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7. 9. 18. 09:02

 


  부처님의 천상 법문


  글/광덕스님


도솔천은 욕계천의 중심이고 또 천상 조직으로 말하자면 욕계 이상의 색계천이라고 하는 안정된 삼매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천상도 있기 때문에 그보다 수승한 천상도 더 있다고 볼 수 있는 천상입니다.


그런데 호명 보살이라고 불려지는 석가모니불의 과거생이 어째서 도솔천에 태어났느냐. 이것은 선택에 의해서 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것도 당신이 선택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는 역시 천상에 나실 때도 선택하셔서 나신 것입니다.

 

같은 욕계천이라 하더라도 도솔천 이하의 도리천이나 야마천이나 그런 천상은 즐거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차라리 고통에 있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서 분발해서 착한 마음을 쓴다든가 하여 향상의 노력을 가질 수 있지마는 즐거움에 빠져버리고 나면 거기서부터 벗어날 줄 모르고 그냥 거기서 타락하는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천상이 그럴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솔천 이하의 천상에서도 그러한 즐거움에 빠져 살고 그 이상의 욕계천에서도 대개 안전성을 잃은 즐거움 가운데서 들뜬 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색계천과 같이 보다 높은 천상사람이 태어나는 곳은 안정감 있고, 마음속에 흔들림이 없는 그런 깊은 마음에 앉아 있어도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삼고 그 괴로움을 제거해 주겠다고 하는자비한 마음, 즉, 대비심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도솔천에 머무신 까닭*

 

대개 보살이 수행하는 데 있어서 52위가 있다고 합니다. 52위, 쉰두 번째가 성불하는 것이라고 하면 일생보처 보살(인간으로 성불하시기 전의 생으로서 그 한 생만 보살도를 닦고 보살행을 하고 나면 그 다음 생에는 성불하는 지위)은 51위입니다.

50위 보살은 등각보살이라 하고 52위 보살은 묘각보살이라 합니다마는 묘각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성불하시기 직전 그 한 생만을 보살로서 중생 생활하는 그런 모습을 지니는 그 시기 동안 모든 부처님들은 도솔천에 머무십니다. 그 도솔천에서 수행을 하시고 도솔천에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관례인 모양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 계시었을 때도 그러셨고 앞으로 성불하실 미륵불인 미륵보살도 지금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십니다. 그리고 도솔천에는 내원과 외원이 있어서 내원에는 그와 같이 장차 성불한 보살이 머무는 곳이고 외원은 도솔천에 나는 천상 사람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리고 도솔천에 관한 얘기를 겹쳐서 더 말씀드리자면 도솔천의 미륵 부처님이 언제 이 땅에 오셔서 성불하시느냐 하면 미륵불의 성불 시기는 56억 7천만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계산은 안 해 봤습니다. 도솔천의 수명으로서 4000세라고 합니다.도솔천의 하루는 인간계의 400년이라고 합니다. 그 400년에 365일, 그 365일에 4000배, 그렇게 해서 56억 7000만년이라고 하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마는 계산은 못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도솔천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그런 장구한 수명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이 호명보살로 도솔천에 계실 때도 역시 그렇게 4000세라는 시간을 거기서 머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시간관념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시간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일년이 금방일 수도 있고, 또 5분 가는 데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몇 년 세월 가는 것 같은 그런 것도 있습니다.필경 시간관념이라는 것은 일념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볼 때, 기쁘고 즐거운 것은 순식간에 지나갈 수 있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답답한 생활은 단 한 달이라도 몇 생을 보내는 것 같은 고통스런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천상의 도솔천에 4000세라는 즐거움이 어떠한 것인가. 그것도 4000세라고 하지마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있어서는 즐거움에 빠지다 보면 그것도 순간에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일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도솔천 호명보살의 법문*


이 도솔천에 머무시면서 호명보살은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런데 호명보살이 법을 설했다 하는 것은 도솔천 이하의 천상도 있고 이상의 천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천상사람들이 도솔천에 모여서 호명보살의 법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솔천에서 어떤 법문을 설했던가? 이것은 우리 불자들로서 이 도솔천의 호명보살 법문 얘기는 좀 알아둬야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을 마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솔천 즉, 천상에 머문다고 하는 것은 천상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유지한다는 뜻도 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생을 유지하려면 인간다운 기본적인 덕성과 지성을 유지해야 인간세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천상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의 덕성을 닦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 땅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경에 보면 주로 천상사람에게 설한 법은 무상법문(無常法門)입니다.무상이라는 것은 덧없다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다. 네가 보고 있는 이 천상은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부족한 것이 없고 뭐든지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걸림없는 행복스런 이 환경 이것은 변하는 것이다. 덧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이 참으로 청결하다고, 그리고 귀하다고, 그리고 최상의 것으로 아끼고 있지마는 역시 그것도 부정한 것이고 허물어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공(空) 이 세 가지 법문을 주로 설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뭐냐 하면, “이 천상생활의 즐거움에 젖어서 낙착하고 있는 사람한테 거기 빠져보면 허망한 것이다. 그것은 허망한 것인데 네가 정신을 왜 못 차리느냐. 너는 구름 덩어리 같은 것을 붙잡고 있다. 눈송이 같은 것을 붙잡고 있다. 조만간에 녹아서 없어지는 것이며, 그대로 놓아두어도 없어지는 것이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로 없는 것이다. 그 집착을 놓아 버리고 그 천상락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기 본성의 청정에 돌아가게 하라.” 하는 가르침이 핵이 됩니다.


