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牛) - ‘가축’ 이상의 의미 담겨
몇개월 전 소(牛)에 관한 문제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들썩했다. 그만큼 소라는 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는 반증일게다. 우리나라에서 소는 가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에 보면 “유군사시역제천살우관제이점길흉제해자위흉합자위길(有軍事時亦祭天殺牛觀蹄以占吉凶蹄解者爲凶合者爲吉)”이라 하여 전쟁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발굽의 상태로 길흉을 점쳤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소는 단순히 농경을 돕고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가축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버리는 행위를 일컬어 ‘희생(犧牲)’이라 하는데 이 또한 본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물에서 유래한 말로 모두 소를 지칭하는 말이다. 특히 제물로 쓰이는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고려 대에서는 ‘장생서(掌牲署)’, 조선시대에는 ‘전생서(典牲暑)’라 하여 별도로 전담하는 관청을 두었고, 특히 설농탕의 유래가 된 선농단(先農檀)의 제사시에도 반드시 소를 썼으며 오늘날 가정에서 지내는 각종 제사에도 ‘쇠고기 적’을 쓰고 있는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의로운 충절’ 상징
또한 <후한서> 양서전에 보면 계륵의 고사로 유명한 양서가 자신의 뛰어난 재주로 인해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양서의 아비인 ‘양표’가 부모와 자식지간의 지극한 정을 표현한 ‘지독지애(犢之愛)’란 말이 있는데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이니 소가 지닌 지극한 모성을 상징하고 있는 예이다.
아울러 소는 충절의 상징으로도 여겼는데 주인을 위해 호랑이와 싸우다 죽은 의로운 소를 기린 삼강행실도의 ‘의우도(義牛圖)’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렇듯 신성성과 친근성을 두루 갖춘 소를 함부로 잡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신라 법흥왕과 성덕왕, 백제 법왕 때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하령금살생(下令禁殺生)’했다는 기록이 있고,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보면 “극히 일부의 상류층에서만 고기를 먹고 일반 백성은 불교를 좋아하여 살생을 하지 않으므로 도살하는 방법도 서툴다”라고 적고 있다.
깨달음 과정 표현하기도
불교와 소의 관계 또한 밀접하기 그지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태자 때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인데 성(姓)에 해당하는 ‘고타마’의 뜻은 ‘가장 좋은 소’, ‘거룩한 소’란 의미로 부처님 당시 농경(農耕) 중심의 가치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선가(禪家)에서 깨달음의 과정을 소를 찾는 과정으로 상징화한 ‘심우도(尋牛圖)’가 있는데 자신의 본성을 찾는 첫 단계인 ‘심우(尋牛)’에서부터 본성의 자취인 발자국을 발견한 ‘견적(見跡), 본성을 발견한 ’견우(見牛)‘, 본성을 깨달은 ’득우(得牛)‘,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조복시키는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다시 중생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에 이르기까지 소를 통해 해탈열반의 경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묵호자 아도화상이 신라 땅에 이르러 모례네 집에서 머물며 전법하였는데 5년동안 낮에는 소와 양을 치고 밤에는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김천 도리사 인근에 ‘양천골’, ‘우천골’이란 지명이 오늘에도 전해지고 있으니 아도가 기른 것이 비단 소와 양 뿐이겠는가?
하늘과 통하고 충절을 의미하며 나아가 깨달음의 상징이기도 한 소가 미쳐가는 오늘날 소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엄중히 되돌아 볼 일이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교신문 2434호/ 6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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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명스님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선사의
심우도(尋牛圖) 비교설명
심우도(尋牛圖)
깨달음의 과정 단계별 묘사
목동이 소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
발심-수행-보리심 성취-열반의 경지-중생제도
증일아함경 등 수행인을 ‘목우’에 비유해 설명
宋代 보명 심우도, 곽암의 십우도송(頌)이 원류
심우도(尋牛圖)는 인간 본성 회복을 목동이 소를 찾아 길들이는 것에 비유해 그린 선화(禪畵)의 일종으로, 흔히 법당 외벽 장식 벽화로 그려진다.
달마도와 더불어 순수 감상용 그림으로도 인기가 높은 심우도에는 언어와 어떤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 밖의 의미를 되새겨,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과 원리로 삼는 선(禪)의 종지(宗旨)가 담겨 있다.
그림에는 목동이 소를 찾는 심우(尋牛)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점수(漸修)의 과정을 거쳐 서서히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 단계별로 묘사돼 있다.
심우도에 등장하는 소는 선(禪) 수행의 상징으로, 그것은 법성 진여로 묘사되는 ‘마음의 소(心牛)’를 표상하고 있다.
이처럼 소는 마음이고, 마음은 소이기에 마음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소를 길들이는 것을 마음 찾는 수행에 비유한 예를 경전 여기저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유교경(遺敎經)〉에서는
소의 야성적인 면을 들면서 계(戒)로서 소의 오근(五根)을 제어하여 오욕에 들지 않도록 하는 공부를 소와 목동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고,
〈증일아함경(證一阿含經)〉에서는
소 치는 사람이 항하를 건너는 것을 수행자가 생사의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고 있으며, 또한 소 치는 목동의 열한 가지 법(十一法)이라 하여 소를 다루는 일이 수행자에게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증일아함경〉의 십일법의 비유를 빌어 수행인을 목우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음을 본다.
