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白道 박만주 2018. 7. 31. 08:37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華嚴一乘法界圖>는 '법계도' '법성게'등으로도 불리는데, <화엄경>의 사상을 그 핵심만 들어 간략히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해동화엄(海東華嚴)의 발원지가 된 명문(名文)이다.


번역하면 "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란 뜻이다.
법계도를 일명 해인도(海印圖)라고도 한다.
화엄경을 해인삼매(海印三昧) 속에서 설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히 유식에서의 <유식삼십송>에 비견할 '화엄삼십송'이라 할 만하다.


<삼국유사>에는 <법계도서인> <화엄일승법계도> <화엄법계도>  <일승법계도> <법성도> <해인도> 등으로 기록되고 있다. 

내용은 '절대평등한 법성(法性)은 유정(有情), 무정(無情) 등 일체를 초월하여 깨우친 사람이 아니면알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성 즉 진성(眞性)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인 조건, 즉 연(緣)을 따라서일체 만유(萬有)를 창조한다.


따라서 개체와 전체에 서로 걸림이 없고, 크고 작은 것에 자재(自在)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법신(法身)이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화엄일승법계도'에는 저자(著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책의 끝에 "인연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에는 주인이 따로 있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저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라고 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고려의 균여(均如)는 그의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서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 이것의 저자가 의상스님임을 밝히고 있다.


의상스님이 스승 지엄(智儼;600~668)스님의 문하에서 화엄(華嚴)을 수학(修學)할 때이다.
꿈 속에 형상이 매우 기이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 줌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또 꿈에 선재동자가 나타나 총명약(聰明藥) 10여제를주었고 다시 청의동자가 나타나 세번이나 비결(秘訣)을 주었다.


스승 지엄스님이 이것을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줌이 나에게는 한번이었는데 너에게는 세번이구나. 널리  수행하여 그 통보(通報)를 곧 표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와같은 지엄화상의 말씀을 듣고 공부를 계속하여, 마침내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한 경계를 사무쳐 본 뒤로는 '화엄경'에 대한 의심이 다 풀어지고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도리(道理)가 거울속 그림자 모양 확연히 들어났다.


이에 이러한 경지를 게송으로 읊으니 7언(言) 30구(句)의 게송(偈頌)이 되었다.
다시 이것을 만다라(曼多羅)와 같은 그림으로 엮었으니, 바로 '화엄일승법계도'이다.

의상스님은 이것이 화엄경의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섶에 불을 지르고 그 옆에 서서 발원하였다.
"이제 화엄의 깊은 뜻을 30구 210자의 게송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원컨대 이것이 부처님의 뜻에 계합(契合)함이 있다면 타는 불 속에 들어가서도 온전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법계도'를 맹렬한 불길 속에 집어 넣었으나 과연 타지 않았다.

의상스님이 이 법계도를 지엄화상에게 내보이니 지엄화상은 대단히 기뻐하며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이 30구 게송 속에 화엄경의 큰 뜻이 모두 담겼구나. 이 게송만 외어도 화엄경을 읽은 공덕과 같을 것이니 널리 세상에 알려 전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라의 고승(高僧) 의상(義湘 625~702)스님은 황복사에서 출가하여 원효를 만나 같이 입당,
1차의 입당 시도는 실패하고, 36세 때 행한 2차의 입당 시도는 성공하여 중국 화엄의 대가 지엄(智儼)에게 사사하였다.


44세때(668년 7월) 당(唐)나라 지상사(至相寺)에서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요지(要旨)를 210자(字)의 간결한 시구(詩句)로 축약(縮約)한 글로, 54각(角)이 있는 도인(圖印)에 합쳐서 만든 것이다.


원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나 흔히 '법계도' '해인도'라고 하며, 게송은
'법성게(法性偈)'라 한다. 

스승 지엄(智儼)화상은 자신이 그린 72인(印)보다 의상의 1인(印)이 더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인가했다.


의상은 인(印)이란 형식의 법계도를 짓게 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삼종세간(三種世間)을 해인삼매를 좇아 드러내,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이름마저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삼종세간이란 물질의 세계(器世間), 인간들의 세계(衆生世間), 지혜의 세계(智正覺世間)를 말한다. 흰 종이에 붉은 도인(圖印)의 줄(길)과 검은 글자를 써서 만든 법계도의 백지는 기세간 (器世間), 기계(器界)는 염업(染業) 중생이 거주(居住)한즉 더럽게 되고, 불보살(佛菩薩)과 같은 정업자(淨業者)가 거주한즉 깨끗하게 된다.


