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분향(五分香)이란
향과 초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필수품이다. 제사를 모시거나 축하를 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향과 초이다. 향과 초는 정성의 상징이다.
향은 자기의 몸을 태워 향기로 주위를 맑고 향기롭게 해주고 초도 자기 몸을 태워 빛으로 주위를 밝고 아름답게 비추어 준다. 우리의 마음이 향이 될 때 더러운 욕심과 깨끗하지 못한 질투와 시기는 사라진다. 우리의 마음에 촛불을 밝히면 어두운 어리석음과 번뇌망상이 사라진다. 향과 초는 우리의 마음에 지혜와 향기로움을 주어 안정과 창조를 갖게 한다.
불교에서 새벽과 저녁에 예불을 할 때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고 오분향(五分香)을 염송하며 예를 올린다.
오분향(五分香이란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다.
이 오분향례는 중국선종의 제6대 조사인 혜능대사가 대중들의 마음에 과거의 모든 허물을 참회하도록 한 뒤, 끓어 앉은 대중들에게 향을 사름에 5가지 의미를 마음에 새기도록 말씀하셨다,
“첫째는 계향이니 곧 자기 마음 가운데 잘못이 없고 악이 없으며 질투가 없고 탐욕과 성냄이 없으며 겁해(劫害)가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한다.
둘째는 정향이니 즉 모든 좋고 나쁜 경계를 보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을 정향이라 한다.
셋째는 혜향이니 즉 스스로의 마음이 걸림이 없이 항상 지혜로써 자기의 성품을 관조하여 모든 악을 짓지 않으며, 비록 많은 선을 닦더라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염려하며 외롭고 가난한 이를 불쌍하게 여김을 혜향이라 한다.
넷째는 해탈향이니 즉 스스로의 마음에 반연(攀緣)이 없어서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지 않으며 자유자재하여 걸림 없음을 해탈향이라 한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니 즉 스스로의 마음이 이미 걸림이 없으나 공(空)에 빠져서 고요함만 지키면 옳지 않으니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듣되 스스로 본심을 알고 부처님의 이치를 통달하며 빛을 화(和)하여 사물을 접(接)하되 나와 남의 구별이 없으면 바로 깨달음의 진여 성품에 그대로 이르는 것을 해탈지견향이라 한다.
선지식이여. 이 향은 각기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피울 것이요, 밖에서 달리 찾을 것이 아니니라.” (六祖壇經 懺悔品)
모든 일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며 마음은 모든 일의 주체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도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고 하였다. 마음은 본래 맑고 깨끗한 것이다. 천진(天眞)하다는 것은 본래 참되다는 의미이며 천진면목(天眞面目)이란 마음의 본 모습은 한 점 티없이 맑고 깨끗하여 착하다거나 악하다는 분별과 시비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착한 사람도 많이 나빠지게 된다. 나도 모르게 악에 물들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 막 태어날 때는 선악의 분별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움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 자기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악에 물들어 악이 나쁜 짓인 줄도 모르고 스스로 저지르게 되었다. 그래서 악은 반복되면서 더 큰 악화를 불러오고 있다. 악에 물들어 악을 짓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잘 단속하여 악에 물들지 않게 해야 한다.
오분향(五分香)은 마음을 향기롭게 만들기 위하여 본심으로 돌이키는 수행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계행을 잘 지켜 몸으로 나쁜 짓을 안 하게 되며, 마음에 어지러움이 없으면 어떤 쓸모없는 유혹에도 말려들지 않아서 성낼 일이 없으므로 선정(禪定)을 닦아 마음이 고요하여 편안하게 된다.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으면 사리판단이 밝고 분명하여 반야(般若)의 지혜로 스스로 깨달아 나아가면서 모든 괴로운 사람도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나아간다.
선악의 경계에 끄달림이 없이 해탈을 성취하고 연꽃에 물이 묻지 않듯이 해탈지견(解脫知見)으로 중생세간에 자유자재로 노닐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기쁜 마음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본래 맑고 깨끗한 마음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마다 오분향의 예를 부처님 앞에 맹세하며 예배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오분향의 실천으로 향기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종자와 열매는 동일한 것이다. 콩을 심으면 콩의 열매를 팥을 심으면 팥의 결실을 거둔다. 한 해의 끝은 새해의 시작이다. 결산은 연말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월말도 있고 주말도 있으며 일일결산도 있다. 찰나생찰나멸(刹那生刹那滅)함에 시작과 끝, 종자와 결실은 찰나에 이루어지고 있다. 찰나를 새롭게 살면 찰나의 결실은 충실할 것이다. 찰나의 시작과 끝도 이처럼 중요한데 어찌 하루, 한달, 한해의 시작과 끝을 뉘우쳐 고침 없이 그냥 넘겨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마음에 오분법신의 향이 꺼지지 않고 타오를 때 우리의 마음은 찰나찰나 시시각각 새로워질 것이며 부처님 법신과 만남은 날로 가까워질 것이다. 마음의 본모습을 덮고 있는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중생에 본래 구속해 있는 여래 성품이 부처님 성품에 계합될 때, 우리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이 되고 부처의 마음은 나와 하나 되어 “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셋이 본래 차별없다.”는 『화엄경』의 말씀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향과 촛불처럼 마음을 사르고 몸을 태워내 마음과 몸을 향기롭고 밝게 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기롭게 밝게 하자. 오분향의 예불은 해탈로 가는 길이요 날로 새로워지는 성불의 계단이다.
정덕환 2010.02.27 14:23 http://blog.daum.net/jdh3689/5708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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