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육조단경♤

공(空)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깨달음 이와 같이 다르다

白道 박만주 2010. 11. 18. 12:08

 

 

공(空)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깨달음 이와 같이 다르다







 

공(空)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깨달음 이와 같이 다르다 / 칠통 조규일

 

우리들 저마다 본래 성불에서 본래 무명에 이르러 윤회의 굴레에 떨어지기 전, 우리들 저마다 진아(眞我)를 여의고 가아(假我)를 나라고 생각을 뒤바꾸었을 때...자등명이 스스로 그 어느 것에도 의탁 의존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려고 하는 존재력에 의하여 움직이면서 행한 행위를 소유함으로 인하여 행한 행위가 업이 되어 자등명에 하나 둘...달라붙어서 자등명을 옴짝달싹 달라붙어 있는 업이 예를 들어 10이라 할 때 (많은 숫자 중에 10이라고 하는 것은 완성의 숫자이기 때문에 10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아(眞我)를 여의고 가아(假我)가 되어 살다가 윤회의 굴레에 최초에 떨어지고...그 다음 생부터는 업을 나라고 하는 가아(假我)로 윤회의 굴레에 있게 된 것이다.


최초 진아(眞我)가 가아(假我)가 되기 전까지는 1, 2, 3....7, 8... 9, 10 업을 수치적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업을 나라고 하는 가아(假我)가 되어서부터는 언제는 업의 수치는 가아(假我)가 완성된 10의 수치를 가지고 가아(假我)가 완성된 10의 수치에 업이 더 붙어서는 떨어지고 더 붙되 10의 수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며...업이 엷고 두껍다하되 업이 10의 수치 이상에서 붙었다 떨어졌다할 뿐이다. 어디에 업이 붙었다 떨어졌다하는가 하면 그것은 자등명이란 본성에 업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등명에서 업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되 자성경계의 일원상 안에서 업이 붙었다 떨어졌다 할뿐이고 업이 도래하여 인(因)이 연(緣)을 만나 연기(緣起) 후 사라지되 그 외의 업은 자성경계의 일원상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깨질 때까지 ...자성경계의 일원상이 깨져야 비로소 자성경계 안에 있는 업이 흩어지는 것이다. 다시 집착하여 달라붙을 때까지...


최초의 나라고 하는 것을 보고 가아(眞我)로 생성된 것을 살펴본다면 이러하다. 자등명의 진아(眞我)로 있다가 가아(眞我)가 되는 순간 진아(眞我)란 자등명은 가아(眞我)가 되고 진아(眞我)로 살아가던 자성불은 혼(魂, 神)의 부분과 백(魄)의 부분이 된 것이다. 진아(眞我)는 자등명 자체로 본성이고 자성불은 진아에 있어서 혼의 부분고 백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진아(眞我)가 가아(眞我)가 되는 순간 자등명에는 업이 빈틈없이 에워싸 달라붙어 있고 자등명의 빛으로 드러나고 자등명이 가지고 있는 본성의 속성인 끌어당기는 힘에 의하여 작용하는 자성불의 자리에는 업으로 인하여 작용이 드러나고 드러난 자성불 자리에는 업이 부딪치고 부딪쳐서는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렇듯 진아(眞我)에서 가아(眞我)로 완성된 가아에는 이미 자등명을 빈틈없이 에워싸 달라붙어 있는 업을 업(식)덩어리로 정(精)이라고 하는 영(靈)이라는 것이 형성되고 이것이 형성됨과 함께 자등명과 업으로 인한 작용으로 드러나는 혼(魂, 神)이 있게 되고 이것이 작용하는 백(魄)이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하니 처음 가아(眞我)가 완성되었을 때부터 자등명에 업으로 인한 무의식 잠재의식 의식이 있게 된 것이다. 최초 가아(眞我)로 탈바꿈했을 당시의 무의식 잠재의식은 가아(眞我)가 되기 전에 수치적으로 1, 2, 3, ....7, 8을 지금의 표현으로 한다면 무의식과 잠재의식이라 할 것이다.

  
이때  역시도 가아(眞我) 밖에서 자등명에 이르기까지 5공이 형성된 것이다. 첫 번째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몸 안으로 현재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과 의식이란 혼의 부분의 허공이 있고, 두 번째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부분의 의식이 업이 되려고 하는 부분이 있고, 세 번째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제 7 말라식이 있고, 네 번째 허공을 차지하고 있는 제8아뢰아식이 있고, 다섯 번째의 깨달음이란 허공이 있고, 깨달음이란 허공이란 공의 성품 속에 자등명이 있다.  


깨달음이 공(空)에 있고 공(空)의 성품에 있다보니 많은 분들이 공을 보고 또는 알고서는 공의 성품을 말하며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공이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자칭 각자(覺者)라고 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공을 보고 공의 성품을 보고 아는데 깨닫는데 5공4해탈이 있는 것처럼 공을 보고 깨닫는데도 5공 4해탈을 하여감에 따라 순차적으로 여러 단계가 있다.


