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상월원각대조사 행적과 가르침

白道 박만주 2019. 5. 6. 08:47



 

 



 상월원각대조사 행적과 가르침
 


[달마가 서쪽에서 온까닭은] 중에서

 

'한마음 늘 깨끗하면 곳곳마다 연꽃피리라'
一心常淸淨, 處處蓮華開


관동 8경의 하나인 죽서루(竹西樓)가 있는 강원도 삼척군은 3국시대 이전에 실직국(悉直國)으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란 옛말이 있듯이 5백년 지하에 묻혔던 천태(天台)의 법당(法幢)을 이땅에 다시 올려 불교중흥의 역사적 새 기원을 이룩한 상월스님이 이곳에 출생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출생 전 조부와 모친의 꿈에 용을 안았다는 태몽과 출생시의 기사(奇事)가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다. 다만 그는 신해(辛亥=서기 1911)년 음력 동짓달 스무 여드레 삼척군 노곡면 마읍(麻邑)리에서 밀성대군(密城大君)의 후예로써 부친 영진(泳鎭)과 모친 삼척 김씨 사이에 2대 독자로 출생하였는데 속명은 준동(準東)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기골이 준수하고 성품이 관후하였으며 7세때 한문서당에서 수학하였는데 15세때까지 사서삼경(四書三經)은 물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대해서도 두루 훤하게 깨달았다.


 장성하면서 그는 신불(神佛)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이 누구보다 더하여 가정의 제사때나 사찰 참배의 태도가 너무 근엄 단정하여 다른 사람이 우러러 존경할 정도였으며 사찰은 물론 어디에서나 독경 소리만 들리면 머물러 떠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전생 숙업인지 그에게는 수학하는 유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이상도 다만 현실적인 것으로만 느껴져서 마음의 구도적 욕구(欲求)를 충족하지 못하였다.
'인생이 무엇이냐? 인생은 왜 사느냐?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남보다 몸도 숙성한 그였지만 정신세계는 더욱 발달해 있어서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공안(公案)처럼 되어 오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년 가까이 서당에서 배운 유서(儒書)로서는 마음의 의단(疑團)이 풀리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인생의 회의가 가장 심한 것이 15세 때였으니 우연히 접한 자경문(自警文) 한 권이 유가(儒家)의 경서나 제자백가에 얻어듣지 못하던 말들로써 심경을 청량하게 하였다.


 인생의 회의나 오뇌속에 생활하면서 유교사상 외에 노장학(老將學)도 가까이 해봐도 마음에 부합하지 않았으며 양자(揚子)묵자(墨子)주자(朱子)의 설등이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이러한 회의, 갈등에서 드디어 불법에 귀의하기로 결심하였으나 출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중 드디어 열 다섯살되던 가을에 출가를 결행하였다.


 고향 가까운 곳에 신흥사(新興寺), 천은사(天恩寺)등의 고찰이 있고 작은 암자도 많이 있었지만 발끝가는 대로 몸을 이끌어 우연히 조우(遭遇)하는 것이 금강산 아래 토굴에서 혼자 수도하고 있던 법은(法隱)스님이었다.


 이스님을 은사와 법사로 하여 득도(得度) 수계(受戒)를 하고 상월(上月)이란 법명을 받았으며 사미과(沙彌科) 4집과(四集科)4교과(四敎科)의 이력(履歷)을 닦았다.
 그러나 주경야선(晝耕夜禪)과 운력(運力) 두타행(頭陀行)을 하며 조석 공양은 물론 빨래 의복수발등 제반 시봉(侍奉)으로 눈 코 뜰새 없는 수행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은사님은 교학은 물론이요, 선지(禪旨)에도 밝은 분이었다. 늘 하시는 말씀이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요,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계(戒)는 부처님의 행(行)이라는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의 말씀이 옳으시지만 그 근본이 되는 것은 신심이다. 그런 까닭에 경 중에는 법화경이 최상승경인데 법화경 가운데도 25품 곧 관세음보문품에 귀의하여 관음신심을 철저히 하는 것 이상이 없느니라.]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젊은 시절 상월스님의 마음 밑바닥에 뿌리 박혀 오늘의 대한불교 천태종의 신행의 요체가 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은사스님은 시봉한 3년 전후에 열반을 하셨으니 상월스님은 천애고아가 된 심정이었다.


