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解行證(신해행증)’에서 “證(증)”이란………!
佛法修行(불법수행)의 단계를 나타내는 말들이 無數(무수)하다.
불법수행의 근본이 頓悟(돈오)니 漸修(점수)니로 널리 알려져 있고 華嚴經(화엄경)의 階次(계차)에는 52위가 있는 反面(반면)에 楞嚴經(능엄경) 등에서는 十地(십지)를 말하고 하는 등등으로, 경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알려져 있으나 나는 여기서 화엄경을 根據(근거)로 하여 言及(언급)하고자 한다.
華嚴經(화엄경) 十信法門(십신법문)에 의하면………?
수행의 階次(계차)를 “신 ➡ 해 ➡ 행 ➡ 증”으로 말하고 있다.
곡성 성륜사에서 駐錫(주석)하셨다 몇 해 전 열반하신 청화선사님의 語錄(어록)을 보면
이 대목이 좀 다르게 나와 있다.
즉 “信(신) ➡解(해) ➡ 悟(오) ➡ 證(증)”으로 華嚴經(화엄경)에는 세 번째 단계가 ‘行(행)’으로 되어 있는 것을 청화선사께서는 ‘悟(오)’로 말씀하셨다.
대선지식으로 推仰(추앙)받는 청화선사님께서 화엄경의 이 대목을 모르셨을리 없고, 청화선사님 나름대로 체험하신 어떤 뜻을 强調(강조)하시기 위하여 그리하셨다고 믿으며, 나는 아직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불법수행을 시작한 이래 “證得(증득)”이란 말씀을 많이 들어왔다.
이제까지 나는 證得(증득)이란 말을 修行人(수행인)이 깨달은 이후 保任修行過程(보임수행과정)을 거쳐서 명실공히 깨달음을 완성한 것이라고 알았는데, 지금도 물론 크게 다르진 않지만 깨달음을 완성한 것이 어떤 意味(의미)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았다는 말이다.
즉 “證得(증득)”이란…………?
자기가 의식이나 의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지를 뜻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은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자기가 意識的(의식적)으로 그 狀況(상황)을 把握(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은 意識(의식)의 世界(세계)인 것이다.
반면에 뜨거운 것에 닿았을 때 자기가 알고 判斷(판단)하기 전에 우리 몸은 無意識的(무의식적)으로 재빨리 손을 떼는 反射作用(반사작용)을 하는데 이는 意識(의식)으로 判斷(판단)하기 前(전)의 행동이다.
이러한 無意識的(무의식적) 行動(행동)은 판단하기 전의 행동으로서 자기도 알지 못하는
言行(언행)이다.
몰론 이러한 언행이 오랜 습관에서 나오기도 한다지만 그 보다는 의식으로 판단한 행동인가 아니면 의식전의 行動(행동)인가가 重要(중요)하단 말이다.
의식적인 행동과 무의식적인 행동은 어떻게 다른가………?
쉽게 말해서 의식적인 행동은 자기가 들어간 行動(행동)이고 無意識的(무의식적)인 행동은 자기가 서기 前(전)의 행동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佛法修行(불법수행)의 過程(과정)인 “信(신) ➡ 解(해) ➡ 行(행) ➡ 證(증)”을 土臺(토대)로 보면………?
修行者(수행자)는 우선 天地萬物(천지만물)의 根本(근본)이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임을 疑心(의심)없이 믿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을 대표하는 “信(신)의 段階(단계)이다”
우선 疑心(의심)없고 흔들림 없이 믿어야 모든 것이 始作(시작)된다.
여기서의 믿음은 一般常識(일반상식)으로 말하는 그러한 상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없는 믿음,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흔들림 없는 그러한 믿음으로서 한 마디로 말해 “여기서의 믿음은 絶對的(절대적)인 믿음”을 말한다.
이처럼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임을 絶對的(절대적)으로 믿고 修行(수행)하는 것을 頓悟的(돈오적) 修行(수행)이라 하고그러하지 아니하고 漸次(점차) 修行(수행)하여 깨닫는 다는 것을 漸修的(점수적) 修行(수행)이라고 한다.
