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인연 ♣/•극락정토로 가는 길♤

淸淨無爲 安般守意 [청정무위 안반수의]

白道 박만주 2012. 5. 13. 09:50


 淸淨無爲 安般守意 [청정무위 안반수의]


우리 몸이나 정신을 제 멋대로 두면 안된다. 몸[色]은 물질[四大]로 구성되어 그대로 두면 타성他姓이 붙고 나쁜 습관習慣이 붙어서 뜻대로 되지 않고 정신精神과 육체가 따로 논다. 육근六門으로 침투하는 망상분별妄想分別 그림자에 속아 짧은 생애 언제 도道를이루겠는가.


정신을 일어나는대로 두면 멋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드디어 몸까지 헤치게 될 뿐 아니라 근본정신根本精神까지 그르치게 하여 죄罪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이 진리 眞理를 떠나지 않고 법法가운데서 항상 도道를 생각하게 하여 몸과 마음을 견제牽制하고 좋은 습관習慣을 가지도록 노력하여 꼭 잡아두어야 한다. 때로는 금욕禁慾과 극기克己훈련을 통하여 오온五蘊을 억제함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게하면 길을 잃지 않는다.


우리 마음은 항상 어떤 욕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마음의 욕망을 따라 멋대로 끄달리면 죄를 범犯하게 된다 . 도둑질, 음행, 고자질, 질투, 어리석음은 마음의 움직임에 의依해 인간의 행, 불행不幸이 생기고 죄罪 복福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한 부처님은 그러한 마음을 조절하기 위한 호흡법을 창안하였다.


숨이 들어오고 나옴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원래 없었던 것은 없던 데로[空] 돌아간다. 사물의 실상實相은 공空이나 만공滿空이다.


돌을 생각하다가 돌에서 나와 나무로 들어가면 곧 돌이 없어진다. 오음五陰도 이와 같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하자. 이 꽃은 없었던 꽃이므로 곧 없어 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꽃에 매여 떠날 줄을 모르면 그 꽃이 마음을 차지하고 있어 운신에 괴로울 것이다.


마음이 떠나면 그런 괴로움도 없어진다. 마음이 어떤 사물인 객관[色]에 들어갔다가 다시 주관에 의해 가렵다. 이쁘다. 아프다는 감수感受작용[受]을 가진다. 주관主觀의 감수작용 속으로 마음이 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와야 한다.


감수感受에 매여있으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사물을 표상하는 지각知覺[想]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로 부터 나와서 의지가 [行]움직여야 한다. 의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올바른 인식[識]이 있을 수 없다. 이처럼 물질物質의 생하고 멸함 으로부터 오온五蘊이나 사념처四念處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다섯가지 요소들도 인연因緣에 의해 모여서 생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없어지니 집착集着할 대상이 아니다.[相依性] 오온五蘊은 다 공空이기 때문이다.

인간[五蘊] : 몸[色] + 정신작용[受.想.行.識]: 오온은 욕계欲界에 속하며 苦의 원인.

오온[오음五陰]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끄달리면 고통을 받게 된다.


道人行道當念本 [도인행도당념본]

謂心意識是爲本 [위심의식시위본]

足三事皆不見已生便滅 [족삼사개불견이생변멸]


수행자는 마땅히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근본이란 마음[心] 의식[意]아는힘[識]이다. [아뢰야식 말나식 의식]

이 세가지 정신은 형태가 없어 볼 수 없으나 확연히 존재하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人不使意意使人[인불사의의사인]

人不行道貪求隨欲[인불행도탐구수욕]

是爲意使人也[시위의사인야]


사람이 마음을 부리지 않고 마음이 사람을 부린다.

사람이 도道를 버리고 욕망에 탐닉하면

마음이 사람을 부리게 된다.


몸과 마음이 둘이면서 둘이 아닌상태에 이르면 자재自在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끝은 또 한 새로운 시작이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등불은 본래 밝게하는 힘이있으나 어둠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마음이 적정寂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어둠과 밝음이 없고 선악善惡도 없다.


우리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즐거움은 저절로 따른다.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다.


마음이 어떤 사물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을 실체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찰나 생멸生滅을 반복하여 실체가 없거늘...

우리 마음은 맑은 거울같이 고요한 물같이 유지하고 있어야 모든

사물이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즐거움도 솟아난다.