 이 토굴에서 3년간 수행 중 은사스님과 이런 문답이 있었다.
 어느날 밤 참선하고 있는 상월스님의 머리를 큰 스님이 갑자기 주먹으로 탁 치면서
[痛不痛?(아프냐? 안 아프냐?)]고 물었다. 상월스님이 얼른 받아서
[打不打(맞은것도 같고 맞지 않은것도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큰스님은 "흥_"하시고는
[????是佛法(무엇이 불법이냐?)]고 하셨다. 상월스님이
[打打而痛痛(자꾸 때리면 자꾸 아픕니다.)]하니
[그놈 귓구명은 뚫렸네.]하고 인가(印可)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은사스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상월스님은 승려로써의 이력인 대교과를 마치려고 강원도내의 대본산인 건봉사(乾鳳寺) 유점사(楡粘寺) 월정사(月精寺)등에서 당대의 명강백(名講伯)들을 찾아 다니며 경전 공부를 해보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그냥 두루 거치기만 하였다. 이 또한 그이 구도 순력(巡歷)의 중요한 경험이었다.


 상월스님은 화엄경에서 불법의 깊고 깊은 것을 새삼 느꼈지만 은사스님의 교훈을 따라서 법화경 가운데서도 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더욱 심취하여 이로써 중생 모두가 제도될 것이라는 신념(信念)을 얻었지만 그래도 그는 경전 공부로만 불법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즉 '진정한 해탈의 도는 자성(自性)을 밝히는 것 밖에는 없다. 경(經)은 산성수어(山聲水語)가 진경(眞經)이라, 문자경(文字經) 문자선(文字禪)은 다만 의리선(義理禪) 세간승(世間乘)이요, 최상승(最上乘)인 불승(佛乘)은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동파(徐東波)의 말처럼 산색(山色)과 계성(溪聲)의 광장설을 찾아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하는 편력(遍歷) 행각(行脚)의 길로 오르는 것이었다.
 발길 닿는대로 명산 고찰(古刹)과 역사의 고적을 두루 참관하고 선지식이 있는 곳이면 모두 찾아 법을 묻기도 하고 선문답을 거래하였다. 그 당시의 스님들이 모두 상월스님의 명석한 지혜(智慧)와 탁월한 선지(禪旨)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중일(中日)전쟁과 제 2차대전으로 연결되는 기간에 운수승(雲水僧)으로써의 행각에는 식량을 구하기란 참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으니 오늘에 가히 필설로 논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신라때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태백산 유곡 석굴에 은거하여 지관(止觀=곧 참선) 삼매를 닦았는데 이때의 수도 고행은 더 말할 수 없었다.


 때로는 2 7일, 3 7일씩 음식을 전폐하고 수마(睡魔)를 쫓기위해 목아래에 기시넝쿨을 받치고 정진하였으며 식량이 없어 야생초와 소나무 껍질로 끼니를 잇기를 수 없이 하였다.
 이때의 지관(止觀)수행으로 정(定)과 혜(慧)의 자내증(自內證)의 깨달음을 체험하였다.


 태백산 석굴에서 2년 넘게 은거 주석한 다음 1942년 전쟁중의 위험한 노정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삼성(東三省) 곧 당시의 만주국으로 들어가서 동포들에게 위로를 겸한 포교 교화를 해가면서 기적적으로 중국 본토로 넘어간다.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의 국청사(國淸寺) 등 명찰과 관음영지인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을 두루 참예(參詣)하고 대덕스님들과 필담(筆談)으로 교류한 사실도 특기할 일이다.


