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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台四敎儀의 四種四諦 / 지 창 규

白道 박만주 2018. 1. 2. 08:58

 

 

                                                                                                                        

      

     

    天台四敎儀의 四種四諦

                                                                 지 창 규1)

    目次


    Ⅰ. 序言 

    Ⅱ. 藏․通․別․圓의 化法四敎

    Ⅲ.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四種四諦

      1. 藏敎의 生滅四諦

      2. 通敎의 無生四諦

      3. 別敎의 無量四諦

      4. 圓敎의 無作四諦

    Ⅳ. 藏․通․別․圓의 四敎

    Ⅴ. 結語 : 生死․煩惱․涅槃․菩提論


    Ⅰ. 序言 

    佛敎의 교리 가운데 가장 정리된 것은 뭐니뮈니해도 苦․集․滅․道의 四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四諦가 초기의 불교라는 점이 걸림이 된다. 불교를 대승불교와 나아가 중국불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초기의 四諦로는 이 모두를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四諦에 대한 대승적 또는 중국적 해석이 있다면 상당한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天台智顗가 제시한 四種四諦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천태는 四種四諦로써 모든 교설을 정리하고 있다. 즉 모든 대소승의 불교를 四種의 四諦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 일반적인 시각을 벗어난 이례적인 것이기에 매우 흥미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본고에서는 천태의 四種四諦를 통해 종래의 四諦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천태의 시각을 보이므로써 21세기에 알맞는 불교관의 토대를 구축해 보고자 한다. 四種四諦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천태의 교관서로 알려져 있는 高麗 諦觀의  天台四敎儀에 의거하려고 한다. 天台四敎儀는 天台敎觀을 가장 잘 정리한 것으로 예로부터 인정받아 왔으며, 그 주석서만 하더라도 250여 가지에 이르는 명저이기 때문이다.

     

    天台四敎儀는 그 題名과 같이 藏․通․別․圓의 化法四敎1)를 설명하는 저작으로서 바로 이 化法四敎가 四種四諦이기도 하다. 물론 천태의 四種四諦라면 天台智顗의 저작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여기서는 天台四敎儀를 가지고 四種四諦에 관한 특징적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2) 그것은 번쇄한 천태대사의 저작보다도 간명하게 四種四諦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태의 四種四諦를 가지고 일체의 불교교리를 요령있게 통합하는 방법을 소개하므로써 21세기에 들어선 불교의 현대적 모색에 작게나마 보탬을 더하고자 한다.


    Ⅱ. 藏․通․別․圓의 化法四敎

    化法四敎는 불타의 설법을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순차로 배열한 것이다. 즉 佛陀 일대 교설의 내용을 藏․通․別․圓의 四敎로 분류한 것이다.3)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교설시기의 분류인 五時와 교설방법의 분류인 化儀四敎 및 교설내용을 분류한 化法四敎로 이루어진 五時八敎 가운데 化法四敎는 천태 敎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4) 이것을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三界內

    事 敎

    藏 敎

    空 諦

    見思惑

    析空觀

    慧 眼

    一切智

    凡聖同居土

    理 敎

    通 敎

    空 諦

    見思惑

    體空觀

    慧 眼

    一切智

    方便有餘土

    三界外

    事 敎

    別 敎

    空→假→中

    見思惑

    塵沙惑

    無明惑

    次第三觀

    法 眼

    道種智

    實報無障碍土

    理 敎

    圓 敎

    空〓假〓中

    見思惑 

    塵沙惑

    無明惑 

    一心三觀

    佛 眼

    一切種智

    常 寂 光 土



    敎說을 三界 안팎으로 나눈 다음에 그것을 각각 事理로 나누어 藏․通․別․圓의 四敎로 구분한다. 장교는 空諦를 분석하여 見惑과 思惑을 끊는 析空觀으로 慧眼을 갖고 一切智를 얻으며 凡聖同居土에 머무르게 된다. 통교는 空諦를 체득하여 見惑과 思惑을 끊는 體空觀으로 慧眼을 갖고 一切智를 얻으며 方便有餘土에 머무르게 된다.

     

     별교는 공․가․중 三諦를 차례로 성취하여 見惑․思惑과 塵沙惑 그리고 無明惑을 차례로 끊어가고는 次第三觀으로 法眼을 갖고 道種智를 얻으며 實報無障碍土에 머무르게 된다. 원교는 공․가․중 三諦를 단번에 성취하여 見惑․思惑과 塵沙惑 그리고 無明惑을 단번에 끊는 一心三觀으로 佛眼을 갖고 一切種智를 얻으며 常寂光土에 머무르게 된다. 이와 같이 四敎의 교설은 諦․觀․眼․智․地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天台四敎儀에서는 藏敎5)․通敎6)․別敎7)․圓敎8)에 대해 정의하면서 그 구체적인 설명을 名義와 敎義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9) 장․통․별․원의 구체적 교설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교는 아함부경전을 비롯하여 소승의 논서와 율전을 포함하는 小乘의 三藏이다.10)

    둘째, 통교는 三乘의 共般若라고 하는 것처럼 聲聞․緣覺․菩薩이 함께 하는 般若 교설로서 방등부와 반야부에 있는 共般若의 교설이 그것이다.11)  


    셋째, 별교는 “여러 대승경전에서 보살이 많은 겁을 지내면서 수행하는 것과 수행계위의 차례가 서로 융섭하지 못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 별교의 모습이다.” 고 하는 것으로 별교의 次第적 隔歷적 성격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교설은 화엄경의 四十一位․영락경의 五十二位․금광명경의 十地와 佛果․승천왕경의 十地․열반경의 五行 등이다.12)

     

    넷째, 원교는 “여러 대승경론에서 부처님의 경계를 말씀하는 가운데, 三乘의 계위차례와 함께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 교에 속한다.”고 하는 것으로 원교의 圓融적 성격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교설은 법화경의 開示悟入을 비롯하여  화엄경의 初發心時 便成正覺․유마의 不二法門 등이다.13)


    대소승의 경전에 담겨 있는 교설을 그 내용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눈 藏․通․別․圓의 四敎는, 경전의 교설에 대하여 判釋한 것이지 경전을 部判하는 것이 아닌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여타의 敎判과는 전혀 다른 구조임을 알 수 있다.14) 이런 점에서 불교 교판 가운데 상당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Ⅲ.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四種四諦

    四種四諦는 기본적으로 藏․通․別․圓이라고 하는 化法四敎에 기초한다.15)  天台四敎儀에서도 이런 이유에서 四諦에 맞추어 四敎를 설명하고 있다.16)


    藏通別圓

    四 種 四 諦

    그런데 앞에서 열거한 四諦의 이름들은 아래의 3교에도 통한다. 다만 가르침의 넓고 좁음과 우수하고 열등함에 따라 生滅, 無生, 無量, 無作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름들을 다시 열거하지 않으련다.



    藏․通․別․圓의 四敎는 주로 四諦로 설명되지만, 生滅․無生․無量․無作의 원리에 의하여 四諦 뿐만 아니라 十二因緣 및 六波羅蜜도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十二因緣 및 六波羅蜜이 된다.


