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한탑스님의 반야심경 법문

白道 박만주 2017. 7. 3. 08:51

 

 

 

 


 

 

 

 


     

 

 한탑스님의 반야심경 법문

   

옛날에 연야달다라는 미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데 늘 걱정이 있었습니다. ‘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탐내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잠이 곤히 들었을 때 누군가가 몰래 머리를 베어 가면 어떻게 하나.’ 

 

하루는 아침에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없었습니다. 

“이것 봐. 내가 자는 사이에 누군가 몰래 내 머리를 베어갔으니 큰일 났구나.” 그래서 연야달다는 울면서 머리를 찾아달라고 돌아다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니 우습거든요. 

“네 머리가 그대로 붙어 있는데 왜 없다고 그러느냐?” 

“내가 머리 없어진 걸 똑똑히 봤는데 어디 있다고 그래?” 

“너, 똑똑히 봤다는 그 눈은 어디 붙어있는 것이냐? 네가 그렇게 머리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그 입은 어디 있는 것이냐? 머리 없어진 적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지내거라.” 

“아이구, 저 사람들이 날 속인다.” 

 

이 사람에게 머리를 도로 찾아주는 방법은 뭐겠습니까? 위에다 하나 더 붙어주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본래 머리 없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연야달다가 울면서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이번엔 거울 속에 멀쩡히 제 얼굴이 있어요. 아까는 그만 거울 뒤쪽을 보고 멀쩡히 있는 머리를 없다고 우기고 다녔던 것입니다. 

 

연야달다처럼 우리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와서 ‘난 복이 없습니다’, ‘난 몸이 약합니다’, ‘난 재수가 없습니다’, ‘난 일이 안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넌 본래 나와 마찬가지로 부처야. 본래 부처생명을 살고 있는데 나한데 와서 뭘 그러느냐? 네가 그대로 부처야.” 

 

옛날에 어떤 수좌가 큰스님을 찾아가서 부처가 뭔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네가 안 믿을까봐 얘기를 못하겠다.” 고 하셨답니다. 

“큰 스님 말씀을 제가 어찌 안 믿겠습니까?” 

“그럼 비밀이니까, 이리 와라. 귀에 대고 얘기해주마.” 

귀를 갖다 댔더니 “네가 그대로 부처야.” 하더랍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것은 이렇게 ‘네가 본래 부처야’라는 법문밖에는 없습니다. 본래부터 부처인데도 왜 부처노릇을 못하는가 하면, 스스로가 자기 한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한정을 배버리고, 나라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내 몸뚱이가 나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늙고 병들어 숨 끊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면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와서 ‘죽지 않도록 복을 좀 주십시요’라고 빌지만, 그때 부처님께선 뭐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생명이니, 누구한테 뭘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생명인 것을 깨달으면 그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란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부처 된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문을 듣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며, 부처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 자신이 비뚤게 살았던 것을 보아 잘못된 인생살이를 바꾸어 나가도록 노력하며 본래의 부처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불자라고 하고, 그 불자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하는 신앙행위를 기도 또는 정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진은 나에게 있는 어리석음을 없애버려서 ‘내가 본래 부처구나’를 도로 찾아가는 공부입니다. 내 밖에 있는 특별한 존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본래부터 구족되어 있는 참생명인 부처님 생명을 찾아가는 공부, 그것이 정진입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내안에서 찾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진이란 내 밖에 있는 부처님을 불러오도록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특별한 절에 모셔진 부처님께만 기도해야 영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형상으로 나타난 부처님은 부수어져 버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쇠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밖에 형상으로 있는 물질적인 부처가 무슨 부처입니까? 정말 부처는 우리 모두의 참생명입니다. 이제 반야심경 본문을 들어가면 배우겠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있고 언젠가 죽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몸뚱이를 가지고 다니는 참생명은 결코 본래부터 영원생명입니다. 몸뚱이를 가지고 다니는 참생명은 이 세상 모든 생명과 본래부터 한생명입니다. 

 

너와 나의 대립이 없이 온 세계가 전부 1인칭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으면서도 중생이라고 우깁니다. 멀쩡이 붙어있는 머리를 찾아달라는 연야달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탑스님의 반야심경 법문은 회주로 계시는 문사수법회에서 제공했습니다. 문사수(聞思修)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聞), 나 자신을 비추어 보아(思), 나의 삶을 수정함(修)으로써 정토에 이르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전화 (031)972-3581  (031)972-3581 ~2 

문사수법회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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