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통(六神通)
여섯가지 묘(妙)한 힘과 작용을 註解한 것이며 六神通에 대한 명사는 혼돈을 방지코자 기존 불교용어를 인용하였다.
육신통(六神通)은 수행을 통하여 생겨나는 무애자애한 능력을 말하며 흔히 육통(六通)이라고도 한다. 또 육신통은 자비행을 원만히 수행하기 위한 불보살의 가피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定)과 혜(慧)가 발현하는 참 禪의 힘이 그 바탕이다.
불교 교리에서 육신통은 중생의 실상을 잘 알아서 여의(如意)하고 신통하게 제도하는데 불가결한 요건으로 되어 있다. 선수행 중에 육신통이 갖추어 지는 경계가 생겨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신비로움이 아니다. 육신통은 육식(六識)이 맑아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능적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온당한 힘이 있어야 본인도 온전히 유지되며 타인도 번뇌에서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힘에 집착하면 사도이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정당한 신통력이 배양될 수 없다. 그러므로 참선 수행자는 육신통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육신통이다.
"육신통은 길을 걷는 나그네가 누룽지 한 보따리 꿰찬 믿음과 같은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놓고 비우고 버리기' 中에서-
1) 천이통(天耳通): 천이통은 천이지통(天耳智通)이라고도 하며 그것은 욕계와 색계의 소리[성처(聲處)] 본질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천이통은 분별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듣고 알 수 있는 능력이며, 이식(耳識)이 맑아진 경계이다.
2) 천안통(天眼通): 욕계와 색계에 속한 가치관의 실상을 관조하고 그 실상을 관조하는 능력을 말한다. 육도(六道) 중생의 인연관계와 물질의 크고 작은 작용[細]을 관조할 수 있다. 천안통이 열리는 경계는 무루지(無漏智)로 귀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재한 경계로서 안식이 정색(淨色)되어 현상계의 본성을 보는 안목(眼目)을 말한다.
3) 신족통(神足通): 신족통은 신통 또는 신여의통이라고 하며 그밖에 여의족통이라 칭하기도 한다. 바른 생각으로 수행하면[思惟修] 본래 지니고 있는 내면의 무한한 능력이 발현되어 생각한 대로 활동하여도 걸림이 없어지는 경지를 말한다. 신족통은 무심으로 행하면 대상과 시공에 간섭을 받지 않아 뜻한 바에 귀착되어지는 능력이다.
4) 타심통(他心通): 타심통은 부처님과 가섭사이에 오고갔던 이심전심인 무루심(無漏心)이 그 반증일 수 있으며 멸진정에서 통해지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세간의 심령학이나 독심술을 하는 술사들의 사념 전달과 같은 혹심과는 생성과 쓰임새가 확연히 다른 정법수행일 때 나타나는 높은 경지이다. 타심통은 내 마음의 거울이 맑기 때문에 존재의 본성이 그대로 반조 되어 비추어 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무심(無心)이 잘 익으면 존재는 그것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드러나 비추어지는 경계를 말한다. 타심통을 다시 정의하면 만물은 일체동근(一切同根)이기에 내가 내 자신의 본성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5) 숙명통(宿命通): 숙명통은 숙주통 또는 숙주수념지증통 이라고도 칭하며, 숙명이란 뜻은 숙세의 명수(命數)를 통(通)하여 알 수 있는 묘지(妙智)를 말한다. 흔히 숙명통은 과거세[욕계 색계]를 관찰하는 능력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전생을 거론하는 능력 등으로 여겨왔으나 이것은 본질이 크게 오도된 것이다. 숙명통은 의사가 환자의 병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알맞은 처방전을 내릴 수 있듯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문제의 원인을 간파하는 능력을 말한다.
6) 누진통(漏盡通): 누진통(漏盡通)은 번뇌를 모두 끊어서 두 번 다시 중생계에 태어나지 않게 되는 높은 경계를 말한다. 누(漏)라는 말은 눈, 귀, 코, 입, 몸, 의식 등 육근의 문으로 누설된다는 뜻이다. 흔히 누진지증통이라고도 이름하는 누진통은 심(心)해탈(解脫)이며 열반의 경지로 볼 수 있다. 이는 육근이 청정한 무루지로서 고(苦)를 알고도 아는체 하지 않으며 집(集)을 끊고도 끊은 것 같지 않으며 멸(滅)[진여(眞如)]을 증득 하고도 증득한 것 같지 않으며, 도(道)에 귀착되었으나 수행한 것 같지 않은 적정(寂靜)의 지혜를 말한다. 흔히 불가에서는 특징적인 사람에 국한하여 증득할 수 있는 특별한 경계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 못된 것이다.
正道 수행자는 시절인연이 닿으면 누구나 회광반조(廻光返照)로 번뇌를 멸하고 누진통을 증득할 수 있다.
육신통이 자재하게 되는 것은 결국 마음 수행으로 업(業)이 멸하여 육경(六鏡), 육근(六根), 육식(六識)이 맑아지는 것과 비례한 초월적인 능력이다. 또한 무심자(無心者)가 이타(利他)의 삶을 살 때 물러서지 않게 하는 불보살의 가피력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무심법(無心法)은 길 없는 길을 열어가는 절대 고독의 길이다. 중생이 지닌 분별의 벽을 넘어 해탈지로 들어 설 때 흔히 육신통이라고 하는 무애자재한 초능력이 생겨난다. 다시말해 육신통은 각자(覺者)의 업(業)이 될 수 없으며 행간(行間)의 간식(間食)과 같다. 제방에서 흔히 말하는 초능력 자체를 수행의 본질로 삼는다면 그것은 사술(邪術)이기에 육신통의 능력은 생겨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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