    1. 藏敎의 生滅四諦

    化法四敎 가운데 첫번째 가르침인 藏敎는 소승의 二乘과 菩薩을 위한 가르침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관점을 가진 가르침이다. 따라서 가장 기초적이고도 일반적인 교리가 담겨져 있으므로 불자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교리로 꾸며져 있다. 이것은 불타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할 수가 없기에 방편적으로 일반적 시각에 맞춘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천태가 기초적 교리로 삼고 있는 장교에 대해 天台四敎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7)


    三  藏

      첫째 三藏敎라고 하는 것은, 첫번째 修多羅藏 (四阿含部經典)이고, 두번째 阿毘曇藏 (俱舍論․婆沙論 등)이며, 세번째 毘尼藏 (五部律)이다.


    이 三藏이라는 명칭은 대승과 소승에 공통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소승의 삼장만을 취한다. 대지도론에 이르기를 “가전연자는 총명하고 예리해서 파사론 가운데 삼장의 뜻을 밝히었으나 마하연경을 읽지 않았으므로 큰 보살이 아니다”고 한다.


    또 법화경에 이르기를 “소승의 삼장학에 탐착하는 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글 들에 의거하여 천태대사는 소승을 일컬어 삼장교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 3승의 근성이 있다.



    장교에서는 성문․연각․보살로 그 대상을 나누고는 성문은 四諦, 연각은 十二因緣, 보살은 六波羅蜜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18) 聲聞은 生滅의 四諦에 의거한다고 한다.


    苦  諦

      먼저 聲聞은 生滅四諦의 가르침에 의거한다. 四諦라고 하는 것은 첫째 苦諦인데, 25가지 세계의 주체인 正報와 환경인 依報가 그것이다… 세분하면 25有가 되고 종합하면 나고 죽는 여섯 세계가 된다…


    이제까지 풀어온 지옥으로부터 非非想處에 이르기까지 비록 괴로움과 즐거움이 같지 않지만 태어났다가 다시 죽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면할 수 없으므로 생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교의 실제로 있는 괴로움의 상태를 밝힌 진리이다.



    四諦의 苦諦에서는19) 생사의 세계에 빠져있는 범부에 대해 세계가 바로 苦界라는 것을 자각시키고 있다. 지옥․축생․아귀․아수라․인간․천상의 三界, 二十五有, 六道의 세계가 고락은 같지 않지만 태어나서는 죽고 죽고서는 다시 태어나는 생사의 苦에 속박되어 있는 것을 상세하게 설한다.


    集  諦

      둘째, 集諦라는 것은, 곧 見惑과 思惑이다. 또 見修라고도 하고 四住라고도 하며 染汚無知라고도 하고 取相惑이라고도 하며 枝末無明이라고도 하고 通惑이라고도 하며 界內惑이라고도 한다.


    비록 이름은 같지 않지만 오로지 見惑과 思惑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선 견혹을 풀자면 88使가 있다. 이른바 첫째 身見이고, 둘째 邊見이며, 셋째 見取이고, 넷째 戒取이며, 다섯째 邪見이고 (이상은 利使이다), 여섯째 貪이며, 일곱째 瞋이고, 여덟째 癡이며, 아홉째 慢이고, 열째 疑이다 (이상은 鈍使이다).


    이상 10使가 3계의 4제에 대위될 때 때로는 늘고 때로는 줄어 88使가 된다… 다음 사혹을 밝히면 81품이 있다. 말하자면 3계를 나누어 9지로 한다. 욕계는 합하여 1지로 하고, 4선과 4정은 8지로 하므로 모두 9지로 되는 것이다.


    또 욕계의 1지 가운데에는 9품의 貪․瞋․癡․慢이 있다. 9품이란 상상․상중․상하․중상․중중․중하․하상․하중․하하이다. 위의 8지에 각각 9품이 있지만 瞋使는 제외된다.


    그러므로 81품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見惑과 思惑이 같지 않지만, 모두 이것은 장교에 실제로 있는 집제 즉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진리이다.



    다음 集諦에서는20) 苦界에 생멸하는 원인이 見惑․思惑이라는 것을 지적하고는 見惑을 八十八使, 思惑을 八十一品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滅  諦

      셋째 滅諦라고 하는 것은, 앞 괴로움의 상태와 괴로움의 원인을 멸하고 한편에 치우친 眞諦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멸함으로 인하여 眞諦를 만나는 것이지 멸함이 眞諦는 아니다.



    滅諦에서는21) 二十五有의 子縛果縛을 끊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멸제 법문은 계합되는 眞理를 멸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멸제와 별개로 계합되는 眞理를 상정하고 있다.22)


    道  諦

     넷째 道諦라고 하는 것은, 줄여 말하면 戒定慧이고, 넓게 말하면 三十七道品이다. 三十七道品은 일곱 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의 7과는 장교의 生滅道諦이다.



    최후로 이 眞理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수행으로 간략하게는 戒定慧를, 넓게는 七科 三十七道品을 설한 것이 장교의 도제 법문이다.23) 장교가 색심제법의 차별을 설한 것이라 해도 공관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공을 설함에 있어서 색심제법을 분석하므로써 我空法有를 설할 뿐이다. 我空法有이므로 法空은 아직 설하지 않는 것이고 我空의 空도 분석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기에 장교의 공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것을 析空이라 하고 이러한 분석적 방법을 拙度라고 한다. 이 장교의 生滅觀24)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生滅의 四諦는 生滅이라는 관점으로 苦․集․滅․道를 보는 것이다. 둘째, 苦諦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은 三界六道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셋째, 三界六道를 모두 苦라고 하는 것에는 苦樂의 차이가 있지만 그 樂이 다하면 苦로 떨어지는 것이기에 모두 苦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혐오의식으로 가득차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넷째, 우리의 苦惱는 見思惑으로서 전적으로 내 자신의 책임으로서 고통스런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번뇌 즉 見思惑을 끊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섯째, 그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 바로 해탈 즉 열반이다. 그런데 장교에서 설명하는 滅諦가 바로 眞諦는 아니라고 하는 것은 유의해야 할 점이다. 여섯째,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만이 참되다고 한다.  

        

    이것은 나에 대해 집착하는 번뇌를 끊어 버리므로써 眞理와 계합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해탈과 열반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藏敎의 교설은 범부중생이나 二乘에 기초하는데 그 특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苦․集․滅․道의 四諦에 대한 현실적 설명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불타의 진실은 아니다. 단지 중생의 논높이에 맞춘 방편설일 따름이라고 본다. 


    2. 通敎의 無生四諦

    통교는 글자그대로 架橋역활을 하는 가르침이다. 장교인을 통교로 오게 되므로써 뒤의 별교나 원교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가르침으로 들어와 장교인은 대승화가 이루어지고 더욱 수승한 대승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통교는 그 자체의 가르침보다는 더 수승한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가 대승 초문의 교리로 삼고 있는 통교에 대해 天台四敎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25)


     

    通  敎

     다음 통교를 밝힌다. 앞 장교에도 통하고 뒤 별교나 원교에도 통하기 때문에 통교라고 한다. 또 이 가르침 자체로부터 명칭을 얻는다. 이른바 3승인이 모두 말없는 도로 현상인 색을 체득하여 본체인 공에 들어가므로 통교라고 하는 것이다.



