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수행
1. 중생의 마음
1) 개미나 곤충도 중생입니까? 그렇습니다. 개미뿐만 아니라 사람, 개, 잠자리,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도 중생입니다. 중생이란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영이 있는 존재, 즉 생명체 중에서 식물을 제외한 존재를 말합니다.
2) 저 개미 등과 사람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중생의 마음은 생각이 없는 상태, 즉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와, 생각이 있는 상태 즉 의식이 작용하는 상태, 이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이때 전자는 무기라 하고 후자는 번뇌라 합니다. 이 무기와 번뇌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일과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무기에 빠지고, 무기에 빠지지 않으면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 개미, 세균 등의 중생들이 이 무기와 번뇌로 일상사를 영위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3) 무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깊은 잠을 자거나, 졸음이 오거나, 깨어 있을 때에도 생각이 없는 상태, 그리고 정신이 또렷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상태 등이 모두 무기입니다. 또한 번뇌와 번뇌 사이, 즉 생각과 생각 사이에도 순간적으로 무기에 빠지지만 중생 자신은 감지할 수 없습니다. 번뇌는 중생의 의식작용이므로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무기는 중생들이 인식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기는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기에 빠져 있을 때는 스스로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는 단지 그 상태가 끝나고 번뇌가 일어남을 보고서야 무기에 빠졌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 잘 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잠을 깬 후의 생각을 통해서 자신이 잠을 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생의 대칭되는 두 가지 속성 중에서 의식작용이 아닌 무기는 잘 모르고 의식작용인 번뇌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의 반쪽만 이해하여 번뇌만 없애는 수행을 하게 되면 번뇌가 없어지는 만큼 무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을 통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4) 정신이 멍한 무기가 많으면 어떻게 됩니까? 중생에게 멍한 무기가 많아지면 지혜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멍한 무기가 많은 중생은 바보가 되거나 무기가 많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5) 번뇌는 나쁜 생각을 말합니까? 보통 번뇌라 하면 필요없는 생각과 나쁜 생각을 말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뇌라는 것은 나쁜 생각이든 좋은 생각이든 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즉 좋거나, 나쁘거나 중생에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은 번뇌입니다.
6) '나'는 누구입니까? 중생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가아, 곧 가짜 나입니다. 모든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진아(眞我), 즉 참나가 존재하지만 진아는 중생심인 무기와 번뇌 때문에 드러나지도 못하고 자신의 주체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중생은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아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일상사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가아를 '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7) 중생은 왜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합니까? 중생심인 무기와 번뇌 때문입니다. 무기는 진아를 망각하게 하고 번뇌는 진아를 가려서 어둡게 하므로 진아가 드러나지도 못하고 주체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무기와 번뇌의 생, 주, 이, 멸을 주도하는 가아가 주체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중생은 가아가 주체가 되어 무기와 번뇌를 교대시키는 삶을 살기 때문에 업이 있게 되어 육도(=천상, 인간, 수라, 지옥, 아귀, 축생)를 윤회하는 중생고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수행을 통하여 진아가 드러나 그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부처가 되어 중생고를 벗어난 영원한 대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49년간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8) 무기와 번뇌는 서로 어떤 관계입니까? 무기와 번뇌는 교류전기의 음극()과 양극(+)이 교대하듯이 서로 교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즉 무기에 빠졌다가 번뇌가 일어나고 다시 무기에 빠진 후 번뇌가 일어납니다. 중생의 마음은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중생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번뇌와 번뇌 사이에는 순간적이라도 반드시 무기에 빠짐을 알아야 합니다.
9) 그러면 무기와 번뇌가 아닌 때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중생의 일상사는 무기와 번뇌의 끊임없는 교대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의 하루인 24시간에서 무기와 번뇌가 차지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24시간입니다. 즉 모든 중생에게 하루 동안의 무기와 번뇌의 합의 절대치는 24시간으로 똑같습니다.
10) 중생심에 대한 이런 분류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중생심이 무기와 번뇌라는 말은 불교를 푸는 열쇠입니다. 이는 불교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접근법입니다. 중생의 속성이 무기와 번뇌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면 수행의 시작부터 성불까지의 불교수행의 방법과 그 목표지점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부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전체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부처가 되는 올바른 수행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2.수행의 방법 11) 부처님과 중생은 어떻게 다르며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중생은 참나인 진아를 망각하게 하는 무기와 진아를 가려 어둡게 하는 번뇌라는 속성 때문에 참나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짜나인 가아가 주체역할을 하게 되어 중생고를 받게 되는 존재입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우리와 꼭 같은 중생이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아가 드러나 그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게 되는 수행을 통해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도 부처님께서 하신 것과 꼭 같은 수행을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12)어떻게 하면 진아가 주체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기와 번뇌라는 중생의 속성 때문입니다. 무기는 진아를 망각하게 하고 번뇌는 진아를 가려서 어둡게 합니다. 따라서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근원인 중생의 속성을 진아가 드러나게 하는 속성으로 바뀌도록 하는 수행을 하게 되면 드디어는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如來가 됩니다.
