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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위한 선(禪)이야기 ⑧-견성(見性) / 형언할 수 없는 최상의 자유

白道 박만주 2017. 8. 17. 10:21

   

   

 초심자를 위한 선(禪)이야기 ⑧-견성(見性)

 

 형언할 수 없는 최상의 자유



견성이 없으면 선은 사선(死禪)에 불과하다. 불입문자와 교외별전이 방편으로 활용되는 이유는 절대 이뤄야 할 견성에 이르도록 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육조단경》 '돈점품'에 따르면 견성은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견성한 사람은 세워야 할지 세우지 않아야 할지를 알맞게 꿰뚫어 본다. 왜냐하면 왕래에 자유로워 지체되거나 구애됨이 없기 때문이다. 견성인은 경우에 따라서 언제고 응하여 활동하며, 그에게 향한 질문에는 언제고 응하여 대답한다. 한순간도 자성을 여의치 아니하고 모든 상황에서 자기 역할을 한다. 이렇게 그는 최상의 자유라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여 지속적 희열인 '유희삼매'(遊戱三昧)를 누린다. 이것이 바로 견성의 의미이다."


견성이란 말은 혜능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과연 달마가 중국에 와 '이심전심 견성성불'이란 말을 했는지 역사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혜능 이전엔 '관조'(觀照) 또는 '적조'(寂照)로서 깨달음의 '지'(知)를 보편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혜능이 '조' 대신에 견(見)을 그려 넣어 '견성'이라고 한 것이다. 관조와 적조가 편견에 빠지기 쉬웠던 데 비해 견성은 혜능 당대에 성불로까지 파악됐던 것은 흥미롭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신회시대에 와서 새로이 도출된 견성의 사상이다. 신회는 견성을 단순히 혜능의 설이라 하는데 그치지 않고 육조대사의 통설이라고 주장했다. 도원이 《육조단경》에 견성의 이자(二字)가 있는 까닭으로 이 책을 위서라하고 육조의 진설이 아니라고 했다는 점에서 견성은 신회의 고유한 사고였다고 보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다. 신회에 의하면 달마로부터 시작되는 선사상은 무념(無念)과 견성의 두 가지 기둥으로 이룩된다.


남종(南宗)을 특색짓는 여래선, 좌선, 견성 등의 사상이 다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좌선을 정의하고 있는 신회의 다음 말은 주목된다. "지금 좌라고 함은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선이라 함은 본래의 자성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몸을 앉히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선정에 들어가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신회는 선이란 본래의 자성을 보는 것, 즉 견성이라고 했다. 견성이란 자성이 자성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이단의 의식을 초월해서 그 스스로를 본다는 적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보신문 2004.08.10 16:00 입력 발행호수 : 512 호 / 발행일 : 199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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