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 (見性)
법화경에 탕아의 비유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장자의 집에서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수년이 지난후 어떤 거지가 밥을 얻으러 장자의 집에 들렸는데 장자는 한 눈에 잃어버렸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방 너는 내아들이라하면 놀라 도망갈 것을 염려하여 집안의 허드렛일부터 시키며 차차 거지의 때를 벗게하였습니다.
탕아는 영리하여 장자 집안의 일을 다 배우고 나중에 집사일을 맞아보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장자는 나이가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비밀을 선언합니다. 이 집사는 나의 잃어버렸던 아들이었노라 라고.
순간 집사는 깨닫습니다. 자신의 출신은 천민이 아니라 부귀장자의 출신이며 장자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이 말씀을 마치시고 부처님은 선언하십니다. "나의 3승12분교의 가르침은 오직 1불승을 설하기 위함이었느니라." 일불승이란 중생 스스로 가장 위대한 붓다임을 깨달은 자입니다.
깨달음은 이처럼 잊어버렸던 진실을 아는 것입니다. 중생은 날때부터 원래 부처입니다. 자기가 부처인줄 알면 부처이나 모르면 중생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놔두고 따로 부처를 찾음은 자기 머리를 두고 다른 데서 머리를 찾는 것과 같고, 부모를 안방에 두고 다른 데서 부모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은 스승을 통하여 스스로 위대한 붓다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한번 깨달으면 다시 부처가 되기 위하여 닦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습성을 부처의 행으로 바꾸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이것을 깨달음후 보림(保任)수행이라합니다.
일단 깨닫고 수행하는 것이니 깨달은 사람은 중생의 습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아가면서 차차 중생의 행동을 부처의 행동으로 익혀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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