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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를 찾아서 1 / 금강경: 덕산선사와 떡집주인 노파

白道 박만주 2017. 10. 30. 09:25

 

 

                                                                                                                        

      


       도(道)를 찾아서 1  /  금강경: 덕산선사와 떡집주인 노파

                


    용담숭신 선사는 본래 천황사(天皇寺) 문 앞에 있는 떡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천황도오 선사는 천황사의 작은 선방(禪房)에 살면서 두문불출, 오직 좌선(坐禪)할 뿐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떡집 아들 숭신이 도오 선사에게 떡을 가져다 드렸다. 떡 10개를 산 도오 선사는 언제나 자신이 떡 9개를 먹고, 남긴 하나를 숭신에게 주었다. 이런 일이 여러 해 계속되었다. 떡 하나를 남겨서 주는 일을 여러 해 계속하자 의심이 난 숭신이 도오 선사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도오 선사는 "너의 자손을 위해서다."하였다. 더욱 의심이 난 숭신이 "떡은 제가 판 것입니다. 어째서 거꾸로 나의 자손을 위한다 하십니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오 선사는 숭신에게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면 자손에게 좋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네가 가져 온 것을 너에게 돌려주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하였다. 그리고 인연과 인과를 설명해 주었다. 숭신은 그 말에 따라 곧 출가를 하였다.


    이때, 도오 선사가 "너는 인과의 도리를 숭상하고 내 말을 믿고서 출가하여 내 제자가 되었으니 이름을 숭신(崇信)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렇게 떡으로 인해서 숭신은 탄생하였다. 출가한 숭신은 오랫동안 도오 선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수행한 결과 도오 선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 뒤에 풍주용담( 州龍潭)이라고 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주석(住錫)하면서 크게 종풍을 드날렸다.


    숭신 선사가 이 용담에 있을 때 '덕산의 몽둥이(德山棒)'로 유명한  덕산선감(德山宣鑑) 선사가 찾아가 숭신 선사에게서 배우고 숭신 선사의 법을 잇는다. 이 두 선사의 만남도 떡과 인연이 있어서 두 선사의 만남 또한 기연(奇緣)이다. 천황도오(天皇道悟) 선사와 그 제자인 용담숭신(龍潭崇信) 선사 사이가 떡으로 인하여 맺어졌고, 그리고 용담숭신 선사의 법을 이은 덕산선감(德山宣鑑) 선사에게도 떡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덕산 선감 선사는 오늘의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당(唐)나라, 건중(建中) 2년(782)주(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민한 그는 일찍이 출가하여 20세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율장(律藏)을 배웠다. 그리고 다음에는 금강경을 깊이 연구하여 통달하였고 금강경 강사(講師)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때문에 그때 사람들은 그를 주금강(周金剛) 또는 주금강왕(周金剛王)이라고 불렀다. 그 자신도 금강경에 관한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벽암록(碧巖錄, 4則)}에 의하면 그는 금강경을 강의하는 중에 "금강유정(金剛喩定) 뒤에 얻은 지혜 안에서 천겁(千劫)에 걸쳐 부처의 위의(威儀)를 배우고 만겁(萬劫)에 걸쳐서 부처의 상세한 행을 배운 뒤에야 성불(成佛)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강유정이란 굳고 날카로운 금강석으로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앤 선정(禪定)의 이름으로서 보살의 경지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경지이다. 그리고 금강유정 뒤에 얻은 지혜란 깨달음을 얻은 다음의 지혜이다. 그러므로 덕산 선사가 금강경 강의 중에 한 이 말은 근래 우리 나라에서 곧잘 회자되고 있는 돈오점수(頓悟漸修)와 돈오돈수(頓悟頓修) 중 돈오점수를 강조하고 있다.


    수행인(보살)의 경지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깨달은 뒤에 얻는 지혜가 있고서도 부처의 위의와 행을 천겁 만겁 닦아야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믿고 있는 그에게 남쪽에 가면 "마음이 곧 부처이다(卽心是佛)"라고 말하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서 그 본성을 보게 하여 부처가 되게 한다 (直指人心 見性成佛)"는마귀(?)의 종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덕산 선사에게 있어서 마귀의 종자들이 하는 이 말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중 돈오돈수에 속한다.