    통교는 四種四諦 가운데 無生四諦의 法理를 밝히고 因緣生無自性으로 體空無生에 달하는 마하연 초문의 교법이다. 성문․연각․보살의 3人이 반야의 가르침을 받아 因緣卽空의 이치를 배우기 때문에 통교라고 한다. 그러므로 통교의 通이란 同의 뜻으로서 同稟․同學․同行의 의미를 갖는다. 통교라는 명칭은 이미 慧觀의 五時判에서 나오지만,26) 내용은 전혀 다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27)


     

    三乘의 無生四諦

    3승의 근성을 위하여 無生四諦의 법바퀴를 굴린다. 인연이 다하면 열반에 들어 모든 습기를 없애는 것이 숯과 재가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다. 경에 이르기를, “세 짐승이 강을 건넌다”고 하니, 세 짐승이란 이른바 코끼리․말․토끼이다. 번뇌를 끊는 것이 같지 않음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통교의 3승이 원인은 같지만 결과가 다르다. 비록 증과가 다르긴 하지만 다같이 견혹과 사혹을 끊고 分段을 나와 치우친 眞諦를 증득한다.



    성문․연각․보살의 3인이 공통의 행위로 나아간다.28) 성문은 已邊地, 연각은 支佛地, 보살은 菩薩地까지 오르는 것인데, 3人이 각각 도달하는 최후의 계위는 다르다.29) 그런데 3승이 모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已辨地까지 인데, 이것을 三乘共位라고 하는 것이다.30)

     

    통교는 一切空의 진리를 증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장교와 같이 고집멸도의 4제를 상세하게 설하지 않는다. 특히 色心諸法의 분석과 같은 방법에는 의존하지 않고 일체공의 理法에 기초하여 색심제법의 공을 체득할 것을 설하고 있다. 즉 장교와 같이 분석법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공원리를 체증할 것을 설한다. 그러므로 통교의 관법을 敎道의 체법관이라 하고 無生四諦라고 하는 것이다.31)

     

    통교는 대승의 초문으로서 장교와 별교․원교의 중간에 있으며 그 능력에 따라 어떤 것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즉 通前通後의 뜻이다. 이것은 통교를 배우는 보살이 鈍根機라면 體空의 진리를 수행해도 장교의 偏空을 파악하는데 그치지만, 이에 반해 利根의 보살은 통교를 넘어 별교나 원교의 중도이치도 파악할 수 있다.


     

    空․不空(但中․不但中)

      그런데 보살 가운데 두 부류가 있는데, 이른바 예리하고 둔한 것이다. 둔한 보살은 단지 치우친 空만 보고 空하지 않음은 보지 못하므로 이 통교의 과두불이 되는데 그친다. 수행의 원인은 비록 다르지만 결과는 장교와 같으므로 앞과 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예리한 근기의 보살은 空의 이치를 볼 뿐만 아니라 아울러 空하지 않는 이치도 본다. 空하지 않음이 곧 中道이며 이것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른바 但과 不但이다. 但中을 보는 이는 별교로 이어지고 不但中을 보는 이는 원교로 이어지므로 뒤에 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통교에서 설하는 반야바라밀에는32) 장교의 소승과 공통하는 共般若와, 통교 보다 높은 別圓과 공통하는 不共般若의 2면이 있다.33) 그러므로 통교의 수행인으로서 둔근기는 2승과 같이 灰身滅智하지만 이근기는 別圓으로 전입한다. 이것을 被接이라고 한다.34) 통교에서 佛地를 세우지만 통교 수행인은 피접하여 별․원에 전입하기 때문에 실제로 통교의 佛地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형식적인 行位로 시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교와 마찬가지로 三界六道로부터 벗어날 것을 설한 것으로서 모두 界內의 敎이지만 장교가 주로 색심제법의 事相차별을 설한 것에 대해 통교는 因緣卽空의 理法을 설하는 것이다. 통교의 體空無生의 법리는 장교의 析空과 같은 空법문이지만 둘 사이에는 巧와 拙의 차이가 있다.35) 통교의 無生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無生의 四諦라고 하는 것처럼 無生의 관점으로 苦․集․滅․道를 보는 것이다. 둘째, 일체가 空이라고 하는 것이다. 三界六道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三界六道 그 자체가 그대로 空이라는 것이다. 셋째, 三界六道를 모두 空이라 하는 것이기에 그 苦樂도 모두 空이라고 보는 것이다. 넷째, 一切가 空이기에 그것을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無生의 해탈이요 즉 無生의 열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장교와 달리 그 자체를 空으로 보는 것에 참된 의미가 있게 된다. 


    이것은 一切空을 깨달으므로써 理法과 계합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열반과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通敎는 장교를 일단 대승화한 다음 보다 나은 세계 즉 별교나 원교로 보내기 위한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 受接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3. 別敎의 無量四諦

    장교로부터 통교를 거쳐 별교로 오는 이 대승 각별의 법문은 대승불교의 정형화된 교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지고 자아성취와 중생구제 등을 하나하나 이루어간다. 사실 생사와 번뇌도 더 한층 많아지고 이에 따른 열반과 보리도 더 많이 요구된다. 무량한 모든 것을 요구하게 되므로 無量法이 된다. 

     

    별교는 보살이 수행하여 단계적인 깨달음을 거쳐가는 가르침이다. 장교의 가르침으로부터 통교를 거쳐 별교나 원교로 受接하는 가운데 별교로 들어오는 이는 次第와 隔別의 中道이치를 선호하는 자다. 즉 별교의 중도원리는 空과 有의 두 측면을 떠난 별개의 원리를 취한다. 공가중의 三諦를 차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界外의 獨보살법이라는 별교에 대해 ?天台四敎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36)


     

    別  敎

      다음으로 별교를 밝힌다. 이 별교는 3계 밖에 홀로 보살법을 밝힌다. 가르침․이치․지혜․끊음․수행․계위․원인․결과가 앞의 두 교와 다르고 뒤의 원교와도 다르므로 별교라고 한다.



    별교는 三界 밖의 보살법을 밝힌다. 별교는 이승과 다르고 원교와도 다르다는 뜻으로서 보살에게만 통하는 대승법문을 가리킨다. 즉 敎․理․智․斷․行․位․因․果가 앞의 두 교와 다르고 뒤의 원교와도 다르므로 별교라고 한다. 별교는 보살이 수행하여 단계적인 깨달음을 거쳐가는 가르침이다. 별교의 중도원리는 空과 有의 두 측면을 떠난 별개의 원리를 취한다. 공가중의 삼제를 차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공관․가관․중관의 관법도 차례로 닦아가는 것이다.


     

    無 量 四 諦

      열반경에 이르기를, “4제의 인연에는 無量相이 있으나 성문과 연각이 알 바가 아니다” 고 한다. 여러 대승경전에서 보살이 많은 겁을 지내면서 수행하는 것과 수행계위 차례가 서로 융섭하지 못함을 널리 밝히고 있는 것이, 별교의 모습이다.