 또한 중국에서 티베트(西藏)로 행각하는 중국스님과 동행이 되어 라마교(喇麻敎) 사원과 밀교(密敎)도 견학 연구하였으니 한국 승려로써는 회유(??有)한 일이었다.
 1945년 8 15 조국광복은 민족의 재건 중흥의 역사인 동시에 상월스님에게 있어서도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한 새로운 서원을 다짐한다.


 일찍이 스님은 법화교의에 입각한 일승법인 대각국사께서 개창한 천태종을 오늘에 중창 재현해야 한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것은 분단된 조국이 고려초 천태종지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이념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일념삼천(一念三千)'의 교의로써의 교화가 아니고서는 국가 민족이 다시 소생할 수 없으며 도탄에 빠진 사회중생을 제도할수 없음을 자각한 까닭이었다.


 더구나 대승불교의 대의(大義)가 이타자리(利他自利)의 2리원성(二利圓成)에 있는 바로 그대로 이제야 제세구인(濟世救仁[人])의 원력을 다시 다져야 하며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위해서는 자각가타(自覺覺他)로 스스로의 수도와 중생의 귀의처가 될 천태 도량(道場)이 설정돼야 된다는 서맹(誓盟)을 불전에 올렸다.


 다시 걸망을 멘 운수의 걸음으로 국내의 명산 승지를 두루 탐방하시다가 태백산맥의 줄기따라 또 소백산 9봉 8문(九峯八門)의 계곡, 예로부터 지사들이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국이라고 일러오는 연화지(蓮華地)에 석장(錫杖)을 내리기로 하였다.


 이 연화지는 전후 좌우의 작은 봉우리가 모두 연꽃 봉우리가 금방 피어날 듯한 영기(靈氣)가 감도는 지국(地局)이다. 오늘도 사람들이 총본산 구인사(救仁寺)의 산문만 들어서면 갑자기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고 안정감을 얻는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월스님은 산기슭 양지에 손수 초암(草庵)을 얽어맸다. 방 한칸 부엌한칸의 초라한 암실(庵室)의 터에 지금은 5층 대법당이라는 대가람 건물이 들어섰지만 그 때야 누가 이곳이 한국불교중흥의 진원지가 될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여기서 스님은 다시 지관삼매(止觀三昧)의 수행정진에 들어간다.
 천태의 지관(止觀)이란 범어로 사마타(Samata=奢摩他) 비파샤나(Vipasyana=毘婆舍那)의 합성어로써 지관(止觀)외에 정혜(定慧) 적조(寂照) 명정(明淨)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지식(止息)과 관지(觀智)이 두가지 뜻인데 관지의 통달이 곧 진여(眞如)에 계합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지(止)는 선정(禪定)이고 관(觀)은 지혜인 것이다.


 지관(止觀) 삼매(三昧)에 네가지가 있어 상좌(常坐) 삼매, 상행(常行) 삼매, 반행반좌(半行半坐) 삼매, 비행비좌(非行非坐) 삼매 등으로 말하지만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일체시(一切時) 일체사(一切事)가 지관삼매라는 뜻인데 상월스님의 수도생활이 바로 이러했다.


 한번 상좌삼매에 들면 며칠이고 자리를 뜰 줄 몰랐고 바지의 뒤가 닳고 찢어져 살이 드러나도 모르고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그냥 지탱하였다고 한다.


 이미 젊어서 은사스님에게서 인가(印可)를 받고 그 후에도 여러번 그 동안의 소식을 얻었어도 그의 지관수행은 그치지 않았다. 상좌삼매(常坐三昧)를 풀고 있을 때는 '관세음보살'의 주력(呪力)을 정진하였으니 오늘의 천태종 수행 종풍이 이 때부터 비롯한 것이다.


