을 이름 하여 참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진실한 선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한번 진실관에 들어갈 때 모든 죄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며, 모든 악취에서 벗어나는(離) 것이며, 마땅히 정토에 출생해서 속히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더 이상 위가 없는 최상의 깨달음을 말한다. 아(阿)는 없다는 뜻의 무(無)에 해당하며, 뇩다라(耨多羅)는 더 이상 위가 없다는 뜻의 무상(無上)에 해당한다. 삼(三)은 바르다는 뜻의 정(正)에 해당하며, 먁(藐)은 현상계(事)와 진리의 세계(理)에 두루함을 뜻한다. 삼(三)은 바르다는 뜻이며, 보리(菩提)는 깨달음을 뜻한다.

 

이계과(離繫果)는 계박에서 떠나는 과보를 말한다. 삼계육도의 계박에서 해탈하는 과보를 불보(佛報)라고 한다. 참선의 진정한 뜻은 삼계의 악취에서 해탈해서 속히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관음찬에서 百劫精進罪 一念頓蕩罪 백겁에 지은 죄가 한 생각에 한꺼번에 없어진다. 마치 마른 덤불이 불에 타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도 남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此是第二懺悔行法.   答中有二,  先明行法,  後示勝利.   初中言‘依此經敎,  入眞實觀’者,  謂依金

   剛三昧敎旨,  破諸法相,  名‘入眞實’,  此是地前相似眞觀,  ‘一入觀時,  諸罪悉滅’者,   一切罪障,

   從妄想生,  今破諸相,  入眞實觀,  頓破一切妄想境界,  所以諸罪一時悉滅.    次顯勝利,  卽有二

   句.   ‘離諸惡趣,  當生淨土’者,  是明華報,  ‘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是示果報.

 

이는 두 번째 참회의 수행법을 말하는 것이다. 대답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행법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고, 뒤에서는 수승한 이로움을 나타낸 것이다. 처음 가운데 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말한다면 진실관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은 금강삼매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모든 법상에 대한 집착을 타파한 것을 이름 하여 진실관에 들어갔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지전보살과 유사한 진실관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 진실관에 들어갈 때 모든 죄가 모두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일체의 죄업과 장애가 망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이제는 모든 망상을 타파하는 진실관에 들어가서 일체의 망상의 경계를 한꺼번에 없애는 까닭에 모든 죄가 일시에 모두 다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는 수승한 이로움을 나타낸 것인데 곧 두 가지 구문이 있다. 모든 악취(惡趣)를 없애고 마땅히 정토(淨土)에서 출생한다는 것은 이것은 화보(華報)을 설명! 한 것이며,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신속하게 성취한다는 것은 이것은 과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 네 가지 열반(四涅槃)과 네 가지 지혜(四菩提)

 

금강삼매는 초지보살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제십 법운지 보살에 가면 확실하게 나타난다. 금강지에 가서 금강삼매가 확실하게 나타나면 전생에 지었던 모든 번뇌가 한꺼번에 없어진다. 원시경전 부터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금강삼매가 최고의 삼매로 알려져 왔다. 진정한 선사상은 원효 보다 앞 세대인 원각이나 자장율사와 같은 분들은 중국의 섭론을 도입했으나 그분들의 저술이 남아있지 않다. 금강삼매에 대해서 이와 같이 책으로 남긴 것이 원효이다.

 

그래서 원효를 우리나라 선종의 초조(初祖)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의 근본 선사상은 금강삼매이다. 금강삼매에 들어가면 모든 죄업이 다 없어지고, 또한 악취에서도 벗어나서 정토에서 태어나서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죄업과 장애는 망상으로부터 발생한다. 망상은 번뇌로운 생각을 말한다. 진실관에 들어가서 모든 죄업과 망상을 없애고 마땅히 정토에서 출생한다는 것은 이것은 화보(華報)를 설명한 것이다. 이 때의 화보는 성불직전의 단계를 의미한다.

 

제 십지보살을 지나 등각위 정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지전보살에서 씨앗이 싹터서 지상보살의 수행을 끝내고 이제는 꽃이 핀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화보를 받고 난 후에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것은 모든 뿌리가 되는 근본번뇌까지도 다 정화된 상태에서 얻은 깨달음을 말한다.