    별교는 3승이 닦는 界內법문인 장교와 달리 오직 보살만이 닦는 界外의 법문이므로 별교라 한다.37) 이 때 別은 不共의 뜻이고 無量四諦의 법문은 2승과 共說치 않는데 그 특징이 있다. 별교는 無量四諦를 설한다. 즉 4제의 무량상을 나타내는 것에 특색이 있다.38) 39) 별교의 無量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無量의 苦諦라고 하는 것처럼 無量의 관점으로 苦集滅道를 보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空假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며 三界六道도 空假中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셋째, 三界六道를 비롯한 苦集滅道 모두를 無量으로 깨달아가는 것이다. 넷째, 모든 것이 空假中이기에 그것을 하나하나 밟아가면서 찾아가야 하는 것이, 無量의 해탈이요 즉 無量의 열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장교나 통교와 달리 空諦로만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니라 空假中의 三諦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서 空에서 假로, 假에서 中으로 보는 것에 참된 의미가 있게 된다. 


    나에 대해 집착하는 번뇌를 끊어 버리므로써 理法과 계합되는 것이 첫 번째 길이고, 또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두 번째 길이며, 중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세 번째 길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한 점차적인 노력이야말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러한 無量의 관점은 보편성이 있으므로 일반적인 불교관을 제시할 때에는 이 별교의 無量觀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현실성있게 보이는 별교가 오히려 無量이라는 세월로 인해 도리어 현실감을 앗아가 버린다. 문제의 궁극적인 끝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적 문제와 이상적 해답을 별개로 보므로써 그 합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무량의 세월을 빌려 줄 곧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4. 圓敎의 無作四諦

    별교만 가지고서도 이미 불교의 개략적인 틀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 하나의 최상승의 교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無量이라는 상상을 뛰어 넘는 시간적 공간적 압박에서 오는 현실적 모색이다. 그러한 현실화가 바로 원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서 닦고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圓敎는 원만하다는 뜻으로서 불타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을 가리킨다. 조작적 작위를 뛰어 넘은 無作의 경지가 원교이다. 불타의 원만진실한 깨달음이 바로 원교라고 할 수 있다. 장교로부터 이 원교까지 오기 위하여 통교와 혹은 별교가 필요하였다. 前三敎를 거쳐 원교에 들어오므로써 불타의 원만진실한 가르침이 펼쳐지게 된다. 그것은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되는 가르침이다. 천태가 그 대표적 가르침으로 삼고 있는 원교에 대해 ?天台四敎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40)


     

    圓  敎

      圓이라는 명칭은 圓妙․圓滿․圓足․圓頓이기 때문에 원교라고 한다. 이른바 圓伏 원의 억누름․圓信 원의 믿음․圓斷 원의 끊음․圓行 원의 수행․圓位 원의 계위․圓自在莊嚴 원의 자재장엄․圓建立衆生 원의 건립중생이다.



    圓敎의 圓이란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원교는 空假中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三乘을 다 포섭하여 一佛乘으로 회통하기 때문에 원교라고 하는 것이다.41) 원교의 뜻은 매우 많은데 천태사교의에서는 이것을 정리하여 圓妙․圓滿․圓足․圓頓으로 정하고 있다.

     

     圓妙란 불가사의하여 인간의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圓滿이란 모든 현상과 본체를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었다는 것이다. 圓足이란 모든 현상과 본체를 갖추었으므로 그 어떤 사사물물일지라도 모든 공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圓頓이란 모든 것이 원묘하고 원만하고 원족하므로 이것을 깨닫는 것도 오랜 세월을 두고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깨우치는 것으로서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 한 순간에 성취된다는 뜻이다.42)

    圓 敎 相

    여러 대승경론에서 부처님의 경계를 말씀하는 가운데, 三乘의 계위차례와 함께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 교에 속한다. 법화경 가운데 開․示․悟․入의 네 자를 원교의 十住․十行․十廻向․十地에 대위시키는데 이것이 四十位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처음 발심한 때에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모든 지혜의 몸은 다른 것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며, 청정한 妙法身이 모든 것에 응하는 것이다”고 하는데, 이것은 원교의 四十二位를 밝힌 것이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담복림에서는 다른 향기를 맡을 수 없으며 이 방에 들어오는 이는 오직 부처님 공덕의 향내만을 맡는다”고 하고, 또 유마경에 이르기를 “不二法門에 든다”고 한다. 반야경에서는 最上乘을 밝힌다. 열반경에서는 一心五行을 밝히고, 또 열반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서 목욕한 것은 그 자체가 모든 강물을 사용한 것이다”고 한다.


    또 화엄경에 “사가라용이 수레바퀴와 같은 비를 들어 부으므로 오직 큰 바다만이 이것을 받아 들을 수 있을 뿐이고 다른 땅은 감당치 못한다”고 한다. 또 수능엄삼매경에 “만 가지 향을 찧어 환을 만들면 한 낱을 태우더라도 모든 향기가 다 갖춰진다”고 한다.



    生死卽涅槃․邪淫卽佛道라고 하는 원융원리를 근본법문으로 하는 원교는 무작의 원리를 설하지만 이것은 理法의 입장에서 설하는 것이지 원교에 실천수행이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생사즉열반의 진리를 실제로 證悟하지 못하면 원교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끊을 만한 번뇌는 없지만 그것을 실증할 때까지 무작의 원리에 기초하여 원교의 수행을 엄숙히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43) 점차적 수행으로 보이는 五悔44)도 五品弟子位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계위에서 필요한 것이다.45) 반드시 三觀을 가지고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어서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참다운 천태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惑]를 見思惑과 塵沙惑 및 無明惑으로 나누는 가운데 ‘初後不二’의 원리를 갖는 원교라고 할지라도 見思惑과 塵沙惑과 無明惑이 차례로 끊어지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46) 이와 같은 원교의 無作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無作의 관점으로 苦․集․滅․道를 보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卽空卽假卽中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三界六道도 卽空卽假卽中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苦諦인 三界六道를 無作으로 볼 뿐만 아니라 나머지 集․滅․道 모두를 無作으로 보는 것이다. 넷째, 모든 것이 卽空卽假卽中이기에 그것을 보는 것이 無作의 해탈이요 즉 無作의 열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별교와 달리 空假中이 隔歷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卽空卽假卽中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空에도 假와 中이, 假에도 空과 中이, 中에도 空과 假가 있는 것으로 된다. 이 의미를 찾는 것에 깨달음이 있다. 다섯째, 無作이란 有作이 아니라 바로 諸法卽實相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諸法 그대로 實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현실은 단순한 고뇌가 아니라 오히려 열반이라는 것이다. 즉 生死卽涅槃이 된다. 그러면 集諦는 煩惱卽菩提가 되고, 멸제는 涅槃卽生死가 되며, 도제는 菩提卽煩惱가 된다. 여섯째, 그러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번뇌 즉 見思惑․塵沙惑․無明惑을 끊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이 하나로 되는 세계이다. 나에 집착하는 번뇌를 끊어 버리므로써 그 理法으로서의 성질과 계합될 수 있고 또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두 번째 길이며 마지막 중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세 번째 길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명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우리의 극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 이치는 원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러한 無作은 물론 無作觀은 영원히 좁힐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매치가 너무나 조화롭게 되어있어서 오히려 가장 현실성이 없게 보이기도 한다. 가장 수승한 불교관을 제시할 때에는 이 원교의 無作觀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無作의 이론을 통해 보면, 세상은 전혀 손댈 것이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인가. 그것은 원리만이 그렇다는 것이고 세상은 얼마든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참 뜻이 있다. 그래서 원교야말로 더 많은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 때에는 無量과는 달리 卽이라는 원리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Ⅳ. 藏通別圓의 四敎論

    이런 가운데 天台四敎儀에서는 藏通別圓을 통하여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四種四諦를 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 장교에서는 生滅의 四諦를 비롯하여 十二因緣 그리고 六波羅蜜도 소개하고 있다. 각각 聲聞․緣覺․菩薩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 行位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둘째, 통교에서는 無生에 관한 것을 원리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四諦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十地의 행위를 밝히고 있다.