13)수행은 어떻게 합니까? 중생은 무기와 번뇌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 두 가지 속성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수행의 방편(=명제 또는 과제)을 한 가지 선택해서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무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신차려지는 방법에 수행방편을 결부시켜서 수행방편이 망각되지 않게 하는 노력을 합니다. 이를 관법이라 합니다. 번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수행방편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수행방편만 생각하는 노력을 합니다. 이를 염법이라 합니다. 수행은 관법과 염법의 두 가지 노력을 함께하는것입니다.
14) 관법(觀法)과 염법(念法) 두 가지를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까?(무기에 대한 대처와 번뇌에 대한 대처는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가?) 중생의 속성이 무기와 번뇌이기 때문에 무기에 대한 대처와 번뇌에 대한 대처를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만약 번뇌만 없애는 수행을 하게 되면 번뇌가 감소하는 만큼 무기가 증가하여 무기와 번뇌의 합의 절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게 되므로 이러한 수행을 통하여 如來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15) 관법(觀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무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수행방편을 항상 정신이 차려지는 상태인 관(觀)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단순히 정신을 차리려고 굳게 마음먹는 것을 무기에 대처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정신이 차려지는 것이나 정신이 멍한 것이나 생각이 없는 것은 모두 무기인데, 이는 단지 각성도, 즉 정신이 차려진 정도의 차이에 따른 무기의 다른 형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수행의 방편을 반드시 육근(六根) 중에서 의근(意根)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에 대처하기 위해 수행방편을 생각하게 되면 수행방편이라는 경계가 의근을 통해 의식에 들어오게 됩니다. 즉 수행방편을 염(念)한다는 것은 의근을 통하여 의식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기는 육근 중 들어오는 근(根)이 없습니다.
무기의 이러한 성질에 대응하여 부처님께서는 무기의 각성도(覺醒度)를 최고조(最高潮)로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인간의 몸에서 발굴하셨습니다. 그리고(삭제) 이러한 세 가지 방법과 수행방편을 시의적절히 결부시켜 그 결부된 것이 수행방편을 망각하지 않는〔수행방편을 불망不忘하는〕 경계가 되어 의근으로 들어오게 되면 드디어 그 경계가 의근에서 삼매(三昧)의 한 가지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무기의 각성도를 최고조로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결인관(結印觀), 호흡관(呼吸觀), 그리고 설관(舌觀) 의 세 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관을 시의적절히 결부시켜 그것이 수행방편을 망각하지 않는 경계가 되어 의근으로 들어오게 하고 수행방편을 생각하던〔염(念)하던〕 것은 의식 이전 단계인 의근에서 수행방편이 어둡지 않는〔불매不昧〕 경계의 형태로 유지하게 하면,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는 의근에서 동일한 주기(週期:cycle)로 교대하는 상태인 삼매를 이끌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16) 결인관이란 무엇입니까? 법당에 안치된 불상의 손모양 중에는 엄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살짝 붙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결인이라고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무념(진여삼매)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있어 결인관은 두 손가락이 떨어지거나 결인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를 씀으로써 정신이 차려지게 하여, 즉 무기의 각성도를 높여 수행방편과 결부시켜서 의근으로 들어오게 하여 수행방편을 망각치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인관을 함으로써 즉 두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정신차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때에 정신차림이 없어지면 두 손가락은 떨어지거나, 또는 정신차림과는 상관없이 두 손가락이 떨어지지만 않게 하려고 하면 두 손가락끝이 서로 붙어 위로 밀려 올라가게 됩니다.
17) 무기에 대처하기 위한 호흡관은 어떤 것입니까? 정신을 차려 무기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결인관과 더불어 호흡관과 설관(혀붙이기)이 있습니다. 호흡은 자연호흡이나 단전호흡이 아니라 정신이 차려지게 하는 호흡법(수행자의 호흡)인데, 이 호흡은 인식이 가능한 호흡이기 때문에 항상 정신을 차리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즉 무기의 각성도를 고조시켜 수행방편과 결부시켜 결부시킨 그것을 의근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18) 부처님께서도 정신차리게 하는 호흡을 하셨습니까? 불상의 부처님 머리 부분을 보면 정수리 부분이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호흡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겨드랑이 아래가 불룩 솟아 있다고(이를 ‘양액하융만상’이라고 함) 되어 있고 어깨도 원만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갖추신 이와 같은 모습도 호흡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정수리 부분이나 겨드랑이 아랫부분이나 어깨부분의 모양과 같이 부처님은 중생과 다른 32가지의 수승한 모습을 갖추시고 있습니다. 이를 32상이라고 하는데 모두 수행과정에서 생기게 되며 그 중에 호흡을 통해서 3분의 1가량이 생깁니다.