佛法(불법)에서 말하는 頓悟(돈오)와 漸修(점수)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이는 곧 깨달음의 過程(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根本(근본)이 어떠한가를 뜻하는 말이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부분 부지런히 닦아서 깨달음에 이른다고 알고 있는데 이를 漸修(점수)라고 하고, 그러하지 않고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임을 의심 없이 확신하고 수행하는 것을 頓悟(돈오)라고 한다.
즉 돈오와 점수는 修行(수행)과정에서 깨달음의 境地(경지)에 언제 이르느냐의 問題(문제)가 아니라 깨달음의 출발선상의 根本(근본)이 어딘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즉 一切衆生(일체중생)은 皆有佛性(개유불성)이라는 부처님 말씀에서 出發(출발)했다면 그것은 頓悟(돈오)인 것이고,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른다면 그것은 漸修(점수)인 것이다.
두 번째 修行段階(수행단계)는 “解(해)”로서………?
萬物(만물)의 근본바탕이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임을 믿는 수행자가 왜 그러한가를 알고자 하는 단계가 바로 “解(해)”인 것이다.
즉 佛法(불법)의 奧妙(오묘)한 世界(세계)를 알아가는 단계가 두 번째 단계인 “解(해)”라는 것이다.
불법의 오묘한 眞理(진리)의 世界(세계)를 의심 없이 아는 경지를 이룬 것이 “解(해)”를 마치는 段階(단계)이다.
세 번째 段階(단계)인 “行(행)”은………?
믿고 알았던 것은 行(행)을 하기 위한 하나의 過程(과정)이지 믿고 알고자 하는 것이 根本目標(근본목표)은 아닌 것이다.
믿고 알았던 世界(세계)를 자기가 몸소 行(행)해 보임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眞理(진리)의 世界(세계)를 몸소 행으로 실천하여 보여줌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는 과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한 번 자기 자신을 點檢(점검)해 보라………?
좋은 일이든 꼭해야 할 일을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는 알면서도 잡다한 여러 가지 理由(이유)들로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실례로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인 줄을 몰라서 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慾心(욕심) 등등 잡다한 理由(이유)로 도둑질을 한 것이고, 우리 자신들도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알면서도 자기 몸을 먼저 생각하거나 어떤 利害打算(이해타산)에 끌려서 하지 못하는 등 雜多(잡다)한 理由(이유)들로 해야 할 일인 줄을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本能(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佛法修行(불법수행)에서 말하는 “行(행)”이란………?
우리들이 一般常識線(일반상식선)에서 理解(이해)하고 있는 그런 相對的(상대적)인
行動(행동)이 아니라 절대적인 행동인 것이다.
즉 危急(위급)한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 一般人(일반인)은 자기의 安危(안위)나 利害打算(이해타산) 등 여러 가지 雜多(잡다)한 理由(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自己(자기)의 行動(행동)을 決定(결정)하지만,
절대적인 행동은 위급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 외엔 그 어떤 생각도 들기 전의 상태로서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급한 사람을 구하는 그런 행동을 말한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行(행)”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앞서 言及(언급)한 絶對的(절대적)인 行動(행동)을 말하고
두 번째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行動(행동)을 말한다.
즉 一般的(일반적)인 行動(행동)은 狀況(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한 후에 나오는
意識的(의식적)인 行動(행동)이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행동은 사람이 뜨거운 것에 닿았을 때 의식적으로 判斷(판단)하기 前(전)에 자기도 모르게 급히 손을 떼는 것처럼 無意識的(무의식적)인 行動(행동)을 말한다.
나는 여지껏 證得(증득)이란 말을………?
나의 時間的(시간적)으로 익힌 槪念(개념)이나 空間的(공간적)으로 體驗(체험)한 觀念(관념)에 의하여 解釋(해석)했다면 요즈음 내가 내 自身(자신)의 變化(변화)된 모습을 幽深(유심)히 지켜보면서 “아~!, 證得(증득)이란 이런 뜻이구나” 함을 實感(실감)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평소 살면서 어떤 큰일을 앞두고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꾸중들을 일이 있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근심 걱정되는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기가 十常八九(십상팔구)였는데 지금은 아주 큰일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근심 걱정했던 일들 속에서도 無事泰平(무사태평)이고 그저 마음이 평온무사함을 실감하면서 “아~!, 證得(증득)이란 이런 뜻이구나”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證得(증득)이란 자기가 意識的(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생각도 하기 전에 저절로 그리 되는 행동을 말한 것이다.