    셋째, 별교에서는 無量에 관한 것을 원리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四諦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五十二位의 행위를 밝히고 있다.


    넷째, 원교에서는 無作에 관한 것을 원리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四諦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다. 오품제자위를 비롯하여 五十二位의 수행계위를 밝히고 있으며 아울러 六卽을 밝히고 있으며, 敎理에 상응하는 修行을 二十五方便과 十乘觀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天台四敎儀?에서는 


     첫째, 四種은 空假中 三諦三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四敎는 다시 五時 및 化儀四敎를 구성케 된다.

     셋째, 四敎는 四悉檀에 의해 뒷바침된다.

     넷째, 四敎는 有門․空門․亦有亦空門․非有非空門 四門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섯째, 生生不可說․生不生不可說․不生生不可說․不生不生不可說 四不可說로 설명된다.

     여섯째, 四敎는 析假入空觀․體假入空觀․從空入假觀․中道第一義觀


    四  敎 

    四  諦

    十二因緣

    八正道

    七覺支

    四念處

    三十七道品

    藏  敎

    生滅

    四諦

    生滅

    十二因緣

    生滅

    八正道

    生滅

    七覺支

    生滅

    四念處

    生滅

    三十七道品

    通  敎

    無生

    四諦

    無生十二因緣

    無生

    八正道

    無生

    七覺支

    無生

    四念處

    無生

    三十七道品

    別  敎

    無量

    四諦

    無量十二因緣

    無量

    八正道

    無量

    七覺支

    無量

    四念處 

    無量

    三十七道品

    圓  敎

    無作

    四諦

    無作十二因緣

    無作

    八正道

    無作

    七覺支

    無作

    四念處 

    無作

    三十七道品



    넷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敎․理․智․斷․行․位․因․果 등 여덟 범주로 이루어진다.

    다섯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一諦를 비롯하여 二諦․三諦․四諦로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四諦로 하는 것이 四敎의 특색을 분명히 하므로 四諦로 하는 것이 典刑으로 되어 왔다.

    여섯째, 二諦로는 不卽二諦生滅二諦․相卽二諦無生二諦․不卽二諦無量二諦․相卽二諦無作二諦이다. 또 理外不卽二諦․理外相卽二諦․理內不卽二諦․理內相卽二諦이다.


    그러면 四種의 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被接 또는 受接을 통해 장교의 근기라도 통교를 거쳐 별교 또는 원교에 진입할 수 있다.

    둘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成佛을 이루는 對根機敎法이다.

    셋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각각 근기에 따라 성불을 이루어갈 수 있는 가르침이다.

    넷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소승은 반드시 대승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섯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각각 독립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면서 四敎 전체는 통합적인 시스템이다.

    여섯째, 근기에 따라 藏․通․別․圓의 四敎를 택해 가면서도 또 上敎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직화되어 있다.


    四敎

    藏敎

    敎藏

    理藏

    智藏

    斷藏

    行藏

    位藏

    因藏

    果藏

    通敎

    敎通

    理通

    智通

    斷通

    行通

    位通

    因通

    果通

    別敎

    敎別

    理別

    智別

    斷別

    行別

    位別

    因別

    果別

    圓敎

    敎圓

    理圓

    智圓

    斷圓

    行圓

    位圓

    因圓

    果圓



    四種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藏․通․別․圓의 四敎는 四種은 生滅․無生․無量․無作으로 정착되므로써 四種이 원리화된다. 

    둘째, 藏에 속하는 三十七道品이 生滅 뿐만 아니라 無生․無量․無作의 원리로 까지 활용된다. 즉 生滅의 三十七道品․無生의 三十七道品․無量의 三十七道品․無作의 三十七道品으로 된다. 따라서 어떤 소승의 원리라도 대승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기게 된다.


    셋째, 이것으로 통하여 모든 敎說 또는 수행 등이 生滅․無生․無量․無作의 것으로 전개된다. 

    넷째,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四理를 통하여 一切 즉 敎․理․智․斷․行․位․因․果로 활용된다.

    다섯째, 한걸음 더 나아가 四理를 통하여 一切法에 대하여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어떤 불교 교의라도 현실화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게 된다.


    生滅․無生․無量․無作의 化法四論

    四  敎

    藏  敎

    三界六道

    見思惑

    因滅會眞

    三十七道品

    通  敎

    苦卽空

    集卽空

    滅卽空

    道卽空

    別  敎

    度苦無量

    斷集無量

    得滅無量

    修道無量

    圓  敎

    生死卽涅槃

    煩惱卽菩提

    涅槃卽生死

    菩提卽煩惱



    Ⅴ. 結語 : 生死․煩惱․菩提․涅槃論

    장통별원의 四敎論은 生死煩惱 및 菩提涅槃에 대한 네 개의 관점 즉 生滅․無生無量無作을 제시하고 있다.47) 生滅은, 세계를 三界六道로 보는 것과 같이 苦로 보는 태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시각을 말한다. 따라서 苦集의 有로부터 滅道의 空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無生은, 無生無滅의 시각으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空으로 보는 것이다. 즉 一切空으로 보는 것이다. 苦卽空集卽空滅卽空道卽空이다. 無量은, 세상의 모든 것을 苦卽無量集卽無量滅卽無量道卽無量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無作은, 세상의 모든 것을 生死卽涅槃涅槃卽生死煩惱卽菩提菩提卽煩惱로 보는 것이다.48)

     

    生滅은 세간의 현실과 그것의 극복을 가르친다. 生滅觀은 모든 것을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로 나누고 있으므로 현실의 극복 또는 개선이라는 일방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있다. 無生은 세간 현실이 바로 空임을 가리킨다. 즉 생사와 열반 및 번뇌와 보리가 모두 空이므로 바로 “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서 현실 그대로가 空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無量은 세간의 苦惱가 한량없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법문과 불도도 한량없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四弘誓願을 가르치는 것이다. 無作은 苦惱의 현실이 바로 佛國土임을 가르킨다. 즉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나를 바꾸어가야 하는 작업이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 이전과 다를 뿐이다. 즉 현실 자체가 그대로 불국토임을 인정하면서 가꾸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生滅로 보면 세상은 문제로 가득차 있으나 그것은 因緣和合이기에 貪瞋癡를 제거하므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無生은 세상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不生不滅이기 때문이다. 無量은 세상에는 문제가 한량없고, 그에 대한 문제 해결책도 한량없다는 것이다. 無作은 세상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 자체로 해결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그 해결마져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수승하다는 無作論이, 가장 비현실적 설명을 하고 있는 듯 하다. 生死卽涅槃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생사와 열반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 보다는 전혀 현실감없는 얘기로 비춰진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일방적으로 치닫기만 한 현 세태에 대한 근본적 해결방법을 잘 일러주는 듯 하다.

