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道 박만주 2019. 6. 30. 10:41







 이근원통(耳根圓通)  
 
 
耳根圓通(이근원통)은 {능엄경}에서 열거하는 25가지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관음보살이 사용한 이근수행법을 가리킨다. 이근수행법이 기타 수행법에 비해서 가장 圓通한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圓通(원통)이란 말은 가장 빠르고, 전체적이고, 쉽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근원통이란 어떤 수행법인가?

현재 이 수행법은 북방불교권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수행법이다. 필자가 그 동안 인편으로 수집한 정보를 종합하여 추측해 보면, 이 법은 김화상의 사후에는 티벳으로 흘러들어가서 밀교의 전통적 수행법 중의 하나로 정착된 것 같다.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秘傳(비전)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일부가 염불선이라는 형태로 변용되어 내려왔다. 그러므로 현재의 염불선에는 부분적으로 이근원통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긴 하지만 원래의 오리지날한 방법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근원통의 본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현대의 인물은 대만의 南懷瑾(남회근)이다.


참고>南懷瑾(남회근)은 스승으로부터 중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았으며, 학문적인 성취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강점은 학문적 깊이와 실제 수행체험을 겸비하였다는 데에 있다. 현대 불교학의 추세가 실제 수행상에서 발생하는 문제와는 동떨어진 시시콜콜한 고증학에 몰두하는 경향임에 반해 그는 수행상의 문제와 학문의 세계를 모범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요가·密敎·禪·仙道·周易이 지닌 수행상의 비밀을 회통하는데 있어서 독보적인 식견을 소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30여권이 넘는 저서들이 한결같이 높은 質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대표저서 89년 출간, '如何修證佛法'(臺北,老古文化事業公司)은 그가지닌 학문세계의 호한함과 수행체험의 깊이를 여실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2천년 중국불교의 수행전통이 密密相傳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名著라고 생각된다.


남회근은 이근원통을 觀音法門(관음법문)이라 표현한다. 觀音이라 한 까닭은 관세음보살이 행한 수행법이라는 뜻과, 소리를 관한다는 뜻의 2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이근원통 수행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는 단계이고, 다음에는 '듣는 놈을 돌리는(反聞聞性)' 단계로 접어든다. 처음 과정이 끝나야만 반문문성의 과정으로 진입함은 물론이다. 먼저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알아보자. 소리를 집중하는 데 있어서도 다시 2가지 단계로 나뉜다. 내면의 소리(內耳聲)와 바깥의 소리(外耳聲)가 그것이다.


참고>남회근 著, 최일범 역, '정좌수행의 이론과 실제' 논장출판사,1988,pp.227~228.

내면의 소리 : 이는 자기의 체내에서 내는 소리 즉 念佛·念呪·讀經소리 등을 듣는 것이다. 念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큰 소리로 염하는 것, 작은 소리로 염하는 것(金剛念), 마음의 소리로 염하는 것(瑜伽念)이 있다. 염할 때에는 귀로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염불 혹은 염주하는 소리에 마음이 집중되었다가 안되는 경우가 많지만 점차 一念(일념), 一聲(일성)에 마음이 집중되어 마음이 고요해진다.


여기에서도 보면 3단계를 설정한다. 일단 큰 소리로 염불이나 염주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高聲念佛이 그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작은 소리로 염한다는 것은 입 속에서 웅얼웅얼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계속해서 지속하다 보면 굳이 입으로 웅얼웅얼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마음속으로 염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염불이나 주력 혹은 독경을 오랫동안 지속함으로써 수행의 힘을 얻는 경우는 이러한 경우이다.


요가에서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이 계발되어 있다. 秘音觀想法이 그것이다.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눈은 감고서 내부의 소리를 듣는 방법이다. 여기서 내부의 소리라는 것은 심장에서 나는 秘音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명상법은 어리석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두 귀를 막고 네번째 챠크라인 아나하타 챠크라에서 나는 비음 나다(nada)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 소리에 의식을 집중함에 따라서 내부의 소리가 외부의 소리를 압도한다. 보름 정도를 하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참고>李泰寧(이태령), '요가의 이론과 실제', 민족사,p.102.