깨달음이 공에 있고 공의 성품에 있다보니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자기 자신 밖에서 공을 보고 공의 성품을 알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무의식 잠재의식뿐만 아니라 마음 생각들이 많이 흔들린다. 왜 밖에서 공을 체험했기에 안에 있는 것은 공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안에 있는 생각이나 의식 마음들이 흔들리는 것이다. 허공과 같이 고요하지 못하고 부산스럽다. 이것이 첫 번째 공을 보고 공의 성품을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이 경우의 사람들은 말로는 어쩔지 모르지만 선(禪)다운 선(禪)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자기 자신 안에 들어가서 공에서 공의 성품을 보고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는 머리부분 즉 생각이나 의식부분을 내려놓고 공(空)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수행을 시작하여 이제 선(禪)에 들어간 정도를 가지고 선(禪)에 들어서 생각과 의식이 쉬는데서 공(空)을 보고 공의 성품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경우는 생각이 쉬고 현재의식이 쉬게 됨으로 해서 생각이나 현재의식이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마음에 흔들림이 있다. 왜 마음부분까지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선(禪)을 말하고 정(定)을 말할지라도 아니 삼매(三昧)까지 말하지 모르지만 선(禪)은 이루었으나 정(定)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삼매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세 번째 선정(禪定)에 들어서 공에서 공의 성품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선(禪)에 들어 머리부분은 쉬고 정(定)에 들어가서 흔히 우리들 저마다 마음이라고 하는 부분에 들어가 마음을 쉬게 되고 마음이 쉬어서 마음이란 부분에서 공을 통하여 공의 성품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경우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의식이 굳어져 있는 업이 되려고 하는 의식과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부분에 선정(禪定)들어서 삼매(三昧) 초입에서 공을 체험했기에 의식이나 마음이 흔들림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네 번째 선정(禪定)에 들고 삼매(三昧)에 들되 해인(海印)삼매(三昧)에 들지 않은 제7 말라식에서 삼매에 들어서 공(空)을 보고 공의 성품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우의 사람들이다. 이 경우는 생각과 의식 마음이 고요하다. 그리고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는 흔들림이 있다.


다섯 번째 선정 삼매를 통하여 제 8아뢰아식에 들어서 해인삼매를 이루고 거기서 공과 공의 성품을 보거나 알거나 체험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생각 의식 마음 잠재의식 무의식에 흔들림이 없이 고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확철대오의 깨달음을 증득한 것은 아니다.


이제 여섯 번째 공(空)인데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무아(無我)가 되어 공(空)에 이르러서 공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 경우도 확철대오는 아니다. 자성경계란 일원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고 가아를 나라고 하면서 자성에 경계를 갖게 했던 자성경계 그 자성경계가 윤회를 거듭하면서 더욱 더 그 경계를 다졌던 은산철벽의 경계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은산철벽의 자성경계의 일원상을 깨트렸을 때 비로소 활철대오하게 되는 것이고, 자성경계 일원상을 깼을 때 비로소 알에서 깨어나는 것이며, 한 방울의 물방울이 진리의 바다에 떨어져 진리의 바닷물과 하나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깨달아 자성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가아(假我)를 버리고 자성불(自性佛)에 이른 것이다.


자성불에 이른 것을 보고 깨달았다 한다. 그러나 자성불에 이른 것이지 본성에 이른 것이 아니다. 무아(無我)가 되어 공의 성품에 이른 것이다. 본성에 이른 것이 아니라 본성이 움직일 수 있는 공의 성품인 자성(自性)에 이른 것이다. 이 공의 성품이 나라고 하되 이 공의 성품이 내가 아니라 나라고 하는 본성이 움직이도록 하고 있는 공의 성품일 뿐 나라고 하는 진아(眞我)는 공의 성품 속에 있는 자등명이란 빛이다.

  
이렇듯 자등명이란 빛이 그 어느 것에도 의지 의존 의탁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존재하는 존재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하여 자등명이란 빛의 주변에 자성이란 공의 성품이 있어서 움직임을 통하여 움직임을 자성에 소유함으로 자성불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자성불이 진아(眞我)가 아니고 자성이 진아(眞我)가 아니라 자등명이란 빛이 본성이다.


공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의 언행을 통하여 어느 부분에서 흔들림이 있고 어느 부분에서 작용을 강하게 일으키는가보면 이 분이 공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데 어디서 공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르게 알아서는 가짜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 스스로 공의 성품을 보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도 이를 통하여 바르게 알고 바르게 공부하여 확철대오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0. 03. 10  11:43

 

빛으로 가는 길 칠통 사랑방
http://cafe.daum.net/lightroom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