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인(四法印)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사덕(涅槃四德) 부처님은 근본교리의 핵심으로 삼법인을 내세운다. 법인이라 함은 이 법의 확고부동한 법칙을 말함이다. 마치 왕이 옥새(玉璽)라고 하는 인장(印章)을 어떤 문서나 신하를 임용하는 사령장에 찍어주면 그것이 곧 왕의 확고한 뜻을 증명하는 신인(信印)이 되듯이 붓다께서 이 우주만법과 인생관에 있어서 길이 바꿀 수 없는확고부동한 법으로서 삼법인 또는 사법인을 말씀하셨다. 최초에는 '일체개고(一切皆苦)'·'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의 세 가지를 가리켰으나, 후에는 '일체개고'를 대신하여 '열반적정(涅槃寂靜)'이 들거나 혹은 이 두 가지를 넣어서 사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이 현실세계는 모두 고(苦)이다(一切皆苦)라고 하는 현실인식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고(苦)인 원인은 인간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기모순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 흘러가고 변화하고 있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諸行無常), 인간은 항상 불변을 바라고 또 모든 것은 무엇 하나 고정적 실체인 것은 없는데도(諸法無我) 그것을 실체라고 고집하려 하는 데에 고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자기모순에 빠진 자기를 반성하며 욕망을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날 때야말로 아무 것에도 어지럽혀지지 않은 이상적인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입장인 것이다. 삼법인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내용에 있어 남방 상좌부 전통의 불교와 북방의 대승불교 전통에서 말하는 내용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삼법인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지만,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삼법인의 정형으로 보고 있다. 혹은 사법인(四法印)이라고 하여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모두 포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오법인이라고 하여 여기에 제법개공(諸法皆空)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는 같은데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이 다른 이유는,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은 동일한 사실에 대한 시각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의 눈에서 보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눈에서 본다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모든 사실까지도 공(空)한 것으로써 그 이면에는 적정한 열반이 자리 잡고 있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보니 중생이 없으며 모두가 이미 깨달은 부처였다고 한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빨리경전에서 부처님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설하셨는데, 특히 이는 대부분 오온의 무상 고 무아의 문맥에서 나타나며 오온으로 대표되는 모든 개념적 존재를 분석하고 분해하고 해체해서 드러나는 유위법이 무상 고 무아임을 철견할 때 해탈열반(解脫涅槃)은 실현 된다고 설하신다. 그래서 유위법의 무상을 꿰뚫은 해탈을 ‘무상해탈(無相解脫)’이라고 하고, 고를 꿰뚫어 실현한 해탈을 ‘무원해탈(無願解脫)’이라고 하고, 무아를 꿰뚫어 실현한 해탈을 ‘공해탈(空解脫)’이라 한다. 그러므로 반야의 핵심도 삼법인과 열반적정을 말한다. 제행무상.일체개고.제법무아를 위빠사나로 통찰함을 말하고 이렇게 통찰함으로서 나의 것, 나, 나의 자아가 있다는 미혹에서 벗어나고 갈애에서 벗어나 열반적정에 이르는 것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이란 모든 무명과 번뇌가 사라지고 괴로움이 없는 최고의 평온한 경지를 말한다. 여기서 열반이란 불어서 끄다 라는 뜻을 가진 범어 nirvana에서 나온 말이다.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 즉 삼독 (三毒) 에 의해서 생겨난 모든 번뇌의 불꽃을 불어서 꺼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열반의 상태는 평온하고 안락하기 때문에 적정(寂靜)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이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인 줄을 모르고 모든 것이 항상 있는 줄 알고 물질에 집착하고 모든법과 나에게 집착하면 일체개고(一切皆苦)이고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고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인줄 철견(徹見)하고 거기에 집착이 없이 삼해탈삼매(三解脫三昧)에 들면 바로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드는 것이다. 이렇게하여 사법인(四法印)의 무상(無常)은 상(常:恒常)으로 변하고 고(苦)는 락(樂)으로 변하고 무아(無我)는 아(我:眞我)로 변하고 열반적정은 정(淨)이 되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사덕(涅槃四德)의 경지에 머므르게 된다. 상락아정(常樂我淨) 상락아정(常樂我淨)이란 『열반경』이라는 불경 가운데 나오는 말씀으로 불교의 이상 세계인 열반이 지닌 네 가지 큰 덕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상덕(常德)'은 부처님이 누리시는 열반의 경지는 '항상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태어나는 것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중생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유한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열반의 부처님 세계는 나고 죽음을 벗어난 영원, 그 자체입니다. 무상이 아니라 항상이며 유한이 아니라 무한입니다. 둘째로 '락덕(樂德)'은 열반의 경지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세계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온갖 고통으로 꽉 차 있습니다. 생노병사에 따른 고통, 사랑과 미움에서 오는 고통, 욕망이 성취되지 못하는 고통등 중생들에게는 수많은 고통이 언제나 함께 합니다. 반면 열반은 일체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와 집착을 완전히 끊었으므로 아주 작은 고통조차도 찾아볼 수 없고 즐거움만이 가득합니다. 그 즐거움은 육체나 물질 또는 인연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순수무잡한 참마음, 즉 불성을 활짝 드러내어 얻은 진실의 기쁨입니다.
셋째로 '아덕(我德)'은 열반의 경지야말로 참나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몸은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바다에서 일어난 한 점의 거품처럼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허깨비와 같습니다. 마치 빌려다 쓴 물건과도 같아서 이몸은 언젠가는 땅과 물과 불과 바람에게 돌려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이러한 망념된 몸에 진실한 자기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입니다. 열반의 몸은 이런 환상과 같은 육체적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나타납니다. 열반에 의해 얻어진 참나는 지혜와 자비로 이루어진 자유자재한 몸으로 형상을 벗어나 온 우주에 충만하여 걸림이 없습니다.
넷째로 '정덕(淨德)'은 열반의 경지는 맑고 깨끗한 세계라는 뜻입니다. 중생계는 온갖 죄업과 악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투쟁이 있고 증오가 있고 미움과 원망이 있습니다. 아집과 욕망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열반의 세계는 참으로 담연하고 청정한지라 안온과 평화만이 존재합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랑스러워서 대립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투명하고 뚜렷한 곳, 그 곳이 바로 부처님의 열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이루는 이 세상의 것입니다. 허무하고 더러운 중생 세상과 영원하고 청정한 부처님 세상이 어떤 장소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 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