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연화장 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이 주석하는 대적광전

白道 박만주 2018. 5. 11. 08:28

 

 

                                                                                                                        

      


     

     연화장 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이 주석하는 대적광전

    1. 연화장 세계


      불자들은 늘 연화장 세계에 살기를 꿈꾼다. 더나아가 이 사바 세상을 연화장 세계로 만들기 위해 많은 선지식과 많은 지도자들이 일생을 다 바쳐 노력과 봉사로 일관해온 모습을 보아 왔다. 하지만 불자들이 살고자 하는 연화장 세계는 훌륭한 선지식의 힘으로도 이 땅에 실현되기는 참으로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오늘도 자신의 삶보다는 온 인류를 위해 연화장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진하고 있다. 연화장 세계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되어 있는 불자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불국토이기 때문이다.


      연화장 세계를 일러 화장세계, 연화장장엄세계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을 갖춘 불국토이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 세계가 삼신불, 그 가운데서도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인 세계라 정의하고 있다.
      이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풍륜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가 있으며, 이 향수의 바다 속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 속에 있는 세계를 일러 연화장 세계라 한다.


      『범망경』에서는 노사나불이 1,000개의 잎으로 된 연화대에 앉았는데 그 1,000개의 잎이 각각 한 세계이고, 노사나불로부터 화현한 1,000의 석가모니불이 있는 1,000개의 세계가 있고, 한 세계마다 다시 100억개의 나라가 있다.
      이 100억의 나라 하나하나에 다시 석가모니불이 있어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화엄경과 범망경에서의 연화장 세계는 삼신불의 사상을 드러내면서도 불교의 깊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2.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연화장 세계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사찰의 중요한 건축물중의 하나로 규모가 큰 사찰이나 화엄경 계통의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으로 건립하여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는 뜻에서 비로전, 그리고 『화엄경』의 연화장 세계가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이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을 봉안하여 연화장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래 삼신불은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인데,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의 삼신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법당내에 다섯 분의 부처님을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하며, 아미타불의 좌우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 일광보살·월광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우리 나라 대적광전 안의 노사나불은 부처님의 모습으로 조성되지만 보관을 쓰고 보배 구슬로 장식한 보살로 봉안되기도 한다. 특히 탱화의 경우는 그 경우가 심하다.


      대적광전에 비로자나불만 모시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삼신불이 함께 하는 것은 『화엄경』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화엄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이룰 때 법신불 비로자나불, 보신불 노사나불과 한 몸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노사나불은 독립된 전각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중생의 기도에 따라 감응하는 존재로 머무를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이런 연유로 대적광전에 법신불 비로자나불과 함께 노사나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이 함께 봉안된 것이다.
      대적광전은 다른 당우보다 더 화려하고 장엄하다. 비로자나불 위로 선 닫집에는 천개를 만들고 여의주를 입에 문 용 등으로 장식하며, 천장에는 보상화문과 연화문 등을, 벽의 상단에는 화불과 비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전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해인사의 대적광전을 들 수 있다.



    3.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즉 ‘공(空)의 인격화된 모습’이라 정의하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영원한 부처님인 법신불을 침묵의 부처님, 광명의 부처님으로 언급하며 비로자나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들어진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3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로 인정받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산스트리트 표기는 바이로차나 붓다(Vairocana Buddha)이다. 바이로차나는 태양이 모든 곳을 밝게 비추는 특징 내지 태양 자체를 이름하는 것이다.
      원래 ‘골고루’라는 뜻의 부사 ‘비(vi)’와 ‘빛나다’라는 뜻의 동사 원형 ‘루츠(ruc)’에서 파생된 것으로 불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달을 지칭하기도 했다.


      포괄적인 의미로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포괄한다는 뜻이다. 현생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양처럼 온 누리를 비추는 부처님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들은 비로자나불의 형상을 수 없이 만나지만 가장 포괄적으로 알려진 두 모습으로 다가 갈 수 있다. 불교 전반에 나타난 비로자나불과 『화엄경』에 나타난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어느 곳, 어느 때에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에 나타난 이 법신불은 형상이 없고 소리도 없다. 그래서 전혀 설법을 하지 않는다. 다만 법신불의 미간 백호에서 광명이 터져 나와 시방 세계의 모든 나라를 드러낸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 혹은 적광전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이 화엄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극진히 섬겨 왔다. 신라는 삼국 통일의 원리를 이러한 화엄의 사상에서 빌어 왔음을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신라시대에 세워져 현재까지 한국 불자들의 자긍심과 귀의심을 받아오고 있는 해인사, 부석사, 범어사를 비롯한 전국의 유수한 사찰이 화엄의 세계관 위에 세워진 사찰들이다.
      우리 선조들은 사찰을 세우면서 이 연화장 세계관위에서 중중무진 꽃을 피울 것이라 서원했을 것이며, 미래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아직 더 아름답고 훌륭한 불교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단전이나 가슴 높이의 위치쯤에서 양손을 모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위로 뻗쳐 그것을 오른손으로 감싸서 들고 있는 지권인을 한 모습으로 침묵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보림사나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도 천년을 휠씬 넘는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우리에게 미소로 답하고 있다. 그 담백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부처님의 침묵의 미소를 한민족은 변함없이 사랑해 왔다.


      비로자나불은 우리들 내면의 타오르는 신앙심을 응집시켜 연화장 세계로 만들어 가신다. 이 사바세상이 연화장 세계가 될 때까지 그 자비행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그 자비행을 따라 서원을 세우고 연화장 세계가 이 땅에 도래하도록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