 나무 아래서나 바위 위에서 지관수행을 할때는 산새들이 날아와서 두 어깨에 앉아 있고 밤이면 큰 범이 사립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수호(守護)하던 일도 있었으며 대호(大虎)는 70년대 초까지 구인사 경내에 밤이면 종종 출몰하는 것을 여러 사람이 보았는데 지금도 이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이렇게 해서 3 4년이 경과하면서 스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선남선녀들이 있어 포교 교화가 싹트기 시작하던 중에 1950년 6 25사변을 맞게 된다. 스님은 생사를 초탈한 자세에서 피난 할 생각도 없었지만 시봉하던 대충(大忠, 2대 종정) 수자(修者)와 신도들의 강권에 못이겨 함께 공주(公州)방면으로 떠났다.


 이 피난생활 중에서도 마곡사(麻谷寺)를 중심으로 한 수도생활은 끊임없는 가운데 이 때야 말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이타행(利他行)을 할 때라고 생각해서 불철주야 교화를 폈으며 두타행(頭陀行)의 탁발로 굷주린 사람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펴고 또한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진료구호를 해서 완쾌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지방민들과 피난민들사이에 활불(活佛)이 나타났다느니 신인, 이인(異人)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이러한 소문 때문에 인민군과 지방조사대에 문초를 당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도 두려움없이 생사를 초월한 스님의 도력 앞에 끝내는 모두 굴복 존경하였다.
 수복후에 소백산 연화지로 돌아와서 소실된 모옥(茅屋)을 새로 지은 다음 다시 피눈물나는 수행과 함께 교화의 자비행으로 법화행자의 소임을 다했다.


 이렇게 수도생활을 하던 임인년(1962) 음 12월 28일 새벽 스님은 무상정등정법(無上正等正法)의 대각(大覺)의 큰 소식을 얻는다. 이 때의 오도송(悟道頌)은 다음 어록(語錄)에 소개한다. 또한 찾아온 대중에게 향하여 이곳이 불일(佛日) 중휘(重輝)의 근본도량이 될 것을 예시(豫試)선언하고 '이곳에 구인(救仁(人))의 5층 대법당이 솟으리라. 그에 앞서 5천명을 일시 수용할 수 있는 가람을 마련하리라'하였는데 일반신도은 물론이요 측근 문제(門弟)들 조차 과장된 말로만 간주했다.


 이 임인납월(壬寅臘月)을 계기로 스님의 법력은 바로 대위신력(大威神力)을 발휘하여 비관에 빠진 자살 직전의 인간을 재생시키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환희를 얻어 재기 성공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또한 질병과 불치의 병으로 몇십년 신음하던 환자들을 스님의 법력으로 치유하고 한 말씀 법문으로도 거뜬히 광명을 되찾는 이적이 수없이 있었다. 또한 장기적인 질환은 타력(他力)과 자력(自力)을 겸한 신심으로 늦어도 3 7일간이면 낫지 않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상월스님의 구제력이 현저하자 신도들은 구인사야말로 이고득락의 영험있는 도량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스님은 법화경의 공덕 그 가운데서도 관세음보살의 자재한 묘지력(妙智力)을 누누히 말씀하시고 찾아 오는 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이에게 관세음보살의 염명(念名) 주력(呪力)을 정근시켰다. 더구나 신심있는 신도에게는 일심으로 일백만번 이상의 관음정진을 분부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교화기간에 억조창생 구제중생의 뜻으로 절 명칭을 지은 소백산 구인사(救仁寺)의 이름은 전국 방방곡곡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소백산 아래 백자동(栢子洞) 연화지에 법당(法幢)을 세운지 20년에 드디어 1966년 8월 15일 천태종이 정부에 등록되어 공인 종단이 되니 고려의 개창조 대각의천(大覺義天) 국사 이후 871년만이며 조선 세종(世宗)때 합종(合宗) 인몰(湮沒)된지 544년 되는 때였다.


