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의 마음을 알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요 무심(無心)이 도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주체니 객체니 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본래로 부처요 부처가 본래 마음이니라. 마음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
시기를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월 동안 6도[六度] 만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人]도 없어서 본래 그대로 부처이니라."
2. 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
"성인의 무심은 곧 부처의 경지이지만 범부의 무심은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
까?" "법에는 범, 성의 구별이 없으며 또한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도 없다.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다는 견해도 내지를 말라. 또한 법은 본래 없지 않으나, 있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법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모두 뜻[情]으로 헤아리는 견해로서,
마치 허깨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보고 듣는 것은 마치 허깨비같
고, 사량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중생이니라'고 하였다. 조사문중에 있어서는 오로지 마
음을 쉬고 알음알이를 잊는 것을 논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어 버리면 부처님의
도가 융성해지고, 분별하면 마구니의 장난이 치성해지느니라."
3. 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
마음이 곧 그대로 부처이니 교화 제도하는 모든 방편문 가운데서 부처님의 마음이 으뜸
이니라. 다만 생사, 번뇌 따위의 마음만 없으면 보리 등의 법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시기 위함이
로다.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라고 하였다. 부처님으로부터
역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른 것은 말하지 않으셨고, 오직 한 마음만을 말했을
뿐이며, 또한 일불승(一佛乘)만을 말하셨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없음을 이름
하여 큰 도라고 하느니라.
큰 도는 본래로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하나의 참 성
품으로 같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마음과 성품이 본래 다르지 않으므로 성품이 곧
마음이니라. 마음이 성품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조사(祖師)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의 성품을 알았을 때 비로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 있도다'고 하였다."
4. 모양 있는 것은 허망하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십니까?"
"정말로 여래께서 제도할 중생은 없느니라. 나[我]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나 아님이
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부처와 중생을 모두 다 얻을 수 없느니라."
"현재 부처님의 32상(相)과 중생 제도가 분명히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없다고 말씀하
십니까?"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존재는 모두가 허망하니, 만약 모든 모양을
보되 모양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은 모두 네가 허망하게 지어낸 견해로서, 오로지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한 탓으로 그
같은 잘못된 견해를 내게 된 것이니라.
부처의 견해를 내는 순간 바로 부처에 끄달리고, 중생의 견해를 내는 순간 중생에 끄달
린다.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견해를 내고, 더럽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견해를 내는 등
이 모두 그 장애를 받느니라. 그것들이 너의 마음을 가로 막기 때문에 결국 윤회하게 된
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무언가를 들었다 놨다 하느라고 쉴 때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모름지기 배울 것이 없어야 한다. 범부도 성인도 없고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인위적 작위도 없다. 이와 같은
한 마음 가운데서 바야흐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하는 것이다. 설혹 네가 3승 12분의
가르침과 모든 이론들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
5. 한 마음의 법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성품 자체는 같고 다름이 없으나 만약 3승의 가르침에 의거해 말한다면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승의 인과가 있어서 같고 다름이 있느니
라.
그러나 만약 불승(佛乘)과 조사가 서로 전한 것에 의거해 보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
지 않고 오로지 한마음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마음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이 일승(一乘)의 도 뿐
이요, 2승도 없고 3승도 없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의 방편설만은 제외하노라'고 하셨다.
6. 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
다만 모든 견해만 없으면 그대로가 곧 가이 없는 몸[無邊身]이니라. 그러나 무엇인가
보는 곳이 있으면 곧 외도라고 부른다. 외도란 모든 견해를 즐기고 보살은 모든 견해
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여래란 곧 모든 법에 여여(如如)한 뜻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한가하여 스스로 일 없도록 하여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말라.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나니, 오직 모든 견해를 쉴지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봄[內見]과 밖으로 봄[外見]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나쁜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잠깐 두 견해를 일으켰다가 그만 두 철위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7. 한 법도 얻을 수 없다
실로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이름하여 도량에 앉음이라고 한다. 도량이란 오직
일체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이 본래 공(空)한 줄을 깨닫는 것을 공여래
장(空如來藏)이라 하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엔들 티끌과 먼지가 있겠
느냐. 만약 이 소식을 안다면 유유자적하게 소요함인들 논할 바 있겠느냐.
8. 한 물건도 없음[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신다면 한 물건도 없음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없다고 해도 맞지 않다. 깨달음이란 옳은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앎이 없는 것도 없
다."