 

이때는 네 가지 열반(四涅槃)과 네 가지 지혜(四菩提)가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리와 열반을 증득한 것을 부처라고 한다. 우리가 보살행을 닦는 것은 보리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것이다.

 

네 가지 지혜(四菩提)는 전오식(前五識)이 ! 다 정화되어 나타난 지혜를 성소작지(成所作智)라고 하고, 제육의식(第六意識)이 정화되어 나타난 지혜를 묘관찰지(妙觀察智)라고 하며, 제칠 말나식이 정화되어 나타난 지혜를 평등성지(平等成智)라고 하며, 아뢰야식의 모든 악업종자와 잡념종자가 정화되어 나타난 지혜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한다.

 

범부들의 오염된 여덟 가지 마음(八識)이 다 정화된 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불어 복과 안락을 누리는 것을 사열반(四涅槃)이라고 한다.

 

사열반(四菩提)이란 자성청정열반과 유여의열반과 무여의열반과 무주처열반을 말한다. 사열반과 사보리가 실현된 곳을 부처님 나라의 정토(淨土)라고 한다. 불교의 이상론은 인간의 팔식을 정화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실현하는데 있다. 즉 사보리(四菩提)와 사열반(四涅槃)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데 있다.


佛說是經已,  爾時阿難及諸菩薩,  四部大衆,  皆大歡喜,  心得決定,  頂禮佛足,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이미 다 설하셨다. 이 때에 아난과 모든 보살과 사부대중이 모두 크게 환희에 차서 마음의 결정을 얻고서 부처님 발아래 이마를 대고 경례를 올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수행하였다.

 

▶ 사부대중은 우바새와 우바니, 비구와 비구니를 말한다. 아난존자를 비롯해서 거기에 모인 모든 대중들이 모두 큰 환희에 차서 마음에 결정을 얻었다. 결정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에 품고 있던 진리에 대한 번뇌와 의혹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此是第六奉行流通,  於中四句.   ‘皆大歡喜’者,  聞法歡喜故,  ‘心得決定’者,  離諸疑惑故,   ‘頂禮

   佛足’者,  重法敬人故,  ‘歡喜奉行’者,  行時轉喜故.   甚深且微金剛敎,  今承仰信略記述.   願此善

   根遍法界,  普利一切無遣缺.

 

이는 여섯 번째로 금강삼매경을 받들어 수행하는 사상을 이 세상에 유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 가운데 네 가지 구문이 있다. 모두 다 크게 환희하였다고 하는 것은 법문을 듣고 환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마음에 결정심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의혹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경례를 했다는 것은 진리를 존중하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환희로써 받들어 수행한다는 것은 항상 마음속에 기쁨이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깊고 깊으며 또한 미묘한 금강의 가르침(敎旨)을 이제 계승하여 우러러 신앙하며 요약해서 기술하오니, 이 선근(善根)이 법계에 두루 하여 널리 일체를 빠짐없이 이롭게 하기를 원하옵나이다.  금강삼매경론 하권을 마친다.


▶ 우리가 불교의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극락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데 있어서 불교적 인생관, 물질관, 사회관과 같은 불교의 교리를 통해서 확신을 하면 모든 것을 신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 우리 인간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마음에 결정을 얻었다는 것은 모든 진리에 대한 의심을 없애고 확신을 얻었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진리에 대한 결정을 얻으면 항상 마음  속에 기쁨이 전개된다. 마음속에 기쁨이 전개되는 것을 의락(意樂)이라고 했다. 우리가 보살행을 할 때에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행하면 바로 그곳이 부처님이 계시는 정토(淨土)세계가 된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보살행을 하여 지금 여기에서 극락세계를 구현하시기를 빕니다.

  

 

   金剛三昧經論卷下終

 

   (伏爲 寶祚無疆,  儲闈凝慶,  氛學水寢,  朝野昇平,  晋陽公福海等濬,  壽岳齊高.   次願孀親沮及

   佛奴,  變呻爲謳,  嚮年有永,  鏤板印施.   重念 此經出自虯宮,  發起因於疾病,  更願普 及法界含

   生,  生生不聞疾病之音,  不處胞胎,  常游諸佛淨妙國土爾.   甲辰八月初五日,  優婆塞   鄭晏

   誌.)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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