    율장을 배우고 율의를 중요시 하며 돈오점수를 믿는 덕산 선사로서는 소문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에 가서 마귀의 종자들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는 금강경의 소초(疏 , 주석서)를 둘러 메고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 때 덕산 선사의 나이는 30세였다. 이때의 모습을 무문관(無門關 28話)은 '마음이 분분(憤憤)하고 입도 비비(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분분이나 비비는 다같이 분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마음과 몸이 얼마나 발분(發憤)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한 그가 여주(澧州)에 이르렀다. 점심 때라서 떡을 파는 떡집에 들어가서 떡집 주인 노파(老婆)에게 점심(點心)으로 떡을 주문했다. 그때, 떡집 주인 노파가 덕산 선사에게 물었다. "메고 온 것이 무엇이오." "금강경의 소초(疏 )요." "그렇다면 내가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을 하면 떡을 거저 드리겠소.


    만약 대답을 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 떡을 사 드시도록 하시오." 금강경에 관한 한 자신이 있는 덕산 선사, "묻기만 하시오" 하였다. 이에 떡집 주인 노파가 물었다. "금강경에 말하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金剛經云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點)을 찍겠습니까?(점심)" 덕산 선사, 말문이 막혔다.


    도 그럴 것이 과거는 이미 지나 가버렸으니 거기에 점을 찍을 수 없고, 현재는 촌음(寸陰)도 기다리지 않고 과거로 흘러가 버리니 현재란 실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점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해석은 금강경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의 대가인 덕산 선사로서는 말문이 막힐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때, 떡집 주인 노파는 대답을 못하는 덕산 선사에게 용담 숭신 선사가 주석(住錫)하고 있는 용담(龍潭)을 가리키면서 "그 곳으로 가시오" 하였다.


    덕산 선사는 떡집 주인 노파가 가리키는 대로 용담으로 숭신 선사를 찾아갔다. 용담 선사가 단칸방에 문도 없이 혼자 살고 있기에 덕산이 며칠 동안 시중을 들어 주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용담 선사가 물었다. "어째서 돌아가지 않는가?" "어둡습니다." 이에 용담 선사가 호롱불을 켜서 덕산에게 주었다. 덕산이 받으려는 순간 용담 선사가 훅 불어 꺼 버렸다. 이에 덕산이 엎드려 절을 하니 용담 선사가 다시 물었다.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덕산은 지금부터 노 선사의 말씀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덕산은 이윽고 다음과 같이 말을 던졌다. "용담(龍潭)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막상 와보니 못(潭)도 없고 용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땐 어찌합니까?" 용담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지금 용담에 와 있느니라." 이 말에 덕산은 문득 깨우침을 얻어 30여 년 간을 용담 선사 곁에 머물면서 공부하다가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그러고 지금껏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 소초를 법당 앞에 쌓고 불태웠다. 그때 덕산선감 선사는 "심오한 진제(眞諦)를 밝히는 유현(幽玄)한 말은 하나의 털을 큰 허공에 두는 것과 같고 세간의 진실을 밝히는 말은 커다란 골짜기에 물 한 방울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덕산선사는 이렇게 해서 그토록 마음과 몸이 분노했던 마귀의 종자들이 설하는 돈오돈수의 선풍(禪風)에 들어섰다.


    후일 덕산 선사는 함통(咸通) 원년(860) 무릉(武陵) 태수의 청으로 비로소 덕산(德山)에 주석하여 '덕산'으로 불리우게 되고 "대답을 해도 몽둥이 설흔 번을 때리고 대답을 못해도 몽둥이 설흔 번을 때린다."는 저 유명한 덕산봉(德山棒)의 가풍(家風)을 드날리게 된다. 이때부터 천하의 선객(禪客)들이 모여들어 항상 5백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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