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은 곧 마음이며, '듣는 자기의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反聞聞自性)'고 하는 것은 관(觀)하는
자기 마음을 돌이켜 관하는 것입니 다. '
청정한 깨달음의 상(淸淨覺相)을 원만히 비추어 본다'고
할 때의 '청정한 깨달음의 상'이 바로 마음 이며,
'비추어 본다(照)' 함이 곧 관(觀)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며, 부처를 염하는 것이
곧 부처를 관하는 것이고, 부처를 관하는 것이 마음 을
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하는 화두를
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처를 염하는
자기 마음을 관하는 것이며, 곧 자기 마음의 청정한
깨달음의 체를 관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성품의 부처를 관조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성품이고, 깨달음이며, 부처입니다.
이것은 형상이나 고정된 처소가 없으므로 끝내
붙잡을 수 없습니다. 청정하게 본래 있는 그대로
법계에 두루하며, 나오지도 들리지도 않고,
가고 옴도 없으니, 이것이 곧 본래 그대로 이루어져있는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인 것입니다.
수행인이 육근을 모두 거두어 들여, 한 생각이 처음
일어나는 곳을 살피면서 이 하나의 화두를 비추어보면,
생각을 떠난 청정한 자기의 마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시 면밀하고 담담하게 고요히 비추어 보면,곧바로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고, 몸과 마음이 함께
고요하여 마침내 아무 일도 없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주야육시(晝夜六詩,24시간0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하여,
날이 갈수록 공부를 깊이 해 가면 마침내 견성성불
(見性成佛)하여 고액을 다 건너가게 될 것입니다.
옛날 고봉(高峯)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인은 이 화두를 살피기를, 마치 기왓장을 만
길이나 되는 깊은 못에 던지면 곧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이 하라.
이렇게 하여 만약 7일이 되도록 깨닫지 못하면
내 머리를 자르라." 했습니다. 동참(同參,같이 참구함)하는
이들이여, 이것은 몸소 겪어 본 분이 하신 말씀으로
진실한 말씀이며, 사람들을속이는 허망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째서 현대인들은 화두를 드는 사람은 많아도
도를 깨치는 사람은 적습니까? 이것은 요즘 사람의
근기(根器)가 옛 사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부인이 참선을 하면서 화두의 이로
(理路,화두를 참구해 들어가는 길)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동서남북으로 분주하게 오가며 스승을 찾고
법을 묻기만 하다가, 늘그막에 이르면 한 개의화두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화두인지, 어떻게 해야 화두를 든다고 할 수
있는지 알지 홋하고, 한 평생 언구(言句)와 명상
(名相,이름과 형상)에 집착하여 화미(話尾)를
가지고 마음을쓰면서,
'부처를 참구하는 이는 누구인가?',
'화두를 비추어 보라.' 하면서 계속 하다 보니
화두와는 정반대로 어긋납니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본연의 무위대도(無爲大道)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일체를 받지 않는
임금의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비록 금가루라
해도 눈에 들어가면, 눈이 멀 뿐인데 어떻게 큰
광명을 볼수 있겠습니까. 가련하고 가련합니다.
훌륭한 젋은이들이 집을 떠나 도를 배우니 그
뜻은 비범하지만 결과는 한 바탕 헛수고일 뿐이니,
매우 슬프고 불쌍한 일입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차라리 천 년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루 공부를 잘못 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수행하여 도를 깨달음은 쉽고도 어려우며 어렵고도
쉬운 것입니다. 이것은 전등을 켜는 것과 같아서,
알면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사이에 크게 광명을
놓고 만년(萬年)의 어두움을 단박에 없애지만,
알지 못하면 기회는 사라지고 등불은
꺼져 번뇌만 더 늘어납니다.
더러 참선을 하면서 화두를 듣던 사람이 마(摩)에
집착하여 발광(發狂)하고, 피를 토하고 병이 나며,
무명(無明)의 불꽃이 커져 '나와 남이라는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현저한 예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잘 조화시켜서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기(氣)를 고르게 하기를
힘써서(마음에) 걸림도 없고, 나와 남이라는 소견도 없어,
항상 현묘한 기틀에 오묘하게 계합 할 수 있어야합니다.
'듣는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 듣는다 이 말은 능엄경
제5권에 나온다. 여기서 문수 보살은
25가지의 원통(圓通) 법문 중에서 관세음 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즉 소리를 듣는 자기의 성품을
돌이켜 듣는 수행법을 으뜸ㅇ로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