 대한불교 천태종과 그 총본산인 구인사 그리고 금강불교대학(서울, 부산) 천태종보(월간) 금강(월간)등 눈부신 활동과 함께 세계에 유래없는 5층 큰법당을 위시한 50여동의 대소 건물이 즐비하게 연화지를 메운 총본산 구인사의 위용을 위시하여 전국 각지에 360여개의 직할 사암과 신도회관, 및 지부가 있으며 120여만 명의 신도들이 오늘도 천태종 중창조 원각 상월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수행 정진하고 있다. 실로 근세 이후 한 사람의 법력으로 유형 무형의 창조적 불사를 이렇게 국가 사회와 불교계에 남겨 놓은 스님이 또 어디있는가.


 그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법칙은 다가왔다. 이미 스님은 열반에 들 것을 예견하시고 계축년(1973) 스님의 탄신법회에서 『만법이 다 빈것이니 나도 고대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자당(慈堂)의 생신잔치를 한 달이나 당겨서 베풀었다. 1974년 6월 17일(음 윤 4월 27일)에 열반하였다.
 임종에 읊은 열반게(涅槃偈)는 다음에 소개한다. 스님의 세수(世壽)는 64세요, 법납(法臘)은 49세였다.

 

上月대조사님의 법문(法門)


일승평등(一乘平等)의 불교관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가치성과 존엄성을 자각케 하여 다함께 일미(一味) 일법(一法)의 진리의 바다로 들게 하시고 또 차별의 세계, 대립의 세계를 조화하고 융회(融會)하는 원융사상을 밝히셨다.


 또한 어떤 일부층만을 상대로 하는 불교가 아니라 지식의 유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쉽게 믿고 실천함으로써 다 안심입명을 얻게 하는 진리를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한 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요 부질없는 이론보다 작은 일이라도 착실히 실천하며 마음을 바로 가지고 마땅히 할 일을 하여 나가는 것이 바로 불법이다.


 「도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도란 언제나 내 발 밑에 있다.」머리로 생각만 하는 불교, 입으로 말만 떠벌리는 불교, 그것이 우리의 생명과 진리체험에 무슨 도움이 있느냐! 그러므로 몸으로 움직이고 숨쉬는 생명의 불교, 실천하는 불교를 이룩하자.


 이러한 대중불교 구현을 위한 새신앙 운동을 일으켜야 하며 전악성선(轉惡成善)과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인륜도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바른 생업에 힘쓰고 바른 생활을 하여 복지사회, 도의사회 건설에 힘쓰며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여 함께 밝은 사회를 이루고 법등을 두루 비추어 그늘진 곳에세 괴로움을 받는 중생이 없이 모두가 인간의 진실도(眞實道)로 나아가게 하며 이 세상 가운데서 극락정토를 이루어야 한다.


 부처님은 우리 인간과 아주 거리가 먼 신으로서 인간 밖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또 부처님의 세계는 서방 10만억 국토 밖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불교를 믿는 것은 오직 죽은 뒤에 극락에 가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다 하나의 관념적인 신앙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 마음이 항상 깨끗하면 어디에서나 연꽃이 핀다」(一心常淸淨 處處蓮華開) 즉 한 마음이 깨끗하여 티없이 맑으면 바로 부처의 마음이요 한 마음에 더러운 번뇌와 탐심이 차 있게 되면 그것이 곧 지옥이요 아귀이다.


 일찍이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께서 우리의 한 생각 속에 열가지 세계(十界)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人), 천(天), 성문, 연각, 보살, 불(佛)의 세계가 서로 갖추어져 있다고 하셨는데, 이에 나는 「한 생각 욕심이 꽉차서 캄캄하게 어두울 적이 지옥세계요, 한 생각 탐심에 사로잡혀 허덕일 적이 바로 아귀의 세계요, 한 생각 어리석어 지혜광명이 막힐 적이 바로 축생의 세계요, 한 생각 진심(瞋心)이 불 일어나듯 할 적이 아수라의 세계요, 한 생각 양심을 지닐 때가 인간세계요, 한생각 지극히 착한 마음을 지닐때가 천상이요, 한 생각 모든 번뇌를 여윌때가 성문성자요, 한 생각 깨달음이 연각(緣覺)의 세계요, 한 생각 온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보살의 세계요, 한생각에 자비와 밝고 슬기로운 지혜를 지닐 때가 부처의 세계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옥으로부터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생각 잘못되고 바로 되는데 있다는 도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이 세속 밖에 있지 않으니 세속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체득하여야 한다. 오직 마음을 바로 지니고 바로 쓰는데 있으니, 마음을 바로 지니고 바로 쓰지 못하면 세속을 떠나 깊은 산에 들어가 염불을 하고 수도를 하여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계(戒) 정신은 나쁜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지어가는 즉 선근복덕을 심어가는데 있다.