이 외에도 쿤달리니(Kundalini)라고 부르는 원초적 에너지가 폭발할 때도 내면에서 소리가 들린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인체의 각 챠크라를 통과할 때 소리가 난다. 북소리, 종소리, 파도소리, 플룻소리 등이 그것이다. 이는 수행자 본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임은 물론이다. 무케르지(Mookerjee)는 그 소리를 4가지 형태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가장 미세한 것의 순서로 바이카리(형식으로 실현된 음), 마드야마(미세한 형식의 음), 파시얀티(미분화 된 형식으로 우주에 대한 상이 내재해 있는 음), 파라(들을 수 없는 음) 등이 있다. 바이카리는 청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음의 단계로 양 표면이 서로 부딪칠 때나 또는 현을 뜯을 때 생성된다.


마드야마는 들리는 음과 내부 진동과의 과도기적 단계를 이른다. 파시얀티 단계에 이르러서는 음은 오직 영혼이 깨어 있는 수행자에게만 들릴 뿐이며, 파라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음은 청각적인 성질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의미하게 된다.  {능엄경} 권6에는 妙音·觀音·梵音·海潮音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러한 표현도 쿤달리니가 통과할 때 들리는 소리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깥의 소리 : 어떤 소리든지 물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나 폭포소리 또는 바람이 불어서 풍경이 울리는 소리나 범패소리를 듣는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소리에 완전히 집중되었을 때 능히 졸지 않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으면 자연히 이런 경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 바깥의 소리에 집중한다고 할 때 가장 보편적인 소리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이다.


참고>우리 나라에서 절터를 잡을 때 양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合水치는 곳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가장 쉽게 定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선사들 가운데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돈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百丈禪師 문하에서 어떤 승려가 종소리를 듣고 깨우쳤는데, 백장은 "뛰어나도다.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입도하는 방법이다[俊哉, 此乃觀音入道之也]"라고 말하였다. 이 외에 香嚴은 대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에 견성했고, 圓悟는 닭이 날개치는 소리를 듣고 오도하였다. 조선조의 西山休靜이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오도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이근원통의 마지막 단계는 反聞聞性이다. 듣는 성품 자체를 다시 반문한다는 의미이다.


그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 다음이라야 지극히 요긴함이 된다. 무릇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되면 부처님의 광명과 보리수와 無說示와 衆香處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期於遺聞反聞然後爲至要 夫至於遺聞返聞則佛光明 菩提樹無說示衆香處皆可入矣)

듣는 것, 즉 소리에 대한 집중도 놓아버리고 無說示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반문문성이다. 無說示란 아무것도 설하는 것이 없는 경지로서, 무상이 인성염불이 다한 뒤에 제시한 삼구와 상통하는 의미라고 판단된다. 즉 무설시는 무억·무념·막망의 경지인 것이다. 반문문성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법이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듣는 놈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公案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念佛公案法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雲棲주宏(윤서주굉:1535∼1615)이 {禪關策進}에서 주장한 '염불하는 자 이것이 누구인가?'라는 공안은 이근원통 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반문문성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보인다. '듣는 놈 이것이 무엇인고?' 또는 '염불하는 자 이것이 누구인가?'를 돌파할 때 소리를 넘어선 무설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것이 무상이 말한 삼구이고 무주가 말한 무념의 경지라고 여겨진다.


이근원통의 방법을 다시 정리하면 일단 바깥의 소리 또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다. 소리의 종류는 바람소리나 물소리도 가능하고, 염불·주문·독경소리도 가능하다. 이때 염불이나 주문, 독경이 지니는 문자적 의미는 문제가 안되고 오직 소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좀더 나아가면 인체내의 챠크라가 돌아갈 때 발생하는 북소리나 플룻소리 등을 들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소리마저 떠나버린다.


이처럼 소리에 집중하는 이근원통의 수행법은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독특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염불선'과도 다르고 기타의 선법과도 다르다. 그래서 필자는 이근원통의 수행법이 {능엄경}에 바탕한 선법이라는 뜻에서 '楞嚴禪(능엄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출처 : 淨衆無相의 楞嚴禪 硏究(원광대 趙龍憲의 박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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