즉 우리는 2학년이 되어야 1학년을 졸업했다고 하고, 중학생이 되어야 국민학교를 마쳤다고 하듯이 華嚴經(화엄경)에서 말하는 “신 ➡ 해 ➡ 행 ➡ 증”의 4단계에서 解(해)가 完全(완전)히 이루어지면 信(신)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證(증)이 이루어졌다면 行(행)의 단계를 마친 것이다.
이는 증득함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깨달음이 완성되어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불법의 세계를 공부하면서 나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깨달음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佛法(불법)의 理致(이치)를 理論的(이론적)으로 廓徹(확철)히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佛法(불법)에서도 初見性(초견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라고 나는 본다.
두 번째는 이론적으로 확철히 꿰뚫어 아는 세계를 몸소 행함으로서 불법의 이치를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自由自在(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는 境界(경계)를 이루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완성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물론 이런 見解(견해)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스스로 修行(수행)의 길을 걸어오면서 祖師語錄(조사어록)도 接(접)하고 몇 분의 스님들도 親見(친견)하는 因緣(인연)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 조금씩 參禪修行(참선수행)하는 속에서 내 나름대로 정리한 세계이며 이러한 나의 믿음에 나는 秋毫(추호)도 의심이 없으며, 確信(확신)하고 있고 나는 이런 길을 내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
물론 많은 분들은 내가 定義(정의)한………?
“깨달음은 무엇이고, 또한 깨달음의 完成(완성)”이란 말은 무엇이가고 反問(반문)할는지 모르지만, 또한 頓悟(돈오)지 무슨 漸修(점수)라고 反問(반문) 할런지 모르지만………?
불법의 세계에서도 “初見性(초견성)”이라는 말이 있고, 실제로 많은 선지식들께서 깨달으신 이후 산 속에 묻혀서 수십 년간을 “保任修行(보임수행)”을 해 오고 있으며,
조주선사께서는 깨달으신 이후 60년간을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셨다고 하며,
지금 생존해 계시는 많은 선지식님들의 삶을 보더라도 그 분들께서 2~30대인 젊은 수행자 시절에 깨달으신 이후 60대에 와서야 세상을 향해 법문을 하시는 등 실제의 事例(사례)에서 보아도 내가 定立(정립)한 두 가지 길을 나는 確信(확신)하고 있다.
華嚴經(화엄경)에서 言及(언급)한 “신 ➡ 해 ➡ 행 ➡ 증”의 4段階(단계) 중
“證(증)”에 대해서 요즈음 내가 體驗(체험)한 바를 土臺(토대)로 “證(증)이란 실제로 어떤 것을 말함인가”에 대한 내 意見(의견)을 整理(정리)하다 보니 너무 길어 졌음을 반성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여기 참고로 탄허선사님 화엄경 법문에서 이 부분 발췌하여 옮긴다>
□ 화엄경 10신 법문과 신해행증의 상관관계
① 信(신) : 佛名號品(불명호품) + 四聖諦品(사성제품)
+ 光明覺品(광명각품)
② 解(해) : 菩薩問明品(보살문명품)
③ 行(행) : 淨行品(정행품)
④ 證(증) : 賢首品(현수품)
□ 화엄경 10신의 6품
① 佛名號品(불명호품) : 10신 <신>
② 四聖諦品(사성제품) : 10신 <신>
③ 光明覺品(광명각품) : 10신 <신>
④ 菩薩問明品(보살문명품) : 10주 <해>
⑤ 淨行品(정행품) : 10행 10회향 <행>
⑥ 賢首品(현수품) : 10지 11지 <증>
□ 수행의 과정 4단계
① 信(신) : 만물의 본성이 곧 본래무일물임을 절대적으로 믿음
② 解(해) : 믿었던 것이 왜 그러한가를 아는 단계
③ 行(행) : 믿고 아는 것을 몸소 행하여 행과 앎이 하나가 됨
④ 證(증) : 앎과 행이 하나가 된 후 그 마저 초월한 단계
2011/02/0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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