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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수행과 신통력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白道 박만주 2016. 7. 8. 08:58

 

                    (37) 수행과 신통력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산방야화(중)--19

수행과 신통력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불. 보살은 모두 신통(神通)하신데, 이것은 수행하여 증득〔修證〕한 것인지요?"

   나는 말했다.
  "신통력(神通力)은 수행해서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신통은 불.보살들이 구원겁(久遠劫) 동안 4무량심(四無量心). 6바라밀(六波羅蜜)을 닦고, 갖기지 선행(善行)을 순수하케 닦아 생긴 능력입니다, '신통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말한 뜻은 위와같은 갖가지 수행을 하지 않으면 신통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 뜻은 불.보살이 수행한 바라밀과 공덕은 신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통은 대자대비한 마음이 자기의 원행 (願行)에 뿌리박혀 저절로 얻어진 것입니다. 

 가령 불.보살이 구차하게 신통을 구하고자 한 순간이라도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이 한 생각이 장애가 되어 모든 선행을 다 수행해도 결국은 유루(有漏)의 인(因)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자재(自在)한 해탈변화(解脫變化)의 신통을 얻겠읍니까?"

  혹 부처님의 심종(心宗)과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원행(願行)에 계합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밖의 2승(二乘)의 소과(小果)로부터 외도(外道)에게도 신통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통이 아니라 요술로서 단순한 변화일 뿐입니다.  요술은 모두 작위적(作爲的) 사유(思惟)에 의해 얻어진 것이므로, 괴이한 것을 나타내 중생을 현혹하는 생멸(生滅)의 인(因)일 뿐입니다. 

 하지만 불.보살이 대자대비한 마음을 내어 인위적 조작없는 원력으로 발현한 신통은 법성(法性)과 같습니다. 불보살은 털구멍 하나에서도 백 천의 광영과 백천의 장엄구(莊嚴具)를 드러내어 법계를 채우고,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얻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불 .보살의 해탈한 마음 속에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생각이 없고, 또한 신통을 나타내겠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 신통력으로 중생들에게 복을 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성은 평등하여 일이(一異).자타(自他).능소(能所)의 차별이 없으므로, 신통 또한 그러한 차별이 없음을 알 수 있읍니다."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불.보살의 신통력이 결코 닦아 얻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닦아 얻은 것이 아니라면, 수행을 하지 않는 범부에게는 왜 신통력이 없는지요?"

  나는 말했다.

  "범부라고 해서 그외 법성에 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부와 축생들은 모두 몽매하여 그것을 스스토 알지 못할 뿐입니다.  범부는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원행(願行)으로 바라밀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장엄한 신통력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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