問 本來無一物 無物 便是否
師云 無亦不是 菩提 無是處 亦無無知解
9.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너의 마음이 부처이니라.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
가 없느니라."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
것을 전수하셨습니까?"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전한 것은 오직 마음의 부처이니라. 즉 너의 마
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
문에 조사라 부르느니라. 만약 곧바로 이 뜻을 깨닫는다면, 곧 3승의 모든 지
위를 단박에 뛰어넘어서 본래의 부처인 것이니, 결코 점차로 닦음에 의지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법을 말씀하
십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법만을 말씀하시
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이 마음법[心法]의 본체는 허공계를 다하여 온 법계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이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언어,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 결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문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하염없는 법
의 문[無爲法門]이라 한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면 다만 무심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
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도를 배울 분(分)이 있느니라."
"이제 바로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깨달음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났느냐? 일상의
어묵동정간에 모든 소리와 빛깔이 모두 불사(佛事) 아님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느냐?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 승(僧)은 승, 속(俗)은 속일 뿐
이니라.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너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 허다한 일들이 있겠느냐?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 가득히 푸른 산이니라. 허공세계가 밝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너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들이 그대로 부처님 지혜의 눈이
니라.
10. 보리의 마음
"만약 그렇다면 어느 곳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일정한 처소가 없느니라. 부처라 해서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
며, 중생이라 해서 깨달음을 잃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보리심을 냅니까?"
"보리는 얻는 것이 아니다. 네 지금 얻음이 없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결정코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대로가 보리의 마음이니라. 보리는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얻을 그 무엇도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부처님의 처소
에서 작은 법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
고 하셨다. 일체 중생이 본래 보리이므로, 다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
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11. 수은의 비유
"본래로 이미 부처일진대 어찌하여 4생과 6도가 있어 갖가지로 형상과 모양이
같지 않습니까?"
]
"모든 부처님께서는 본체가 뚜렷하여 거기에 더 불어나고 줄어들 것이 없다.
또한 6도에 흘러들어도 곳곳마다 모두 원만하고, 여러 만물이 모두 낱낱이 부
처이니라. 이것은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흩어졌어도
방울방울이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뉘지 않았을 때에도 한 덩이였을 뿐이니,
이는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라. 온갖 형상과 모습은 마치 집과
같다. 나귀의 집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사람의 몸을 버리
고 하늘의 몸이 되기도 하며,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집은 모두 네 자신이
취하고 버리는 곳이니라. 그래서 모든 구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래 근원의 성품
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12. 무연자비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십니까?"
"부처님의 자비란 인연이 없기 때문에 큰 자비라고 한다. 사랑함[慈]이란 이룰
만한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고, 슬퍼함[悲]이란 제도할 중생이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다. 설하시는 법은 설함도 없고 보임도 없으며, 그
법을 듣는 자는 들음도 얻음도 없는 것이다.
13. 정진이란?
"어떤 것이 정진(精進)입니까?"
"몸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굳건한 정진이니라. 마음을 일으켜서
밖으로 구하기만 하면 '가리왕이 사냥놀이를 좋아함'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 것이 곧 인욕선인이며, 몸과 마음이 함께 없음이 곧 부처
님의 도이니라."
14. 무심한 행
"만약 마음이 없으면 이 도를 행하여 얻을 수 있습니까?"
"마음없음[無心]이 바로 도를 행함이거늘 거기에 다시 더 얻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느냐? 만약 잠깐이라도 한 생각 일으키면 곧 경계이고, 한 생각 없다
하여도 경계이니라. 망령된 마음이 스스로 없어지면 더 이상 쫓아가 찾을 것이
없느니라."
15. 삼계(三界)를 벗어남
"어떤 것이 3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과 악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곧 3계를 벗어나느니라.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것은 3계를 부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든 마음이
없다면 3계 또한 없느니라.
16. 마음이 부처
깨달음이란 수행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요, 결코 달리 구하지 말라.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만약 말하지 않고 작용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또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한결같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사스님께서는 '참된 성품의 마음자리[眞性心地藏]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지라. 인연에 호응하여 중생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그것을 지
혜라 부른다'고 하셨다.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이 난다'고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뜻으로 반연하고 분주시 조작하는 마음
이 6도에서 멈추지 못하여, 마침내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허다한 여러 가지 망상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니, 곧 깨달음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과 나란히 되는 것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널리 배우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나무먹이를
먹고 풀옷을 입는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한 것이니라.
<법화경>에서는 '20년 동안 항상 똥을 치게 하셨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마음 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