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8. 1. 20. 11:18

 

 

                                                                                                                        

      


     

     자비하신 종정 큰스님
     
     우리의 자비하신 큰 스님은 근세에 천태종(天台宗)의 종파(宗派)를 다시 만드신 상월원각대조사(相月圓覺大祖師)님의 뒤를 이어 제2대 종정(宗正)에 오르신 남대충(南大忠) 종정 스님이시다.
    큰스님은 1925년 12월 5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소백산 아래 여의생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영양 남씨 가문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나셨다.


    1925년 음력 2월 어느 날 큰 스님이 태어나실 여의생 마을에 흰 수염을 휘날리고 눈에 맑은 광채가 빛나는 범상치 않은 스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스님은 아무 말도 없이 큰 스님이 태어나실 영양 남씨(英陽南氏) 집안으로 오셔서 이렇게 예언을 하셨다.

     

    "이 가문에는 올 해에 불법(佛法)의 큰 인연으로 훗날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불교(佛敎)를 크게 발전시킬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니 잘 키우라."

    스님의 예언이 있은 뒤 그해 큰 스님의 어머니이신 안동 김씨께서 아기를 잉태하셨다. 그리고 그 해 12월 5일 옥동자를 낳으니 그 분이 바로 우리들의 자비하신 큰 스님이시다.


    큰 스님께서 출가하시기 전의 이름은 익순(益淳) 이라고 불렀다. 익순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정직하고 착하며 부모님 말씀을 어기는 일이 없이 근면 성실하였다. 큰 스님은 그러한 성품으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니 11세 되던 해 2월 부친께서 아드님을 훌륭한 선비로 길러야 한다고 하시면서 크고 작은 벼루돌 3개를 구해오셔서 이 벼루돌이 다 닳을 때까지 글씨를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글을 가르치려 하였는데 한달 뒤, 3월 22일(음력) 돌아가심으로써 학문을 공부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어느덧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익순 청년은 21살이 되던 1945년 1월 16일 소백산 구인사에서 상월 원각 대조사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 수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 때 대조사님은 익순 청년의 불명(佛名)을 대충(大忠)이라고 지어 주셨다.


    대충사미가 출가할 무렵 대조사님의 밑에는 여러 사람의 제자가 있었는데 대조사님은 항상 대충사미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셨다. 그러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사미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수행이 깊어져서 조사님의 가르침이라면 곧 하늘의 뜻으로 알고 정성을 다하여 정진하였다.


    하루는 제자들의 마음가짐을 시험하기 위혀여 신통력으로 소백산에 사는 큰 호랑이를 구인사로 불러놓고 그 동안 수행해 온 여러 제자들에게 "너희들 가운데 누가 저 호랑이의 등에 탈 수 있겠느냐?"며 제자들을 둘러 보셨다.


    이 때에 여러 제자들은 제각기 호랑이 곁으로 다가가 등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호랑이가 갑자기 산이 떠나가라 으르렁거리며 모든 사람을 잡아 먹을 듯이 날뛰었다. 이 때 모든 제자들이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도망가기 바빴는데 대충사미만은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없이 호랑이 앞으로 다가섰다. 호랑이는 더욱 날뛰며 대충사미를 잡아먹을 듯이 울부짖었으나 대충사미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으며 등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대충사미가 등에 오르자 호랑이는 그만 기세(氣勢)가 꺾여 조용하게 머리를 숙인책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 때에 대조사님은 대충사미의 뛰어난 용기와 스승의 명령을 어떠한 경우라도 잘 받드는 자세와 마음을 아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욱 사랑하시어 자신이 깨우치신 모든 부처님 법을 남김없이 대충사미에게 가르치시고자 여념이 없으셨다.


    또한 대충사미는 효자(孝子)이기로도 유명하다. 21살에 대조사님에게 출가하여 고된 수행의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밤이면 고행정진으로 새우고 새벽이 되면 산 너머 집에 홀로 계신 늙으신 어머님을 봉양하였는데 수 십년의 긴 세월을 하루 같이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수행에 수행을 거듭한 끝에 36세가 되던 1960년 3월 5일 스승이신 대조사님으로부터 큰 깨달음의 법을 이어 받으셨다. 그리고 대조사님의 뒤를 이을 가장 높은 제자가 되셨으니 이 때부터는 모두 대충사미를 대충 큰 스님이라 불렀다.


    대충 큰 스님은 큰 깨달음으로 만인의 스승이 될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홀로 계신 어머님을 봉양하기 위하여 논 밭에 나아가 일을 하시고 밤에는 스승이 계신 구인사로 돌아오셔서 조사님을 도와 중생 제도에 힘쓰셨다.


    큰 스님께서 50세가 되시던 1974년 6월 17일(음력윤 4월 27일) 스승이신 상월 원각 대조사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시니 대조사님의 뒤를 이어 그해 7월 2일 천태종의 제2대 종정 스님이 되셨다.


    그후 한시도 편하게 지낼 틈 없이 종단 내의 스님 및 신도들의 수행 정진을 위하여 밤낮으로 친히 돌보아주시며 설법하시느라 어느덧 할아버지 큰스님이 되셨다.


    특히 우리 어린이 불자(佛子)들이 여름 불교학교 및 졸업 수련법회를 위하여 구인사에 갈 때마다 어린이 재롱잔치를 하게 되는데 큰 스님은 모든 대중들의 신행지도를 하느라 무척 바쁘신 중에도 꼭 참석하신다. 그리고는 우리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하고 깜찍한 연기를 보시고 함께 기뻐하시며 박수를 보내주신다. 항상 우리 어린이 불자들의 손목을 일일이 잡으시고 각자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시며 "늘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정직하고 건강하게 미래의 이나라를 이끌어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해 주신다.


    우리의 자비하신 큰 스님! 우리들의 기억 속에 늘 자비의 미소를 띠우시며 우리 어린 불자들이 미래에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으로 커 나가도록 지도해 주시는 뜻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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