19) 설관(혀붙이기)은 어떻게 합니까? 설관(舌觀)은 혀끝을 위로 약간 뒤집어 말아 붙여서 그 뒤집어진 혀끝으로 입천장을 밀어올려 윗니와 아랫니가 약 1-3mm 정도 떨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그 뒤집어진 혀끝에 정신차림이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정신이 차려지지 않게 될 경우에는 중력으로 인하여 혀가 입천장에서 떨어지거나 윗니와 아랫니가 붙어버리게 됩니다.
20) 무기에 대처하기 위한 관법(觀法)은 왜 세 가지를 사용해야 합니까? 세 가지 모두를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다양한 상황에서 수행을 하게 됩니다. 수행자는 일상생활의 어떤 상황에서건 정신차리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신차리는 방법을 작동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세 가지 방법 중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뛰거나 등산을 할 경우엔 호흡으로 수행의 리듬을 맞추기 어렵고,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에는 혀붙이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3가지 방법을 항상 대비하고 있다가 가장 알맞은 방법이 상황에 따라 저절로 작동되도록 하여 정신을 차리는 상태가 항상 지속되도록 해야합니다.
21) 번뇌에 대처하는 염법(念法)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번뇌에 대처하는 방법은 잡다한 생각이 일어나는 상태를 한 가지 수행주제만 생각하여 다른 생각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번뇌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명호나 진언들 중의 하나를 수행방편으로 선택하여 그 한 가지 수행방편만을 계속 반복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다른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런 예로 염불이나 주력이 있음)과 둘째, 화두를 의심하는 의심법이 있습니다.
22) 번뇌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은 용도가 다릅니까?(번뇌에 대처하는 수행 두 가지는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되나요?) 한 가지 수행방편만 계속 반복 생각하는 방법과 의심법은 용도가 다릅니다. 두 가지 방법은 수행단계에 따라 달리 사용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수행의 단계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 등으로 나누셨습니다. 한 가지 수행방편만 계속 반복 생각하는 방법은 두 번째의 사다함에 이를 때까지 사용해야 하며 추번뇌(거친번뇌) 평정용입니다. 의심법인 화두수행은 사다함에 이른 이후에 세번뇌를 평정할 때 사용해야 합니다.
23) 무기와 번뇌에 동시에 대처하는 수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무기와 번뇌에 동시에 대처하는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방법의 원형을 되찾는 것으로서 바른 수행법을 판단하는 척도입니다.
24) 관법과 염법을 함께하는 수행법과 염불선은 어떻게 다릅니까? 염불선은 자력수행, 즉 자기의 힘으로 성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타력 즉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도움으로 성불하려고 하는 수행법입니다. 염불선을 하면서 정신차리는 방법과 염불을 동시에 하게 되면 자력수행의 길로 가게 되고 다만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만 부르게 되면 부처님이나 보살의 도움으로 성불의 길로 가는 수행이 됩니다. 후자를 정토법문이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이러한 법문을 하시게 된 것은 초보자가 처음부터 자력수행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타력문으로 들어와 자력문으로 가도록 방편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25) 남방불교의 수행법과 북방불교의 수행법은 어떻게 다릅니까? 중생심은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와 잡다한 번뇌가 일어나는 상태의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자신이 무기에 빠진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차려지도록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수준에 따라 법문을 달리하셨는데 수행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는 주로 정신차리게 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셨습니다. 정신차리게 하는 방법은 수행의 기초이고 이것만 잘 하여도 삼악도(즉 지옥, 아귀, 축생)에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행이 계승된 것이 남방불교입니다.
26) 삼매란 무엇입니까? 항상 정신을 차리는 상태에서 한 가지 수행주제만 생각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드디어는 수행방편이 망각되지 않는 상태와 수행방편이 저절로 생각되어지는 상태의 두 가지가 교대하게 됩니다. 이를 수행방편의 삼매라고 합니다. 이를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삼매는 수행방편이 망각되지 않는 상태(수행방편의 불망不忘)와 불망으로 인하여 수행방편이 드러남이 어둡지 않은 상태(수행방편의 불매不昧)가 의근(意根)에서 경계의 형태로 같은 주기로 교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27) 수행에서의 삼매와 독서삼매는 비슷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독서삼매는 한 가지 번뇌가 아니라 책 한권에 있는 수많은 번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머릿속을 지나가는 수많은 번뇌와 번뇌 사이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기에 빠집니다. 독서삼매는 책 속의 많은 번뇌에 집중하여 몰입하는 것이므로 수행의 삼매와는 다릅니다. 수행의 삼매는 수행을 하지 않는 중생은 평생 동안 한 번도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8) 일을 하거나 잠을 잘 때도 삼매에 들 수 있습니까?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아 속도를 내면 운동관성이 생겨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저절로 가게 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을 열심히 해서 삼매에 들게 되면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태, 즉 말을 하거나 다른 일에 집중하거나 잠을 잘 때에도 삼매의 관성이 있어 수행이 단절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삼매의 관성상태를 보통 지혜 혜(慧)로 번역했는데, 이는 상당히 거리가 먼 번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29) 삼매를 닦는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삼매와 삼매관성이 이어지는 시간만큼 중생의 속성인 무기와 번뇌의 절대치는 줄어들게 됩니다. 삼매를 닦는 수행을 계속하여 무기와 번뇌가 삼매와 삼매관성으로 모두 바뀌게 되면 수행방편에 의하여 망각되고 수행방편에 의하여 가려졌던 진아가 극적인 계기에 경계의 자극을 받아 등장하게 됩니다.
