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로 살아 가라는 말은 한마디로 무심(無心)으로 살아 가라는 뜻입니다.
무념이란? 생각이 없다는 말인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생각을 하되 분별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본래 깨끗한 마음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만 일으키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바로 본래의 마음자리 입니다.
그래서 따로 구할 것이 없으며 본래 다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분별심이 없다는 것은, 나(주관)와 너(객관;대상,경계)를 나누지 않고 모두를 하나(不二,不異;같다,다르지 않다)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싸움은 분별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며, 분별심은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내 생각을 버리면 어떠한 것도 분별하지 않게 됩니다.
무상이란? 4상(四相)이 없음을 말하며, 4상이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말합니다.
아상이란? `나'라는 고집이며, `내가 최고'라는 자기 중심적인(자아의식;고정관념) 우월의식을 말합니다.
인상이란? 주관인 나와 객관인 남이(나외의 모든 대상) 갈라져 있는 마음(분별심)에서 나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합니다.
자기 중심적(아상)인 생각의 외적 확대를 말하므로 사람과 다른 사물을 차별하여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인상 때문입니다.
중생상이란? 재미있고 호감가는 일만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중생의 본능적 고집을 말하고, 또는 나는 중생이다 라는 생각(열등의식)으로 미리 포기하여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다음 극락(천국)에 가려고 하는 것도 중생상입니다. 수자상이란? 오래 살고 싶어하는 생각이나 생명에 대한 고집, 혹은 집착을 말합니다.
무주는 머무르는 곳이 없다는 말인데 이것은 집착(執着)이 없음을 말합니다.
집착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할 때 그저 최선을 다할 뿐(원력으로 하는 것), 하는 일에 얽매여 그일의 노예가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공부할 때는 공부할 뿐,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 일할 때는 일할 뿐. 오직 하는 그 일에만 충실히 할 뿐, 그 일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여 다른 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집착이 없다고 하며, 원력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은 찰라에(무의식적으로) 900생멸(일어 났다, 가라앉는 것)을 하므로 의식적으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면, 일으키지 않으려는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되어 또 다른 번뇌가 되어 평생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어난 마음을 지혜롭게 쓰는 공부가 수행이므로, 수행이란? 마음 잘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4상(四相)은 아집(我執;나에게 집착 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고, 법상(法相)은 객관이 실상이라고 생각하여 객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허상<空>임을 모르는 것).
法이란? 진리, 섭리, 이치 또는 우리 눈에 펼쳐저 보이는 모든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비법상(非法相)은 법상의 반대로 객관이 없다고 무시하는 것입니다(부처님이고 하나님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는 생각).
법상과 비법상은 법집(法執;법에 집착하는 것) 때문에 생깁니다.
아집은 타파해야 하는데 아집이 타파되고 나면 내 생각(아상)이 없어진, 인무아(人無我)가 나타나게 되는데 인무아가 나타난 그 자리를 아공(我空)의 자리라 합니다.
법상, 비법상도 타파되어야 하는데, 즉 법집이 타파된 그 자리는 법무아(法無我)의 자리인데 이 자리는 곧 법공(法空)의 자리입니다.
아공과 법공에도 집착하면 않됩니다. 공(空)마져도 다 空해져야 하는데 그 자리를 `구공(俱空)'의 자리라 합니다.
아공, 법공, 구공의 세가지 空의 자리를 드러내는 것을 `현삼공(顯三空)'이라 합니다. 아집과 법집을 파(破,깨트린다)해야한다 하여 `파이집(破二執)이라 합니다. 이와같이 두가지 집(執)을 파(破)하고 세가지 空을 드러낸다 하여 `파이집 현삼공'이라 하는데, <금강경>이 이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이루게 하려면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無執着), 무집착의 대상은 바로 나(我)입니다.
글쓴이: 양철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