상징으로서의 소와 목동의 기원은 불교뿐만 아니라 노장(老莊)의 행적이나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자(老子)가 주나라 강왕(康王) 때 난세(亂世)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뜻을 펴려고 했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함곡관(函谷關)을 거쳐 서역으로 떠나갈 때 푸른 소(靑牛)를 타고 유유히 종적을 감추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노자는 일찍이 이상적인 사회를 말할 때 때 묻지 않은 어린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어린이는 현세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없는데,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다면 사회는 한층 밝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장자(莊子)는 인간은 모름지기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무심히 눈을 뜨고 있을 뿐 아무 것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상태야말로 진정으로 바람직한 인간의 자세라고 장자는 말한 것이다. 소와 목동에 대한 비유와 목우사상이 소가 마음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인식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심우도의 원류는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곽암(廓庵)의 〈십우도송(十牛圖頌)〉에서 찾아진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두 가지 유형이 함께 그려졌으나, 근래에 와서는 대체로 곽암의 것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기록에 근거한 중국 최초의 목우도는 청거선사의 12장면(현재 2장면만 남아 있음) 목우도이다. 청거선사의 목우도 이후에 만들어진 보명의 목우도는 전체 10장면의 그림과 송(頌)이 모두 남아 있다. 곽암의 십우도는 청거선사의 목우송에 근거해 12장면을 10장면으로 줄여 십우도에 맞는 송을 붙인 것이다.
보명의 〈목우도송〉내용은
①미목(未牧) ②초조(初調) ③수제(受制) ④회수(廻首) ⑤순복(馴伏) ⑥무애(無碍) ⑦임운(任運) ⑧상망(相忘) ⑨독조(獨照) ⑩쌍민(雙泯)등 10가지 변화로 성불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보명의 소에 대한 관념은 원래 청정무구한 흰 소가 검은 소가 되어 있지만 정진하기에 따라 첨차로 흰색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자력 수행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곽암 〈십우도송〉의 내용은
①심우(尋牛) ②견적(見跡) ③견우(見牛) ④득우(得牛) ⑤목우(牧牛) ⑥기우귀가(騎牛歸家) ⑦망우존인(忘牛存人) ⑧인우구망(人牛俱忘) ⑨반본환원(返本還源) ⑩입전수수(入廛垂手)의 10가지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곽암의 소는 조금씩 희어져야 하는 소가 아니라 원래 희다는 것이 자각되어야 하는 소이다. 그러므로 고삐와 회초리가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소에게 목동 자신을 맡겨도 ‘마음의 소’는 그 고향에까지 갈 수 있게 된다.
수행적인 측면이 강하여 종교적인 색채가 농후한 보명의 목우도와 달리 곽암의 십우도는 예술적 경향을 띄고 있다. 곽암 십우도의 예술적 경향은 사찰 밖의 일반인들이 심우도를 감상용으로 애호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십우도는 10장면 모두 병풍 그림으로 그려지거나 독립된 우도(牛圖) 형식으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특히 여섯 번째 장면인 ‘기우귀가’는 ‘목동기우귀가’, 또는 ‘목동기우취적도’라는 이름의 감상용 그림으로 그려져 널리 애호되었다.
곽암의 십우도는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에 비유되는 소를 찾기 위해서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는 장면으로부터 소 길들이기, 집에 돌아오는 장면, 원상(圓相), 적막한 산수풍경, 속세로 나가는 장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면의 상황과 상징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① ‘심우(尋牛)’는 동자가 소를 찾기 위해 고삐를 들고
산 속을 헤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처음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② ‘견적(見跡)’은 동자가 소 발자국을 찾은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서,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상징화 한 것이다.
③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는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한다.
④.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막 붙잡아서 고삐를 끼고 끌고 가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땅 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금강석을 찾아낸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때의 소는 검은 색을 띤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아직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⑤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자연스럽게 놓아두더라도 저절로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끔 길들이는 장면이다.
삼독(三毒)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에서는 이 목우의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상황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차츰 검은 색이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의 소는 전체가 완전한 흰색을 띄고 있다.
이것은 소가 동자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깊은 마음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본성의 소리를 의미한다.
⑦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데없고 자기만 남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소는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됐으니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彼岸)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敎宗)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은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텅빈 원상(圓相)만을 그리고 있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관과 객관의 혼융 상태를 상징화 한 것으로서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간주된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의 구별이 없는 경지에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를 상징화한 것이다.
⑩ ‘입전수수(入廛垂手)’는 동자가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의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내용을 요약해서 다시 정리하면,
‘심우’는 발보리심(發菩提心),
‘견적’에서부터 ‘기우귀가’까지는 수행,
‘망우존인’과 ‘인우구망’은 보리심의 성취,
‘반본환원’은 열반의 경지 진입,
‘입전수수’는 득의(得意)후에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를 나타낸 것이다.
심우도는 목동의 목우(牧牛)를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추구하는 선종의 교의(敎義)에 부합시킨 종교화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심우도는 불교회화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동양 회화의 정신적 근간이 되는 도(道)와 인간의 근원적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선승들뿐만 아니라 산문(山門) 밖 시정(市井)의 선비, 시인 묵객들이 즐겨 심우도송을 짓거나 심우도를 그려 감상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