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념처(四念處)의 수행 1. 깨달음
부처님께서는 세상은 무상한 것이고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가 세상을 살아감은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들이란 어떤 요소들이 상호 인연으로 화합하여 생성된 존재들이고, 그 존재들은 그 요소들의 인연이 다하여 흩어지면 소멸하게 된다. 는것이 진리이고보면, 그 생성된 존재들은 소멸을 피할 수 없기에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생성된 모든 것은 무아라는 것을 깨닫아서 그 어느것에도 집착(갈애)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달아, 갈애를 소멸시켜 버리면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괴로움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빠알리어로 닙바나, 산스끄리뜨어로 니르바나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음역으로는 '열반'이라고 번역한것으로서, 이것을 순수 우리말로 그 의미에 가장 근사치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은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단어입니다.
닙바나, 니르바나의 순수한 단어적 의미는 '불꽃을 불어서 꺼졌다'라는 뜻인데 불교적 의미로 단순하게 표현하면 '불을 껐다'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불'이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 생사에 대한 집착(갈애) 같은것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닙바나의 '불을 껐다'란 이러한것들이 모두 소멸 되어 평정심을 이루어 더이상 생사의 흐름에 들지 않게 되어 괴로움이 완전하게 소멸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말로 '깨달음'이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생사에 대한 집착(갈애)같은 것들은 물질의 자성, 정신의 자성(자기 성품, 무아라는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여 그것에 집착(갈애)하는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의 성품을 바로 보아서 물질과 정신의 실체(무아)를 깨닫게 되면 자연히 탐욕이나 성내는 마음, 생사에 집착하는 마음(갈애)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이 없어져 평정심을 이루게 되고, 그러한 것들이 모두 소멸되어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되면 괴로움이 없어지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의 본래 성품(무아)을 철견하여 깨닫게 되는것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실제로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이 이러이러한 상태가 '깨달음'의 상태라고 이야기 해 봐도 그 실체를 체득할 수 없는 것이며, 또 실제 '깨달음'에 이른 사람도 그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어는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닙바나는 개념을 벗어난 상태를 이르는 것이므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닙바나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로서 형용하여 설명 해 주기는 해야겠기에, 그 평정심을 이루어 괴로움이 없어진 상태를 '불을 끈것'이라는 식으로 비유를 하여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부처님의 수행법-사념처
1. 사념처는 어떠한 종교에도 전해지지 않은 부처님이 창안한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닦았던 제사를 지내거나, 불을 숭배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진언을 하거나, 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하는 등등의 방법으론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은 이룰수 없다고 깨달으시고 마침내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에도 없는 새로운 수행법을 스스로 창안해 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집중적인 통찰법인 사념처입니다. 2. 사념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은 고행을 그만두시고 사념처를 수행하셔서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차례대로 닦으시고, 마침내 그 선정의 힘으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실상을 깨달으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시던 초저녁에서 다음날 새벽에 이르시기까지 차례로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얻고 마침내 커다란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부처님은 연기 무아 중도를 깨달으셧다고 합니다. 3. 사념처는 초발심 수행자도, 성자들도, 부처님도 닦는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이 직접 창안하시고, 수행하셨고, 마침내 그것으로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에 부처님은 초전법륜을 굴리신 35살부터 대열반에 드신 80살까지 사념처를 수행법의 첫 단추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하므로 수많은 경들에서 갓 들어온 비구들도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고 하셨고, 번뇌를 부순 성자들이라 하더라도 사념처를 닦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많은 하안거 기간동안 들숨날숨에 기초한 사념처수행을 수행하셨다고 하안거해제 법문으로 직접 설법하신 경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사념처는 해탈열반의 길에 있는 모든 중생을 위한 수행법입니다. 4. 사념처는 모든 불교 수행법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모든 수행법의 뿌리입니다.
불교에는 많은, 좋은 수행법들이 있습니다. 간화선, 진언, 염불 등 뿐만 아니라 많은 수행법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불교 수행법의 뿌리는 부처님이 창안하시고, 수행하시고 , 가르치셨던 사념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사념처에 대한 경전의 대표는 대념처경입니다.
초기경전들에서 사념처에 대한 수행법을 찾아 적는다면 종이가 모자랄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초기경전들에서 사념처 수행법에 대한 가르침을 얻으실수 있지만 가장 넓게 깊게 설법하신 것으로 대념처경을 들수 있습니다.
사념처 [四念處] 불교에서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네 가지 수행법.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혜를 얻기 위한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첫번째 수행 방법이다. 사념주(四念住)·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하며, 자신의 몸[身]과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의 세 가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념처(身念處)·수념처(受念處)·심념처(心念處)·법념처(法念處)의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신념처는 자신의 몸과 관련된 현상, 즉 호흡·동작 등을 관찰하여 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몸 안팎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육신은 죽어서 썩을 부정(不淨)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수념처는 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감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깨달아 음행·자녀·재물 등의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심념처란 마음의 세계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 있는 참뜻을 알고, 욕심이 없다면 욕심이 없는 참뜻을 알아 모든 마음의 참뜻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법념처란 정신적 대상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앞의 세 가지 외에는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통하여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하여 깨닫는 것을 말한다. 사념처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수행자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여 어느 하나만이라도 성취하면 곧 해탈하여 궁극적으로 아라한과를 얻거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괴로움을 없애고, 나쁜 법을 없애고, 바른 법의 이익을 얻게 하니, 그것이 곧 사념처’라 하였다. 석가모니가 개발한 비파사나 수행법의 한 부류로서, 주로 남방불교 승려들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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