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오직 하나의 큰 인연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셨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어찌하여 제불세존은 오직 하나의 큰 인연 일대사인연을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 하는가? 제불세존은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으로 들어가기 위한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한다.”
부처님의 지견은 즉 모든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와 중생에게 비밀히 감춰져 있는 세 가지 덕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이것을 깨달아 등정각을 이루었으나, 중생은 이를 깨닫지 못하여 윤회한다. 깨닫지 못함과 깨달음이 비록 다르지만, 중생과 부처는 본래 평등하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시법평등 무유고하 ; 是法平等 無有高下).”고 하였다. 즉 이것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지견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여래와 더불어 둘이 아니며 차별이 없는 것이다.
지견은 근본 성품이란 말할 수 있다. 근본 성품은 곧 불성이다. 이성품은 항상 육근의 입구에 있으면서 육근이 움직이는 자리를 비춘다. 성품이 눈에 있으면 보는 것이고, 귀에 있으면 듣는 것이고, 코에 있으면 냄새 맡는 것이고, 혀에 있으면 맛 보는 것이며, 몸에 있으면 감촉을 느키는 것이며, 마음에 있으면 인식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의근과 안근을 대표로 들어 지견이라 한 것이다.
여섯 가지 성품은 오직 하나의 성품인 것이다. [능엄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원래 하나인 밝은 정기가 나눠어 여섯 가지로 화합한 것이다. 부처님의 앎은 참된 앎으로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부처님의 봄은 참된 봄으로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중생은 망상과 집착 때문에 거짓되게 알고 거짓되게 보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덕 높은 옛 스님의 말씀과 같다.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에 걸려있으니,
몇 마리 새들이 돌아갈 둥지를 찾지 못하는 구나.
망령된 것은 자성이 없으며, 모든 것이 참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여 이것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마치 집안에 묻혀있는 보물은 본래 집안에 있는 보물이며, 옷 속의 보배 구슬은 당장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는 것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염불법문을 여신 뜻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감각기관을 거두어 청정한 염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신 것이다.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여 경계가 고요하며 마음이 공한 경지에 이르면, 불성은 저절로 드러나고 부처님의 지견을 깨달아 들어가서 마침내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에 나온 큰 인연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