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回光返照)
선가(禪家)에서 회광반조란 표현을 쓴다. 이 말은 본래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현상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죽음 직전에 이른 사람이 잠시 동안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또 사물이 쇠약하여 소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선(禪)에서는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임제록에서도 표현되듯이 밖으로 찾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본심, 즉 본래명목을 찾는 것으로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영성(靈性)을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우리가 수행하는데 있어서 자기 내면을 비추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밝음. 즉 빛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이 숨어있다.
그 이유는 많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길을 가는 과정에 있어서 마장(魔障)을 불러들이지 않고 또 반대로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빛은 커녕 어둠을 가지고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늘 번뇌와 갈등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히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수행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빛으로 자기 마음을 비추며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으로 자기 내면을 비추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생각은 수행을 하면 무조건 밝아질 것으로 과대망상이나 착각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어두워지게 되고 마장이 더욱더 심하게 되어 급기야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예를 들면 빙의되어 있는 등 귀신 장애를 겪고 있거나 또는 자기 생각이나 마음이 잘못되어 있을 때 무작정 수행을 하게 되면 이런 것들이 더욱 힘을 키우게 되어 자기 자신을 강하게 지배하게 된다.
자기가 여러 가지로 큰 문제를 가지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분명히 그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행을 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으로 착각한다.
어둠으로 자기 내면을 비추면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어둠이 더욱더 커져가게 된다. 어둠을 키우니 마장을 더욱 불러들이게 된다.
그래서 수행을 원하면 <반드시> 먼저 그 어둠을 없애야 한다. 어둠을 전부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다스려갈 수 있을 정도로는 축소시켜 놓고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어둠을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데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밝음을 먼저 가져야 되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이 모순을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승(僧)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수행을 원하면 수행과정에서 장애가 될 수 있고 나빠질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없애주고 갈 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수행에 입문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길을 가게 된다.
발을 다친 사람이 어찌 머나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겠는가? 먼저 발을 고쳐주어야지.
그래서 수행을 들어가는 처음에 어둠으로 들어가느냐 밝음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수행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해도 여전히 어두운 분들은 밝음으로 자기 마음을 한 번 비추어보세요.
지공법사 최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