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생각 밖으로 향하면 여러가지여서 생각이라 하고 안으로 향하면 한 가지여서 마음이며 마음이 대상경계 따라 흘러가는 것(流)을 안으로 되집어 넣는 것(入)은 입류라 합니다 망상 일상적인 우리들의 삶에서는 이치에서 벗어난 생각을 망상이라 하고 선수행에서는 주제(화두) 이외에 일어나는 생각들이 옳거나 그르거나 수행에 장애를 일으켜 망상이라 합니다 불교의 본래 의미는 색이 空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을 '망'이라 하고 '망'이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을 '상'이라 하니 곧 진리에서 벗어난 마음의 작용을 망상이라 합니다. 방하착 방하착은 놓을 방(放). 아래 하(下) 붙을 착(着) 붙어 있는 것을 아래로 내려 놓으라는 말이며 화두에 붙어 있는 것을 내려 놓으면 오롯이 화두만 남게 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마음이 산란하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아니하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일심전력하면 일이 능률이 나고 쉽게 이루어 집니다 얼굴의 어원이 '얼의 꼴' 이듯이 정신이나 마음의 모양이 얼굴이며 얼굴을 살펴 마음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 미소 띈 얼굴을 볼 수 있으나 거울이 먼저 웃지는 않습니다. 내가 웃어야 거울도 웃습니다. 수행에 아직 접근하지 아니하여도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알아차릴 수 있으며 수행에서 마음이 안팎이 없음을 자각한다면 마음의 작용을 곧바로 관(觀)하여 현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 마음을 관하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을 유지합니다 있는 그대로 놓아 버려라(아짠차 대선사) 수행은 무언가를 성취 하려거나 원하지 않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오직 있는 그대로 알아 차리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원함'과 '번뇌'를 원하지 않음은 둘 다 똑같이 지혜(알아차림)가 결여된 욕망입니다. 붓다의 딜레마도 바로 이 극단적인 양면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 욕망이 단지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것들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中道)로써 깨달음에 이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물은 단지 본래 성질(無常. 苦. 無我)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원함'에 집착하는 한 결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놓아 버린다' 는 붓다의 가르침이야 말로 항시 명심해야 할 수행의 대원칙입니다 이같은 알아차림(지혜)을 끝없이 계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백물(百物)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지 말고 모든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말라. 한 생각이 끊어지면 곧 다른 세계에 몸을 받게 될 것이다" 단경에서도 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망상에 힘을 허비하지도 않으니 망상을 항복받기 위해서 그것이 망상인 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에 집착하거나 쫓아가지도 말며 그것을 버리려고도 하지 않으니 오직 망상이 계속 이어지지만 않게 하면 망상은 자연히 없어진다. 이른바 "망상이 일어나면 곧 망상인 줄 알 것이니 망상인 줄 알면 그것은 곧 없어진다" 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말하면 진여(眞如)와 망상이 일체이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보리와 번뇌가 모두 본래 마음(本心)이요 본래 성품이니 분별할 필요가 없으며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취하거나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마음은 청정하여 본래 부처이니 한 법도 필요치 않습니다. 색즉시공 색과 소리의 성품이 空하여 없앨 것이 없으니 만약 없애서 空이 된다면 색과 소리가 본래 空이 아니라는 망상에 이르게 됩니다. 색과 소리 자체가 空으로서 空이 되기 위하여 없앨 것을 기다리지 않으니 없앤다면 단멸을 의미하는 허물입니다. 단지 색과 소리를 따라가거나 없애지 않을 뿐. 치우치거나 삿된 견해를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오정심관 초기의 부파불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5정심관(五停心觀)이며 5정심관은 원시불교의 경전에도 설하고 있으며 이를 체계화하여 부파불교에서 정리한 선정설이며 <5정심관>은 '사심(邪心)을 정지하기 위한 다섯가지의 관법'이란 뜻입니다.
자비관(慈悲觀) : 일체의 모든 중생을 관찰하여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분노와 성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관법의 수행. 부정관(不淨觀) : 탐욕이 많은 사람들에게 육체의 더럽고 추한 모양을 관찰하게 하여 자기의 육체에 대한 탐욕심을 없애게 하기위한 선정의 수행. 인연관(因緣觀) : 일체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실을 관찰하고 도리에 결합된 마음을 가지기 위한 수행으로 전도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실수하는 관법 계분별관(界分別觀) : 일체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영원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하고사물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관법. 이는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실체시(實體視)하고 있는 사람이 닦는 선정. 수식관(數息觀) : 자연계인 대기(大氣)의 호홉을 관찰하고 자기의 호홉을 세어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행으로 마음의 산란을 가라앉히기 위한 선정의 관법. 이와 같이 5정심관은 각 실천덕목별로 따로 따로 실수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다섯가지를 모두 한꺼번에 실천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도거와 혼침 화두는 한 마음(一心)입니다. 우리의 이 한 생각 마음(一念心)은 안팎이나 중간에 있지 않으면서 또한 중간이나 안팎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허공과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두루합니다. 그러므로 화두를 위로 끌어 올리지도 말고 밑으로 끌어 내리지도 마십시오 위로 끌어 올리면 마음이 들떠 가라앉지 아니하는 도거(悼擧)가 일어나고 아래로 끌어내리면 혼침(흐리멍텅하게 잠에 빠지는 것)에 떨어져 본래의 심성을(心性)을 어기므로 다 중도(中道)가 아닙니다. 번뇌 집착하면 법도를 잃게 되어 삿된 길로 헤매이게 되지만 사물이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 새삼스럽게 오고 갈 것이 없게 되느니라 피로하게 멀리할 것과 가까이 할 것을 가리지 말라 부처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여섯 감각기관이 일으키는 번뇌를 싫어하지 말라 감각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면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이니라 지혜로운 이는 인위적인 목적을 두지 않는데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 얽매이느니라. 견성. 성불 세상에 차별없는 자리를 깨쳐 아는 것을 견성이라 하고 세상의 분별있는 자리를 알아서 천만경계에 자유자재로 응하는 것을 성불이라 합니다 덧글 안 될때는 익을 때.둔공입니다. 결과에 매달리면 회의심이 일어나 그르치기 쉽습니다 선정에 들면 호홉은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거문고 줄 고르듯. 느슨하거나 너무 조이면 소리를 얻지 못합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만들어진 것은 거짓입니다
인용 : 참선요지. 신심명. 종경록. 아함경. 아짠차 대선사 어록. 붓다의 선정사상 출처 : Tong - nuri7073님의 불교통 누리 http://blog.daum.net/nuribul/5766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