 우리 인간사회가 어두워진 원인은 열가지 악업(惡業) 때문이다. 만일 열가지 악업을 십선업(十善業)으로 바꾼다면 이 사회의 온갖 죄악과 고통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밝고 안락한 행복의 세계가 이룩될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생존본능과 생식본능만을 충족시킴으로써 그 삶이 사명이 다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가장 참되고 값있고 행복한 삶을 개척하는 데 큰 목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만능 향락만능주의로 흘러가고 육본위(肉本位)적인 본능주의로 치닫는다면 인간은 마침내 야수화하며 도의는 땅에 묻히고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세계를 빚어내고 말 것이다.


 또한 물질만능 향락주의 육체본위적인 인생관과 생활관은 마침내 10악의 세계를 가져올 것이며, 10악의 세상은 인류 종말의 암흑세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10선계(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어, 불간탐, 불원진, 불사견)를 지켜 계행이 청정해야 함은 물론, 나아가 이 계법의 정신을 생활과 사회 속에서 실천하고 펴나감으로써 밝은 생활, 밝은 사회를 실현해 가여 한다.


 수행법에 있어서 불성관(佛性觀)을 닦는 것이 기본이다. 곧 불법공부를 하는데 가장 근본되는 것은 먼저 자기 마음의 광산 속에 있는 금강보석의 불성을 알고 관(觀)하여 개발하는데 있다. 그리고 청정불성관 진실불성관 지혜불성관 자비불성관을 단계적으로 닦아야 한다. 이 불성관을 닦는 것은 마치 광석 속에서 금강보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써 발견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캐서 가다듬고 갈아서 완전한 보물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그 발굴작업과 연마와 단련의 공부를 하는 것이 불성관(佛性觀)을 딱는 공부며 바로 생활불교의 실천이다.


 만일 참다운 선(禪)의 공부를 닦으려면 먼저 진공(眞空)으로 체(體)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아야 한다. 밖으로 천만경계를 대하여 태산과 같이 부동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되고 허공과 같이 하여햐 한다.


 처음으로 선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 아니되어 잠깐이라도 마음의 고삐를 놓고 보면 6근(根)에 끌리어 곧 도심이 상하게 되는 것이므로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에 처할지라도 떠오르는 망상번뇌를 눌러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정진하여 가면 마음이 차차 조숙되어 번뇌마(煩惱魔)를 극복하며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 선이 있으니 무시선(無時禪)을 닦아야 한다. 시끄러운데 처해도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고 오욕정 계에 대해서도 마음이 동하지 않아야 이것이 참 정(定)이다.
 불교의 수행생활에 있어서 지관법(止觀法)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지(止)는 즉 정(定)으로써 안으로 산란한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고 관(觀)은 밖으로 모든 현상과 실상을 바로 관찰하고 아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 정 혜 삼학(三學)은 각각 별개인 것 같으나 별개가 아니고 불리일체(不離一體)며 삼학호융(三學互融)인 것이니, 계(戒) 가운데 정(定)이 있고 정 가운데 혜(慧)가 있으며 하나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다.


 오늘 불교의 중요한 과제는 나날이 마멸되어 가는 정신계를 개조 부흥하고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있다. 현대의 기계문명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기계화 야수화 되어 가는 인간을 구제하여 인간본연의 참모습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한 이성의 고향, 영(靈)의 피안으로 복귀케 하는 것이 불교도에 주어진 사명이다.