3.수행의 자세 및 상기의 극복 30) 참선 수행은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수행은 삼매에 들 수 있기만 하면 걸어다니거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세에서든 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아무리 잘 앉아 있어도 삼매에 들지 못하면 수행이 아닙니다.
31) 처음엔 어떤 자세로 수행해야 합니까?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에서 수행하던 기록이 경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행자들이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면 기원정사 주위를 걸어다니는 경행을 했고 경행을 하다가 피로하면 좌선을 하는 등 좌선과 경행을 겸해서 수행했으며 처음부터 장시간 좌선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수행자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32)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상기는 어떻게 해소합니까? 학교공부를 오래 해서 피곤하고 머리가 아플 때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면 피로가 풀어집니다. 이는 이성적인 노력으로 인한 피로를 감성활동으로써 중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수행도 열심히 하면 피로해지고 심해지면 매우 고통스러운 상기가 오게 됩니다.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상기의 원인은 이성적인 노력으로 인한 과부하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자신이 공부하는 수행방편으로 선율(melody)을 타서 그 소리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선율을 잘 타서 자신이 낸 소리를 경청하게 되면 감동이 일어나 전율이 생겨 대뇌에서 몰핀이 분비되어 수행으로 인한 피로나 상기를 순간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이와 같이 자신의 수행방편을 선율을 타서 피로와 상기를 미리 예방해서 수행을 단절없이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4.수행의 단계 33) 수행에도 단계가 있습니까? 수행의 나아감에 따라, 즉 삼매의 질의 변화에 따라 수행단계를 구분합니다. 불교의 핵심경전인 금강경에는 수행자가 거치는 수행단계를 돈오할 때까지는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로 나누고 돈오 이후에는 유여열반의 아라한과 무여열반의 아라한으로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34) 수행단계를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학교공부를 할 때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과목과 배우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도 수행단계에 따라 수행방법이 달라집니다. 유치원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대학수준으로 될 수 없고 반대로 유치원생에게 대학공부를 시키면 공부에 흥미를 잃고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수행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수행을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35) 수행방편을 의심하는 수행(화두수행)은 어느 때 하는 것입니까? 수행자가 두 번째 수행단계인 사다함(자나깨나 공부가 한결같은 숙면일여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추번뇌는 평정이 되지만 세번뇌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이 세번뇌는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반복하는 수행법을 통한 삼매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는 화두를 의심하는 의심법으로 삼매를 더 고밀도화시켜 세번뇌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즉 화두수행은 사다함과에 이른 이후에 세번뇌를 평정할 때 사용해야 합니다.
36) 돈오(견성)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무기와 번뇌가 수행방편의 삼매와 삼매관성으로 모두 바뀌게 되면 수행방편에 의하여 망각되고 수행방편에 의하여 가려졌던 진아가 극적인 계기에 의해 등장합니다. 이때 진아는 해가 떠오르듯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확 드러나므로 돈오(문득 드러난다는 뜻)라고 말하며 가아가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견성(가아가 성품을 보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37) 견성하면 수행의 끝입니까?(=견성한 이후에도 해야 할 공부가 있습니까?) 법화경에는 대통지승불께서 돈오견성한 다음에도 불법이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10겁을 도량에 앉아 기다리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견성 후에도 해야 할 공부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돈오한 이후에도 사상이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상은 중생에게 있는 원초적 번뇌(근본무명)라고 할 수 있으며. 사상을 완전히 극복해야만 영원한 대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금강경의 주내용은 사상 극복에 관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49년동안 법문을 하셨는데 그 실체는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을 통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진아(眞我)를 드러나게 하여 그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득(得)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心者)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진아가 드러나 그것이 주체역할을 하는 如來가 되려면 중생심인 중생의 속성을 如來의 속성으로 바꾸는 수행을 해야하고 그러한 수행을 하려면 수행방편을 한가지 선정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는 노력 때문에 다른 경계가 들어오는 것이 차단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1.수행의 방향 1)진아(眞我)가 드러나도록 하여 그 진아가 법신(法身)이 되도록 하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2)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3)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2.수행의 방법
1)중생심인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
2)관(觀)과 염(念)을 함께하는 수행이어야 한다. 3)관법(觀法) : ①결인관(結印觀) ②호흡관(呼吸觀) ③혀붙이기 관(舌觀) 4)염법(念法) : ①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 ②의심법(疑心法)
3.수행의 단계
1)수다원과
2)사다함과 3)아나함과 4)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 5)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
1. 수행의 방향
1) 진아(眞我)가 드러나도록하여 그 진아가 법신(法身)이 되도록 하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중생은 진아를 망각하게하는 무기(無記)와 진아를 가려 어둡게 하는 번뇌(煩惱)라는 속성(屬性) 때문에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속성의 본질(本質)인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다.