     

     生死卽涅槃이라는 無作사상은 과연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해 가라는 것인가. 그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문제가 있기에 오히려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와 해답을 둘로 보지 말자는 태도이다. 문제가 있기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고 해답이 있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해답이 있다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無作의 관점에서는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 세상은 구경으로 완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따름이다고. 문제에 대한 해결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것, 세상을 여법하게 보는 태도야말로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라는 것이다.

     

     문제는 해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無作의 문제풀이법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대처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해법으로 본다면 이 세상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분명한 안목이다. 안목은 나의 인격도야로써 이루어지며 그때에 문제의 해결도 궁극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간의 문제를 해결해 가려는 것이 바로 천태불교의 四種論의 기본태도이다.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1) 사실 化法四敎라는 용어는 天台大師의 어떤 저작에도 없지만 장․통․별․원의 四敎를 化法이라고 해도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기에 장통별원의 四敎를 化法四敎라고 부르기로 한다.



    2) 智顗의 三大部에서는 化法四敎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四敎義?에서는 체계적으로 논술하고 있다. 이 책은 본래 ?維摩經玄義?의 일부인데, 化法四敎의 명칭 등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려 諦觀法師의 ?天台는 化法四敎를 苦集滅道의 四諦에 따라 아주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3) 장․통․별․원의 四敎의 經證으로 아함의 四大敎나 ?月燈三昧經?의 四修多羅 등을 들고 있으나, ?涅槃經? 덕왕품의 四不可說, 성행품의 四種四諦, ?中論?의 四句偈 및 ?大智度論?의 四句分別 등을 化法四敎의 경증으로 드는 것이 보통이다.

       

    藏     生    生不可說    生滅四諦    因緣所生法    有      門 

    通     生 不 生不可說    無生四諦    我說卽是空    空      門

    別     不 生 生不可說    無量四諦    亦名爲假名    亦有亦空門

    圓     不生不生不可說    無作四諦    亦是中道義    非有非空門

       


    4)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化法四敎가 일반적인 불교교판의 관점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반 교판은 경전을 몇 가지의 부류로 나누어 분류하는 部判이라는 점인데 비해, 化法判은 경전에 담겨있는 교설을 분류하는 것을 敎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部判이 경전의 외형적 분류라고 한다면 敎判은 경전의 내면적 분류라고 할 수 있다.



    5) 韓佛全 4, pp.520b-523a.



    6) 韓佛全 4, p.523.



    7) 韓佛全 4, pp.523c-524b.



    8) 韓佛全 4, pp.524b-526c.



    9) 智顗는 四敎義에서 四敎를 理․智․斷․行․位․因․果 등 8개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데 비해 天台四敎儀에서는 四敎의 名義와 行位로 설명해 가면서 나머지 것들을 행위에서 설명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天台四敎儀는 완만하기 이를 때 없는四敎儀 보다는 훨씬 간결하고 적확하게 설명되어 강요서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四敎義로부터 비롯되는 교리체계의 계승은 八敎大意에서 개요적인 것으로 적취되어 재구성되고, 天台四敎儀에서는 八敎大意의 편성을 받아 들이면서 四敎義의 동향을 따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 韓佛全 4, pp.520b-523a.



    11) 韓佛全 4, p.523.



    12) 韓佛全 4, pp.523c-524b.



    13) 韓佛全 4, pp.524b-526c.



    14) 化法四敎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化法四敎는 경전을 외형적 部類별로 나누는 部判이 아니라 내면적 要素별로 나누는 敎判이라는 점이다.


    둘째, 교설의 최고라는 圓敎는 법화경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승경전이라면 圓敎를 갖는다는 점이다.


    셋째, 自派 所依경전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宗判으로부터 벗어나므로써 부처님의 말씀이 전반적으로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파헤칠 수 있는 佛陀敎相의 判釋으로 자리잡게 된다.


    넷째, 천태의 圓敎는 법화경만이 아닌 여타 대승경전의 圓敎까지도 활용할 수 있으므로 그 폭이 여타의 것보다 훨씬 넓게된다.


    다섯째, 化法四敎의 교리적 특성은 바로 修行에도 직결되어 여타 대승경전의 수행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여섯째, 교리와 수행으로 藏․通․別․圓의 四敎 조직이 체계화되므로써 장교의 교리나 수행이 대승의 통교나 별교 및 원교로도 전환될 수 있게 된다.      



    15) 智顗는 열반경 聖行品에 의거하여 四諦에 生滅․無生․無量․無作의 네 가지를 세우고 있다. 四敎義에서는 化法四敎의 所詮을 四諦․三諦․二諦․一諦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장교에서는 三諦나 一諦의 법문은 설해지지 않는 것이기에 四敎에 공통하는 四諦를 중심으로 각 교의 법문이 설명되어 있다.



    16) “然如前所列, 四諦名數, 通下三敎. 但是隨敎, 廣狹勝劣, 生滅無生無量無作, 不同耳. 故向下名數, 更不再列.” (韓佛全 4, pp.520b-523a).



    17) “此之三藏, 名通大小, 今取小乘三藏也. 大智度論云: 迦旃延子, 自以聰明利根, 於婆沙中, 明三藏義, 不讀衍經, 非大菩薩. 又法華經云: 貪著小乘三藏學者. 依此等文, 故大師, 稱小乘, 爲三藏敎. 此有三乘根性.” (韓佛全 4, p.520b).



    18) 智顗는 장교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성문․연각․보살을 구별하고 있다. 성문의 행위로는 장교의 有門인 婆沙論의 설을 대표시키고 있다. 장교는 단지 성문만이 아니라 연각이나 보살도 대상으로 하는데, 성문에게는 四諦, 연각에게는 十二因緣, 보살에게는 六度를 각각 설하지만 주요대상은 아무래도 성문이다.



    19) “初聲聞人, 依生滅四諦敎. 言四諦者: 一苦諦, 二十五有, 依正二報是. 言二十五有者: 四洲, 四惡趣, 六欲, 竝梵天, 四禪, 四空處, 無想, 五那含. 別則二十五有; 總則六道生死... 上來所釋, 從地獄至非非想天, 雖然苦樂不同, 未免生而復死, 死已還生, 故名生死. 此是藏敎, 實有苦諦.” (韓佛全 4, p.520bc).



