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⑸①-㉠ 육바라밀의 첫번째는 보시 바라밀이다
㉠ 육바라밀의 첫번째는 보시 바라밀이다
이는 태어날 태아의 앞날을 위해 복덕을 심고 가꾸어 큰 공덕을 지으라는 대목이다. 이 세상의 힘 가운데 제일 큰 힘이 바로 복의 힘이다. 흔히 불교를 '공수래 공수거' 라고 하는 잘못 인식으로 무조건 '공(空)'의 사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비록 빈 손으로 왔지만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태산 보다 더 크고 수미산 보다 더 큰 업보(業報)를 짊어지고 이 세상에 왔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일가친척, 아내, 자식, 재산, 명예, 그 모두를 다 두고 떠나지만 이승에서 지어둔 업만은 짊어지고 그 업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오는 생명도 전생에 어떠한 복을 얼마만큼 짓고 이 세상에 오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최후의 단계로써 새 생명을 위하여 어머니가 복덕을 심으라는 것이다.
불교를 잘못 알고 있는 일부에서는 불교를 기복 종교라고 핍박하는 경우가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장경 어느 구절에도 복을 빌라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음을 밝힌다. 다만 복을 지으라고 권할 뿐이다. 복을 짓는 일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복이란 사랑과 지혜와 자비의 결정이다.
복이란 우리네 중생들의 마음속에 깊숙히 숨어 있는 탐욕심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마음에 빛이 있으면 탐욕심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빛에서 지혜가 나오고 자비가 샘솟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빛이 없으면 어둠만 남게 되고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탐진치 삼독이 있게 마련이다. 마음에 빛이 쌓이도록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지혜롭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우바새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 때문이며 남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며 남도 보시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성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함이며 온갖 번뇌를 깨기 위함이며 진리를 얻기 위함이다.
나의 생존이 귀하면 타인의 생존 역시 귀한 것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법이다. 함께 살면서 더불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그 자체가 축복 받을 만한 일이다.
고통은 나누어 가지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누어 가지면 배가 된다는 이치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듯이 베풀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 이것을 보시의 기쁨이라 하는 것이다.
보시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재(財)보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法)보시이다.
재보시란 돈이나 재물로써 남을 도와 주는 것을 말하고, 법보시란 진리로써 남을 도와 주는 것을 말한다.
재보시에는 위로는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도 포함된다. 공양이란 마음속 믿음과 정성을 물질에 담아 부처님께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출가 수행자에게 하는 것 역시 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양의 종류에는 차, 꽃, 물, 과일, 떡, 밥, 옷, 약, 필수품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보시를 할 때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만약 보시를 하는 마음에 어떤 이익이나 명예, 다른 음흉한 계산의 곡절이 숨어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보시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보시하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만큼 보시하는 물건도 깨끗해야한다. 그 말은 스스로 땀 흘려 노력한 댓가로 마련한 물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훔친 것이거나 빌려온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보시를 받는 사람 역시 청정하여야 한다. 도둑이나 게으름뱅이나 사기꾼에게 베풀면 그들의 박복을 오히려 도와주는 것이 된다.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불꽃이 타 오르는 집으로부터 살림을 끌어내어 그 집에서 타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늙음과 죽음의 불에 타 오르나니 보시로써 끌어내라.
보시는 그들을 끌어내는 기구(器具)이다. 보시는 좋은 열매를 맺나니 보시를 않으면 좋은 열매가 없나니라.
도둑이나 왕자에게 빼앗기고 불에 타서 없어지는 재산과 함께 이 몸도 죽을 때는 버리고 마는구나 현명한 이여, 이것을 알아 재물을 수용하고 베풀지어다.
힘 따라 수용하고 베풀면 비난없이 천계(天界)에 가게 되나니 먹을 것을 주면 힘을 얻을 것이요 입을 것을 주면 고운 얼굴 받는다. 탈 것을 주면 안락을 받고 등불을 주면 맑은 눈을 받는다. 있을 곳을 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주는 것이다.
믿음과 청정한 마음으로 먹을 것을 보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어디서나 먹을 것을 풍족히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간탐을 조복 받아 번뇌를 이기고 보시를 하면 그 공덕은 모든 사람의 뒷 세상을 건너는 나루터가 되리라.
깨끗한 믿음으로 보시를 하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그가 이르는 곳마다 복의 과보는 그림자 같이 따르리 그러므로 간탐을 버리고 깨끗한 보시를 실행하라.
보시하면 기쁨이 넘쳐나고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나 복을 받으리.
이렇게 경전에서는 부처님께서 박복한 사람들에게 복을 지어 잘 살도록 고구정녕 말씀하셨다.
[월등삼매경]에 보시를 하면 열 가지 인과가 있음을 명시하였다.
첫째, 인색하고 탐욕스런 번뇌를 항복 받는다.
둘째, 버리는 마음(捨心)을 익혀서 이어간다.
셋째, 모든 중생과 그 재산을 다같이 구하여 견고히 함이다.
넷째, 부잣집에 태어난다.
다섯째, 보시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여섯째, 수행자들에게 애호를 받는다.
일곱째, 어디를 가나 두려움이 없다.
여덟째, 훌륭한 이름이 곳곳에 퍼진다.
아홉째, 손발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열번째, 언제나 선지식과 떨어지지 않아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다음으로 법시(法施)를 생각하여야 한다.
법시란 진리를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흑자는 나 자신도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남에게 베풀수 있을까 하고 마음이 움츠려 들 수도 있다.
법시란, 부처님의 말씀을 스스로 체득한 바대로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체득함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단 한 구절 만이라도 인연이 있는 소중한 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러한 것이다.
만약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싶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마음으로라도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법시라 한다.
법시란 참된 진리를 나 혼자 가질 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인연있는 소중한 이와 함께 나누자는데 큰 뜻이 있다.
진리를 모르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작은 양초를 밝혀라.
천 마디 공허한 말보다 평화를 주는 한 마디 말이 더 소중하다.
공허한 천 편의 시 보다 평화를 주는 한 편의 시가 낫다.
백 개의 공허한 문구 보다 평화를 주는 하나의 법문이 더 낫다.
전쟁에서 천 번 이기는 것 보다 그대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 더 귀하다.
그럴 때 승리는 그대의 것이다.
천사도 악마도
천국도 지옥도
그대의 승리를 빼앗아가지 못한다
백 년 동안 숭배하기 보다 상을 받기 위해 천 개 세속의 길을 버리기 보다 백 년 동안 숲 속의 신성한 불꽃을 돌보기 보다 자신을 정복한 사람에게 바치는 한 순간의 존경이 훨씬 낫다.
덕과 성스러움을 오래 쌓은 이 그런 이를 존경하는 것은 삶 자체를 이기는 것 아름다움, 강함, 행복을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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