중생의 속성 중 무기라는 것은 의식(意識)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무기는 의식(意識)이 작용하지 않는 중생심이기 때문에 중생은 무기가 진행중일 때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무기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러한 상태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무기의 경계는 각성도(覺醒度)를 말하고 이는 뇌간의 망상체에서 생, 주, 이, 멸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중생은 인식할 수 없다.
번뇌라는 것은 중생에게서 일어나는 생각을 말한다. 즉 번뇌는 중생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경계를 접하게 될 때에 그 경계가 그것을 받아 들이는 근(根)을 통하여 의식(意識)에 들어오면, 그 경계는 번뇌로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번뇌는 인식할 수 있는 중생심이다.
중생과 같이 가아가 주체역할을 하게 되면 가아가 주도하는 번뇌와 무기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되고 그 법은 업(業)을 있게 하며 그 업은 과(果)를 받게 한다. 따라서 중생은 영원히 중생고(衆生苦)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에 부처님의 중생제도를 위한 법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로 하여금 중생고를 벗어 나도록 하기 위하여 진아가 드러나게 하는 수행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금강경(金剛經)에서 그 드러난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법신(法身)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중생심인 중생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중생은 무기와 번뇌라는 속성 때문에 중생고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중생이 부처님과 같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려면 중생자신을 중생으로 묶어놓게 하는 원인 요소인 자신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해야 한다. 즉 중생은 진아를 망각<忘>하게 하고 진아를 가려 어둡게<昧>하는데 이러한 속성을 진아를 불망(不忘)하게 하고 진아를 불매(不昧)하게 하는 속성으로 바꾸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생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방법은 수행의 방편을 한가지 선택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그 수행방편이 망각되어지지 않고<不忘> 수행방편이 어둡지 않게 되는<不昧> 단계에 이르러 돈오견성(頓悟見性)하게 된다. 돈오견성하게 되면,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는 진아인 성품(性品)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돈오견성이라는 것은 문득 깨치면서 자신의 성품(性品)을 보게 된다는 말이고 성품을 보게 된다는 말은 자신의 진아인 성품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돈오견성으로 인하여 자신의 진아가 드러나면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는 진아가 망각되지 않는 불망(不忘)과 진아가 어둡지 않는 불매(不昧)라는 진아의 속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과 같이 중생의 속성이 진아의 속성으로 바뀌는 수행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속성을 바꾸는 수행이라는 것은 그 속성의 주체를 바꾸는 수행인데 무기와 번뇌의 주체인 가아를, 불망과 불매의 주체인 진아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수행의 진위(眞僞)를 가려 바른 수행의 길을 찾아 가라고 부탁함이 이 법을 펴신 부처님의 소망이다.
3) 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경계(境界)라는 말과 법(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뜻을 모르고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계라는 말은 설명을 들으면 일반 중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法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뜻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경계(境界)라는 말의 세속적인 의미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맞닿는 점을 경계점이라고 하고 그 맞닿는 점이 선으로 이어질 때에는 그것을 경계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에서 경계라는 것은 육근(六根 :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색, 성, 향, 미, 촉, 법과 무기(無記)에 빠질 수 있는 상황(狀況) 즉 번뇌가 없는 상태에서 각성도(覺醒度)의 분포상태를 말한다.
법(法)이라는 말도 세속에서는 법(law) 즉 법률 또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에서 법이라고 하면 첫째, 성품이 법신이 된 다음, 법신(法身)이 무념(無念)과 반야(般若)를 구사하는 것을 불법(佛法)이라고 하는데, 이를 법(法)이라고도 한다. 둘째, 육근으로 들어온 경계가 의식(意識)에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친 것과 무기의 경계가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 것을 법(法)이라고 한다. 셋째, 의근(意根)으로 들어오는 경계를 법(法)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한가지 선택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는 노력을 하게 되면 드디어 의근(意根)이 수행방편만 받아들이게 되면서 다른 근으로 들어오는 경계는 차단되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이 계속되면 수행자는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수행의 방향과 차단해야 할 경계와 삼매를 알게되면서 스스로 그리고 저절로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수행자가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반드시 수행방편 외 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해야 한다.
2.수행의 방법 1)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
중생의 속성은 무기와 번뇌이기 때문에 두가지 속성 중 한가지에만 대처하는 수행을 하게 되면 그 한가지 속성이 적어지는 만큼 다른 속성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행은 속성의 비율에는 변화가 생기게 되겠지만 속성의 합(合)의 절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게 된다.