검은 글자는 중생세간 (中生世間), 중생은 번뇌를 업(業)으로 삼아 무명(無明)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붉은 획은 불지(佛智), 지정각세간 (智正覺世間)을 나타낸다. 그것은 마치 붉은 태양이 어두운 거리를 비추는 것과 같은 까닭에 적인(赤印)으로서 비유되었다.


곧 지정각(智正覺)이 중생을 깨치게 하므로 적색(赤色)으로 비유되었고, 중생이 번뇌의 업보에 얽매어 무명(無明)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흑색(黑色)으로 나타냈다.
기계(器界)는 백색(白色)으로 표현되었는데, 백색은 모든 색의 근본으로서 받는 빛의 색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나타난다.


곧 기계(器界)는 그 안에 거주하는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기세간이란 중생들이 의지해 사는 산하대지의 환경을 말하며, 지정각세간이란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간의 세는 시간을 뜻하고, 간이란 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현상계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일체 현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시간과 공간의 카테고리 (Category)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교리는 이 두 가지를 주축으로 설해지는 데 시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연기론 (緣起論)이라 하고, 공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실상론(實相論)이라 한다. 

법성게는 의상이 자증(自證)한 화엄사상의 요체다.
의상은 법성게를 자리.이타.수행방편.공덕 등으로 구분하여 풀이하고 있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법계도의 게송은 중앙에서 '법(法)'자로 시작해서 다시 중앙에서 '불(佛)'자로 맺고 있다.
맨 가운데의 법(法)자로부터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각을 지어 돌아가게 되어 있다. 


법계도의 4면 4각은 보살 수행의 중요한 덕목인 4섭법과 4무량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4섭법이란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쓰는 네 가지 방법을 말하는데, 보시를 하여 사람을 포섭하는 보시섭 (布施攝)과 남에게 도움을 주어 이익되는 행동을 하는 이행섭 (利行攝)과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써 하는 애어섭 (愛語攝),


그리고 상대방과 같은 처지가 되어 함께 일하면서 끌어들이는 동사섭 (同事攝)이다.

또 4무량심이란 네 가지 한량없는 큰 마음이라는 뜻인데,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이다.
자비의 慈는 나로 인하여 남이 즐거워지도록 하는 것으로 곧 기쁨을 주는 것이고, 悲는 남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喜는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것이요, 捨는 쓸데없는 고집이나 집착을 버려 한결같은 마음 즉 평등한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 4섭법과 4무량심은 화엄경에서 설한 보살도 실천의 근본 정신으로 6바라밀 혹은 10바라밀과 함께 보살행원의 핵심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법계도> 구성을 살펴보면 첫째 대의 및 도인, 둘째 석문(釋門)이다.
문장을 풀이한 석문은 다시 총석인의(總釋印意)와 별해인상 (別解印相)으로 나누고, 별해인상은 도인의 글이 지니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설명인 '설인문상(設印文相)'과 문자의 형상에 관한 해석인 '명자상(明字相)', 문장을 뜻 풀이한 '석문의(釋文義)'로 이루어져 있다. 


<법계도>에 나타난 의상의 화엄사상도 성기(性起)사상이다.
그것은 <법계도> 의 첫 구절 '법성원융 무이상'에서 나타난다.
법성(法性)은 언어가 끊어진 불가설이고 본래 적정한 증분(證分)인데, 이것이 진성(眞性)으로 대체되면서 연기분(緣起分)이 성립된다. 

법성이 연기하는 것(性起)을 <법계도>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기와 연기는 둘이 아니다.
성기즉연기. 연기즉성기인 것이다.

주석서로는 직계제자의 주해를 모은 <법계도기총수록>과 균여.설잠.유문의 것이 있으며 모두 현존한다.
뿐만 아니라 보조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검색/편집-


義湘祖師 法性偈 의상조사 법성게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양이 본래없고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이 부동하여 본래부터 고요하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이름없고 모양없어 일체가 다 끊였으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깨친 지혜로 알 일일뿐 다른 경계로 알 수 없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참성품은 깊고깊어 지극히 미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기 성품 고집 않고 인연따라 나투우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안에 일체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어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그 가운데 온우주를 머금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낱낱의 티끌마다 온우주가 다 들었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끝도 없는 무량겁이 한생각의 찰나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찰나의 한생각이 끝도 없는 겁이어라.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세간이나 출세간이 서로 함께 어울리되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혼란없이 정연하게 따로따로 이루었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하온 때가 바른 깨침 이룬 때요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  생과 사와 열반 경계 그 바탕이 한 몸이니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근본·현상 명연하여 분별할 길 없는 것이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 성인들의 경계러라.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부처님의 거룩한 법 갈무리한 해인 삼매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불가사의 무궁한 법 그 안에서 들어내어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모든 중생 유익토록 온누리에 법비내려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의 그릇 따라 온갖 이익 얻게 하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이런 고로 수행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되
파식망상필부득(파息妄想必不得)  망상심을 쉬지 않곤 얻을 것이 하나 없네.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무연자비 좋은 방편 마음대로 자재하면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보리 열반 성취하는 밑거름을 얻음일세.


