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사 벽화 심우도와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로 돌아간다 |
심우도는 소(나)를 찾아나서는 선수행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묘사한 것이다 예서 소는 나, 참나를 이름하는 것으로 선수행은 마음을 조복받아 일체를 하나로 쓰기 위함이다 말(소리)로서 알 수 없는 佛의 뜻을(불립문자) 부처님 가르침의 속 뜻을(교외별전) 깨쳐 아는 것으로(직지인심) 본래부처의 종지를 담고 있다(견성성불) 1.심우(心牛): 참나를 찾아 나서
문득 삶(존재)에 대한 의구심 이해득실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한 나 그 근원을 밝히고저하는 발보리심으로 초발심시 변정각이라 본래부처로 구족되어 족함인 것을 족함을 아지 못하니 닦아 증득하여 깨쳐 알 일이라 2.견적(見跡):회광반조로서 자신을 돌이켜 보는 일로
지난 삶을 반추하고 어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가 자신의 지난날의 행적과 내일의 삶을 오늘에 비추어 조명한다 3.견우(見牛) : 나(마음)를 觀하게 된다 일거수일투족의 행적이 마음 아닌 것이 없음이라 문득 한생각 일어나 어찌 작용하는지 그 근원을 쫒다보면 내(마음)게서 비롯됨을 알 것이라 4.득우(得牛) : 나(마음)를 얻다, 문없는문을 열다 얻었다 하나 내 것이 아닌 것이 확철대오하여 안밖을 하나로 쓸 수 있을때야 비로서 내 것이라 보임수행으로 습을 제거해야 한다 5.목우(牧牛) :나를 조복받아 길들이다 탐착에 물든 탐진치 삼독심 습을 제거해 본래청정심이 드러나야 구함없는 법이 항상함을 알 것이라 6.기우귀가(騎牛歸家) : 본래무일물이라 본래 부처는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 부처라 다만 본래부처를 모르니 닦아 증득하여 알 일로 깨쳐 알았다하나 '앎'이 있겠는가? 얻었다하나 얻은 바가 있겠는가? 본래 그러한 것을 본래 그러함대로 알아속지 않을 뿐이지 7.망우존인(忘牛存人) : 본래 空한 것이 佛의 성품으로 볼 것 없는 경지라 곧 탐착을 여의어 소리의 형상에 속지 않는 것이 불취어상 여여부동이라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이요,방편으로 강을 건넌후엔 도리어 짊이라 법상(깨달음)마저 여의어야 함이라 8.인우구망(人牛具忘) :재행무상,제법무아,일체개고를 여의면 열반적정이라 우주현상계가 이와 같을지니 행함이 있을까 파도는 물을 여의지 않음이라 항상하는 마음은 물과 같고 파도는 전광석화와 같은 것으로 수불리파 파불리수(水不離波 波不離水)라 9.반본환원(返本還源) :진공묘유한 본래성품은 백미가 일미요, 만법이 일여라 본래 그대로 진리 아닌 것이 없음이니 진리가 따로 있겠는가?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라' 10.입전수수(入廛垂手) :본래성품 그대로 때와 곳을 떠나 온갖 방편을 나투니 해탈지견향이라 일상의 삶을 그러함대로 구가하는 것이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잔다 ********************************************************************
9.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로 돌아간다 구인사 벽화 [심우도 9. 반본환원(返本還源)] 십우도의 8단계인 人牛俱忘(인우구망)에서는 진리를 구하던 사람이나 구하는 대상이던 소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즉 一圓相(일원상)입니다. 아무도 없는 淸淨無垢(청정무구)한 마음[心]에는 나와 世界(세계)의 대립도 없다. 따라서 人生觀(인생관)을 어디에 根本을 두느냐 하면, 어느 면에 두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目的(목적)이라든가 方向(방향)이라든가 하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마음[心]이 宇宙(우주)와 하나가된 데 근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心]이란 존재가 어디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의 身體(신체)를 샅샅이 해부해 보아도 마음[心]을 발견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代名詞(대명사)로 쓸 뿐입니다.
時間(시간)과 空間(공관)을 超越(초월)하고, 나[我]와 宇宙(우주)가 하나가 될 때가 根源(근원)입니다. 소위 꽃이 있고 달이 있고 해가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 나의 마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마음이 우주와 하나다. 한 치의 거리도 없다. 이러한 근원의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깨쳐가는 것입니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쳐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淸淨한 마음[心]이, 우주와 하나가 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 9의 단계인 返本還源(반본환원)입니다.