요즈음 수행자들은 대부분 번뇌에만 대처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수행은 번뇌가 적어지는 만큼 무기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무기를 조장하는 수행이 된다. 무기도 멍한 무기가 많아지는 수행을 하게 되면, 짐승의 길로 가게 되는 수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수행은 무기와 번뇌에 대처하는 수행을 하여 무기와 번뇌가 수행시에는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도록 하고 돈오 견성(頓悟 見性)하면 진아인 성품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도록 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은 수행방편으로서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하기 때문에 수행중 무기와 번뇌는 절대치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영역은 수행방편의 삼매와 삼매의 관성으로 채워져 드디어는 돈오 견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2) 관(觀)과 염(念)을 함께해야 한다.
관법(觀法)은 의근(意根)으로 들어 올 수 없는 무기를 의근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하여 가장 밝은 상태의 무기가 되도록 그 각성도(覺醒度)를 고조시킨 상태에다 수행방편을 결부시키게 되면 결부된 그것이 의근으로 들어와 의근에서 수행방편이 망각되어지지 않는 경계, 즉 수행방편이 불망하는 경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염법(念法)은 의근만 열어 놓고 수행방편만 들어오게 함으로써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등의 오근(五根)으로는 경계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되게 하여 수행방편만 생각하게 되면, 드디어는 의근에서 수행방편의 드러남이 어둡지 않는 경계, 즉 수행방편의 불매의 경계(不昧)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수행을 함께 하게 되면, 그 두가지는 의근에서 동일한 주기(cycle)로 교대하는 현상인 수행방편의 삼매(三昧)상태에 들게된다. 그리고 삼매상태에서 경계를 만나게 되면, 삼매의 관성(慣性)상태에서 경계에 대응하게 된다.
3) 관법(觀法) 관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초보자일 때에는 여러 방법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해야할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① 결인관(結印觀) 부처님의 결인중 선정인(禪定印)이 대표적인 예로써 선원에서 스님들이 하는 관법이다. 이는 엄지손가락 끝에 각성도의 고조를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선정인을 하고 있을 때 순간이라도 각성도의 고조를 놓치게 되면 모양이 비뚤어지게 되므로 선정인을 바로 함으로써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염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거나 한 손으로 엄지와 중지를 붙이고 있거나 무릎에 중지의 끝을 붙이고 있는 방법들도 모두 결인관에 해당한다.
② 호흡관(呼吸觀) 호흡은 항상 각성도가 고조되는 호흡이어야 한다. 중생들의 보통 호흡은 저절로 하게 되므로 각성도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각성도를 고조시킬 수 있는 수행자 호흡을 익혀야 한다.
③ 혀붙이기 관(舌觀) 입천정에 혀끝을 약간 뒤집어 말아 붙여서 그 뒤집어진 혀끝으로 윗턱을 약간 밀어올려 윗니와 아랫니가 1-3mm 정도 떨어지게 하는 관법인데 이는 뒤집어진 혀끝에서 무기의 각성도를 고조시켜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4) 염법(念法) 염법은 수행방편만을 염하여 수행방편만이 의근(意根)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육근(六根) 중 의근 이외의 다른 오근(五根)으로는 여타의 경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수행방편의 불매(不昧)를 이끌어내는 수행법이다. 염법은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과 의심법(疑心法)이 있다.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은 수행방편을 염함이 단절되지 않도록 간절하게 하여 간절성의 삼매에 들게하는 수행법인데 그 목적은 추번뇌를 막는데 있다. 염불, 주력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의심법은 수행방편을 의심하여 심각성의 삼매에 들게하는 수행법으로 간절성의 삼매로는 막을 수 없는 세(細)번뇌를 삼매의 밀도를 고밀도화시켜 막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와 같이 염념상속법과 의심법은 그 목적하는 바가 다르므로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수행에 임하여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수행에 임하여 그것을 잘못 쓰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의 단계를 인정하지 않는 착각도인이 되거나 자신의 건강만 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수행의 단계 부처님께서는 경전의 여러 곳에 다음과 같은 수행의 단계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단계에 알맞는 수행이 아니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 줄 알아야 한다.
1) 수다원과 ①수다원과의 의미 수다원과는 금강경에 언급되어 있는 수행단계 중에서 첫번째 단계이며 성의의 흐름에 들어 갔다는 의미로 입류(入流)라 하며 중생의 흐름을 거스른다고 하여 역류(逆流)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항상 정신차린 상태에서 수행방편만을 생각하는 노력을 계속하게 되면 드디어 각성이 고조된 무기와 수행방편이 결부되어 수행방편의 불망(不忘)으로 인하여 수행방편의 불매(不昧)를 이끌어내게 되면서 불망과 불매 이 두가지가 동일한 주기(cycle)로 의근에서 교대하는 상태인 수행방편의 삼매가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경계가 들어옴으로 인하여 삼매가 지속될 수 없을 때에는 삼매의 길이에 비례하여 삼매관성이 있어주게 된다. 수다원과는 삼매와 삼매관성이 어묵동정간이나 몽중에도 이어지는 수행단계를 말한다. 수다원과는 의식이 있는 때에는 수행이 거의 완벽하게 이어지는 수행과위이다. 수다원과의 수행자는 수행상에 있어 다음 두가지의 경우에 수행의 단절이 발생하게 되는데, 첫째는 이 단계의 수행자가 삼매에서 경계를 접하게 되면 삼매관성 상태에서 경계에 대응하다가 그 경계가 끝나면 순간적으로 무기에 빠졌다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가게 된다.
