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천태종에 입교한 것은 30여년 전인 지난 68년 11월 7일 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공무원 생활 30년을 마치고 정년 퇴직한 상태에서 철재를 취급하는 철물상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사도 처음 이어서 경험이 없었고, 철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장사는 잘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니 심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날들 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절에 가서 한번 기도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 단양 구인사에 가면 산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처음으로 구인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구인사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꼭 구인사를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구인사를 찾아갔습니다. 처음 구인사를 가는 길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길도 험하고 모르는 길을 찾아가다 보니 고생도 되었지만 산 부처님을 뵙고 기도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구인사를 찾아 상월원각 대조사님을 뵙고 제가 말씀드린 것은 “저는 기도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는 “그래! 그러면 하면되지” 하시면서 “오늘은 주송을 외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 해본 기도 상월원각 대조사님을 뵙고 대명을 받은 후 방을 안내 받았습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배정 받은 방으로 내려가 보니 두칸짜리 함석집이었는데 두칸의 방에는 각각 10명씩 자리를 잡고 벽을보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곳에 자리를 잡고 오후 6시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하다보니 제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한가지 생각에 골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이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으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제 입에서 일본말로 “닛본 오마 이라 아모리스요 갓데 모 강곡구노 우더니마 계룬다”라는 말이 한참 나오더니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일본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가 터져 나왔고, 그 다음에는 중국말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그때가 새벽 3시 반 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침 6시까지 기도를 쉬지 않고 하였습니다. 첫날의 이러한 경험은 나를 기도에 빠져 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고 상월원각 대조사님께 가서 지난 밤에 기도할 때 일어났던 현상들을 자세히 말씀 드리니, 대조사님께서는 “응 그것은 참 좋은 현상이야. 걱정할 것 없어. 그런 현상이 안 나타나면 좋은 보배를 얻지 못하는 거야.” 하시며 참으로 기뻐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이제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며 “안동에 가서 법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3번씩이나 반복하여 하셨습니다.
대조사님의 영험 구인사에서 3일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철물장사를 시작한 이후 장사가 안되어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구인사를 다녀온 이후에는 철물상회에 손님이 막 모여드는데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바쁘게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철물장사를 하다보니 고압가스와 위험물을 취급하여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능사 취급자격이 없으면 위험물과 고압가스를 취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감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안동시청 상공계에서 하루는 조사를 나와 자격증이 없으니 영업을 할 수 없다며 문을 닫으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소식을 구인사에서 들었습니다. 69년 7월 하안거 주간에 구인사에서 한달주간을 하고 있는 중에 하루는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청에서 장사를 못하게 하고 문을 닫으라고 하니 어찌해야 하느냐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집에 갔다와야 겠다고 상월원각 대조사님께 말씀을 드리니 “응, 갔다 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안동시청 상공계장을 찾아갔습니다. 상공계장과 인사를 나누며 법을 쓰고 있으니, 계장이 하는 말이 “법이 새로 바뀌어서 위험물, 고압가스 취급 자격증이 없으면 취급을 못하게 되었다”면서 “두달 후에 국가기술 자격 시험이 있으니 시험을 보고 지금은 문을 닫아 두었다가 시험에 합격한후 자격증을 걸어두고 장사를 다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일로 구인사로 돌아와서 상월원각 대조사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시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험에 200문제가 나오는데 시험지를 받아놓고 눈을 감고 ‘부처님 도와주세요!’하고 기도를 드리고 한쪽 손으로 법을 쓰며 시험을 보면 잘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시험장소는 서울 종로 6가에 있는 초등학교였는데 시험당일 가보니 8000명의 수험생들이 모여서 시험을 치뤘습니다. 수험생들이 너무도 많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돌보아 주실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제게 직접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다, 저거다, 오, 엑스, 번호는 2번이다, 3번이다, 1번이다, 4번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고 제 손은 이러한 대조사님의 음성대로 답을 작성해 가는데 어떻게 시험을 마쳤는지 모르는 사이에 모든 답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공부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조금 소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시험을 마치고 나니 이 모두가 대조사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은혜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보고 일주일 후 신문에 합격자 발표가 났는데 불가사의하게도 8000명의 수험생 가운데 오직 한사람 만이 합격을 하였다고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나왔고, 그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위신력이요,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위험물과 고압가스 취급을 인정하는 국가 기술자격증을 받아들고 먼저 상월원각 대조사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자격증 두 개를 가지고 구인사로 가서 대조사님께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조사님께서 나투신 원력의 힘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사전 마당에 들어서니 대조사님께서는 좀처럼 잘 안 웃으시는데 미리 아시고 계시는 듯 기분이 좋으셔서 웃고 계셨습니다. 