    20) “二集諦者: 卽見思惑. 又云見修, 又云四住, 又云染汙無知, 又云取相惑, 又云枝末無明, 又云通惑, 又云界內惑, 雖名不同, 但見思耳. 初釋見惑, 有八十八使. 所謂: 一身見, 二邊見, 三見取, 四戒取, 五邪見, 已上利使 六貪, 七瞋, 八癡, 九慢, 十疑 已上鈍使. 此十使歷三界四諦下, 增減不同, 成八十八. 謂: 欲界苦十使具足; 集滅各七使, 除身見․邊見․戒取; 道諦八使, 除身見․邊見, 四諦下合爲三十二. 上二界四諦下, 餘皆如欲界, 只於每諦下, 除瞋使故, 一界各有二十八. 二界合爲五十六, 倂前三十二, 合爲八十八使也. 二明思惑者, 有八十一品. 謂: 三界分爲九地, 欲界合爲一地, 四禪四定爲八, 共爲九地. 欲界一地中, 有九品貪․瞋․癡․慢, 言九品者: 上上․上中․上下․中上․中中․中下․下上․下中․下下. 上八地各, 有九品除瞋使. 故成八十一也. 上來見思不同, 總是藏敎實有集諦.” (韓佛全 4, p.521ab).



    21) “三滅諦者, 滅前苦集, 顯偏眞理. 因滅會眞, 滅非眞諦.” (韓佛全 4, p.521b).



    22) 장교에서 설한 법문을 生滅四諦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법화현의 2하에서는 생멸이란 眞에 미혹되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명칭을 얻는다고 하며, 마하지관 1상에서는 생멸이란 苦集은 세간의 인과이고 道滅은 출세의 인과로서 출세도 있지만 모두 變易하므로 생멸사제라고 한다. 湛然은 止觀輔行에서 이것을 요약하여 보리와 번뇌를 生滅이라 설명하고 있다.



    23) “四道諦者, 略則戒定慧; 廣則三十七道品. 此三十七, 合爲七科... 已上七科, 卽是藏敎, 生滅道諦.” (韓佛全 4 p.521b).



    24) 장교의 生滅四諦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異論이 있다. 즉 智顗는 迷悟의 인과를 나타내는 4제가 장교에서는 實有로 고찰되므로 空에 즉하지 않기에 生滅이라 하고, 마하지관 1상에서는 滅은 眞諦가 아니고 滅로 인하여 眞으로 모아진다고 하는 경문을 인용하여 장교에서는 滅조차 진제가 아니거늘 하물며 다른 3제가 진제이겠느냐고 한다. 마하지관 권 1하에서는 “道滅은 타파하는 주체로서 타파하는 주체는 타파되는 대상에 따라 명칭을 얻으니 구체적으로 因緣所生法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25) “次明通敎者. 通前藏敎, 通後別圓, 故名通敎. 又從當敎得名, 謂三人同以無言說道, 體色入空故, 名通敎.” (韓佛全 4, p.523a).



    26) 通敎라는 명목은 智顗 이전에 쓰였던 것과 동일하지만 그 뜻은 전혀 다르다. 즉 智顗는 반야를 共般若와 不共般若로 나누는데, 共반야는 三乘人이 能觀과 所觀이 함께 가능하나 不共반야는 中道義로서 오직 利根보살에 한정하고 있다.



    27) 三乘에 대해 敎․理․智․斷․行․位․因․果를 敎通․理通․智通․斷通․行通․位通․因通․果通의 여덟 가지 뜻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8) “問: 何位受接, 進入何位? 答: 受接人, 三根不同. 若上根, 三地四地被接; 中根之人, 五地六地; 下根之人, 七地八地. 所接之敎, 眞似不同. 若似位, 被接別十廻向․圓十信位; 若眞位, 受接別初地․圓初住.” (韓佛全 4, p.).



    29) 湛然은 통교 수행인의 피접이 상근기는 3地 또는 4地, 중근기는 6地 또는 7地, 하근기는 8地 또는 9地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天台四敎儀에서는 상근기는 3지 또는 4지, 중근기는 5지 또는 6지, 하근기는 7지 또는 8지로 하여 좀 달리하고 있다. 그리고 피접을 眞似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무명을 끊고 중도를 증득하는 계위로 들어가는 것을 眞位의 피접이라 하고, 아직 무명을 끊지 않고 중도를 증득하지 않는 계위로 들어가는 것을 似位의 피접이라고 한다. 似位의 피접은 별교의 십회향이나 원교의 십신위에 접입하고, 眞位의 피접은 별교의 初地 및 원교의 初住에 접입한다고 한다.



    30) 통교에서는 3승의 同稟共學이라 하는 것을 被接과 관련시켜 三乘共十地라는 행위를 세운다. 통교의 體空無生의 법문을 닦아가는 성문․연각․보살의 3人이 공통으로 거치는 행위를 三乘共十地라고 한다. 이 10地의 행위는 본래 대품반야경 19에 설해져 있는 것으로서 대지도론 75에서 이것을 성문․연각․보살에 대해 밝히고 있다. 智顗는 이런 것을 기초로 하여 보살만에 한하는 10地와 달리 3승이 공통하는 三乘共十地를 통교의 행위로 한 것이다.



    31) “爲三乘根性, 轉無生四諦法輪. 緣盡入滅, 正習俱除, 如炭灰俱盡. 經云: 三獸度河, 謂: 象․馬․免也. 喩斷惑不同故. 又經云: 諸法實相, 三乘皆得, 亦不名佛, 卽此敎也. 此敎三乘, 因同果異. 證果雖異, 同斷見思, 同出分段, 同證偏眞.” (韓佛全 4, p.523b).



    32) “然於菩薩中, 有二種, 謂利鈍. 鈍則但見偏空, 不見不空, 止成當敎果頭佛. 行因雖殊果, 與藏敎齊, 故言通前. 若利根菩薩, 非但見空, 兼見不空. 不空卽中道, 分二種. 謂: 但不但. 若見但中, 別敎來接; 若見不但中, 圓敎來接, 故言通後.” (韓佛全 4, p.).



    33) 智顗는 被接을 셋으로 하는데 통교에는 別接通과 圓接通이 있고, 별교에는 圓接別이 있다. 통교의 경우 別接通과 圓接通의 두 가지가 있다. 별접통은 不共반야의 암시를 얻어 공이 단순한 공으로 나타나지 않고 不空인 것을 알아 실상이 중도이고 중도가 공유2변과는 별개의 것으로 관찰한다. 만약 중도를 空有에 상즉하는 것으로 관할 때, 이 수행인은 원접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법화현의 2하에서 7종2제를 밝히는 문에, 별접통 및 원접통의 피접을 설시하고 있다.



    34) 통교의 體空無生의 법문에는 불타 金口의 교묘한 설에 의해 但空만이 아니라 역시 不但空마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當通含中이라 부르는 것이다. 즉 통교의 無生四諦에서 緣生無性․如幻卽空․無言說道․卽事而眞 등의 표현을 가지고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근보살은 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空卽不空․不空卽妙有․妙有卽中道로 중도원리를 증득해 가는 것이다.

     

    그 중도에는 但中과 不但中의 두 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但中을 보는 것은 별교로, 不但中을 보는 것은 원교로 가는 것이다. 이처럼 當通含中을 보아 증득하는 利根보살이 수행상에서 약진을 이루는 것을 피접이라고 한다. 接은 접속의 뜻으로서 통교의 수행인에 別法이나 圓法으로 접속하는 것이다.