즉, 삼매관성이 끝나는 즉시 삼매에 들지 못하고 삼매관성이 끝날 때에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삼매에 드는 것이다. 둘째는 숙면시에 공부가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②수다원과를 넘기 위한 수행자의 호흡
수다원과의 수행자가 사다함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자의 호흡을 터득하여야 한다. 수다원과의 수행자가 각성도의 고조를 호흡에 의지하여 그것에다 수행방편을 결부시키게 되면 삼매관성이 끝날 때 무기에 빠지지 않고 바로 삼매에 들 수 있게 되어 수다원과를 지나서 사다함과에 이르게 된다.
2) 사다함과
①사다함과의 의미 사다함과는 일왕래(一往來)라고 번역한다. 수행자가 수행방편의 삼매와 삼매관성이 어묵동정간에 일여하고 몽중에도 일여하게 된 이후에 수행방편을 자신의 호흡에 동반하는 노력을 한 결과 드디어 깊은 잠 속에서까지 삼매가 한결같이 이어지게 되는 것을 숙면일여라고 한다. 이와같이 숙면시에도 수행이 한결같아지는 수행단계를 사다함과라고 한다. 사다함과위는 수행자가 도달하기 가장 어려운 고비이다.
사다함과의 단계에서는 삼매상태에서 갑작스런 경계, 예컨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뒤에서 등을 탁 친다든지 벼락이 치는 때 등의 경우에 깜짝 놀라면서 삼매가 순간적으로 깨어져 무기에 빠진 다음에 그 경계가 번뇌로 생주이멸을 거친 후에 삼매관성이 붙어주게 된다.
즉, 순간적으로 무기에 빠진 후에 '억'하고 놀라는 번뇌를 일으킨 다음 곧바로 삼매관성의 상태에서 상대방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다함의 수행자는 갑작스런 경계를 접하게 되면 삼매관성이 시작되기 전에 삼매관성이 붙어주지 않는 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경계에 접할 때 삼매관성이 시작되기 전에 그 경계가 순간적으로 번뇌가 되는 것을 세번뇌(細煩惱)라 한다.
사다함과는 찰라간에 무기에 빠졌다가 세번뇌인 한 번뇌만 일어나므로 이를 일왕래(一往來)라고 한다. 사다함과 이전의 수행자는 똑같은 상황에서 이와 같이 찰라간에 경계가 번뇌가 되지만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②사다함과의 수행방법 사다함과에서 이상과 같은 세번뇌(細煩惱)를 평정하고 수행을 한 단계 높이려면 관법으로써 각성도를 높이는 상태에서 수행방편인 화두(話頭)를 의심하는 방법인 의심법(疑心法)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 때를 당하여 비로소 의심법으로 수행하여 삼매의 밀도를 고밀도화(高密度化)시켜야만 세번뇌를 평정할 수 있게 된다. 수행방편을 의심하는 의심법은 두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의심이 생길 경우 심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의 삼매가 간절성의 삼매라면 화두를 들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때의 삼매는 매우 심각하게 되는 심각성의 삼매이다. 사다함과의 세번뇌는 염념상속하는 삼매로는 아무리 간절하게 해도 막아낼 수 없다.
오직 의심법으로서 삼매를 고밀도화시켜야 삼매관성도 고밀도화 되어 갑작스런 경계에 접하더라도 무기에 빠질 틈이 없게 되어 세 번뇌를 평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의심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특성으로서 이에 의하여 무기와 번뇌가 다 평정된 아나함과의 수행자로 하여금 돈오라는 돌파구를 찾게 하는 것이다.
화두의 종류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자나 '정전백수자'와 같이 사다함에게 주는 수행방편으로서의 화두가 있고, 둘째는 무기와 번뇌가 모두 평정된 아나함에게 깨침을 유도하기 위해서 주는, 소위 줄탁용 화두가 있고, 세 번째는 '삼처전심'등과 같이 무기와 번뇌가 모두 평정된 상태에서 일어난 바른 깨침인 돈오인지의 여부를 점검하는 점검용 화두가 있다.