다시 한 번 마음공부의 단계를 보면 一心工夫(일심공부), 無心工夫(무심공부), 發心工夫(발심공부)로 나누는데 6단계의 그림인 騎牛歸家(기우귀가)에서 말한 것이 一心工夫(일심공부)이고, 7, 8, 9단계의 그림에서 말하려 하는 것이 無心工夫(무심공부)입니다.
一心工夫(일심공부)는 祈禱(기도)이고, 無心工夫(무심공부)는 參禪(참선)입니다.
參禪(참선)을 통한 無心工夫(무심공부)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에는 몸뚱이에 집착하는 것을 쉬는 경지. [7. 到家忘牛(도가망우)]
두 번째에는 마음이 사라지는 경지 [8. 人牛俱忘(인우구망)]
세 번째에는 본마음이 드러나는 경지 즉 9. 返本還源(반본환원)입니다.
이것은 참선에서 세 번째 단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分別心(분별심)과 몸뚱이 愛着(애착)이 쉬니까 저절로 본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드러난다는 것은 비웠기 때문이고, 비웠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습니다. 고정된 내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나도 만들어 갈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空하다고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固定(고정)된 實體(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상만 있지 실체는 없다? 그러면 현상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현상은 내가 만들어 간다. 고정된 내가 없으므로 나를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처도 될 수 있고, 신도 될 수 있고, 인간도 될 수 있고 그리고 축생도 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序文(서문)
-慈遠(자원)스님-
本來淸淨 (본래청정) : 본래 청정하니 不受一塵 (불수일진) : 한 티끌도 받지 않고 觀有相之榮枯 (관유상지영고) : 유상의 영고성쇠를 본다. 處無爲之凝寂 (처무의지응적) : 함이 없는 고요한 경지에 머물러 不同幻化 (부동환화) : 환상과 같지 않으니 豈假修治 (기가수치) : 어찌 수행과 계율에 의지하리요. 水綠山靑 (수록산청) : 물은 맑고 산은 푸른데, 坐觀成敗 (좌관성패) : 앉아서 세상의 흥망성쇠를 바라보노라.
性品(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바탕[體]에 티끌하나 없습니다. 生滅變化(생멸변화)가 끊임없이 流轉(유전)하는 세계에서, 榮枯盛衰(영고성쇠)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三代(삼대) 가난이 없고 三代 부자가 없다는 속담은 익히 아는 바입니다. 生者必滅(생자필멸), 會者定離(회자정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으니, 이 世上에는 固定不變(고정불변)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것이고, 太陽(태양)은 물론 地球(지구)나 流星(유성)들도 시시각각으로 變化(변화)한다는 것은 現代科學(현대과학)도 否認(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이 造作(조작) 없이 行(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물과 하나가 되어 사물도 없고 자신도 없으니 고요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무심히 행동한다는 것은 맵고, 달고, 쓰고, 싱겁다는 것을 원래의 本性(본성)에서는 認定(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境地(경지)에 이른 사람은 쓰면 쓴 대로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으니 無心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一切世上事(일체세상사)를 허수아비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修行(수행)이나 戒律(계율)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 갖추어 있는 좋은 성품을 수행하거나 수양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배우지도 않고 스스로 알기란 천재가 아니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워야합니다. 물은 맑고 산은 푸르다. 있는 그대로가 세상의 법칙입니다. 本分(본분)의 우리 마음[性品]의 고향{家山]입니다. 보이는 그대로 보라. 보이는 그대로만 아니다. 무엇을 봐도 아름답다. 무엇을 봐도 진실이다. 成敗(성패)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이 모두 변화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으로 이렇게 눈이 열리는 것이 返本還源(반본환원)입니다.
偈頌(게송)
-廓庵則公和尙 (곽암칙공화상)-
返本還源已費功 (반본환원이비공) : 본래로 돌아가 보니 이미 노력만 허비했구나.
爭如直下苦盲聾 (쟁여직하약맹롱) : 어찌하여 당장에 심한 장님과 귀머거리 같이
庵中不見庵前物 (암중불견암전물) : 암자 안에선 암자 밖의 사물을 알지 못하나
水自茫茫花自紅 (수자망망화자홍) : 물은 스스로 아득하고 꽃은 스스로 붉구나.
