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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해석(釋)
금강이라는 것은 사물에 비유해서 말한 것인데, 굳센 것으로 그 자체를 삼고, 깨트릴 수 없는 힘으로 공용(功用)을 삼는 것이니 금강삼매(金剛三昧)라는 뜻도 이와 같아서 실제로 체(體)를 삼고, 뚫는 것으로 그 능(能)을 삼는다.
실제로, 체를 삼는다함은, 이치를 명증(明證)하고 근원을 궁구(窮究)하기 때문이니, 그렇기 때문에 이 뒤 본문에서 말하기를 진리를 명증하여 진실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뚫는 것으로 능(能)을 삼는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의혹(疑惑)을 파(破)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선정(禪定)을 꿰뚫는 것이다. 모든 의혹을 깨뜨린다 함은 실다운 교설을 가지고 의심을 끊기 때문이니, 본문에서 결정코 의혹과 뉘우침을 끊는다고 말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모든 선정을 뚫는다 함은, 이 금강의 선정이 모든 다른 삼매(三昧)로 하여금 쓰임새 있게 하기 위함이니, 마치 보배구슬을 뚫어서 유용하게 함과 같다.
또한 [대품경(大品經)](1)에서 말하기를 [무엇을 금강삼매라 하는가. 이 삼매에 머물면 능히 모든 삼매를 깨뜨린다] 했는데, 이것을 다시 논(論)에서 해석하기를 [금강삼매라는 것은 비유하면 금강석이 깨뜨릴 수 없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이 삼매도 이와 같이 모든 진리 가운데 통달하지 못할 것이 없어서 모든 삼매로 하여금 다 유용(有用)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여러 가지 보석은 오직 금강석만이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생각건대 경에서 모든 삼매를 파(破)한다고 했는데 그 파(破)란 말을 꿰뚫는다(穿)는 뜻이다. 그 논(論)에서 뚫고 들어간다 함은 경에서 깨뜨린다 하는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즉 모든 삼매가 모두 자성(自性)이 없음을 통달하여 저들 여러 가지 삼매로 하여금 능히 스스로의 집착에서 떠나게 할 수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걸림이 없이 자재(自在)함을 얻게 되는 것인데, [금강삼매]라는 제목의 해석은 이에 근거한 것이다.
B, 간별(簡別)
제목의 풀이는 위에서 끝났고 이제 간별(簡別. 다른 유사한 개념과의 차이를 분별하는 일)을 한다. 먼저 정(定)과 혜(慧)의 간별을 해본다.
問 : 금강반야(金剛般若)와 금강삼매(金剛三昧)는 모두 금강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答 : 전자는 지혜요, 후자는 선정(禪定)이니 이것이 차별이 된다. 또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인과에 통하는 것이고, 금강삼매(金剛三昧)는 그 지위가 수행의 결과로써 도달한 궁극적 경지에 있다. 또한 반야로써의 금강(金剛般若)은 세 가지 뜻을 갖추어 있는데 그 체(體)의 견고함, 그 용도의 이익, 그리고 형상의 관대함과 협소함이다. 이와는 달리 삼매로서의 금강(金剛三昧)은 다만 그 견고함과 이익됨만을 취한 것이므로 이것이 그 차별이다.
다음은 여타(餘他)의 선정과의 구별이 있는데, 여기에 세 가지 종류의 구별이 있으니, 첫째는 금강삼매요, 둘째는 금강륜삼매며, 셋째는 여금강삼매이다. [대품경(大品經)]에서 말하기를 금강륜삼매(金剛輪三昧)는 이 삼매에 머무를 때에 능히 모든 삼매의 부분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요, 여금강삼매는 이 삼매에 머무를 때에 모든 진리를 통달하되, 스스로 통달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을 저 논(論)에서 다시 문답의 형식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問 : 세 가지 삼매를 어째서 모두 다 금강이라고 말하는가?
答 : 처음에는 금강(金剛)이라고만 말했고, 중간에는 금강륜(金剛輪)이라고 말했으며, 뒤에는 여금강(如金剛)이라고 말했으니, 여금강삼매라 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능히 모든 진리를 꿰뚫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부처님 자신이 설하신 것이다.
이 뜻을 다시 논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여금강삼매라는 것은 능히 모든 번뇌의 엉킨 매듭을 끊어 버려 다시는 나머지가 없게 하는 것이 마치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손에 금강을 쥐고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부수는 것과 같으니, 이는 곧 학인(學人)의 공부해서 얻은 마음과 같으니, 이 마음을 좇아 점차로 세 가지 깨달음인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과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菩提)를 얻게 되는 것이다. 금강삼매라는 것은 능히 모든 상대적인 법(法)을 깨뜨려 나머지 없이 온전한 열반에 들어가, 다시는 번뇌를 수용(收容)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금강이 능히 모든 산(山)을 깨뜨려 남김없이 없애 버리는 것과 같다.
금강륜이라는 것은 능히 일체의 모든 불법(佛法)의 자기 집착을 파(破)하여 막힐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여기서 모든 불법(佛法)을 파(破)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윤보(輪寶)로 능히 모든 왕(王)들을 파하여 다 복종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강삼매는 앞서 말한 다른 두 가지 금강과 그 뜻이 구별된다.
차별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비유의 차별(喩別)이니, 이른바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는 군대를 파(破)한다는 비유를 사용했고, 금강삼매는 산(山)을 파한다는 비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법(法)의 차별이니 여금강(如金剛)은 번뇌를 파하고, 금강은 모든 다른 법(法)을 파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지위(地位)의 차별인데, 전자(즉 여금강)는 아직 배워 익히는 지위에 있고, 후자(즉 금강)는 배울 것이 없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이름의 차별인데, 전자의 이름은 여금강삼매니 다른 곳에서는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 이름하고 후자는 바로 금강삼매라 이름했으니, 여(如)라든가, 유(喩)라는 형용사를 삭제한 것이다. 그 까닭은 인과에 있어서 두 가지 선정(禪定)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인(因)에는 공용(功用) 즉 힘들여 닦아 나아갈 필요가 있지만 과(果)에는 공용(功用)이 필요치 않은 것인데, 덜고 덜어서(損之又損之) 하염없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한 여금강은 조금 비슷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니 다만 번뇌를 깨뜨렸을 뿐 나머지 법(法)을 파(破)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바로 금강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전히 같은 것을 바로 나타내는 것이니, 금강의 날카로움으로 모든 색상(色相)과 사물(事物)을 꿰뚫어 파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삼매의 쓰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의 상대적 법(法)을 파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교(敎)의 차별인데, 이른바 배울 것이 있는 지위에 머물러 있는 금강삼매는 [금강삼매 본성청정 부증불감경(金剛三昧, 本性淸淨, 不增不減經)] 가운데 설해진 것이다. 배울 것이 없는 지위에 있는 금강삼매는 바로 이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가운데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경 (즉 [금강삼매경]) 가운데 부처님께서 들어가신 바 (즉 성취하신 바) 선정(禪定)은 일체의 상대적 법(法)을 파하여 모두 얻을 바 없게 된 것이기 때문에 [금강삼매]라 이름한다. 여섯 가지의 해석 가운데 이것은 지업석(持業釋)(2)이요, 비유를 취(取)해서 이름한 것은 인근석(隣近釋)(3)이다. 그런데 사실 그대로에 즉하여 이름을 짓고, 이것으로 이 경의 제목을 삼는 것은 의주석(依主釋)(4)이니 선정을 위주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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