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我와 無我에 대한 부처님 말씀 - 열반경에서

白道 박만주 2011. 3. 5. 10:19

 

 

 

 

 

  

   我와 無我에 대한 부처님 말씀 - 열반경에서

'나'라고 하는 것을 손가락이나 겨자씨처럼 실체적인 것으로 알기 때문에 무아라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나'가 없음은 아니다. 사법인(四法印)에서는 '나'가 없다는 無我를 가르치던 부처님
이 열반의 특징을 나타내는 常樂我淨에서는 왜 다시 '나'를 가르 치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제자가 부처님에게 여쭌다.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常樂我淨을 누리고 계신데, 어째서 일겁 동안만이라도 이 세상에 더 머무시면서 더 많은 가르침을 중생들 에게 펴지 않으시고 열반에 들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전에 '모든 사물은 실체적인 나가 없으니 이것을 배워서 나 에 대한 관념을 버려라. 나라는 생각을 버리면 교만심이 없어지고 교만심이 없어지면 곧 열반에 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다시 常樂我淨을 누리시는데 그 중에 我라는 것이 바로 나에 대한 관념이 아닙니까?


어떻게 나가 없다는 無我와 진정한 나가 있다는 我를 동시에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無我를 가르치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즈음에는
다시 '나'라는 관념을 열반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누린다니, '나'가 없다는 것과 '나'가 있다는 정반대의 말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겠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답을 직접 들어보자.
 네가 중요한 것을 물었다.
내가 이제 비유로써 너에게 일러 주리라.

어느 나라의 국왕 밑에 한 엉터리 의사가 있었는데 그 의사는 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느니라.

그 의사는 누가 아프다고 하면 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으므로 무조건 우유로 만든 약을 썼는니라.
 

그 의사가 병을 진찰한다고 해도 다른 수는 없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 의사는 아무 병에나 우유약을 쓰기 때문 이니라. 그 나라의 왕도 그 의사의 약쓰는 법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느니라.


그러던 중한 지혜로운 양의가 왕을 만날 기회가 있었느니라.
새의사는 모든 병에 우유로 돤 약을 똑 같이 쓰는 것은 옳지 않음을 설명하였느니라.

 

왕이 들어보니 새의사의 말이 옳은 것은 같았느니라.

왕은 먼저 의사를 파면 하고 새의사를 채용함과 동시에 전국에 엉터리의사를 파면하고
새의사를 채용함과 동시에
전국에 엉터리 의사가 조제한 우유로 된 약을 모두 폐기하도록 명령하였느니라.


새 의사는 그 후로  가지가지 좋은 약을 조제하여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느니라.

국왕의 병세를 진찰해 본 새의사는 이 병은 우유로 만든 약을 써야 된다고 국왕에게 말했느니라.


국왕은 어이가 없었느니라. 새의사 자신이 엉터리 의사의 조제법으로 만든 우유약은 잘못 되었으니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이제와 서 왕자신이 병이 들었는데 다시 우유로 만든 약을 써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느니라.


"네가 미쳤느냐,

정신이 빠졌느냐?

아니면 나를 속이거나 놀리는 것이냐?

 

그전에는 우유로 만든 약을 쓰면 안 된다고 하더니 우유로 만든 약이라야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이냐?

 

 "국왕이시여, 벌레가 나뭇잎을 파먹다가 글자의 형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벌레는 그 것이 글자인 줄을 모릅니다. 대왕이시여, 그전 의사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병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우유로 만든 약만 먹게하여 그 약이 듣는지, 아니 듣는지도 모릅니다. 벌레가 자신이 파놓은 글자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우유로 쓰는 약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독약도 되고 양약도 됩니다.

대왕의 병에는 이 우유로 만든 약이 필요합니다.

왕은 새 의사의 말대로 우유로 조제한 약을 먹고 병이 나았느니라.
 
비구들아
모든 엉터리 의원을 항복받고 중생을 조복하여 무아의 도리를 설하였느니라.

범부의 마음과 외도의 마음이 만드는 '나'는 벌레가 만드는 글자와 같아서 아무 의미가 없는 까닭 이니라. 나는 저 어진 의원이 우유가 해가 될 때와 약이 될 때를 알아서 우유를 쓰는 것과 같이

나라는 我가 해가 될 때와 이익이 될 때를 알아서 '나'를 설하는 것이니라.

 

범부와 외도는 '나'라고 하는 것을 손가락이나 겨자씨처럼 실체적인 것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無我라고 하느니라. 그러나 진정한 '나'가 없는 것은 아니니라. 만일 깨달음의 法으로서 진실로 상주하고 자재불변(自在不變)하여 있다면 이것은 나라고 이름할 것이니라.

 

 원산 2010.10.12. 12:15 http://cafe.daum.net/mooeam/Cak3/140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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