本來(본래)로 돌아가기 위하여 이때까지 무한히 애썼습니다. 소를 찾아 집을 나가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의 모습을 보고 소를 붙잡아 겨우 길러 그를 타고 집에 돌아왔고, 또한 소도 잊고 나도 잊어서, 원래의 本家(본가)에 돌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참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쓸데없는 고생을 죽도록 했기 때문이다. 본래 佛性(불성)을 지니고 있는 줄 모르고 소[佛性]을 얻기 위하여 그처럼 애쓰고 한 것이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쓰고 또 애쓴 보람이 있어서 自由自在(자유자재)한 몸이 된 것을 한없이 기뻐합니다. 결국 이대로 좋을 것이라면 애쓰고 修行(수행)할 것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장님이나 귀머거리 기분으로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장님이 보는 데 집착하지 않고, 귀머거리가 듣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고 듣는데 걸리지 않고 있으면 修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本來(본래) 淸淨無垢(청정무구)한 마음을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지 않으면 수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창문을 닫으니 밖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六根門(육근문) 즉 眼(안)·耳(이)·鼻(비)·舌(설)·身(신)·意(의) 라는 여섯 개의 門(문)이 있는데, 그 문을 닫고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 거울과 같은 마음이라면 본래 청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을 열고 밖을 보면, "물은 스스로 아득하고, 꽃은 스스로 붉다." 이와 하나가 되어, 보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혼연 일체가 되는 것을 안다면, 자연의 세계가 그대로 진실입니다. 이런 세계가 반본환원(返本還源)입니다. 전 단계의 一圓相(일원상)과는 表裏(표리)가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一圓相(일원상)이 뒷등이라면, 매화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返本還源(반본환원)은 표면이다. 表裏(표리)이면서 그것이 한 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和頌 (화송) : 화답하는 노래
- 石鼓夷和尙(석고이화상) -
靈機不墮有無功 (영기불타유무공) : 신령한 기틀은 有無의 일에 떨어지지 않고,
見色聞聲豈用聾 (견색문성기용롱) :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데 어찌 귀머거리인가. 昨夜金烏飛入海 (작야금오비입해) : 어젯밤 금까마귀가 날아 바다로 들어가니, 曉天依舊一輪紅 (효천의구일륜홍) : 새벽하늘 예와 같이 둥근 해가 떠있구나. 훌륭한 수행자는 사물의 있고 없음에 마음을 쓰지 않으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보지 않아도 보고 듣지 않아도 듣는다. 아무도 일부러 귀머거리가 될 필요가 없다. 이것이 虛無(허무)의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태양은 밤이 되면 바다로 들어가고 아침이면 하늘에 붉게 떠오른다. 이렇게 대 자연의 변화는 나날이 새롭습니다. 여기에는 새롭고자하는 의도도 새롭게 되었다는 의식도 없는 무심인 것입니다. 또한 자연이 변했다 하드라도 그대로 머묾이 없이 계속 변하고 언젠가는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返本還源(반본환원)인 것입니다.
和頌
- 壞納璉和尙(괴납련화상) - 用盡機關費盡功 (용진기관비진공) : 방법을 모두 쓰고 모든 노력 다했어도 惺惺底事不如聾 (성성지사불여롱) : 깨달음에 이르는 일 귀머거리만 못하다. 草鞋根斷來時路 (초혜근단래시로) : 짚신이 다 해진 채 돌아오는 길에 百鳥不啼花亂紅 (백조부제화란홍) : 온갖 새는 울지 않고 붉은 꽃만 어지럽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스스로 자가진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三毒(삼독) 즉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痴]이 완전히 끊어졌으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六根門(육근문)을 사용하여 짚신이 다 해지도록 열심히 勞力(노력)하여 知識 (지식)또는 財物(재물)을 얻어도 이것을 이용하여 貪(탐), 瞋(진), 痴(치)를 위하여 사용한다면 귀머거리같이 배울 수 없는 것만 못하여 새도 울지 않고 정신만 어지러운 상태로 깨달음은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얻은 것도 모두 내려놓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산은 산, 물은 물 있는 그대로 참 根源(근원)의 모습과 絶對(절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境地(경지)가 返本還源(반본환원)인 것입니다.
頌
- 白峯 金基秋 居士 -
俯視四天莫非功 (부시사천막비공) : 사천세계 굽어봐도 공덕일랑 아닐러라. 俛仰亭歌那得聾 (면앙정가나득롱) : 보고듣는 정자노래 어찌듣지 못할손가. 山高水長亦花發 (산고수장역화발) : 산은높고 물은깊어 또한꽃도 피어나고. 天際茫茫一輪紅 (천제망망일륜홍) : 하늘끝은 아득하나 붉은꽃은 다시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