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8. 6. 27. 08:31
'할(‘갈’이라고도 한다)'은 큰소리로 외치는 것인데,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선문에서는 엄하게 꾸짖는 것, 이른바 '큰소리로 한번 호통을 치는(大喝一聲)' 것을 말한다. '할'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결제(結制), 해제(解制) 때의 법어 등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할' 하면 당나라 때의 고승 임제의현(臨濟義玄)을 가리킬 정도로 임제 선사는 '할'을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제 할, 덕산 방(德山 선사는 제자들이 법을 물어 오면 방망이(棒)로 때렸다고 한다.)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임제록>에는 "스승께서 즉각 할을 하셨다."는 구절이 8회 정도 나온다. 그런데 실제 '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임제 선사보다 80년 정도 앞선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백장회해(白丈懷海)에게 썼던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당시 마조가 한번 '할'을 하자 백장은3일 동안 귀가 멍멍하고 눈이 침침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나 우레와 같은 호통소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임제록>을 보면 임제 선사는 수행자를 지도하고 설득하는 수단으로 '할'을 4가지로 나눠 쓰고 있다.
① 임제의 한번 '할'은 어떤 때는 마치 금강왕(金剛王)의 보검과 같다. '금강'은 '견고하다'는 뜻으로 굳셈(堅)과 예리함(利)의 두 뜻이 있다. 그래서 금강견고(金剛堅固)나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도 하는데,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뜻을 바탕으로 해서 금강심(金剛心;견고한 마음), 금강력(金剛力;강건한 힘), 금강석(金剛石;다이아몬드) 등의 단어가 나왔다. '왕'이란 말은 금강을 인격화한 것이다. 따라서 ‘할’을 '금강왕의 보검 같다'고 하는 것은 ‘할’이 마치 가장 굳세고 예리한 칼이 되어 미혹과 망상을 끊어 내는 것과 같은 생생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② '임제의 할'은 어떤 때는 마치 웅크리고 있는 금빛털의 사자 같다. 금빛털을 한 백수의 왕 사자가 땅에 웅크리고서 먹이를 잡아채려는 긴박한 순간의 위엄스런 모습은 주위에 위압감을 주는데, '임제의 할' 역시 그 같은 위엄을 나타낸다. 금빛털 사자의 위엄을 나타낸 것으로는 당나라 말기 운문종의 시조인 운문문언(雲門文偃)이 한 수좌(선원에서 참선하는 스님 즉 선승을 가리킴)에게 대답한 '금모사자(金毛獅子)' 공안이 <벽암록(碧巖錄)> 제 39칙에 나온다.
③ '임제의 할'은 어떤 때는 탐간영초(探竿影草) 같다. 탐간(探竿)은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쓰는 도구이며, 영초(影草)는 물 위에 떠 있는 풀이다. '탐간영초'란 낚싯대 끝에 두견새 깃털을 달아 물 속을 헤쳐서 고기를 물풀 아래로 유인해 모으는 것을 말한다.
한편, '탐간영초'는 도둑이 쓰는 도구라고도 한다. 즉, 죽간(竹竿)이나 영초(도롱이, 지푸라기 인형)로써집안을 염탐해 도둑질하는 것이다. 아무튼 '탐간영초'의 비유는 대의 모습을 엿보기 위해 탐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뜻이 변하여 스승이 수행자의 내면을 살펴서 그를 시험하는 의미로 쓰인다. 상대의 역량을 파헤쳐 꿰뚫어 보고야마는 예리한 일이다.
④ '임제의 한번 할'은 어느 때는 일갈(一喝)의 작용도 하지 않는다. 것은 '임운무작(任運無作)의 할'이라고 하듯이 자연 그대로에 맡겨 어떤 조작도 가하지 않는 일갈이다. 더욱이 '무공용(無功用)의 할'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조작이 없는 자연의 작용에 맡길 뿐 사려분별을 하지 않는 일갈이다. 이 '할'을 '할 없는 할' 즉 '무할(無喝)의 할'이라고 한다. 이 네 번째 '할'은 최상급의 일갈이며, 여기에 임제 방편의 오묘함이 있다. 임제의 '일갈'을 뚫지 못하면 선의 극치를 맛볼 수 없다.
'할'은 뜻이 없는 말이지만, 뜻이 없는 그 속에 진리가 번뜩이고 있으며 선의 진수가 담겨 있다. '할'은 깨달음의 심경 자체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박력이 있으며 예리한 감동마저 준다. 하지만 단순히 상투적이고 흉내만 내는 요즈음 선승들의 '할'은 살아 있는 작용이 없는 무의미한 '할'이라고 하겠다.
<臨濟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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