 그리고 정신계의 부흥과 인간복귀 운동은 우선 무너진 도의(道義) 재건에 있다.
 현대의 우리 사회 특히 젊은 층은 물결처럼 밀려온 서구의 문물과 사상을 새것이라 하여 반성없이 받아들이고 동양 고유의 도덕이나 사상은 낡은 것이라고 하여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월광명이 만고(萬古)를 초월하여 밝은 것과 같이 동양 성현의 가르침은 불변의 진리이며 불교는 중생 구제의 위대한 종교인 동시에 또한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윤리도덕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양 성현들의 가르침을 재건하여 도덕을 확립하고 인간생활의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고 묘법은 무생(無生)이며 연화(蓮華)는 무염(無染)이다. 무상으로 체(體)를 삼고 무생에 안주(安住)하여 무염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無上菩??)요 무애해탈(無碍解脫)이며 무한생명(無限生命)의 자체구현(自體具現)이다. 일심(一心)이 상청정(常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개(蓮華開)니라.」


 이 법어는 천태종의 소의경전(所衣經典)인 실상묘법연화경의 일곱자에 담겨있는 진리를 가장 간단하게 풀이하여 그 진리를 그대로 체득하고 그 진리에 조용히 머물러서 그대로 생활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요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생활이며 그것이 바로 무한생명의 실현이라는 것을 가르쳐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두 구의 시로 요약하여 「한 마음이 항상 깨끗하면 어디서나 연꽃이 피오리(一心商淸淨 處處蓮華開)」라고 한 것이다.
 이 법어는 천태종 중창 1주년 기념 법회상에서 직접 낭독하신 것으로 종단의 행사의식에 반드시 봉독되고 있다.

 

 上月 대조사님의 오도송(悟道頌)


 산색고금외(山色古今外)
 수성유무중(水聲有無中)
 일견파만겁(一見破萬劫)
 성공시불모(性空是佛母)


 산빛은 고금의 밖이요
 물소리는 있고 없는 중간이로다.
 한번 보는 것이 만겁을 깨뜨리니
 성품 공한 것이 바로 불모로다.

 


 법어(法語)와 열반게(涅槃偈)


 마은 하나가 참되고 착한 사람은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이 다 참되고 착하여 그 앞길이 밝을 것이니 마음 하나가 거짓되고 악하면 그 앞길이 어둡고 막힌다.


 사람은 만유의 주인공으로 능히 만물을 창조하고 지배한다. 인간존엄이 본래 면목이거늘 그 주체의 존엄성을 상실하여 물질에 지배되고 사악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이제 모든 사람은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인간주체의 본 자리로 돌아가 쇠퇴해 가는 오늘의 정신세계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만법이 비었으니 나도 장차 갈 것이로다. 한 생각 날 적에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 멸할 적에 만법이 꺼지도다. 모든 사람이 탐하고 바라는 부귀와 영화는 한 조각 구름이요 물거품이요, 몽환(夢幻)이니라.


 죽음에 임하여 허망함을 탄할 것이 아니라 살았을 때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불도가 따로 있지 않으니 한 마음이 근본이 되며 맑고 바르고 착하게 베푸는 데 있는 것임을 알라.'


 앞으로 나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없을 것이나 내가 먼 곳으로 떠나가 있더라도 퇴굴심을 내지 말고 항상 마음자리를 바로 잡도록 하라. 지금은 정히 말법시대니 믿음이 옅은 사람은 좋은 인연을 놓칠 것이요 믿음이 굳고 뚜렷한 사람은 좋은 과를 얻으리라.


 내가 그대들을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이 도량을 개창하기에 고생이 자심하였다. 그런 고난을 참고 이겨 오늘날 창업의 기쁨을 함께 하고 있는 바 내가 그대들을 떠날지라도 변함없이 불퇴전의 용맹과 굉원(宏遠)한 미래를 향해 어떤 마장(魔障)이라도 초극(超克)하여 이 도량으로 하여금 제세구인(濟世救仁)의 복전(福田)이 되게 할 지어다.