제가 상월원각 대조사님께 참배를 드리면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합격을 하였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리니 “그래, 잘 됐지” 하시면서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대조사님의 예언 대조사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구인사가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당시의 열악한 구인사 환경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앞으로 구인사가 총본산이 되고 구인사 골짜기에 5층 건물이 꽉 들어설 것이며, 버스가 수백대씩 내왕하는 대규모 사찰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룡에 불교 금강대학을 세우면 전국의 신도자녀들을 입학, 졸업 시켜서 앞으로 전세계적인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게 될 것이며, 이곳에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큰 일을 많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대조사님의 법문 1971년 3월 20일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각 지역의 책임자 한 사람씩만 조사전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전국의 교세가 크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에 전국에서 모인 책임자는 약 30명 정도였고, 이들 모두가 대조사님의 부름에 따라 구인사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정법을 설하셨습니다. 대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들 잘 듣고 연구하라” 하시며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소학 중학 고등학 대학 유학을 마칠 때까지 설법을 하시는데 10분 동안 온 산천이 벌벌 떨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한번도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감탄하며 어디에서도 이런 구경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대조사님께서 10분 동안의 법문을 마치시고는 곧 이어 상수제자인 남대충 스님(후에 제 2대 종정이 되셨다)에게 “대충! 법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증명하시니 대조사님께서 하시던 법문을 이어서 남대충스님께서 계속 10분 동안 전법을 하시고, 세 번째는 대월스님에게 법을 받으라고 증명하시니 대월 스님께서 대충스님의 법문을 이어 10분 동안 법문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법문을 통해 구인사의 대조사님 법통이 어떻게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반드시 그 영험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영험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철물장사를 하고 있다보니 대구에서 도매로 물건을 받아다가 팔기에 8톤 차에다 적정 화물의 배가 되는 15톤의 철재를 싣고 차량을 운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안동에 다와 가다가 무등재를 넘는데 반쯤 넘어와서 철로 위의 다리를 막 건너는 중에 차에 과부하가 걸려 옆으로 넘어지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차가 전복되려는 찰나에 대조사님께서 가르치신 법대로 마음을 쓰니 넘어지려던 차가 꽝하며 길 한복판 정위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놀라면서 차의 브레이크가 파열되어 큰일 났다고 당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나는 힘을 잃어가는 기사에게 큰 소리로 걱정말라고 위로하고, 둘러치지도 말고, 남의 차선으로 가지도 말고, 똑바로만 가라고 하면서 기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당시 차는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고,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으며, 차량들이 속도를 내는 밤 10시 30분 경이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브레이크가 파열된 차는 내리막길을 주행 중인데도 정말 조용히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고 나기 전에는 많은 차가 오고 갔는데 우리가 내려올 동안에는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간신히 언덕을 내려온 기사가 평지에 차를 세우고는 하는 말이 “큰 힘을 주셔서 무사히 잘 왔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신도님들은 대조사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시한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조사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 정진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대조사님이 열반에 드신 지금 당시의 가르침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조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사람들의 증언은 정법의 지중함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상월원각 대조사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더욱 열심히 기도 정진해 간다면 영험과 가피는 항상 여러분의 곁에 함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구인사에 입교하여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 안동 지방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정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안동 해동사 신도회장을 3번 하였고, 종회의원과 원로의원, 참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안동 해동사 고문으로 신행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경험이 신도 여러분들의 신행생활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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