이다라니무진보(以多羅尼無盡寶)  이 말씀 무진 법문 한량없는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온법계를 장엄하여 불국토를 이루면서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는 진여 법성 중도 자리 깨달으니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본래부터 부동하여 이름하여 부처라네.

 

[참 고]


* 염불 행자가 오해하는 끝 대목*


"구래부동 명위불(舊來不動 名爲佛)
 예로부터 부동(不動)한 까닭에 단지 이름이 부처라고 한다"
 이 대목을 오해해서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구래부동 명위불(舊來不動 名爲佛)
 구래부동 명위법(舊來不動 名爲法)
 구래부동 명위승(舊來不動 名爲僧)"
염불 행자가 이와 같이 불법승으로 반복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말이 안되는 염불인데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는 염불 행자가 있다. 

* 해석의 문제점*


"파식망상 필부득(파息妄想 必不得)
 망상을 쉬지 못한다면 결정코 깨닫지 못한다"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반대로 해석한다.
"파식망상 필부득(파息妄想 必不得)
 망상을 쉬려고 한다면 결정코 깨닫지 못한다"
 파(파) 자는 불가(不可)의 뜻이고, 자못 파, 자로 읽는다. 혹은 드디어, 마침내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불가(不可)의 뜻이다. 

 

출처 : 불교호스피스연합  |  글쓴이 : 지혜지 원글보기   



義湘祖師 法性偈 의상조사 법성게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양이 본래없고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이 부동하여 본래부터 고요하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이름없고 모양없어 일체가 다 끊였으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깨친 지혜로 알 일일뿐 다른 경계로 알 수 없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참성품은 깊고깊어 지극히 미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기 성품 고집 않고 인연따라 나투우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안에 일체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어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그 가운데 온우주를 머금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낱낱의 티끌마다 온우주가 다 들었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끝도 없는 무량겁이 한생각의 찰나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찰나의 한생각이 끝도 없는 겁이어라.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세간이나 출세간이 서로 함께 어울리되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혼란없이 정연하게 따로따로 이루었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하온 때가 바른 깨침 이룬 때요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  생과 사와 열반 경계 그 바탕이 한 몸이니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근본·현상 명연하여 분별할 길 없는 것이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 성인들의 경계러라.


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부처님의 거룩한 법 갈무리한 해인 삼매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불가사의 무궁한 법 그 안에서 들어내어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모든 중생 유익토록 온누리에 법비내려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의 그릇 따라 온갖 이익 얻게 하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이런 고로 수행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되
파식망상필부득(파息妄想必不得)  망상심을 쉬지 않곤 얻을 것이 하나 없네.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무연자비 좋은 방편 마음대로 자재하면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보리 열반 성취하는 밑거름을 얻음일세.


이다라니무진보(以多羅尼無盡寶)  이 말씀 무진 법문 한량없는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온법계를 장엄하여 불국토를 이루면서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는 진여 법성 중도 자리 깨달으니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본래부터 부동하여 이름하여 부처라네.

 

[참 고]


* 염불 행자가 오해하는 끝 대목*


"구래부동 명위불(舊來不動 名爲佛)
 예로부터 부동(不動)한 까닭에 단지 이름이 부처라고 한다"
 이 대목을 오해해서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구래부동 명위불(舊來不動 名爲佛)
 구래부동 명위법(舊來不動 名爲法)
 구래부동 명위승(舊來不動 名爲僧)"
염불 행자가 이와 같이 불법승으로 반복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말이 안되는 염불인데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는 염불 행자가 있다. 

* 해석의 문제점*


"파식망상 필부득(파息妄想 必不得)
 망상을 쉬지 못한다면 결정코 깨닫지 못한다"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반대로 해석한다.
"파식망상 필부득(파息妄想 必不得)
 망상을 쉬려고 한다면 결정코 깨닫지 못한다"
 파(파) 자는 불가(不可)의 뜻이고, 자못 파, 자로 읽는다. 혹은 드디어, 마침내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불가(不可)의 뜻이다. 

 

 
출처 : 불교호스피스연합  |  글쓴이 : 지혜지 원글보기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