 

  제불불출세(諸佛不出世)
  역무유열반(亦無有涅槃)
  사생본공적(死生本空寂)
  영허일월륜(盈虛一月輪)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또한 열반에 들지도 않았네
  나고 죽는 것이 본래 없으니
  찼다가 빈 것이 한 바퀴 달이로세.


 ◎새 불교의 운동의 전개
 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종단의 3대 지표를 설정하노니
1. 대중불교의 구현이요
2. 생활불교의 실천이요
3. 애국불교의 건립이니라.


 대중불교라 함은 진속불이(眞俗不二), 처염상정(處染商淨)의 천태법화 교의를 구현하는 것이니 승속(僧俗)이 일체가 되어 애교애종(愛敎愛宗)에 힘쓰라.


 생활불교는 진속일관(眞俗一貫) 치생산업(治生産業)이 원래 제법실상(諸法實相) 그대로이니 모든 종교는 생활 자체가 불법이 되도록하여 생활불교에서 진일보하여 생산불교가 되도록 하라.
 애국불교라 함은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 불교 전래때부터 진호국가(鎭護國家)를 이상으로 하여온 만큼 정법국가(正法國家)의 이상으로 애국호민(愛國護民)의 구현속에 제세구인(濟世救仁)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또한 새 불교 운동의 전개로써
 기복(祈福)불교에서 수복(修福)불교로
 둔세(遁世)불교에서 구세(救世)불교로
 산중(山中)불교에서 사회(社會)불교로
 관념(觀念)불교에서 실천(實踐)불교로
 소비(消費)불교에서 생산(生産)불교로
 전환할 것을 선언한다.

 

◎교시문(敎示文)


 인류에게 참다운 생명의 원리를 열어 보이시고 올바른 생활 범칙을 가르쳐 스스로 삶의 참다운 뜻을 깨닫고 생명의 가치를 창조케하며 온 중생계를 각화(覺化) 정화(淨化)하여 죄악과 모순이 없고 광명과 행복으로 꾸며진 이상세계를 구현하려 함이 부처님의 근본정신이니 그 교지를 받들어 스스로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사회 대중을 교화 제도하여 이 땅위에 불국토를 실현케 함이 우리 불자가 지닌 근본 사명이다.


 여러분은 역사적 의의와 시대적 사명을 되새겨 정법중흥과 제세구인(濟世救仁(人))의 성업에 이바지하고 독실한 신행으로 천태종지를 받들어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로서 지상에 불국토를 실현할 것을 발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다음의 세가지 요강을 성실히 실천할 것을 부처님전에 서원할 것이다.


 1. 생명의 참뜻을 자각하여 밝은 자아를 개현하므로써 인간 즉 불타(人間卽佛陀)의 진리를 체득한다.


 2. 정법의 대도를 실천하여 밝은 생활을 창조하시므로써 생활 즉 불법(生活卽佛法)의 이념을 구현한다.


 3. 착실한 교화를 전개하여 밝은 사회를 건설하므로써 사회 즉 승가(社會卽僧家)의 이상을 실현한다.

 

註...

* 법당(法幢)=묘법(妙法)이 높은 것이 마치 당(幢)이 우뚝솟은 것과 같으므로 법당이라함
* 의단(疑團)=수행중에 일어나는 의문. 화두선(話頭禪)에서 도를 구하는 의지(意志)가 간절하여 격(激)한 것.
* 인가(印可)=스승이 제자의 득법(得法)을 증명인가하는 것.
* 천태지자(天台智者)=(538∼597)중국 당나라 스님. 천태종의 개조.
* 진공(眞空)=유(有)아닌 유를 모유(妙有)라 함에 대하여 공 아닌 공을 진공이라 하니, 대승지극(大乘至極)의 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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