법法은 알기위한 것이 아니다. 실천實踐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아무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진리眞理도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事物은 나타내고(진행) 나타내어진 (완료) 것 과의

사이에 둘이 아닌 관계에 있다. 퐁...당....


자, 군소리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자.

1. 수식(數息): 숨을 세는 것으로 마음을 대상(妄念)과 차단遮斷한다.


①. 잡념으로 생각이 따르지 않을 것 ②. 들숨은 짦고 날숨은 가늘고 길게

③. 마음을 코 끝에 머물러 있게


( 들어오는 숨이 다하면 코끝에서 그치고 나가는 숨이 다하면 코 끝에 둔다.)

수식數息은 횡격막 수축을 조장助長하여 복압력腹壓力을 기르고, 탄산가스를

토吐하여 뇌腦순환을 융통 하여 신체기능을 활발하게 해준다.


2. 상수(相隨)단계: 호흡과 의식意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마음을 하나로 거둔다.

수식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면 조화로운 기능이 발휘된다. 마음이 멋대로 달려나가지

않음으로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고 신체와 정신 기능이 원활해 피로를 모르게 된다.

이로써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경지境地에 이르게 된다.


3.지(止) 단계: 우리 마음은 항상움직이고 있으나 이를 한 곳에 매어두는 수행을 통해 마음이 고요히 자리잡게 된다. 무의적無意識으로 행해지던 호흡이나 정신精神집중이 의식적으로 한 곳에 작용하게 된다. 마음이 호흡을 부리고 호흡이 마음을 부리면서 마음과호흡이 하나가 되어 집중적으로 작용하는 단계, 지금 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고 감득感得하지 못했던 힘을 감득하게 되어 특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불이 붙어 연기煙氣가 났을 뿐, 불이 활활 일어나야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호흡 呼吸과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되어 한 곳에 고요히 안정된 상태, 한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서 호흡이 좌우되고 몸의 건강이나 정신의 안정, 번뇌의 멸도나 깨달음이 있게 된다.


◇.一念卽一心[일념즉일념] 일어난 생각이 끝까지 변치않는 것

◇.多念卽一心[다념즉일념] 마음을 여러갈레로 쓰되 근본은 일심을 떠나지 않는 것

◇.主客一心 [주객일심] 몸의 움직임에 마음이 항상같이 하여 서로 떠나지 않는 것

◇.入塵垂手 [입전수수] 몸이 마음이요 마음이 몸이면서 몸도 마음도 의식하지 않는 단계 수식이 이루어져 마음의 안정을 얻었더라도 기쁨을 느끼면 완전한 안정이 아니다.

기쁨은 마음이 흩어졌다는 표지標識, 그 기쁨까지 그치는 상태가 지止의 세계世界 .


4. 관(觀) 단계: 지止가 이루어져 생각이 그치고 숨도 그친 상태에서 그 그침까지 떠나 옳고 그름을 아는 단계, 사물事物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觀察하여 마음이 대상에 이끌려 가지 않고 대상과 마음이 서로 떠나 있어야 한다.


5. 환(還) 단계: 내 몸과 마음이 무상無常이요, 고苦요, 공空이며, 무아無我임을 관觀하여, 실상實相이 올바르게 파악되면 안 것에 의해 실천이 따른다. 다시 고요한 원래 적정寂靜 한 자기의 주체主體로 돌아온다.


6. 정(淨) 단계: 모든 번뇌煩惱를 없애고 지혜智慧를 닦아 온갖 선행善行에도 걸리지 않아 무간도無間道에 든다.[無涯道]신체의 감각기관[눈.귀.코.입.몸]이나 마음의 사유思惟나 인식認識은 밖으로 부터오는 자극에 대응하여 움직이고 있다.[六境] 정신계[主觀世界]가 외부로 끌려가지 않고 본래 모습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섯이 무위無爲의 도道를 행行하게 하면 된다. 적정寂靜 그대로 응應하는 묘적응, 마음과 숨을 무위無爲에 머루르게 하면 저절로 청정세계淸淨世界가 열린다.



7. 苦集滅道

空은 먼곳 어디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다. 마음이 삼매三昧에 있으면空을 얻는다. 흔들리지 않는 지극히 고요한 마음이 삼매이며 정定이라 한다. [一心不亂 ]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 정의定意가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면서도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음이

여여如如하다. 항상 마음이 고요하고 순일純一하는 가운데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 하면 空이 실현된다. 그러므로 생각하지 않음은 죽음이지 空이 아니다. 空은 삶과 죽음이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세계이다.


