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후 다시 3·7일을 기약하고 일심정성을 다해 참회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는 날 새벽에 비로자나불 가슴에서 밝은 광명이 솟아나오며 그 광명 속에서 비로자나불과 문수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불보살들이 나타나며 중앙에 있던 비로자나불이 박서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지성으로 나라와 겨레 위해 참회하니 그 공덕이 크도다. 나라는 적과 강화하면 큰 재난이 없을 것이며 너의 자손대에 새나라를 여는 열쇠를 잡으리라."는 계시가 있었다.
박서의 아들 불옥(佛玉)이 50세가 됨에 세속 인연을 끊고 지리산 청학동 불일폭포 위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불경과 음양도 참설을 이십년간 깊이 연구했다. 세인들은 그를 백련 거사라 불렀다. 백련이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막내 지회(智晦)에게 그 때 네 살된 인일(仁一)이 었었다. 자식들의 권유로 집으로 돌아온 백련 거사는 조용히 아들 지회를 불러 말했다.
"내가 지리산에 들어가 이십년 동안 음양풍수 도참술수를 공부하여 크게 얻은 바가 있지만 너희들에 전해 줄 수도 없고 쓸 때도 아니다. 지리산에는 나의 도술을 계승한 사람이 지금도 수도 하고 있다. 너의 아들 인일이가 학문을 통한 후에 그 도인에게 가서 공부하게 하라. 인일이의 아들 대에는 그 비법을 쓸데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천기(天機)에 관계되는 일이니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조부로부터 부촉받은 인일은 일곱 살에 글공부를 시작하여 19세까지 유학공부를 두루 한 뒤에 청학동 불일암에 찾아가 조부의 제자인 청학 도인으로부터 십년간 불법(佛法)과 풍수 도참사상을 공부하였다. 십년 수도가 끝나던 날 비몽사몽간에 증조부 백련 거사가 나타나 이제 세상에 나가 부모를 받들고 장가를 들도록 하되 배필은 고성 채씨의 벙어리 처녀와 혼인하라고 엄히 당부했다.
이를 신기롭게 생각하면서 하산하여 고성 채씨 댁을 찾아 25세된 노처녀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벙어리 부인은 첫아기를 가진지 두 달 만에 말을 하였다. 거기에는 또한 사연이 있었다. 채씨가 15세 때에 어느 스님이 지나며 앞으로 10여년 동안 첫아기를 가질 때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큰 인물을 낳겠다고 하자 크게 결심하고 그때부터 벙어리 행세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