 

*천상의 사람*


대개 천상사람들은 지금 도솔천이 4000세라고 했습니다마는 그것을 그대로 다 누리지 못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천상에 태어나면서도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 하는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쁜 생활에 젖어서 기쁨 속에서 날뛰고 살다보면 천상에 태어났더라도 4000세라는 천상수명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속에서 분심을 품고 있고 분노를 일으키면 역시 복이 감해서 천상의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에서도 천상이 좋다고 너무 젖어버리면 그것이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인간계의 최초 인간은 천상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광음천이라고 하는 색계 제 2천, 천상에 살던 천인이 천상의 인연이 다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이 땅에 와서도 그 천상에 살던 그 안정감, 그 맑은 마음의 바탕 그것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남은 힘으로 인해서 그 몸에서는 빛이 나고 광채가 나고 다니는 것도 허공을 걸어가듯이 날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타락했느냐. 자유스럽고, 자기 광명에 살고, 자기 신력으로 날아다니고, 부족함이 없고, 음식만 하더라도 일념의식이라 생각만 하면 무슨 음식이든지 와 지는 그러한 자유스러웠던 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얼마간 세월이 지난 가운데 자기 본성의 안정감을 지키지 아니하고 환경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즐거우면 즐거움에 빠지고 마시면 마시는 데 빠지고, 자기 본성의 안정감보다는 밖에 있는 자극에 빠져들어서 자기 마음의 청정과 자기 마음의 안정을 잊어버린 데서 오는 것입니다.구체적인 예로 감천이라는 샘물이 나왔는데 그것을 처음에는 찍어먹어 보았습니다.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맛이 있으니까 찍어먹다가 마구 퍼 마셨습니다. 먹는 데 맛있는 데 생각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자기광명을 잃어버리고 날아다니던 신통력도 줄어들고 얼굴도 거칠어지고 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먹은 사람은 더 추해지고, 적게 먹은 사람은 덜 추해지고, 그 가운데서 미운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시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질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그런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여러 경전에 나옵니다만 그 내용이 비슷합니다.


음식에 대한 차별과 시대적인 변화가 있기는 하나 다 같습니다.여기서 보는 것처럼 천상에 태어난 사람들도 천상의 즐거움에 빠져 있으면 자기 수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스럽고 자유스럽고 권세스러운 환경에 산다 하더라도 거기에 젖어서 빠지고, 나아가 즐거움과 자극과 환락 속에 젖어들면 그 마음이 비어버립니다.


그 마음이 거칠어져서 마음에 안정감을 잃어버리고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기 중심이 있어야 할텐데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환경의 자극에 빠져들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입니다. 천상사람도 타락하고 인간도 역시 그렇게 자기 환경, 자기 복이 있다고 그 속에 빠져들어서 정신 못 차리고 속 못 차리면 조만간 자기 환경을 잃어버립니다.


도솔천 사람이 4000세의 수명을 못 누리고 타락하는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나 복스러운 환경을 설사 얻었다 하더라도 그 복을 잘못 쓰면 다 타락해 버립니다.


 

*다섯 가지 쇠약한 모습*


그러나 호명 보살은 4000세라는 도솔천 수명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오쇠상(五衰相, 다섯 가지 쇠약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쇠상이라고 하면 천상에 살던 사람이 천상에서 못 살고, 천상에서 그만 하직하고 다른 데로 옮겨갈 때 나타나는 모습들입니다. 다섯 가지 쇠약한 모습, 대개 설명을 보면 몇 가지 차이가 있어도

비슷비슷합니다.


첫째는 천상사람이 지니고 있는 화관, 꽃이 달려있는 그 화관의 꽃이 시들고 향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겨드랑이에서 땀이 납니다.


세 번째는 옷에 때가 묻습니다.(천상사람들은 그 옷이 아무리 입어도 때가 묻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천상에서 수명이 다하게 되면 자기 광명, 그 몸에서부터 빛이 나고 광명이 났는데 자광명이 줄어들고 어두워지고 빛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다섯 번째는 자기 있는 자리가 즐겁지가 않습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또는 눈알이 항상 움직인다고 합니다. 역시 눈알이 움직인다는 것은 불안한 표정인 것 같습니다.대개 천상사람이 천상 복이 다하면 이 다섯 가지 형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역시 호명보살도 그런 것을 나타내기 시작하니까 다른 천상사람들이 보고 “호명보살도 이제 이 땅을 떠나시게 되는 것이로구나. 수명이 다하셨구나”하고 놀라고 슬퍼하면서 그 앞에 문안인사를 드리러 옵니다.


그때 호명 보살이 천상사람들에게 설법을 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생이기 때문에 스스로 알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내 마땅히 이 곳을 떠나리라. 때는 왔다. 그대들은 마땅히 무상을 염하라. 이 천(天)이 즐겁고 좋고 재미있다고 그러지만 이것은 변하는 것이다. 제발 여기 집착하지 말아라. 무상을 생각하라. 그리고 네가 집착하고 있는 내 몸의 아름다움, 향기로움, 이것이 좋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제 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것도 다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다.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고 더러워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라.”이 무상을 철저히 천상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이것은 천상 법문인 동시에 바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법문입니다.



  출처 :무명속의 어리석은 중생 원문보기 글쓴이 : 호시우보

 

  글쓴이:한정의중(해동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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