고요한 마음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에는 맑은 거울에 만물萬物의 영상映像이 있는 그대로 보이듯이 일체사물이 그대로 나타난다. 주체는 객체가 있어야 존재하고 객체는 주체가 있으므로 존재한다. 주객主客이 하나로 원통하는 것이 도道이다.


유위有爲에서 유위를 떠나 무위無爲를 증득證得하는 것이 道이다. 우리 몸도 무상無常함 속에서 상常을 보고 유위법 속에서 무위법을 보는 사람은 법法[因果]을 본 사람이다.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정寂靜그대로의 세계"에서 行하는 것, 行하되 行하지 않는 것. 눈으로 事物을 보되 고요한 마음으로 보면 無我요, 소리듣는 것, 냄새맡는 것, 감촉感觸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하되 행함에 끌리지 않음으로 행하지 않는 적정寂靜세계이다.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은 무상無常이요 무상無相이다.

무소유無所有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없는 마음이다. 호흡이 들고 나고

마음의 생멸生.滅 도 무소유의 실천이다. 공空은 마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同時 몸의

기운이 없어진 상태[들숨과 날숨사이], 생.사 속에서 生.死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공空이다.


식중무오息中無五 숨 속에는 다섯가지가 없으나 [色貪, 淫, 瞋恚, 愚癡, 愛慾]

본래 허망虛妄한 이 다섯가지는 몸 안에 있으면서 사물을 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 空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속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 확실히 있으나 공空이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다. [空卽 不可得]

마음은 空이기 때문에 智慧로서 억제하여 쉬게한다.


마음이 스스로 억제憶制되지 않는지라 안반수의安般守意로 제어한다.


수식 數息 -> 상수相隨 -> 지止 -> 관觀 -> 환還- > 정淨


고요한 생각을 통通하여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어 한결같이 하나가 되어 확대되어 흐르는 것을 실감實感하여 이 체험體驗이 깊어지면 예지叡智를 얻는다.[自證]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는 생각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 마음은 사람의 씨앗이된다.[ 意爲人種 의위인종]

凡人은 괴로움이 아닌 것을 괴로움으로 알아서 괴로워 하고

즐거움이 아닌 것을 즐거움으로 알아 즐거워 한다.^^

♧ 마음이 마음을 본다. ▒▒▒○⊙○▒▒▒○⊙○▒▒▒○⊙○▒▒▒○⊙○▒▒▒


마음은 수시로 일어나는 심리현상心理現狀이나 생리적현상을 보고 알 수 있으나 몸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인식작용認識作用이 있으나 몸은 없기 때문이다. 몸은 사라질 물질이지만 감각기관感覺器官은 정신의 영역領域이니 마음이 없으면 마음을 볼 수 없다.


아픔이나 쾌감은 마음이 안이나 밖의 인연에 의해서 나타나는 양극단兩極端이다. 이 양극단에 빠지면 안되지만 쉽지않다. 우리는 아픔과 쾌감快感을 느낀다. 팔이 아플 때 마음을 팔에 두면 더욱 아파진다. 그러나 마음을 다른데로 옮겨보면 내 마음이 팔에 없으므로 아프다는 생각 이 없어져 아픔이 그친다. 아프거나 가려울 때 그에 집착執着하지 않으면 그 느낌을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事實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위의 실천>

何等爲無爲


眼不觀色 耳不聽聲 鼻不受香

안불관색 이불청성 비불수향


口不味味 身不貪細滑 意不妄念 是爲外無爲

구불미미 신불탐세활 의불망념 시위외무위


數息 常隨 止 觀 還 淨 是爲內無爲

수식 상수 지 관 환 정 시위내무위

모든 것은 근본根本으로부터 나와서 근본으로 돌아간다.


근원根源은 보이지 않으나 근원이 없는 것은 없듯이 그로부터 현상세계現狀世界가 비롯되었음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온 것은 온 곳으로 돌아가는 데 돌아가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에 존재存在했던 것이다. 사물事物은 생겨나면 사라진다. 본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 '없다'가 생긴 것이다.

없다가 생겼다면 그것은 없는 곳으로가는게 당연하다.


'있다' '없다'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말과 같다.

'안'과 '밖'은 서로 다르나 뗄 수 없는 관계關係에 있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눈이 멀었기 때문에 무명無明이다.

