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무생법인(無生法忍 )-함이 없는 함을 살라

白道 박만주 2017. 5. 14. 12:00

 

 

                      무생법인(無生法忍 )-함이 없는 함을 살라             



참사람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가는 자이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무엇인가.

예를 든다면 상대가 진심嗔心(화)을 내다가도 그를 보면 저절로 진심이 없어지고 평온한 상태가 된다면
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춘 자라 하겠다.

화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진심嗔心(화내는 마음)을 늘 참회하는 습관은 만사성취의 근본이 됨을 알라.
그러나 상대로 하여금 화를 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 하겠다.

이런 말이 있다.
진심嗔心(화)을 낼 때 얼굴이 하얘지는 자는 십년 고통을 쌓는 자요.
진심嗔心(화)을 낼 때 얼굴이 노래지는 자는 삼년 고통을 쌓는 자요.
진심嗔心(화)을 낼 때 얼굴이 붉어지는 자는 한달 고통을 쌓는 자요.
진심을 내는 즉시 후회나 참회를 하는 자는 하루 고통을 쌓는 자라 한다.

상대는 진심嗔心을 내지만 자신은 아무 느낌이 없는 것(무심無心)이 좋지만 이 경우는 자신이 상대에게 진심嗔心을 내도록 만들어 주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이켜 보고 그것을 항상 조심해야 고통이 없다.

여하튼 화를 내는 것은 백이면 백 모두다 반드시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고 투쟁과 괴로움은 끊임없이 찾아든다.

삶의 모든 것이 잘 안되고 실패가 많고 잘 싸우고 막히는 것이 많다면 그는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 진심嗔心(화내는 마음 또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고자 원하는 자는 항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
무생이란 온갖 산란심이 끊임없이 나는 것을 완전히 그치고 맑은 수면과 같은 상태로 항상 있게 하는 것이다.

몹시 괴로울 때 동해의 넓고 잔잔한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과 같다.

또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고 푸른 거대한 산을 보거나 오르면 온갖 상념이 다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인간은 모두가 우주와 동일한 생명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와 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자신 속에 그러한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감히 추구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미꾸라지가 일으킨 흙탕물은 어떻게 해야 맑아지는가?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저 가만히 더 이상 흙탕물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뿐이다.
그 흙탕물은 본래 맑은 물(진리)이기 때문에 그냥 놓아두면 자연히 진리로 돌아간다.
바닷물도 그러하다.
그 자체는 순수하므로 바람이나 태풍이 흔들고 휘젓지만 않으면 파도도 없고 그저 푸르고 맑고 거대하고 잠잠한 본래의 모습이 된다.

그렇다고 흙탕물이나 바닷물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꾸준히 살아간다.
강물은 흐르고 바닷물은 온갖 작은 생명들을 품고 살려가면서 자신의 삶을 산다.
끊임없이 자신의 활동(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별 것이 있겠는가.
그저 몸과 마음이 조용히 쉬는 법을 찾으면 모든 것은 평온한 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가만히 있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죽은 것이므로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맑은 죽음이 아니라 맑은 생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평온함 속에서 함이 없는 함을 사는 것이다.

함이 없는 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을 보아도 보지 않는 것이요
어떤 것을 들어도 듣지 않는 것이요
무슨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요
어떤 냄새를 맡아도 맡지 않는 것이요
무엇을 가져도 가지지 않는 것이요
무슨 생각을 해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평온이요 무생법인인 것이다.
평온은 오직 평등 속에서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흔히 진리를 사랑과 자비로서 말한다.
그러나 진리란 사랑이 아니다. 자비가 아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하지 않는가.
일체 만물은 모두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똑같은 성질과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 누가 사랑을 줄 수 있는가.
자비를 베풀 수 있는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
부처님도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진리가 네 자신임을 깨우쳐 줄뿐이다.
진리가 온 세상임을 깨우쳐 줄뿐이다.
부처님은 자신이 걸어갔던 바른 길을 인간들에게 알려주셨던 것뿐이다.

불타께서 탄생하실 때 말씀하셨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무슨 뜻인가.

인간은 아니 모든 중생은 아니 삼라만상은 모두가 하나 같이 같은 존재이므로 일체가 맑고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괴로움은 오로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는 것도 자신이 그러한 마음을 만든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고귀한 존재가 어찌 휘둘리며 산단 말인가.
일체를 평등하게 보는 마음을 가져라.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게 평등하게 대하도록 하라.
그곳에는 사랑도 미움도 자비도 무자비도 어떠한 존비귀천(尊卑貴賤)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무생(無生)의 맑고 고요함과 평온이 있을 뿐이로다.

석존의 전생 보살로서 수행시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비심이 지극한 보살은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품속으로 날아들었다.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곧 그 뒤를 쫒아온 독수리가 나뭇가지에 앉으며 수행자에게 말한다.

{수행자여 그 비둘기를 돌려주시오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그럴 수 없다.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 내가 어찌 그 같은 비정함을 내겠는가.
더욱이 나는 서원을 세울 때 모든 생명을 구원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당신은 참 어리석소 그 모든 생명 중에는 이 독수리도 있소.
당신 때문에 비둘기는 살지언정 나는 굶어 죽게 되오.
어찌 나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비둘기에게만 자비를 베푼단 말인가}

{그러나 비둘기는 도로 돌려 줄 수 없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도 살코기가 필요하니 그럼 비둘기 대신 그 무게만큼 나가는 살코기를 내게 주시오.
그러면 비둘기도 나도 살게 될 것이요.}

자비보살은 생각하였다.

[살코기라면 산목숨 죽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한 생명을 죽이고 다른 생명을 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내 허벅지 살을 떼어서 주고 비둘기를 구하자.]
그리하여 수행자는 저울 가져와 비둘기 무게만큼 달기 위해 한 쪽에는 비둘기를 놓고 한 쪽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조금 떼어 얹어 놓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자신의 살이 더 크게 보이는데도 저울의 추는 내려 간 채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양 엉덩이살 두 다리 두 팔을 다 베어 올렸는데도 추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저울 위에 올라갔다.
그때서야 저울은 평형을 이루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작은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게 된 것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미물일지라도 인간 생명의 한 부분, 그것도 고귀한 수행자의 한 부분으로도 결코 대체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을 진화시키는데 노력하지 않고 또 자신의 삶에 최고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 다면 자신의 삶을 위해 목숨 바친 무수한 생명들의 값어치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어리석도다. 어리석도다.. 인간이여...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화를 내고 상대를 죽이고저 하는 마음, 차별하는 마음, 미움과 원망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을 내고 자신만을 위해 모든 이에게 행패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중생은 사랑도 미움도 어찌할 수도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평등하고 맑게 거두는 몸과 마음이 생겨서 우주 진리와 내 안의 진리가 하나가 될 때 그기에 모든 것이 풀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생법인이요. 동체대비의 진리인 것이다.

*****불교에서 옮김******* 관세음보살()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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