수행자의 공부가 사다함과에 이르게 되면 선지식은 숙면일여의 검증법으로서 수행수준을 점검하여 진위를 가린 연후에 수행자에게 다음 단계의 공부를 제시하게 되며 이때 첫 번째 유형인 수행방편으로서의 화두를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의심법은 사다함과 이후에 사용해야 한다. 만일 사다함과에 이르지 않은 수행자가 의심법으로 수행하여 돈오견성(頓悟見性)했다는 견해를 갖고 이를 굽히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부처님께서도 제도할 수 없는 착각도인이요, 사마외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아나함과 아나함과는 불환(不還)이라고 번역한다. 사다함과에서 세번뇌를 평정하고 아나함과위에 이르면 모든 무기와 번뇌는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평정되기 때문에 중생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불환이라고 한다. 아나함과는 비록 중생의 속성인 무기와 번뇌가 모두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평정되었지만 불망과 불매의 대상이 수행방편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진아인 성품이 드러나지 못하므로 수행방편을 밀어낼 수 있는 극적인 경계가 등장하여야만 아나함을 벗어나게 된다.
4)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 아나함인 수행자가 극적인 경계에 의하여 지금까지 수행방편에 가려져 있던 진아(眞我)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문득 드러나게 되면 이를 돈오견성(頓悟見性)했다고 말하고 이러한 존재를 유여열반의 아라한이라고 한다. 성품이 드러나는 것은 극적인 경계가 들어오는 순간인 찰라간이므로 돈오(단박에 깨닫는다)한다고 말하며 성품이라고 말하는 진아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드러난 것을 성품을 본다고 하여 견성이라고 하며 이러한 존재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라고 한다.
번뇌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즉 경계가 의식에서 생주이멸한 번뇌와 사상인 번뇌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번뇌가 되는 어떠한 경계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근(根)을 통하여 의식에 들어오면, 그 경계는 번뇌로서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된다.
즉, 경계 그 자체가 의식으로 들어와서 번뇌가 된다. 이러한 번뇌는 아나함과에 이르면 모두 평정된다. 두번째, 사상 중의 어는 상(相)과 상응할 수 있는 경계가 육근 중 어느 근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경계가 번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와 상응하는 어느 사상(四相)이 번뇌로서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된다. 이와 같은 사상인 번뇌는 돈오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아나함에서 돈오하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가 된 존재는 대부분 세가지 관을 철저히 통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상(四相)이 남아 있다고 하여 남음이 있는 열반 즉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한다.
사상이 남아있는 유여열반의 아라한은 결인과, 호흡관 및 설관을 철저히 터득해야만 사상(四相) 중 어느 상(相)과 상응할 수 있는 경계가 들어오더라도 돈오하여 드러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그 경계에 대응하여 반야(般若)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유여열반의 아라한에게 보시행을 통하여 사상(四相)을 극복하도록 함을 금강경(金剛經)에서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금강경에서 유여열반의 아라한에게 보시행을 하라고 말씀하신 의미 속에 세가지 관 터득이 들어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5)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 무여열반의 아라한에는 다음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①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아라한 법화경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백억나유타겁(劫) 전에 이미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부터 2600년경 전에 중생제도를 위한 원생(願生)으로서 인도에 태어나셔서 6년 동안의 수행을 한 뒤 어느날 새벽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순간 돈오하셨으며 이후 49년 동안 중생제도를 위한 설법을 하셨다. 중생제도를 위하여 오시는 부처님은 몸이 바뀌더라도 여래심(如來心)을 잊어 버리고 다시 중생심(衆生心)으로 되돌아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도 몸이 바뀌게 되면, 과거 자신이 했던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제도를 위하여 다시 한번 수행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일관되게 해보시고 중생제도에 임하셔야만 중생들에게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가르칠 수 있게 되며 수행에 관한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즉문즉답(卽問卽答)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도 6년간의 수행경험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② 부처로서 출현하기에 앞서 복덕을 닦기 위하여 나오는 보살 이러한 보살은 전생에 이미 무여열반의 아라한이 되었지만 부처님과 같이 수행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다시 한번 해 봄으로써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복덕(福德)을 닦는 일에 임하게 된다. 이러한 보살이 부처님과 다른 점은 금강경의 설법을 듣거나 보아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알게되고 복덕을 닦기 위한 보시행(布施行)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보살은 수행에 있어서 더 닦아야 할 것은 없기 때문에 무학(無學)이라고 한다.
③ 사상을 극복한 무여열반의 아라한 유여열반의 아라한이 세가지 관을 철저히 통달하여 사상(四相)을 극복하게 되면, 남음이 없는 열반이라는 뜻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이 된다. 그리고 아나함에서 돈오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가 수행의 과위(果位)에 이르게 될 때부터 결인관, 호흡관, 그리고 설관에 통달하여 사상(四相)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도 극복할 수 있었더라면 금강경(金剛經)의 설법을 보거나 듣게 되면서 바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게 된다. 무여열반의 아라한은 미래에 부처로서 출현할 것을 대비하여 보시행으로써 복덕(福德)을 쌓게 된다. 자신이 부처로서 출현하게 될 때에 그 승단(僧團)에 복이 되게 하기 위함과 자신이 다음에 제도할 중생들과 인연을 짓기 위함이다.
자료 발췌 http://bubk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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