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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 강의 11

白道 박만주 2018. 4. 26. 08:38

 

 

                                                                                                                        

      


     

     선가귀감 강의 11 

     

    깨달음의 거울, 서산대사의 선가귀감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공부 시간입니다.

    다 같이 합장하시고, 마하반야바라밀 세 번 염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네, 오늘은 선가귀감 열한 번째 게송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는 먼저 실다운 가르침으로써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두 가지 이치가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며, 돈오와 점수의 두 가지 문은 자기수행의 시작과 끝임을 반드시 가려야한다. 그 뒤에는 교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현전일념으로써 선지를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른 바 출신(出身)활로(活路)니라.


    고(故)로 학자(學者)는 선이여실언교(先以如實言敎)로 위변불변수연이의(委辨不變隨緣二義)가 시자심지성상(是自心之性相)이며, 돈오점수양문(頓悟漸修兩門)이 시자행지시종연후(是自行之始終然後)에 방하교의(放下敎義)하고 단장자심현전일념(但將自心現前一念)하야 참상선지즉필유소득(參詳禪旨則必有所得)하리니 소위출신활로(所謂出身活路)니라.


    네, 오늘은 선가귀감의 열한 번째 게송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보며는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이치, 또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문, 그래서 현전일념(現前一念), 이것이야말로 몸을 벗어나는 산 길이다. 여기서 상근대지(上根大智)는 말할 것 없지만, 중하근기는 함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주해가 달려있어요. 다시 말해서 불변과 수연, 또 돈오와 점수에 다 선후가 있다는 말이다. 이 상근대지는 뭐 말할 거 없죠. 본인이 알아서 다 할 정도의 대단한 그 상근기, 이런 사람은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잘합니다. 그러나 중하근기는 함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불변이라고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뜻이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품, 불성, 본성, 본마음 이것은 불변입니다.

    왜냐? 성품은 공한 것이죠. 공한 것이며, 이것은 어떤 정신적인 존재 또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고 하죠. 존재는 변합니다. 모든 존재. 물질적 존재든, 정신적 존재든,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변화한다는 소리죠. 만약에 변화하지 않는다며는 그것은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 존재를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속성, 그것은 바로 변화를 염두 해 두고 하는 말이죠.


    그런데 성품은 존재라기보다는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가능성, 즉 순수 에너지 그 자체인 거죠. 순수 에너지에 파동이 일어나며는 그것이 마음이 되는겁니다. 파동 에너지. 그리고 그것이 뭉치며는 뭉친 에너지가 바로 육체, 몸이 되는 거죠.

    물질. 그래서 원자폭탄, 수소폭탄 이런 것이 그 물질을 분해했을 때, 거기서 에너지가 나 오는 것이죠. 뭉친 에너지가, 뭉쳐 있던 게, 에너지가 물질을 분해하면서 뛰쳐나오게 되는 것이죠.


    자, 이 수연이라는 것은 연(緣)따라 변한다 이런 소식입니다. 수연. 연따라 변한다. 몸과 마음은 계속 변화합니다. 어제의 이 몸뚱이와 오늘의 이 몸뚱이는 같은 몸뚱이가 아닙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죠.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은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어제는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사람이 오늘 문득 얄미워지기도 하고, 오늘 그렇게 얄미웠던 사람이 내일은 또 갑자기 사랑스러워지기도 하고, 변하는 거예요. 


    그래서 경전에서는 누누이 몸은 물거품과 같고, 마음은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다. 이런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은 물거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다.

    물거품과 아지랑이는 어떤 겁니까? 있는 듯 보이지만 잡을라면 사라지고, 사라진 듯 보이지만 다시 또 나타나고. 다시 말해서 찰나 생멸하는 것이죠. 순간적으로 생겨났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라서 고정된 실체는 없다.


    그러나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래서 그럼 아 주 없는 것이냐? 그건 아니죠. 물거품은 있습니다. 아지랑이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현상으 로서 존재한다는 거죠.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상으로서 존재 한다.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런 것이라는 것이죠. 또 우리 몸과 마음은 고정된 실체 는 없고, 항상 변화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써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몸과 마음은 연(緣)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닦아주어야 됩니다.

    어제 닦아 주었다 그래서 오늘 안 닦아 주면은 금방 오염이 되죠. 또 오늘 닦았다 그래서 내일 안 닦아 주면은 다시 더러워집니다. 목욕을 뭐 오늘 했다고 일 년 내내 안 하면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과 똑같습니다. 마음도 역시 오늘 닦았다고 내일 안 닦아주면은 역시 오염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성품은 닦아주는 게 아닙니다. 닦아줄려고 해도 닦아줄 수가 없는것. 이것이 성품이죠.


    성품을 닦는다는 것은 마치 투명하기 짝이 없는 유리창을 닦겠다고 걸레를 들고 설치는 것 과 똑같습니다. 닦을려고 들면 들수록 오히려 본성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품은 보아주면 되는 것이죠. 견성. 볼견(見)자, 성품(性)자. 예. 수성(修 性)이라는 말은 안 쓰죠. 성품을 닦는다. 수성. 이런 말은 못 들어 봤죠. 수심(修心), 수신(修身)이런 말은 들었습니다. 몸을 닦고 마음을 닦는 것은 가능하고 해야 되는 거지만, 성품은 닦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이라고 하죠. 그러기 때문에 단박에 가능한 거죠. 성품을 보는 견성이라는 것은 몇 십 년을 연습했느냐 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육조혜능스님 같은 경우는 나무꾼으로 있다가 바로 남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견성을 했어요. 뭐 출가했는지 안했는지, 또는 뭐 수행을 오래 했는지 적게 했는지, 예, 또는 뭐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는 뭐 북인지 남인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불성 무남북, 불성 무남 여, 불성 무승속, 예. 불성 무노소, 불성 무빈부 아무 상관없이, 이 성품이라고 하는 것 은, 누구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단박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성품은 공한 것이다. 공한 것이기 때문에 공한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이것을 선으로 채울 것인가? 악으로 채울 것인가? 예. 내가 결정한다. 내 작품이다. 이걸 내 작품이라고 확신해야 내가 고칠 수 있는 거죠. 부처님 작품이다. 신의 작품이다. 이렇게 하면은 나는 고칠 수가 없죠. 다만 할 수 있는 게 고쳐 달라고 구걸하는 거 뿐 입니다. “고쳐주십시오.”“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평화롭게 해 주십시오.”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모두 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구걸형 기도가 나오는 거죠. “바로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이런 신념을 갖게 되면은 더 이상 구걸은 안하게 되고 그 대신 발원을 하게 되죠.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오늘부터 금강경 일독씩 읽으면서 마음을 닦겠습니다. 이러면 되지,“ 제 마음을 닦게 해 주십시오.”이러면은“낸들 니 마음을 어떻게 닦아주냐? 니 마음은 니가 닦아야 하느니라.”이렇게 얘기하십니다.


    그래서 이 몸도 마찬가지죠. 몸도“부처님, 저 대신 목욕 좀 해 주십시오.”목욕을 어떻게 해 줍니까? 내가 내 몸뚱이 내가 목욕을 해야 되죠. 샤워를 해야 되고,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세요.” “행복하게 해 주세요.”“ 제 마음을 닦아주세

    요.”닦아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본인 마음을 닦는 거죠.


    결국 성품은 디지털식으로 단박에 보는 것이고, 몸과 마음은 아날로그식으로 꾸준히 닦아 주어야 한다. 이거야말로 바로 성품과 마음과 몸, 세 가지로 이루어진 이 우주, 또 우주의 축소판인 나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 닦는 그런 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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