    35) “問: 此藏通二敎, 同是三乘, 同斷四住, 止出三界, 同證偏眞, 同行三百由旬, 同入化城, 何故分二? 答: 誠如所問. 然同而不同. 所證雖同, 大小巧拙, 永異. 此之二敎, 是界內敎. 藏是界內小拙, 不通於大故小, 析色入空故拙. 此敎三人, 雖當敎內, 有上中下異, 望通三人, 則一槩鈍根, 故須析破也. 通敎則界內大巧, 大謂大乘初門故; 巧謂體色入空故. 雖當敎中三人, 上中下異, 若望藏敎, 則一槩爲利. 問: 敎旣大乘, 何故有二乘之人. 答: 朱雀門中, 何妨庶民出入. 故人雖有小, 敎定是大. 大乘兼小, 漸引入實, 豈不巧哉.” (韓佛全 4, p.523bc).



    36) “次明別敎者. 此敎明界外獨菩薩法. 敎․理․智․斷․行․位․因․果, 別前二敎, 別後圓敎, 故名別也.” (韓佛全 4, p.523c).



    37) “涅槃云: 四諦因緣, 有無量相, 非聲聞․緣覺所知. 諸大乘經, 廣明菩薩, 歷劫修行, 行位次第, 互不相攝, 此竝別敎之相也.” (韓佛全 4, p.523c).



    38) 四敎義1의 별교의 所詮을 설명하는 곳에서는 이 무량사제의 명칭을 때로는 원교에서도 인정하는 흔적이 있다. 그러므로 4제와 화법4교의 배대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별교와 원교 무작4제와의 상위는, 결국 별교의 법문이 “中에 미혹한다”고 하는 점에서 다른 것이지만, 4제의 무량상을 설하는 것은 별교와 원교에서 공통한다고 생각된다.



    39) 이 52位는 3혹을 끊고 界內 및 界外의 생사를 뛰어 넘는 과정이다. 3혹이란 見思․塵沙․無明으로서 대지도론의 三智三觀에 기초하여 能治의 세 가지 觀智로 대치해야 할 번뇌를 세 가지로 나눈 것이다. 이 3혹의 斷除에 맞추어 별교의 52位를 고찰하면 10信位에서는 見思를 조복하고, 初住位에서는 견혹을 끊으며, 8住․9住․10住에서는 界內의 塵沙를 끊고, 10행위에서는 界外의 塵沙를 끊으며, 10廻向에서는 무명을 조복하고, 初地 이후 묘각에 이르는 12品의 무명을 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 3혹을 끊는다고 하는 것은 별교에서는 3혹을 隔別不融이라고 설하기 때문에 원교의 三惑同體․同時斷과는 달리 3혹의 異體․異時斷을 주장한다.



    40) “次明圓敎者. 圓名圓妙․圓滿․圓足․圓頓, 故名圓敎也. 所謂圓伏․圓信․圓斷․圓行․圓位․圓自在莊嚴․圓建立衆生.” (韓佛全 4, p.524c).



    41) 천태대사는 敎․理․智․斷․行․位․因․果의 여덟 가지 부문에 걸쳐서 원교를 설명하고 있다.



    42) “次明圓敎者. 圓名圓妙․圓滿․圓足․圓頓, 故名圓敎也. 所謂圓伏․圓信․圓斷․圓行․圓位․圓自在莊嚴․圓建立衆生.” (韓佛全 4, p.524c). 이것은 法法圓融하여 부사의하므로 圓妙라 하고, 三諦相卽하여 體德互融하므로 圓滿이라 하며, 事理三千이 一念에 구족하므로 圓足이라 하고, 因果不二하여 初後無別하므로 圓頓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四敎儀集註?에 의하면 圓妙란 三諦圓融이고, 圓滿이란 三一이 相卽하여 결감이 없는 것이며, 圓足이란 事理兩重의 3千이 一念에 구족되는 것이고, 圓頓이란 果德이 本具하여 점차로 修德하는 것이 아닌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43) “今且依法華․瓔珞, 略明位次有八. 一五品弟子位 外凡出法華經, 二十信位 內凡, 三十住位 聖初, 四十行, 五十廻向, 六十地, 七等覺 是因位末, 八妙覺 是果位也.” 원교의 수행계위와 별교의 수행계위가 외면적으로는 같기는 하지만 그 의미내용에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같은 52位라도 부처 성품의 참모습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에는 원교의 수행계위가 되고, 수행자가 쌓아가는 것으로 볼 때에는 별교의 수행계위가 된다. 원교의 수행계위는 한 계위에서 다른 계위를 포함하고 있기에 차례순서를 초월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52位 곧 10信․10住․10行․10廻向․10地․等覺․妙覺는 하나하나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원교의 ‘차례없는 차례’의 수행계위이다. (韓佛全 4, p.524c).


    44) “若如是則, 外障漸除, 內觀增明. 如順流舟, 更加櫓棹, 豈不速疾, 到於所止. 修圓行者, 亦復如是, 正觀圓理, 事行相助, 豈不速至妙覺彼岸. 莫見此說, 便謂漸行. 謂圓頓, 無如是行, 謬之甚矣. 何處, 天然彌勒, 自然釋迦. 若纔聞生死卽涅槃, 煩惱卽菩提, 卽心是佛, 不動便到, 不加修習, 便成正覺者. 十方世界盡是淨土, 獨向對面無非覺者. 今雖然卽佛, 此是理卽, 亦是素法身, 無其莊嚴, 何關修證者也. 我等愚輩, 纔聞卽空, 便廢修行, 不知卽之所由, 鼠喞鳥空, 廣在經論, 尋之思之.” (韓佛全 4, p.525ab).



    45) “是爲五悔. 下去諸位, 直至等覺, 總用五悔, 更不再出, 例此可知.” (韓佛全 4, p.525b).



    46) “然圓人本期, 不斷見思․塵沙, 意在入住, 斷無明, 見佛性. 然譬如冶鐵麤垢, 先去非本所期, 意在成器, 器未成時, 自然先落, 雖見先去, 其人無一念欣心, 所以者何? 未遂所期故. 圓敎行人, 亦復如是. 雖非本所望, 自然先落.” (韓佛全 4, p.525c).



    47) 生滅은 見思惑을 끊으므로써 空을 깨닫는 것이고, 無生은 일체법이 空임을 깨달아 見思惑을 끊는 것이며, 無量은 見思惑․塵沙惑․無明惑의 무량한 번뇌를 空假中의 三觀으로 무량하게 끊어가는 것이고, 無作은, 見思惑․塵沙惑․無明惑이 그대로 卽空卽假卽中임을 깨달아 번뇌를 바로 끊는 것이다.

     

    또, 生滅은 범부중생이 성불 즉 應身으로 되어 사바세계를 凡聖同居土로 보는 것이고, 無生은 범부중생이 勝應身으로 되어 사바세계를 方便有餘土로 보는 것이며, 無量은 범부중생이 무량한 겁을 거쳐 報身을 이루므로써 實報無障碍土에 거주하는 것이고, 無作은 法身을 이루어 사바세계를 常寂光土로 보는 것이다.


    48) 이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四  敎

    藏  敎

    三界六道

    見思惑

    因滅會眞

    三十七道品

    通  敎

    苦卽空

    集卽空

    滅卽空

    道卽空

    別  敎

    度苦無量

    斷集無量

    得滅無量

    修道無量

    圓  敎

    生死卽涅槃

    煩惱卽菩提

    涅槃卽生死

    菩提卽煩惱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