無明으로 因해서 모든 존재가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처님에

依해서 최초로 발견發見되었다.


어떤 것이 존재存在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고 그들이 서로 관련關聯되고 의지依支하여 존립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依해서 生滅한다.[相依性] 인연因緣이란 이것과 저것이 얽혀있는 관계요 주고 받는 관계다. 좋든 싫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두 관계 속에서 주고 받으며 의지依支하고 있다.


나에게서 남을 보면 인연법[因緣法]을 본 것이요

남에게서 나를 보면 연기법[緣起法]을 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인데[因緣生滅] 이것을 모르고 뜻대로 하려는 데서 그릇된 견해見解와 그릇된 삶이 있게된다. 부처님이 고행苦行에 들어가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면免 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곧 그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생.로.병.사를 면하겠다는 생각이 바로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뜻대로 해 보겠다"는 망상妄想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生하고 늙고 병病들고 죽는다.


사물은 존재조건이 올바르게 충족되었을 때 존재할 수 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다를 바 없다.(연.생.연.멸 緣/生/緣/滅) 열 두가지 인연절차에 의해서 모든 존재가 생기고 없어진다.


부처님이 사성제四聖諦를 얻을 때 우주 모든 사물事物에 정신이 집중되고 숨이 죽은 듯이 고요하게 들어오고 나갔다. 숨과 마음, 몸과 마음, 일체의 사물과 부처님 자신은 완전完全히 하나가 되어 적정寂靜그대로요, 영묘靈妙한 움직임 그대로 밝은 빛으로 가득찬 지혜智慧의 바다가 되었다.


나의 몸을 관觀하여서 깨끗하지 않음을 알기는 쉽지않다. '내 똥은 구리지 않다'는 말처럼

남의 결점이 크게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그러나 부정不淨하다는 것에 집착해


도 잘못이다. 우리 몸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정淨과 부정不淨을 넘어서 있다.

모든 문門은고苦를 없애기 위한 선교방편禪敎方便이지

지혜智慧와 방편이 둘이 아니며 영육靈肉이 둘이 아니다.


人間은 성장함에 따라 육근六根으로 침투하는 六境에 執着하므로(思量.分別.妄想)

스스로 노예奴隸가 되고 苦를 짓는다. 하여 방하착放下着하라는 것이고


이 열쇠로 안반수의가 있다.

우리 몸은 부정不淨하고 감수작용感受作用은 苦이며 마음은 無常하고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無我임을 알려면 마땅히 四意斷을 行할 일이다.



◇[수식관數息觀의 수련 공덕]

① 수식[數息]에서 네 가지 마음의 힘을 얻게 된다

② 상수[相隨]에서 또 다른 네 가지 마음의 힘으로써 악을 없애게 된다

③ 지[止]의 단계에서 네 가지 신통력을

④ 관[觀]의 단계에서 다섯 가지의 정신력을

⑤ 환[還]의 단계에서 일곱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고

⑥ 정[淨]의 단계에서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얻게 된다.


부처님 법法은 무량無量하나 하나로 통通한다. 사람은 깨달음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7종 번뇌煩惱[탐욕 노여움 애욕 오만 무명 아집 의심]가 있음으로 깨달음이 존재한다. 번뇌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煩惱를 깨달음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묘적妙適이라 한다.


♧<隨病說藥수병설약> 병에 따라서 약을 설함


眼受色 耳聞聲 鼻向香 口欲味 身貪細滑 不受色聲香味細滑 是爲力

안수색 이문성 비향향 구욕미 신탐세활 불수색성향미세활 시위력


겉보기에 선善이 먼저고 도道가 뒤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꽃이 먼저냐 열매가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다. 꽃이 먼저인 것같으나 이미 꽃 속에


열매가 있다. 꽃속에서 열매를 보고 열매 속에서 꽃을 볼수 있어야 한다.
인연법因緣法 이란 삶 속에서 죽음을 보고 죽음 속에서 삶을 보아야 법法을 본다고 할 수 있다.


선善한 마음을 가졌으면 이미 도道를 행하고 있음이요

도道를 행行하고 있으면 이미 선의善意가 행해지고 있음이라.


선의善意와 도의道意가 인연법因緣法으로 상응相應

하여 도道는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본래부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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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붓다의 명상 호흡 - 안반수의安般守意|작성자 혜연성화




                                                                                                                                                     

 

극락정토로 가는 길 (白道)

http://blog.daum.net/mjpark39/16404758